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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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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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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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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96화 균형

DUMMY

396화 균형


“대학사, 이건 해야 하는 일이외다.”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이 한층 더 압박하니 대학사 범문정은 가만히 그를 보다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본디 한족인 범문정이 청나라에서 위세 떨칠 수 있던 근원은 한이었던 홍타이지의 총애였다.


그러나 이제 홍타이지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 전쟁 주역 가운데 하나로 그 권위가 남다른 지르가랑의 정당한 요구를 무작정 물리기는 쉽지 않았다.


만약 홍타이지가 임종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여 그에게 제대로 훗날을 맡겨 탁고대신으로 삼았다면 이야기가 좀 달랐을 수도 있었다.


허나 아쉽게도 범문정은 늦었고, 그에게는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바꿀 재주가 없었다.


“······적극적으로 고려하겠습니다.”

“좋군. 내 생각에는 일단 요여군왕과 다라겸양군왕 둘을 친왕으로 올리는 일을 우선함이 좋겠소.”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때 공 세운 분들의 일은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지르가랑이 칭하는 이들, 요여군왕 아이신기오로 아바타이와 다라겸양군왕 아이신기오로 와극달은 본디 공을 세워 그 작위 올리는 일이 예정되었다.


그러나 그들만 그런 것은 아니건만 그들만 이르니 범문정은 지르가랑이 조금 전부터 품고 있던 의심에 확신을 더하게 되었다.


‘나서서 친왕 작위 받게하여 은혜를 팔아두겠다? 예친왕을 밀어낼 심산이로구나.’


시간이 흘러도 받을 것이나 그것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떠하며 그 기다릴 필요가 없게 한 고마움이 어떠할지도 범문정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르가랑이 어떠한 이득을 보고자 함도 말이다.


‘그렇게 두고 볼 수는 없지.’


일을 처리하되 지르가랑만 이득을 보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잠시, 지르가랑이 이어서 한 말은 다소 뜬금이 없어 범문정의 사고를 확 끌어들였다.


“대학사, 균형이라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소?”

“예?”

“누구라고 말은 안 하지만 북경 함락이며 전쟁 계획 수립 등 아주 공이 지대한 사람이 있지. 아주 귀하고 대단한 사람이 말이야.”

“······.”


범문정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지르가랑은 은근한 어조로 말을 덧붙였다.


“너무 과하면 독이라고 하지. 권세며 위명도 그러하다고 생각하오.”

“후우.”


차마 부정할 수 없는 말에 범문정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각에서 논하여 보겠습니다. 다만 이 일은 여러 높은 분들에게도 전하여 그 뜻을 살피고자 하니, 부디 살피어 주시기 바랍니다.”


범문정이 이르는 말에 지르가랑은 이마를 주름지게 하더니 못내 아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샨 형님하고 같이 고생한 아지거나 도도 정도는 나도 이해하지. 그러면 부탁하겠소이다.”


지르가랑이 이리 말을 남기고 떠나니 이는 사실상 범문정이 논하고자 하는 ‘높은 분’이 누구인 줄 알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양보하겠다라. 하.’


범문정은 새삼스럽게 이 청나라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는 걸 자각하고는 바깥을 향해 크게 외쳤다.


“게 있느냐!”

“예, 대학사.”


사람이 하나 들어와서 공손하게 고개 숙이니 범문정은 곧장 명령을 내렸다.


“예친왕 전하께 사람을 보내어 모셔라. 급히 논할 일이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말끝을 흐린 범문정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균형, 좋은 말이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하여 정친왕에게 세가 기울면 본말전도다. 그 또한 예친왕 못지않으니.’


그러니 알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범문정은 혹시나 누군가 엿들을까 두렵다는 듯이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서 일렀다.


“정친왕께서 근래 누구와 회동하였는지 알아봐라.”



***



“이 자리를 제법 고대하였지.”


예친왕 아이신기오로 도르곤은 차분한 어조로 말하며 손수 차를 타 자리한 상대, 소현세자에게 내밀었다.


이윽고 자신의 것도 준비하여 자리한 도르곤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래, 조선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어떻게라고 하셔도 대단한 것은 없습니다. 그저 예전에 정한 것처럼 도리며 순리대로 따를 뿐입니다.”

“흐음.”


상당히 원론적인 말이 나오자 도르곤은 두 눈을 깊이 가라앉혔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그는 조선에서 어떠한 의도를 품고 있는지 살피고자 했다.


이러한 생각을 알고 있다고 하듯 소현세자는 다시 입을 열어 말을 보탰다.


“이웃 사람에게 농사일을 도와달라고 하여 도움을 받으면 보통 그 도움은 땅 가는 일이나 씨 뿌리는 일 혹은 추수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럴 것이오.”

“그런데 만약 이웃 사람이 그러한 일 말고 다른 일, 가령 집안 장식이며 조각 생긴 게 이상하다고 달려들어 망치를 대면 좋아하기란 어렵겠지요.”

“과연.”


