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전쟁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서주희와 헤어지고 고태건은 밤 늦게까지 집무실에 있었다. 강우용은 그 사이 세 번이나 집무실에 들어와 고태건의 기색을 살폈다.
오늘 따라 정말 이상하시네.
아까 그 여인을 만난 뒤 아무 말씀도 없으시고.
옛 사랑을 예기치 않게 다시 만난 충격으로 고민이 많아지신 건가...
고태건은 마침내 마음을 굳히고 한규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 목사 잘 지내나.
오늘 밤 가능한 시간에 화상으로 얼굴 한 번 보았으면 하네.
연락 주게.’
한규영이 바로 답신을 보내 왔다.
‘지금 가능.’
"그동안 잘 지냈나?"
고태건이 화상에서 한규영의 얼굴을 보자 먼저 말을 꺼냈다.
"어이구, 어인 일이신가? 우리 바쁘신 고 대통령께서. 그럼, 잘 지내지."
한규영이 반가운 얼굴로 답했다.
"어딘가? 청년회 사무실 같아 보이는데."
"나야, 늘 청년회 사무실이지. 그래 어쩐 일이야?"
"요즘, 탐모라 행정부에 민원이 많이 들어오고 있네. 자네도 알 만한 일 같은데.”
"글쎄... 행정부에 들어오는 민원을 대통령께서 일일이 챙기시는 건가?"
"이제 좀 그만하면 어떤가. 자네의 열정과 능력이라면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일을 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더 생산적인 일이라..."
한규영은 미국 포교활동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서울 근교에 '희망 교회'라는 이름으로 개척교회를 세웠다.
각종 부흥회와 구역예배 성령기도로 교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자, 5년도 채 되지 않아 수만의 교인들로 가득 찬 거대한 교회의 주임목사가 되었다.
더욱이 그가 미국 유학을 한 실력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젊은 청년 신도들이 대거로 모여들었다.
한규영은 찾아온 젊은이들 중에서 독실한 신앙심과 가족관계를 기준으로 선발해 한국 크리스천 청년회 CKYC Council of Korean Young Christian 라는 연합모임을 결성했다.
CKYC는 한규영의 말에 따르면 '하느님 나라의 전위부대'였다.
한규영이 정의한 CKYC의 사명은 예수 재림을 기다리며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모든 소위, 사이비 종파를 응징하고 사이비 교단으로부터 교인들을 보호하며 하느님의 복음을 세계화하는 것이었다.
한규영에게 CKYC 활동은 '거룩한 영적 전쟁', 그야말로 '성전聖戰'이었다. 그는 십자군 전쟁으로 첫 성전이 치러진 이래, 자신들이 역사적인 제2의 성전을 이끌고 있다고 CKYC 청년들을 독려했다.
CKYC의 활동 무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지만 주요무대는 온라인이었다.
온라인은 익명으로 활동하며 목표로 하는 대상에게 정신적인 상해를 가하는 데 매우 적합한 환경이었다.
익명으로 언제 어디서든 악성 정보를 퍼뜨려 증거 인멸이 쉽지 않은 물리적인 공격을 정보 공격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규영은 그런 성전이 머지 않아 커다란 승전보를 안겨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무엇보다 탐모라 대통령을 자신이 만들었다는 자신감이 컸다. 또 다른 이유는 수많은 정보원들이 곳곳에서 원하는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그가 근절하고 싶은 사이비 종파에서 중요한 직책을 수행한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한 때 몸담았거나 현재 몸담고 있는 곳의 정보를 빼내오도록 하는 데에 큰 돈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CKYC는 그런 정보를 적절하게 가공해 온라인에 올렸다. 사람들은 글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었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의 글이 정보의 바다에 퍼지면 조회수는 늘고 원하는 여론으로 쉽게 조장되었다.
그런 활발한 활동 덕에 CKYC의 위상은 교회연합회에서 날로 높아만 갔다. 열렬한 지지자들로부터 격려와 후원금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최근 들어 한규영은 탐모라에서 활동하는 신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신인들의 스승이라는 마스터 Z는 종교라고도 종교가 아니라고도 분명히 말하기가 어려운 아주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었다.
그들이 하는 것은 영성과 관계가 있으니 분명 종교이기는 했다. 그런데 인간의 뇌와 신을 결부시켜 말하고 있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규영의 상식으로는 종교와 과학은 결코 영원히 한 배를 탈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고 대통령, CKYC가 얼마나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는지 아직 모르나본데. 우리가 창출한 청년 일자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나?
탐모라도 한국도 청년 취업을 해소하지 못하고 쩔쩔매는데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미래의 꿈을 키워주며 그만한 대우를 해주고 있네."
한규영은 자부심에 찬 어조로 말했다.
"신인들의 활동에 대해 탐모라에 민원을 넣는 이유가 뭔가?"
"우리 고 대통령께서 왠지 신인들을 비호하는 느낌이 드는데, 자네야말로 그런 이유가 뭔가?"
"비호는 무슨 비호. 나는 자네가 선교 방법을 바꾸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말하는 것이네.
하느님을 알리겠다는 명분으로 타 종교인들을 비방하고 우리와 다른 영적인 활동을 음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네."
"증거가 있나?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는?"
"아무튼 탐모라에서는 그런 활동을 그만 해주었으면 하네. 독립한 지 겨우 1년이야. 자네들의 그런 말도 안 되는 민원으로 이곳 사람들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지 말게나."
"고태건, 이야기를 듣자 하니 점점 더 이상한 느낌이 드는군. 그럼 자네는 그들의 그런 말도 안되는 자만을 그대로 놓아두고 보겠다는 건가?"
한규영이 화면으로도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붉어져 격앙된 어조로 퍼붓듯이 말했다.
"인간이 신이 된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냔 말이야. 난 도저히 그들을 참을 수가 없네. 용서할 수가 없어. 자네도 기억하겠지?
알 힐라지 만수르 Al-Hillaj Mansoor란 수피sufi를 말이야. '나는 신이다!'를 외치며 다니다가 결국 자신의 형제인 이슬람교도들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는가.
신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창조물인 인간이 신이 된다니 얼마나 불경스러운 이야기인가!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사이비 논리가 판을 치고 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네. 오, 하느님! 죄많은 저들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한규영은 말을 마치자 기도를 드리기 위해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고태건은 한규영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화상에 비친 그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한 때 내 모습이다.
저런 의지, 저런 말투.
"한 목사,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이곳에서는 그런 일로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해주게. 부탁이네."
"글쎄, 고 대통령. 결코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야. 그들이 우리 크리스천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보면 그냥 앉아서 볼 수만 없다는 것을 자네도 이해하게 될 걸세. 헌데 나를 급히 보자고 한 건 그 때문인가?"
"아니네. 초대장을 하나 보내려 하는데 말이야."
"그냥 우편으로 보내면 될 것을 화상으로까지 설명을 해야 되는 내용인가?"
한규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주희씨를 만났네. 오늘 집무실로 찾아와서..."
한규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잠시 있다 그가 말했다.
"서주희가 뭐라고 하든 난 관심 없네."
"초대장은 주희씨가 내게 주고 간 거야. 자네에게 꼭 전해달라고. 탐모라에서 열리는 공연에 와 달라는 거였네."
"그래? 일단 보내주게. 하지만 내가 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게 나을 거야. 한가하게 공연이라니. 더욱이 탐모라까지."
그렇지. 더군다나 신시에서...
고태건은 화상을 마치고 말없이 초대장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
- 신인 GODMAN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