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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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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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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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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0화 그는 청나라 사람이다

DUMMY

170화 그는 청나라 사람이다


“예친왕, 그대에게 다시 말하지. 저자를 벌하는 것은 저자가 조선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오. 이곳이 조선 땅이기 때문이지. 또한 그 나라가 어디인지 따지자면 저자는 청나라 사람이오.”

“......굴마훈의 출신지는 조선이오만.”

“태어남은 조선이되 지금은 청나라 사람이지.”


단호하게 이르는 말에 예친왕 도르곤은 지그시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민에 잠겼다.


그 특유의 영민함이 지금 조선왕이 하는 말에 담긴 뜻 그리고 향후에 이를 허락함으로 생길 문제에 대해서 얼추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이걸 허락하면 굴마훈 놈으로 끝이 안 나.’


조선왕이 굴마훈, 정명수를 처리하는 일이야 도르곤에게 있어서는 대단치 않은 일이었다.


본디 조선 사정에 밝고 이들을 압박하는 용도로 쓰기 위해 들어서 쓰던 자다.


이는 조선을 고개 숙이게 한 무렵에는 쓸모가 많았으나 이제는 다르다.


앞으로 있을 일들과 얻고자 하는 것들을 고려하면 이러한 압박 외교는 불필요했다.


아니, 만일 조선이 그들을 적대하지 않고 계속 우호를 이어 나갈 수 있다면 이건 불필요함을 넘어서 반드시 내쳐야 했다.


오늘과 같은 일이 더 크게 벌어지면 그때는 도르곤이 아니라 홍타이지가 직접 와도 수습하기 어렵다.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질 것을 걱정하지는 않으나 중원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얻기 위해 족히 한 세대는 기다리게 될 터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지금이 정명수를 쳐내고 그 대가를 생색내기 좋은 시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조선왕이 주장한 바에 있었다.


-정명수는 청나라 사람이나 그 죄는 조선 땅에서 벌인 것이니 조선왕인 자신이 묻겠다.


이걸 받아들이면 이 문구에서 정명수라는 이름만 바꾸어 다시 말하는 것도 용납해야 한다.


그리고 도르곤은 그렇게 할 경우 당장 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서 그 바뀔 이름이 될 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바로 아이신기오로 요토 그리고 혹시나 관련되었을지 모르는 팔기들이었다.


‘굴마훈 놈이 혼자 했을 리가 없지.’


도르곤은 정명수의 본질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굴마훈이 어느 나라 사람인 게 무엇이 중요하다고?”


뚱한 얼굴로 요토가 불만 어린 얼굴로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빈정거렸다.


그에 도르곤은 답답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협의할 필요가 있겠소. 왕들끼리 말이지.”


부드럽게 말한 도르곤은 요토를 보며 서늘한 음성을 내었다.


“특히 너는 반드시 함께해야겠다.”



***



“좋아. 이제 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겠군.”


동의를 얻어서 사방에 천막을 내려 그들이 말할 자리를 마련한 도르곤은 그 서두에서 곧장 이야기를 본론으로 이끌었다.


“숨기지 않고 말하지. 조선왕께 미안하나 나는 그 구실로 당신이 저자를 벌하는 건 껄끄럽소.”

“감싸실 생각이시오? 예친왕 그대답지 않은 말이군.”

“감싼다고? 내가? 하하, 그게 아니지. 이미 알고 있지 않소? 내가 무엇을 우려하고 있는지 말이야.”


가식 없이 물으니 돌아오는 대답 역시 감춤이 없었다.


“이것은 당연한 권리요. 설마 청나라 사람이 조선 땅에서 죄를 짓고 벌하지 말라고 할 것이면 그만두시오.”

“당연한 권리라는 건 나도 인정하오. 하지만 여기서는 곤란하다고 말하는 거요. 이걸 인정할 경우 나는 중재하러 와서 내 형제와 조카를 팔아야 하오. 그건 내게 득이라고 할 수 없지.”

“뭣? 날 팔아?”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관용적이며 조카라는 말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여과없이 알아들은 요토는 대번 분노하여 얼굴을 붉혔다.


“너도 이 일에 책임이 있다. 굴마훈 그놈이 욕심은 많아도 적어도 제 편은 어느 정도 만들고 일을 진행하는 놈이니까. 그리고 여기 철원에 있는 청나라 사람들 중에 그러한 힘이 될 수 있는 건 네놈이 유일하지. 하지만 무실을 주장할 샘이냐? 뭐, 나야 그것도 나쁘지 않아. 여기서 조선왕과 굳이 협상할 필요가 없으니까.”

“......”


일을 이미 꿰뚫어 보고 하는 말에 요토는 그대로 벙어리가 되어버린 것처럼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냉랭한 눈길로 바라본 도르곤은 그 냉랭함에 어울리는 차가운 말을 입에 담았다.


“다만 나중에 드러났을 경우에는 적어도 내 도움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중재가 이루어지고 이곳을 벗어나는 순간 내 책임이 아니게 되니.”


같은 성씨를 쓰는 친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말이었다.


