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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34,304
추천수 :
2,420
글자수 :
408,390

작성
19.10.28 08:00
조회
216
추천
19
글자
8쪽

해후邂逅

DUMMY

강우용은 난감한 표정으로 집무실에 들어와 고태건에게 말했다.


"각하, 저... 어쩌죠. 사적인 만남을 청하는 분이 오셨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누구죠?"

"여성분이십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던가요?"

"서주희라고 밝히셨습니다. 집무 중이시라 어렵다고 제가 아무리 완곡하게 이야기를 해도, 시간 약속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셔서요."


고태건은 서주희란 이름을 듣고 흠칫 놀랐다.


도대체 몇 년 만이지?

이제 와서 무슨 일로...


고태건은 강우용에게 서주희를 바로 만나겠다고 하며, 손님이 있는 동안 방해하지 않도록 지시를 했다.


집무실로 들어오는 서주희는 약간 수척해져 보였지만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정말, 오랜만이군요. 주희씨. 주희씨라고 그대로 불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정말 많이 흘렀습니다. 고 대통령님."




서주희는 고태건과 한규영이 다니던 교회 주임목사의 딸이었다. 성가대 반주를 맡아 청순한 외모와 우아한 옷차림으로 교회 청년들을 설레게 했던 말하자면 교회의 꽃이었다.


서동주 목사도 딸 서주희가 교회의 신도들로부터 온갖 관심과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내심 그리 싫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오히려 교회의 구역 봉사활동이나 연합 선교활동에 적극적으로 서주희를 내보내 자신과 교회의 자랑으로 삼으려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당시 한규영은 고태건과 학생운동을 함께 하며 전위부대로 선동적인 역할을 하고 조직강화에 힘쓰는 열성 운동가였다.


보통 키에 다부진 외모, 우렁찬 목소리로 대중들 앞에 서서 연설을 할 때면, 그는 선후배와 동기는 물론이고 집회장에 모인 타교생들의 마음까지도 사로잡았다. 그에게는 겉모습에서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다.


학회에서 이념학습을 할 때에도 사리가 분명하고 논리가 정연한 언변으로 논쟁이 붙으면 선배들도 한규영에게 꼼짝없이 설복당하고는 했다.


고태건은 친구이지만 한규영의 초지일관한 투지와 열정에 내심으로 감탄을 했다.


그는 고태건을 따라 교회에 나오면서도 늘 입버릇처럼 말했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다 우리 교계의 조직화 때문이야."


그런 한규영이 하느님에 심취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고태건, 한규영, 서주희 세 사람은 교회 청년활동을 하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규영이 교내 시위 중에 잠입한 진압경찰에게 끌려가 투옥되었다.


"규영이가 붙들려갔습니다."

"네? 어떻게 그런 일이... 그곳이 어디죠?"


서주희는 고태건에게서 한규영이 교회에 나오지 못한 이유를 듣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그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면회를 가며 한규영에게 필요한 책이며 옷가지를 넣어주었다.


때로는 간수들을 설득해 직접 만든 사식도 전달했다.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살뜰한 옥바라지였다.


석 달 후 교회에 한규영이 다시 모습을 보였을 때, 그의 곁에는 늘 서주희가 있었다.

오직 투쟁의 의지 속에 강철 같고 바위같이 꿋꿋해 보이기만 했던 한규영이 외롭고 힘들 때 지극 정성으로 살펴준 서주희와 가까워지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교인들은 착한 서주희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구하는 마음으로 한규영을 돌보았다고 입을 모아 칭찬을 했다. 그런데 서동주 목사가 두 사람 사이를 완강히 반대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교인들도 태도를 바꾸어 주임목사 입장을 두둔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명문대생이라지만 전망이 불투명한 학생운동가에게 딸을 주고 싶은 아버지는 세상 천지에 없지."


결국 교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목사 딸과 운동권 청년의 사랑은 비운의 결별로 끝났다. 그러고 나서 교인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헤어진 사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추측들이 무성했다.


하지만 고태건은 한규영과 서주희 두 사람 어느 누구에게도 헤어진 이유를 묻지 않았다. 서주희와 헤어졌다는 소문이 교정에 나돌 즈음 한규영은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한동안 볼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규영이 불쑥 학회 사무실에 있는 고태건을 찾아와 선언하듯이 말했다.


"태건아, 나 신학 대학원에 들어간다."


학생운동을 발판으로 정치계에 입문할 것이라고 자타가 공인했던 그의 미래가 갑자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한규영을 잘 아는 운동권 친구들은 그의 뒤에서 모두 수군거렸다.


"야, 규영이의 돌변이 예수가 포도주를 물로 변하게 한 것보다 더 큰 기적이네!"

"그래봤자야. 실연으로 규영이가 잠시 미친 거지. 좀 지나면 우리들 품으로 다시 돌아올 거야. 두고 보라고!"


그를 아끼는 다른 한 편의 친구들은 한규영의 미래를 그렇게 장담했었다.


고태건도 같은 생각이었다.