소현세자가 이르는 말을 들은 도르곤은 그제야 조선에서 이 일을 대하는 태도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전에 약조한 것처럼 도울 것이며, 계승에도 자리할 것이다.


허나 그 외에 일은 기대하지 말라.


‘괜히 날뛰며 이것저것 노리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긴 하지.’


조선이 이 와중에 나서서 욕심부리고자 하면 여러모로 곤란하여질 수도 있음을 도르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저 최소한만 다하고자 하는 이런 조선의 태도는 오히려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니, 도르곤은 고민하다가 무거운 입을 떼어 다시 물었다.


“지르가랑에게도, 정친왕에게도 그리 답할 생각인가?”

“그러합니다.”


소현세자의 대답에서 도르곤은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하나는 조선에서 한발 물러선 자세를 보이고자 함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조선에서 아직은 자신을 더 우위로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거 고맙군.”

“예친왕 전하, 내각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소소하나마 좋은 일을 찾아내어 만족하기도 잠시, 도르곤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는 말에 미간을 좁혔다.


“기다리라고 해라. 지금 귀한 손님과 대면 중이다.”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대단히 바쁘신 모양이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어찌 그러하겠소.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선약이 먼저인 것은 상식이거늘.”


도르곤이 진심을 담아 이르니 소현세자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대신 내일 정친왕과 만남도 이것보다 길게 할 수는 없겠지요.”

“······호오.”


사정을 보아줄 터이니 이용하게 해달라는 말에 도르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조선의 세자께서는 영민하시군.”

“허면 다음에는 더 좋은 자리에서 뵙기를 바라겠습니다.”


더 좋은 자리라는 말에 도르곤은 일순간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이내에 도로 돌렸다.


“나도 그러길 희망하오.”


도르곤의 말을 배웅 삼아 소현세자가 자리를 떠나니 교대하듯 그가 부리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들어와서 고개를 숙였다.


“예친왕 전하, 송구합니다.”

“되었다. 작으나마 지르가랑 놈 견제할 구실도 던져주었으니 아주 나쁘진 않아. 그래, 대학사가 무슨 일로 사람을 보냈다고 하더냐?”

“내용은 모르오나 사자가 이르길, 가능한 빠르게 대면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대학사 범문정이 찾고 있다.


그것도 급하게.


이에 도르곤은 어째 썩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갈 것이다. 먼저 대학사에게 가서 전해라.”



***



“지르가랑이 그런 제안을 하였다고?”

“그렇습니다.”


범문정과 마주 앉은 도르곤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미간을 좁히며 고심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어. 너무 뻔히 보여서 기분 나쁠 정도로 말이지.”

“정친왕께서는 일단 요여군왕 전하, 다라겸양군왕 전하를 친왕으로 올리는 일을 논하셨습니다.”

“둘이라.”


군왕에서 둘을 친왕으로 하자는 속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두 사람에 더해서 지르가랑 본인을 더하면 셋, 남은 자리 채우기는 어렵지 않다.


아니, 그렇게 되면 남은 자리 정도가 아니라 자리하던 사람을 밀어내기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이견을 제시하고 참가하고자 하는 이들이 동의하면 친왕 하나가 계승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기야 쉽지.’


다섯 자리 가운데 하나는 조선왕의 것이니 남은 의자는 넷.


그 넷 가운데 셋을 채우고 셋이 합심하면 다른 하나를 바꾸는 건 충분히 시도해 볼 법한 일이었다.


대체할 사람이 있다면 더욱 그러했다.


“일단 고려는 해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고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 같소이다.”


범문정이 이르는 말에 도르곤은 의외라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대라면 이렇게 하는 것이 더 균형이 잡힌다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보통이라면 그랬겠지요.”


복잡한 얼굴로 대답한 범문정은 잠시 말을 고르며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강력한 친왕들을 계승식에 참가하게 하여 위엄을 얻는다. 이것이 본래 구상이었으나 솔직히 말해 지금 예친왕께서는 너무 강력하십니다.”

“······너무 강력하다?”

“지난 전쟁, 일등 공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예친왕 전하이십니다.”


공을 이르니 도르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범문정을 보았다.


그 시선에 응하듯 범문정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저번 계획은 저와 함께 세우셨으나 그 시행은 예친왕 전하께서 맡으셨고 또한 훌륭하게 성공하셨습니다. 그리고 북방군 토벌 및 북경 함락은 그 위업을 더욱 빛냈습니다. 이러니 당연 공은 예친왕께서 가장 크십니다.”


얼굴에 금칠하는 말에 도르곤은 즐거워하는 한편 이해할 수 있었다.


“주공단이 아니라 영락제가 되게 생겼다, 그거로군.”

“말씀드리기 어렵고 송구하나 사세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는 정친왕께서 이 일을 가져오셨을 때 곤란하지만 추진할 생각입니다.”

“허면 내 형인 아지거와 도도도 그 논공행상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걸 일깨워 드려야겠소이다.”