그러나 요토는 이에 서러움이나 섭섭함을 느끼지 않았다.


“.....책임은 질 거다. 그러니 값싼 동정은 필요 없다.”

“머저리가. 이게 지금 그런 문제로 보이나? 조선왕이 말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너 역시 이곳에서 그 과실을 논해야 한다.”

“나를? 감히? 하, 못 본 사이에 농이 늘었군.”

“농? 농이라고? 그러면 이 말은 어떠냐?”


자신의 말을 한낱 농담으로 치부하는 말에 한심함을 느낀 도르곤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을 입에 담았다.


“철원에 있는 이들이 모두 이 어리석은 모략에 동참하여서 모두 재판을 받고 죽는 거 말이다.”

“그런 일은 없다.”


단호하게 말한 요토는 그 시선에 적의를 담아서 조선왕을 보았다.


“그 전에 저자가 죽을 것이다.”

“호오, 성친왕께서는 참으로 대범하시군. 그대들의 꿈을 족히 십 년을 미루게 할 일을 그리 쉽게 말하다니, 다시 보았소.”


가벼이 하는 말에 요토는 눈알을 부라렸으나 그 행동은 도르곤에 의해서 제지되었다.


“그만! 네놈이 무훈왕 전하보다 낫더냐? 아니면 한께 이곳에 있는 팔기 수백이면 충분히 저 드넓고 풍요로운 중원을 바칠 수 있더냐? 아니면 하다못해 그것만으로 조선인을 모두 죽일 수 있나? 이 가운데 하나라도 할 수 있으면 나도 네 편을 들겠다.”


빠르고 강하게 쏘아붙인 도르곤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럴 수 없다면 좀 닥쳐라. 안 그러면 네놈은 내가 아니라 한께 죽을 것이다.”

“......”

“무터부러 친왕은 어찌 대답이 없지?”


도르곤이 한층 더 압박을 가하니 요토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열린 입에서 말은 나오지 않으니 그 자존심이 문제였다.


아무리 돌아가는 형세를 읽음이 느리다고 하여도 도르곤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함부로 행동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던 것이다.


또한 지금이야 이렇게 조선에 처박혔음을 한탄하고 싫어하는 그이나 본디 홍타이지가 한이 되도록 빠르게 그를 지지하며 여러 정치적 사안에 개의치 않고 의견을 내었던 요토다.


자존심을 살짝 내려두니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왕께 사죄하는 바요. 감정이 격하여져서 할 말 아니 할 말을 가리지 못하였소.”


요토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이에 도르곤은 화를 조금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조선왕이여, 방금 말은 어리석은 자의 감정적인 말이오. 이 일이 남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관대히 넘겨주시오.”



***



유리해졌다.


요토에 비할 정도는 아니지만 도르곤 역시 정중하게 고개를 약간 숙였다.


이만하면 충분했다.


“사과를 받아들이겠소. 두 분 친왕께서는 고개를 들어주시오.”


적당히 이끌어 갈 수 있는 자리를 잡았으니 나는 생각해둔 바를 입에 담았다.


“다만 일을 유야무야 하는 건 하지 않을 것이오. 대신 그대들이 내가 말한 것처럼 받아들인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명수, 아니 그대들이 굴마훈이라 하는 자에게 책임을 돌리겠소. 대신 성친왕께서는 공식적으로 사과하여 주셔야겠소이다.”


적당한 구실을 찾던 내 머리는 이내에 괜찮은 말을 떠올렸다.


“그대가 ‘부하의 사욕 어린 감언에 넘어가서 힘없는 조선 백성을 핍박하였다’고 말이오.”


내 말에 도르곤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인지 얼굴이 조금 풀렸으나 요토의 얼굴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또한 조선에서는 이 일을 명문화하여 전례로 삼길 바라오. 이 모든 걸 받아들이신다고 하면 나는 그대들에게 철원에 있는 모두의 목숨과 명예를 보장해드리도록 하겠소이다.”


명문화라는 말에 요토의 안색은 한층 더 찌푸려지고 도르곤의 얼굴이 도로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제시하는 조선에 그들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모습에 차분히 입을 열어 말을 덧붙였다.


“두 분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드리리이다. 다만 나는 당장 걸리는 것을 양보하였소.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참, 혹여 미래가 걱정되어 대답을 꺼리신다면 한마디 하리이다.”


미래를 거론하며 두 사람의 시선을 모은 나는 남은 말을 입에 담았다.


“이 일은 그대들이 조선에서 악한 일을 저지를 생각은 품은 게 아닌 이상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오.”

“제길, 거절할 도리가 없는 말들이군. 그대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향후 어느 나라나 족속이 우리 지배를 받으며 번국이 되겠단 말인가? 그러면 진정 우리 청나라는 적어도 조선에게 항우가, 초패왕이 되겠지.”

“예친왕께서는 고사에 참 밝으시구려. 허면 사람들은 유방에게는 항복하고 따르되 항우에게는 절대 그러지 않았음을 잘 알고 계시겠지.”


내 말에 도르곤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요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시선을 받은 요토는 두 눈을 감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받아들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런 머저리가 될 수는 없으니.”


