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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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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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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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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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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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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3화 밑 빠진 독

DUMMY

173화 밑 빠진 독


“이만하면 그래도 아주 손해는 보지 않았으니 체면은 차렸군.”


조선왕과 대면을 마치고 나온 예친왕 도르곤은 밤길을 즐기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하는 곳은 조선에서 그에게 내어준 거처 근방, 철원에서 잠시 이곳까지 올라오게 된 성친왕 요토가 있는 곳이었다.


“예의 없음에 더해서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재주가 아주 일품이군그래?”

“주변을 곤란하게 하는 재주를 품은 너만 하겠냐.”


툭 하고 날린 공격을 그보다 배는 묵직한 반격으로 돌려주니 요토의 얼굴이 한순간에 형편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네놈 자존심은 지켜줬다. 대신 친왕 자리는 포기해라.”

“......후. 일단 고맙다고 해두지. 뭘 하면 되지?”

“내일 조선왕에게 사과를 전해주고 대가로 적당한 사례를 건네라. 그게 이루어지는 걸 보면 널 철원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심양으로 간다. 아마 달을 넘기지 않을 테니 얌전히 기다려라.”


할 일과 경고를 연이어 입에 담은 도르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고하며 말을 덧붙였다.


“네놈들은 전원 심양으로 이동하게 될 테니까.”

“......제길.”

“불복하겠다면 다음에는 내가 직접 팔기를, 아니 조선왕에게 말해 처분할 거다. 네가 그간 세운 공적에 더해 아이신기오로라는 걸 고려해서 이만한 수준으로 끝난 거다.”

“불복하는 건 아니다. 그저 자신이 한심할 따름이지.”


자신이 한심하다는 말에 도르곤은 잠시 요토를 살폈다.


이윽고 한 말에 거짓이 없다 여긴 그는 살짝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반성이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

“시야가 닫혔었지. 지난날 이래 조선을 너무 무시했어.”

“그거 다행이군. 앞으로 함께 하려면 그래서는 곤란했는데 말이야.”

“함께?”


여러모로 의아함이 들게 하는 말에 요토는 불편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얼굴을 보며 아직 조금 이른 이야기였다고 여긴 도르곤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한께 따로 올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생각해둬라. 잘 포장해서 전하도록 하지.”

“하. 무엇을 믿고? 말은 남에게 넣어진 것이라고 해도 입을 여는 수간 그 입 주인의 주관이 깃드는 법. 이번 일에 대한 사죄를 포함해서 서신을 올릴 것이다. 그리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끝을 흐린 요토는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며 어렵게 말을 덧붙였다.


“......내 친왕 작위 반납과 사죄를 위해 일개 팔기로라도 전장에서 뛸 것을 간청할 것이야.”

“그것도 나쁘지 않군. 처신으로서는 물론이고 대청을 위해서도 말이다.”


고려하던 방안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었던 것을 직접 요토가 입에 담으니 그처럼 좋을 수가 없던 도르곤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라. 너는 우리 대청이 중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장수다.”

“말은 고맙군.”



***



“나쁘지 않구나. 마음에 충분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쁘지 않아.”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송구합니다.”


홍타이지가 하는 말에 도르곤은 고개를 숙이며 공손히 대답하였다.


이에 홍타이지는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여니, 그 나오는 말들에는 책망이 들어있지 않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음은 나도 안다. 이 정도로 봉합하였으니 다행이다. 싸워서 질 것은 생각지 않으나 그 힘을 다시 조선에 들인다는 것은 천명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가장 우려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달가워한 홍타이지는 이미 한번 읽어내렸던 요토의 서신, 아니 이미 표문이라 불러야 마땅한 글에 다시 시선을 주었다.


“멍청한 녀석 같으니라고. 아니, 이 일은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해야겠어.”

“한께서 책임지실 일이 아닙니다.”

“녀석이 그곳에서 머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대가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어리석은 일을 벌인 것은 확실하게 내 책임이다.”


홍타이지는 그렇게 말하더니 멀리 시선을 던졌다.


조선이 있는 방향, 요토가 있을 방향으로 시선을 준 그는 확신을 담아서 중얼거렸다.


“요토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어. 언제고 다시 불러서 쓸 거라는 믿음을 말이다.”

“......”


무어라 대답하기 곤란한 말에 도르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런 말에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함은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의미가 없구나. 이번 일은 그대로 이루겠다. 남은 일은 내각대학사에게 맡길 터이니 너는 다시 갈 필요 없다.”

“한이시여, 감히 말씀드리자면 일을 처음 맡은 제가 끝까지 마무리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조선에 가는 것이 꼭 너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쪽은 네가 꼭 필요하다.”


자신이 꼭 필요하다는 말에 도르곤은 홍타이지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닫고 긴장했다.