도르곤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이르니 범문정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도로이 바투루 군왕께서는 영친왕으로 오르시며 버일러 도도는 옛 친왕 위를 되찾아 통친왕이 되실 겁니다.”


처음부터 양쪽 모두에 세를 더할 생각이던 범문정이 이 말을 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다.


이뿐 아니라 한 사람 더, 그는 친왕으로 도로 세울 생각을 품고 있었다.


다만 이는 군공만 가지고 말하기에는 허물이 많아 범문정은 조심스럽게 묻게 되었다.


“흠흠, 그래서 말입니다만.”

“?”


범문정이 말하길 조심스러워하니 도르곤은 또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를 보았다.


그 시선에 범문정은 천천히 입을 열어 생각하던 바를 일렀다.


“버일러 요토가 옛 자리 찾음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토를?”


범문정이 이르는 말에 도르곤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좀 이르지 않은가 싶은데. 녀석은 왕작을 받은 후에 몇 번이고 사고를 쳤고, 그로 인해 한께서 벌로 두 번이나 작위를 박탈하신 바가 있소. 그리고 아바타이, 와극달, 아지거, 도도 넷은 전에 한께서 직접 친왕 자리에 대한 언급이 있었으나 녀석은 그렇지 않지.”

“어렵다고 보십니까?”

“녀석이 한 일은 군공 하나나 둘로 씻어질 것이 아니외다.”


단호하게 대답하여 요토의 친왕 자리 도로 주는 걸 반대한 도르곤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입을 움직였다.


“요토를 그대의 대변자나 조정자로 삼을 생각이라면 그만두시오. 차라리 그런 걸 바란다면 다이샨 형님께 바라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니.”

“알겠습니다.”


도르곤이 이르는 말에 범문정은 그 말이 맞다고 여기며 쉬이 물러났다.


그리고 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이는 조정자 하나 얻자고 나서지 않고 있는 크나큰 변수, 조선을 자극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 범문정은 작은 아쉬움 하나 남기고 깨끗하게 요토를 조정자며 대변자로 삼는 일을 포기했다.


“허면 이 일은 정친왕 전하와 예친왕 전하께서 주도하여 마무리하는 걸로 하여 내일 공식적으로 논하겠습니다.”

“으음, 굳이 나를 내세울 필요가 있소이까?”

“균형이지요. 정친왕 전하도 예친왕 전하 못지않으니, 저는 지금 이 정도가 딱 좋다고 생각합니다.”


범문정이 이르는 말에 도르곤이 고개를 끄덕이니 일은 그렇게 정해졌다.


이에 범문정은 다행이라고 여겼으나 그 다행스러움은 채 하루도 가지 못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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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419화 거부할 수 없는 제안 +5 23.11.28 246 17 13쪽
419 418화 땅의 용도 +4 23.11.27 255 18 13쪽
418 417화 멈추는 것은 언제인가 +4 23.11.26 250 19 13쪽
417 416화 승전 아닌 승전 +2 23.11.25 264 21 13쪽
416 415화 찻잔은 넘길 수 없다 +4 23.11.24 241 18 18쪽
415 414화 선택할 수 없는 일 +3 23.11.23 230 16 13쪽
414 413화 시작은 끝이 아니다 +3 23.11.22 255 19 13쪽
413 412화 소문에도 진실은 있다 +3 23.11.21 264 19 12쪽
412 411화 새로운 하늘 +5 23.11.20 284 22 13쪽
411 410화 사천 평정 +2 23.11.19 254 19 13쪽
410 409화 천수가 있는 성 +4 23.11.18 260 19 12쪽
409 408화 이역만리의 만남 +5 23.11.17 296 22 12쪽
408 407화 부자가 가는 길 +6 23.11.16 291 21 14쪽
407 406화 체면 경쟁 +10 23.11.15 283 22 13쪽
406 405화 꿈보다 해몽 +2 23.11.14 276 19 12쪽
405 404화 할 수 있는 최선 +2 23.11.13 250 18 12쪽
404 403화 천명의 사자 +5 23.11.12 250 20 13쪽
403 402화 가시는 삼킬 수 있다 +2 23.11.11 258 19 12쪽
402 401화 시간은 때때로 불공평하다 +5 23.11.10 261 19 13쪽
401 400화 서쪽으로 +8 23.11.09 264 19 14쪽
400 399화 작은 천하 +3 23.11.08 263 19 14쪽
399 398화 아직은 반쪽 +3 23.11.07 258 21 14쪽
398 397화 흔들리는 판 +1 23.11.06 254 21 14쪽
» 396화 균형 +1 23.11.05 255 22 12쪽
396 395화 논공행상 +3 23.11.04 268 22 12쪽
395 394화 동경 +3 23.11.03 267 20 12쪽
394 393화 다섯인가 하나인가 +5 23.11.02 255 22 14쪽
393 392화 노리는 것은 +1 23.11.01 249 20 12쪽
392 391화 두 번째 황제의 죽음 +1 23.10.31 263 20 16쪽
391 390화 떠나는 계절 +3 23.10.30 248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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