한규영이 목회자가 되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반발심과 상처받은 원망에서 비롯된 한시적인 일탈임이 분명해.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한규영의 하느님을 향한 열정은 꺼질 줄 모르고 더욱 불타올랐다. 한규영의 눈에서는 온 세상을 제물로 태워 하느님에게 바칠 것 같은 광기에 가까운 자신만의 성화가 늘 타오르는 듯했다.


서주희에 대한 사랑이 하느님으로 대체된 것인가?


고태건은 한규영을 볼 때마다 그의 눈에서 이글거리는 불길을 보며 오래도록 답을 얻지 못한 물음을 되씹고는 했다.




서주희는 고태건이 권하는 자리에 앉아 한동안 말없이 집무실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어찌 지내셨나요? 결혼은 물론 하셨겠죠."

"네,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한율이라고."

"그러셨군요. 결혼식 때 연락이라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그 일이 있고 나서 미국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느새 먼 이야기가 되었네요."


서주희는 서글픈 미소를 살짝 지어 보이며 보좌관이 내온 차를 마셨다. 찻잔을 드는 움직임으로 연보라색과 황금색 꽃들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는 미색 실크 원피스가 사각 소리를 내며 빛이 났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만남이라서요."

"궁금하셨나요?"


서주희의 직선적인 물음에 고태건은 찻잔을 들었다 도로 내려놓으며 잠시 생각을 하다 말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한 목사에게도 묻지 않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다면, 굳이 아픈 상처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더욱이 저같이 가까운 사람일수록 말입니다."

"규영씨에게 물으셨어도 아마 알 수 없으셨을 거예요. 규영씨도 제가 헤어지자고 한 이유를 정확히 몰랐으니까요."


"그럼 대체 두 사람은 왜 헤어진 겁니까? 이미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이런 질문이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오늘 저를 찾아 오신 이유가 분명 있으실 것 같은데요. 그건 혹시 그냥 묻어둘 수도 있었던 일을 밝히고 싶으시다는 생각이 아니신지..."


고태건은 서주희의 얼굴을 보고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서주희의 얼굴은 창백하고 애처로워 보였다.


"미국에 있을 때 규영씨를 우연히 만났어요. 개척교회 목사로 이름이 알려질 때였죠. 규영씨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전도가 유망한 목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 규영씨의 눈을 보며 알았죠. 영혼이 없는 듯 공허하고 분노로 가득 찬 그 눈빛을요. 저는 괴로웠습니다. 죄책감을 느꼈어요."


"미국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는 처음입니다. 하긴 그 친구 성격에 제게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는 합니다."

"규영씨 아들이 곧 이곳 신시에서 공연을 합니다. 그래서 왔어요. 초대장을 좀 전달해 주셨으면 해서요."

"아니 그게 무슨... 한 목사 아들이라구요? 그럼 결혼을 하셨다는 의미가..."


결혼도 하지 않은 규영이에게 아들이라고?


고태건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서주희를 쳐다보았다.


"네, 율이가 규영씨 아들이에요."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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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거룩한 전쟁 +2 19.10.29 222 18 8쪽
» 해후邂逅 +3 19.10.28 217 19 8쪽
38 두 번째 생일 +3 19.10.27 240 22 11쪽
37 세 개의 거울 (2) +2 19.10.26 263 23 8쪽
36 세 개의 거울 (1) +2 19.10.25 302 24 8쪽
35 영안靈眼 (2) +3 19.10.24 274 23 8쪽
34 영안靈眼 (1) +3 19.10.23 293 28 9쪽
33 재회再會 +2 19.10.22 278 27 8쪽
32 천부신검天符神劍 +2 19.10.21 285 27 11쪽
31 호종단胡宗旦 +2 19.10.20 286 24 8쪽
30 사후를 위해 사는 자들 +2 19.10.19 298 25 9쪽
29 삼합비경三合秘景 +3 19.10.18 279 31 8쪽
28 비룡승천飛龍昇天 +1 19.10.17 275 26 7쪽
27 맥脈 +1 19.10.16 333 32 11쪽
26 고양이와 호랑이 +1 19.10.15 327 29 9쪽
25 선인仙人골 +1 19.10.14 347 26 9쪽
24 그것을 원합니다 +1 19.10.13 334 28 9쪽
23 매우 사적인 인터뷰 +1 19.10.12 365 31 10쪽
22 테라코타Terracotta +4 19.10.11 342 32 8쪽
21 우주목宇宙木 +5 19.10.10 378 29 11쪽
20 공명共鳴 +5 19.10.09 373 31 8쪽
19 천부관天符館 +4 19.10.08 402 33 12쪽
18 신인의 언어 (3) +2 19.10.07 393 34 10쪽
17 신인의 언어 (2) +2 19.10.06 403 39 8쪽
16 신인의 언어 (1) +3 19.10.05 451 36 9쪽
15 가을 속 여름 +2 19.10.04 472 34 11쪽
14 제왕의 터, 왕후지지王侯之地 +4 19.10.03 459 32 8쪽
13 불로초不老草 (3) +1 19.10.02 472 37 9쪽
12 불로초不老草 (2) +1 19.10.01 477 3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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