“이렇게 이르게 말입니까? 아직 반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걱정이 어디에 있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무모하다는 것도 알고 있지. 정말로 시도한다면 말이지만.”

“허면?”

“본격적인 일이 되기 전에 작은 기만을 한 번 더 펼칠 뿐이다. 저들이 전과 같다고 여기도록 말이다.”


작은 기만이라는 말에 홍타이지가 생각하는 방향성을 어렵지 않게 짐작한 도르곤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한의 명에 따릅니다.”



***



인수인계를 위해 내각대학사 범문정을 찾아가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이르는 그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조선왕은 머리가 참으로 비상하군요. 아니지, 눈이 좋다고 함이 옳겠습니다.”


범문정은 그리 말한 후에 자신의 말이 부족하다고 여긴 것인지 다시 말했다.


“지금이 아니면 통하지 않을 배짱이라 할 수 있으니 실로 시기를 보는 눈이 뛰어납니다. 스스로 권좌를 쥔 자답다고 하겠습니다.”

“동감하는 바요. 명나라 황제가 그러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도르곤이 하는 말을 들은 범문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에 이상한 얼굴이 되어서 고개를 돌렸다.


“대학사?”


부르며 살피니 얼굴이 살짝 붉은 게 무언가를 참는 기색이 보였다.


생각지 못한 반응에 멍하니 있으니 범문정은 감정을 다스리며 다시 눈을 맞추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설마 예친왕께서 그런 농담으로 저를 웃기실 줄은 몰라서 실례를 범했습니다.”

“그대가 싫어하는 것과 능력 여부는 별개라고 생각하는데.”

“물론입니다. 사감을 공사에 반영하여서야 굴마훈과 같은 머저리겠지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범문정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명나라 황제가 능력이 없다고 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선왕처럼 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요?”

“능력이 있다고 한들 그것은 3대를 이어갈 재산을 지킬 능력이지 3대에 걸친 가난을 해소할 능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은 없음 가운데 찾음이 능하나 명나라 황제는 대대로 있는 것을 쓰며 휘두르는 것이 재주였습니다.”

“그들은 충분히 풍족하오.”


도르곤이 의아함을 담아 말을 꺼내니 범문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만한 풍족함의 절반이라도 청나라에 있었다면 진즉에 장성 너머는 청나라의 것이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에게는 그러한 풍족함조차 부족합니다.”

“부족하다고? 대체 왜?”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풍족함을 좀 먹는 무리가 가득하기 때문이지요.”



***



“이제는 하루하루가 걱정스럽구나.”


북경에 있는 자가에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와 근래 일을 되새겨 본 임경업은 수심을 가득히 드러냈다.


그는 대명이라면 얼마든지 일어설 수 있으며 그 힘으로 능히 천하를 안정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고 병부시랑 자리에 앉아서 살핀 명나라의 저력은 과연 놀라웠다.


병력은 끝없이 샘솟으며 물자는 넘쳐나 몇 번을 지고 몇 년을 싸워도 끄떡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 임경업은 그러한 것들이 모두 모래성과 같음을 알아버렸다.


“새는 것은 많으며 들어오는 것은 멈추어서 오기가 요원하다. 황상께서는 내탕을 내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있으나 그것보다 수십 배는 되는 부가 어찌 대신들, 아니 그 고하를 가리지 않고 내탕에 비견될 부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조선에 있을 때도 올려보내는 조세가 종종 늦어지며 때로는 사라져 부족하게 됨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에서 살펴보니 조선에서 그가 본 것은 새 발의 피나 마찬가지였다.


“안이하다, 너무나도 안이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나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았다.


우스운 점은 이대로 있어도 청나라에 질 것처럼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명나라가 품은 자원은 사람과 물질을 가리지 않고 풍족하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단지 거기서 그칠 뿐이라는 점이었다.


명나라는 내우와 외환을 버틸 힘이 있으나 그 버티는 것은 외줄 타기에 가까우며 이겨내어 천하에 다시금 안정을 가져다주는 일은 어려워 보였다.


“나으리, 객이 찾아오셨습니다.”

“객?”


시종으로 부리는 자의 말에 임경업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좋게도 나쁘게도 임경업은 황제의 총애에 비해 이곳 명나라 신료들과 어울림이 부족하였다.


그러니 그를 찾는 사람은 그리 없다고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적으니 객이라 하면 참으로 특이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디에 누구라고 하시더냐?”

“사례감에서 온 왕 환관이라 하셨습니다.”


왕이라는 성씨가 이 드넓은 명나라에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왕 환관이라 함은 이상치 않고 대단치 않았다.


하지만 그 앞에 사례감이라 붙으면 말이 전혀 달라졌다.


“......안으로 뫼셔라.”


안색을 굳히며 객을 안으로 들일 것을 명하니 오래지 않아 생각했던 얼굴이 보였다.


“늦은 밤에 실례하겠소이다.”

