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군의 마신(魔神)(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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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셋, 게임 셋입니다. 트윈스가 베어스를 3-1로 꺾고 승리를 차지합니다. 자, 양상준 위원, 오늘 트윈스의 승리 요인을 분석해 주시지요.”
‘네, 그렇습니다. 오늘 트윈스는요, 무엇보다도 선발투수, 선발로 나온 진성운 선수의 활약을 첫 손에 꼽을 수 있겠죠? 오늘 프로데뷔 첫 선발인데 아주 대단한 피칭을 했습니다.”
“오늘 기록이 6이닝 5피안타 2볼넷 무실점 99개의 투구수,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성운 선수 구속은 빠르지 않습니다만 존을 아주 넓게 활용했고요. 특히, 높은 존을 잘 공략하는 것이 제 눈에는 아주 인상적이었거든요?
스트라이크 존의 양 옆 뿐 만 아니라 위아래로도 아주 효과적으로 공략했습니다.”
“네, 트윈스의 승리소식을 전하며 오늘의 중계를 마치겠습니다. 이어지는 스포츠타임에서 승리투수 진성운 선수의 인터뷰를 만나보겠습니다.”
****
“진성운 선수, 오늘 데뷔 첫 선발승 축하드립니다.”
예쁘장하게 생긴 스포츠 리포터가 진성운의 옆에 서서 키가 큰 진성운과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 6이닝 무실점, 그것도 선두 베어스의 핵타선을 맞이하여 잘 던지셨는데요?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요?”
“아.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 네, 굉장히 겸손하게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오늘 베어스 타선을 맞이하여 특별히 준비하신 게 있을까요?”
“네, 베어스 선수들이 워낙 상하위 가리지 않고 잘치기 때문에 제구에 특히 신경을 많이 썼고요. 유강북 선배님 리드에 따라 던지란 대로 던졌습니다.”
“네, 그렇군요. 특히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가 있었다면요?”
“네, 다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중 한 선수만 딱 꼽는다면요?”
“하하, 글쎄요.. 뭐 어렵지 않은 선수가 없어서 모르겠지만.. 오늘은 특히 페르난도 선수가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6회에 페르난도 선수에게 2루타를 맞고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했잖아요? 무슨 말씀 나누셨나요?”
“아, 네.. 그냥 던질 수 있냐 하시길래 제가 하겠습니다 해서 잘 해보자 하셨습니다.”
“네, 끝으로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그동안 몇 년간 기대에 부응 못해 드렸는데 더 열심히 해서 팀 우승하는데 꼭 보탬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트윈스의 진성운 선수 만나봤습니다.”
****
‘휴우.. 인터뷰도 너무 오랜만에 해 봐서···’
더그아웃에 돌아오니 다들 축하한다고 난리였다.
나도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이야~~ 이제 네가 내 자리를 빼앗아 가는구나. 야,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어.”
웃으면서 먼저 칭찬해주는 것은 나한테 자리를 빼앗긴 형규형이었다.
“성운아, 첫 선발승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김헌수 선배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성운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아까 선배님이 잡아주신덕에 이겼습니다.”
나는 오지훈 선배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야, 임마, 그냥 형이라고 불러.”
“네.”
“성운아, 축하한다. 봐, 내가 약속 지켰지?”
정수가 싱글벙글 하면서 생색을 낸다.
“그래 고맙다. 정수야 별 일없으면 저녁 같이 하자. 나영이랑 우리 부모님 같이 오셨어.”
“야, 야.. 너희 가족모임에 내가 왜 끼냐? 나도 약속있어.”
정수는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어? 야, 너 언제?”
“나중에 소개 해 줄게, 아직은 썸씽 수준이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자 부모님과 나영이가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인 좀 해주세요!!!!”
여기저기서 난리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해 드릴게요.”
서둘러 부모님께 가는데 아버지가 다시 돌려보낸다.
“가서 사인들 해드리고 와라. 우리야 기다리면 되지.”
“에이, 아빠, 한 번 잡히면 한 시간 넘게 걸려요.”
“그래도 가, 프로가 그러면 안 돼.”
나는 아버지한테 등 떠밀려 팬들에게 사인해주러 돌아갔다.
와!!!!
사람들이 나를 에워싼다.
정말 프로야구선수로 돌아온 기분이다.