이것으로 전례 삼을 규례, 이후 조선이 외국을 대할 기본이 하나 준비되었다.



***



이후 일은 일사천리였다.


“근자에 조선과 청은 간신히 화의를 이루고 평화를 지켰다. 그런데 한갓 개인이 그 사욕으로 백성을 핍박하고 그 사이를 어지럽히니 그 죄가 참 크다. 이는 조선과 청에 대한 반역이며, 배신이다. 그 죄질이 크고 행실에 수오지심이 없다고 할만하니 저자는 실로 가르쳐 교화할 사람이 아니라 짐승과도 같다. 하여-.”


말하며 나는 정명수를 노려보았다.


우리가 따로 천막을 차리고 들어가 논하기 전과 같이, 아니 부상으로 인해 더 창백해진 그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분명히 그에게 경고했다.


함부로 하면 그 목을 취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 경고를 어기고 이런 짓을 벌였으니 그에게 주어질 것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사행 감찰 제조 정명수를 파직하고 참형에 처한다.”

“아, 안 돼!”


내가 주도하여 형을 고하니 정명수는 벌벌 떨며 사방을 살폈다.


그러나 그를 도와줄 생각이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그가 얻을 수 있는 건 아직 다 고하지 못한 처분뿐이었다.


“또한 그 이후 시신은 청나라로 보내어 남은 죄를 치르게 할 것이다.”

“나 예친왕은 위대한 한이자 관온인성황제의 대리로서 이 일을 인정하겠소.”

“나 성친왕은 철원에 있는 이들을 대표하는 친왕으로서 이 일을 받아들이겠다.”

“끄륵.”


두 친왕이 판결에 찬동하니 그 현실을 더 견딜 수 없게 된 것인지 정명수는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해버렸다.


“죄인을 끌어내라.”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린 나는 곧 명하여 정명수를 눈앞에서 치울 것을 명령하니 팔기들이 내 명령대로 움직였다.


저들이 내 말에 따르니 살짝 기이한 느낌이 든다.


주범은 치웠고 이후 요토나 팔기 가운데 사정을 아는 이들이 있다고 한들 그들은 따로 가볍게 치울 것이다.


그것은 솔직히 상관없다.


이미 얻을 수 있는 건 얻었고, 남은 것 역시 도르곤과 조금씩 조율하면 충분히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날 괴롭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후.


속으로 숨을 고른 나는 안타까움을 담아서 외쳤다.


“......지금부터 위증한 이들을 심문하겠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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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180화 굶지 않는 세상 +2 23.04.03 537 29 15쪽
180 179화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크다 +2 23.04.02 563 24 12쪽
179 178화 말은 후에 붙는다 +3 23.04.01 545 25 15쪽
178 177화 보고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1 23.03.31 549 27 12쪽
177 176화 답은 정해져 있다 +1 23.03.30 572 30 12쪽
176 175화 이웃을 보면 자신을 알 수 있다 +1 23.03.29 571 27 12쪽
175 174화 소문에서 진실은 찾기 어렵다 +2 23.03.28 584 22 13쪽
174 173화 밑 빠진 독 +2 23.03.27 582 30 12쪽
173 172화 칼이 없는 전장 +3 23.03.26 583 29 11쪽
172 171화 재판이 끝나고 +2 23.03.25 575 27 11쪽
» 170화 그는 청나라 사람이다 +9 23.03.24 621 30 12쪽
170 169화 보은은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4 23.03.23 572 35 14쪽
169 168화 도둑맞을 수 없는 사람들 +5 23.03.22 569 35 14쪽
168 167화 철원 재판 +2 23.03.21 553 27 12쪽
167 166화 토끼의 꿈 +1 23.03.20 561 27 13쪽
166 165화 욕심은 눈을 가린다 +4 23.03.19 581 27 13쪽
165 164화 그 끝에는 편함이 있다 +2 23.03.18 560 32 14쪽
164 163화 나는 친왕이 아니다 +1 23.03.17 575 28 12쪽
163 162화 때로는 무모한 전진이 낫다 +4 23.03.16 591 30 12쪽
162 161화 호랑이를 만드는 방법 +2 23.03.15 594 28 14쪽
161 160화 야합 +5 23.03.14 592 30 12쪽
160 159화 저울질하는 사람들 +1 23.03.13 582 29 14쪽
159 158화 앎은 때때로 사람을 힘들게 한다 +1 23.03.12 586 37 12쪽
158 157화 두 사람이 보는 시선 23.03.11 607 30 12쪽
157 156화 사람은 성공만 본다 +1 23.03.10 599 30 12쪽
156 155화 사지에서는 당당해야 한다 +3 23.03.09 616 32 15쪽
155 154화 복이 되기 전 화는 그저 화다 +3 23.03.08 613 28 11쪽
154 153화 어긋남은 두고 보는 것이 아니다 +3 23.03.07 581 36 12쪽
153 152화 불은 사방을 향한다 +1 23.03.06 579 31 12쪽
152 151화 마음 가득한 심증 +2 23.03.05 580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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