“태감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사례감 태감 왕승은이 얼굴을 비추니 임경업은 경계심을 담아서 물었다.


이에 왕승은은 흡족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대는 얼굴에 감춤이 없어서 좋소. 황상도 그 점을 기꺼워하시지.”

“황상의 명으로 오셨습니까?”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그렇소이다.”


비공식적이라는 말에 임경업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모습에 왕승은의 얼굴에 잠시 안쓰러움이 스쳐 갔으나 그 스쳐 감은 정말 잠시여서 임경업은 미처 보지 못했다.


“북경 주변이 어지럽혀져서 여러 의미로 곤란함을 그대도 잘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하오.”

“물론입니다.”

전일 있었던 전쟁, 청나라가 장성을 넘어서 침략한 일은 노상승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전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일종의 기준점이라고 해야 마땅했다.


전쟁 자체가 주는 곤란함과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영향으로 인한 곤란함을 나누는 기준점 말이다.


“수습을 위해서는 남경에서 여러 자원을 보내주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 일이 늦어지고 있소이다.”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일에 전문은 아닙니다.”


군대를 유지함에 있어서 둔전을 하였던 적도 있던 임경업이나 반대로 말하면 그는 그러한 일을 해야 할 정도로 보급을 잘 받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스스로 먹고 사는 일에는 능하나 이송하고 보급하는 일에는 부족하다고 하는 그의 말이 아주 거짓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왕승은도 그를 안다고 하듯 고개를 주억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황상께서 믿을 만한 사람은 오로지 그대뿐이라고 여기시오.”

“참으로 황송하고 감격스러운 일이나 이야기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임경업이 조금 더 상세히 말하여 주기를 청하니 왕승은은 살짝 주저하더니 부끄러운 듯이 입을 열어 말을 더했다.


“곧 황상께서 그대에게 남경 감찰을 명하실 것이오.”


작가의말

[첨언 - 임경업의 수완]

임경업은 북방에서 군사를 기르며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였습니다.

 

당시 일화를 살피면 임경업은 그 기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조정에서 지원금을 받아 중국과 밀무역을 하며 자본을 모으고 그 자본을 근간으로 둔전을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수완이 상당히 좋았는지 한때는 그가 이재를 밝히고 상관에게 과하게 뇌물을 준다고 탄핵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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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182화 가도 하나, 남아도 하나 +2 23.04.05 543 25 13쪽
182 181화 작은 불씨들 +2 23.04.04 557 23 12쪽
181 180화 굶지 않는 세상 +2 23.04.03 538 29 15쪽
180 179화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크다 +2 23.04.02 564 24 12쪽
179 178화 말은 후에 붙는다 +3 23.04.01 546 25 15쪽
178 177화 보고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1 23.03.31 549 27 12쪽
177 176화 답은 정해져 있다 +1 23.03.30 572 30 12쪽
176 175화 이웃을 보면 자신을 알 수 있다 +1 23.03.29 572 27 12쪽
175 174화 소문에서 진실은 찾기 어렵다 +2 23.03.28 584 22 13쪽
» 173화 밑 빠진 독 +2 23.03.27 583 30 12쪽
173 172화 칼이 없는 전장 +3 23.03.26 583 29 11쪽
172 171화 재판이 끝나고 +2 23.03.25 575 27 11쪽
171 170화 그는 청나라 사람이다 +9 23.03.24 623 30 12쪽
170 169화 보은은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4 23.03.23 572 35 14쪽
169 168화 도둑맞을 수 없는 사람들 +5 23.03.22 571 35 14쪽
168 167화 철원 재판 +2 23.03.21 553 27 12쪽
167 166화 토끼의 꿈 +1 23.03.20 562 27 13쪽
166 165화 욕심은 눈을 가린다 +4 23.03.19 581 27 13쪽
165 164화 그 끝에는 편함이 있다 +2 23.03.18 562 32 14쪽
164 163화 나는 친왕이 아니다 +1 23.03.17 575 28 12쪽
163 162화 때로는 무모한 전진이 낫다 +4 23.03.16 591 30 12쪽
162 161화 호랑이를 만드는 방법 +2 23.03.15 595 28 14쪽
161 160화 야합 +5 23.03.14 593 30 12쪽
160 159화 저울질하는 사람들 +1 23.03.13 583 29 14쪽
159 158화 앎은 때때로 사람을 힘들게 한다 +1 23.03.12 587 37 12쪽
158 157화 두 사람이 보는 시선 23.03.11 607 30 12쪽
157 156화 사람은 성공만 본다 +1 23.03.10 600 30 12쪽
156 155화 사지에서는 당당해야 한다 +3 23.03.09 617 32 15쪽
155 154화 복이 되기 전 화는 그저 화다 +3 23.03.08 613 28 11쪽
154 153화 어긋남은 두고 보는 것이 아니다 +3 23.03.07 583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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