‘선발승하고 해주는 사인은 이렇게 느낌이 달랐나?’
사인해주는 맛이 새삼 꿀맛이었다.
****
우리는 식당에 앉아 온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 어깨는 안 아프냐?”
아버지는 승리보다도 아플까봐 걱정이었다.
“네, 괜찮아요, 사이드로 던지니까 안 아파요.”
“그래, 수고했다.”
엄마가 옆에서 한 마디 한다.
“오늘 나영이가 애썼어, 정말 우리는 몸만 왔어.”
“에이, 아니에요, 어머니 당연한 일을요.”
나영이도 싱글벙글이다.
선물을 사 줘도 이렇게 좋아하는 표정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잘 하니까 이렇게 기뻐하는 구나.’
나영이한테 미안했다.
얘는 겉으로는 틱틱거려도 늘 나한테 진심이었다.
“근데 너희들.. 혹시 결혼 생각은 없어?”
“풋”
엄마의 말에 물 마시다가 살짝 뿜었다.
“엄마!!”
내가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자 나영이도 얼굴을 붉힌다.
“어머니, 저희 아직 25살이에요. 만으로는 24살인걸요?”
당황해하는 나영이 손을 잡고 엄마가 말한다.
“운동선수들은 결혼을 빨리하기도 하잖니? 저 녀석 저 성질 부리던거 너 만나고 얌전해 졌어,
나는 아직도 그게 믿기지가 않아.”
사실 나영이를 만나서 성질이 얌전해 진건 아니지만 엄마한테 일일히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영이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니까..
“에이 아니에요, 어머니, 성운이 원래 심성은 착한 애에요, 어머니 잘 아시잖아요?”
“그래도 네 덕분에 얘가 맘 잡은 건 맞아.”
“엄마, 저..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
내가 나서서 상황을 수습했다.
옆에서 아버지도 거들었다.
“그래, 젊은 애들 연애도 좀 맘 편하게 해야지, 너무 부모가 뭐라해도 안 돼.”
“이이는 꼭 나한테만 뭐라 하더라.”
얼마만인가?
온 가족이 즐겁게 웃으며 이렇게 식사를 하는게..
아이 보느라 못 온 누나만 같이 있다면 완벽한 가족 모임이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는 불안감과 미안함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 못 살텐데.. 그럼 나영이가 많이 힘들텐데···’
“휴우”
“왜 이 좋은 날 한숨을 쉬어?”
“어? 아.. 아니야.”
원래의 삶에서는 나영이는 그저 친한 소꿉친구일 뿐이었다.
수 많은 잘 나가는 연예인들과 사귀었고 그 끝은 최고의 아이돌겸 배우인 유세아였다.
그리고, 두 번째 삶에서는 나영이한테 죄를 지은 기억 밖에 없다.
나를 생각해주는 나영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쓰레기처럼 굴다 방출당하고 죽었다.
세번째 삶에서는 나영이와 부쩍 가까워졌다.
나영이가 옆에 있으면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영이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영이와 같이 보낸 시간이 근 50년 가까이 된다.
50년이면 없던 정도 생긴다.
헤어질 것을 생각 못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세상 어떤 커플도 만나고 헤어지고 한다.
나영이를 사귄다고 해도 10년 가까이 사귈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내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나영이를 계속 사귈까 싶었는데···
어느새 6년째가 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며 내 삶에 충실할 수 밖에..
다소 비겁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나영이를 아껴주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잘 하자. 할때까지 해보고..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은 데이트 하라며 먼저 일어나셨다.
나랑 나영이는 손을 잡고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었다.
나영이의 환하게 웃는 모습,
나영이 눈에 비친 내 모습도 이럴까?
하지만 어찌되었건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은 행복했다.
누군가가 옆에서 지지해주고 안 해주고는 천지차이였다.
“꿈만 같다. 몇 년이 지나도 가끔 꿈 같을 때가 있어.”
나영이는 싱긋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뭐가?”
“그냥.. 나 너랑 사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 진성운? 진성운이랑 사귄다? 난 상상을 못 했어.”
“그런데?”
“근데.. 나도 몰라, 거절을 못 하겠더라고.”
“너 원래 나 좋아했어.”
나는 나영이 얼굴을 보며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으이그, 잘 난 척은~~ 이 누나가 너 쪼그리고 앉아서 울까봐 들어줬지.”
“하하, 그래 고맙다.”
“근데, 사귀고 보니까 잘 사귀었다 싶네, 너 이렇게 변하는 거 보고 뿌듯해.
사실 나 너랑 친하면서도 무서웠거든.”
“네가? 네가 무서운 것도 다 있어?”
나는 다소 놀랐다.
항상 진취적이고 강단있는 한나영이 무서운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야!! 너 193짜리가 입에 욕을 달고 살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아··· 미안.”
그게 나는 별로 악의가 있어서는 아닌데 거칠게 운동하고 자라다 보니 입이 좀 많이 걸었다.
그래서 몇 번의 회귀속에서 부단히 노력해서 고치고 고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나영아, 너 혹시···”
“응?”
“나 없어도 잘 살수 있지?”
“죽을래?”
“응, 내가 죽어도 잘 살 수 있지 하는거야.”
“까분다, 또..”
나영이가 눈을 희번득하게 뜨면서 노려본다.
“야, 너 폰 내봐, 너 바람피우지? 너 죽었어.”
“바람 안 펴, 폰은 못 줘.”
“아휴, 이 자식이.. 딱 보니 바람이네, 야, 너 오늘 너죽고 나죽자.”
“죽는다는 이야기 좀 그만해라. 내가 괴로운 사람이야.”
우리는 투닥대면서 술집으로 향했다.
“왜? 술 마시게? 그래 승리투수 기념으로 내가 한 잔 살게, 대신 많이 마시지마.”
“나는 많이 안 마셔, 네가 많이 마셔.”
“왜? 술 먹여서 무슨 짓 하려고?”
“한 번 업고 싶어서.. 술 먹고 북극곰처럼 무거워지는지 확인해보려고..”
“야!! 남들이 들으면 무슨 진짠 줄 알겠네, 마치 업어본 것 처럼!!”
“알았어, 미안해.”
나영이랑 보내는 그 모든 시간이 실시간으로 그립다.
우리는 이 날 많은 사진을 같이 찍었다.
술 마시기 전에도, 술에 취해서도..
어차피 안 남을 사진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그러고 싶었다.
****
4월 말에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이후 전반기 내내 괜찮은 활약을 했다.
8승 4패 3.24
다시 반발력이 조정된 공인구의 덕도 톡톡히 봤지만 그래도 구단에서 기대한 이상의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칠 것 같았다.
“성운아, 2군 내려가.”
“네?”
갑작스러운 2군 통보에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전반기 마감이 열흘 밖에 남지 않았는데 2군이라니?
“휴가 주는 거야. 전반기에 너무 많이 던져서.”
“저, 괜찮은데요? 어차피 조금 있으면 올스타 브레이크고..”
“미리 쉬어, 너 어깨에 부담되서 안 돼. 너무 잘 던져서 계획보다 많이 던지게 했어.”
“아.. 네, 감사합니다.”
“싫으면 이천 안 가고 그냥 1군이랑 동행해도 괜찮아.”
“아닙니다. 이왕 쉴거면 이천 가 있겠습니다.”
나는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올해 미션 성공을 예상한 건 아니었다.
올해는 선발로테를 돌 정도의 성적만 올리면 된다.
진정한 도전은 내년부터 4년간이다.
팀의 전력도 계속 강해지기 때문에 승수를 쌓기 더 좋다.
올해는 이 정도 성적도 충분히 과분하다.
돌아서는 내 손목을 최코치가 잡는다.
“성운아.”
“네?”
“2군 가면 걔 있어, 잡고 배워.”
“누···.구요?”
“성락이, 신성락.”
“아..”
비운의 마신(魔神) 신성락 선배
2010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1번.
야구인들 사이에서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강의 무브먼트를 가진 마구를 던지는 사이드암으로 알려져 있다.
잘 던질때의 무브먼트는 그야말로 마구 그 자체.
타자는 뒤로 넘어지는데 스트라이크로 공이 빨려 들어간다.
그런데 문제는 작은 체격문제인지 그런 공을 유지를 못 한다는 것.
그래서 엄청난 기대를 받은 것과 다르게 프로에 와서는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맞다. 신성락 선배가 있었지.’
이천에 내려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작품내의 모든 인물/지명/단체는 허구이며, 우연히 겹친다 하더라도 현실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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