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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34,259
추천수 :
2,420
글자수 :
408,390

작성
19.10.19 08:00
조회
296
추천
25
글자
9쪽

사후를 위해 사는 자들

DUMMY

예나는 택시에서 내려 급하게 호텔로 들어섰다. 한정은 예나가 늦어지자 레스토랑 예약을 취소하고 바 아모르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선배, 또 늦었네요."


예나는 입구에서 안내 받아 한정이 있는 자리에 다가가며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괜찮아. 예상은 했었어. 배고프지?"


한정은 밝은 얼굴로 예나를 맞으며 바텐더에게 와인 잔을 하나 더 가져다 달라고 했다. 잔이 나오자 한정은 마시고 있던 와인을 예나에게도 따라주었다.


이집트 레드 와인 오마르 카얌 Omar Khayyam이었다.


"아니, 이곳에도 이집트 와인이 있었어요? 흔치 않아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예나가 깜짝 놀라며 한정을 쳐다보았다.


"예나가 이집트 출장 다녀오면서 내게 선물했던 거잖아. 11세기 페르시아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시인인 오마르 카얌의 이름을 딴 와인이라고 막 자랑하면서. 그땐 정말 엄청나게 비싼 와인을 선물로 받은 줄 알았지."


한정은 소리내 웃으며 예나를 쳐다보았다. 예나도 그때가 생각나 즐거운 표정으로 함께 웃었다.


"그래도 비행기 시간 맞추느라 정신없이 가는 중에 선배 생각해서 급히 공항 면세점에 들러서 산 거라구요. 이집트 현지 레스토랑에서는 로컬 와인이라고 얼마나 비싸게 받는데요. 그런데 선배, 오마르 카얌과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중에 더 알게 되었어요."

"그래? 뭔데?"


한정이 와인을 한 모금 넘기면서 예나에게 물었다.


"원래 오마르 카얌은 수피sufi 신비가였대요.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신의 술, 신전으로, 스승을 와인, 와인가게, 연인에 은유한 시 루바이야트rubā'lyāt를 썼죠.


그런데 영국 시인 피츠 제럴드 Edward Fitzgerald가 오마르 카얌의 시에 반해 은유인줄 모른 채 술, 술집, 연인을 글자 그대로 영역해서 깨달은 구루 오마르 카얌을 술을 찬양하는 세상에 더없는 애주가로 만들어버렸다는 얘기예요."


"하하, 세속적인 시인이 깨달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서 저지른 실수가 오마르 카얌을 술의 대가로 만든 거구나."

"네, 사실 기막힌 넌센스라 할 수 있죠. 어찌 보면 너무 운이 없는 구루이기도 하구요."


"후세 사람들이 피츠 제럴드의 오역을 그대로 받아들여 결국 오마르 카얌이라는 와인까지 만든 거네."

"맞아요. 죽은 오마르 카얌이 알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것 같아요. 깨달음을 찬미한 시를 술을 찬미하는 시로 탈바꿈시킨 것도 모자라 자신의 이름을 술병에까지 버젓이 붙여서 팔고 있으니 말이에요."


세상의 일이란...


한정은 오마르 카얌이 느꼈을 당혹스러움을 상상하며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예나도 한정이 준비한 와인 덕분에 이집트로 떠나온 기분이 들며 인터뷰 내내 팽팽했던 긴장감이 눈 녹듯이 빠르게 스르르 풀렸다.


"선배 덕분에 잊고 있었던 이집트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고마워요, 선배."

"그리 너무 깍듯이 인사하면 불편하다. 그동안 해주고 싶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한정은 미소를 지으며 와인 잔을 들었다.

한정과 예나는 와인 잔을 부딪히며 늦은 저녁을 시작했다.


"여긴 바인데도 간단한 식사가 된다고 해서 예나가 좋아하는 것으로 몇 가지 주문했어."


바텐더는 고소한 버터향이 짙게 배인 에스카르고 Escargot와 신선한 야채가 곁들어진 프랑스산 염소치즈 샤비슈 뒤 프와투 Chabichou du Poitou를 가져왔다.


한정은 자신의 포크로 파슬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껍질을 벗긴 달팽이를 감아 예나 입가로 내밀었다. 예나는 수줍게 웃으며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먹고는, 얇게 검은 띠가 둘러진 잘 숙성된 치즈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선배, 제가 이집트에서 촬영한 다큐 보셨죠. 이집트의 건축과 유물들 모두 화면에서 보면 엄청나게 화려하고 웅장하잖아요."

"응, 예나가 만든 그 영상을 보면서 많이 훼손되었는 데도 수 천년을 견뎌 온 세월 덕분인지 아니면 거대한 규모 때문인지 여전히 압도해 오는 무언가가 느껴지더라. 다음 번에는 꼭 같이 가자."

"선배는 늘 바쁜데 과연 같이 갈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이나 올까요."


예나는 같이 여행을 가자는 한정의 말에 일부러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바쁜 걸로 말하자면 예나도 마찬가지잖아. 미리 같이 휴가를 잡으면 되지."


한정은 웃으며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제가 파라오 유적들을 취재하며 그때 든 생각이 있었어요. '파라오들은 왜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것일까' 하는 거였죠. 가장 영화로울 때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생각하며 준비한다는 것이 너무 이해하기가 어려웠거든요."

"환생을 믿는 사람들이니, 다음 생을 위한 준비를 최대한 화려하게 할 수 있도록 권력이 허용되는 기간 안에 모든 일을 마치려는 강박관념에서가 아닐까?"


"맞아요. 선배 이야기도 그 답의 하나예요. 저는 파라오의 무덤들을 보면서 그들 모두가 자신의 살아 있는 시간을 죽음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살았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았어요. 마치 죽음을 위해서 사는 것처럼요."

"죽음을 위해 산다..."


"네, 그런데 이번 인터뷰를 하며 우연하게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또다른 입장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그래? 어떤?"


한정은 예나에게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예전과 달리 동현에 대한 부담감은 훨씬 가벼워지고 예나에 대한 사랑은 더욱 커져만 갔다.


"강우용 실장과 고태건 대통령을 인터뷰하며 나온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인물이 있었어요. 진시황에게 불로초를 바치려고 한 서복요."

"서복?"


"네, 서복이 과거의 전설만이 아닌 탐모라 독립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거든요."

"정말이야?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아무튼 우리 예나가 드디어 탐모라에서 뭔가를 캐기는 캤구나. 엄청난 보물을 캐낸 느낌이 드는데!"


한정은 예나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말했다.


"고 대통령을 만났을 때 무언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국가의 수반이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거죠."

"그럼, 그 이유가 서복과 관련이 있다는 거야?"

"네, 시종일관 아주 중요한 뒷 배경이었어요."




고태건이 두 번째로 안내를 받은 곳은 폭포가 떨어지고 있는 아담한 연못이었다. 박영철은 해가 떠오르면 태양의 각도에 따라 연못의 물빛도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고태건이 바라본 연못은 새벽 달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연못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그리 크지는 않았다.

폭포가 쏟아져 내리면서 연못에 끊임없이 물보라가 일고, 물과 물이 부딪히며 일어나는 '우르릉' 소리가 폭포 주위에 쉴 새 없이 메아리쳐 돌고 있었다. 연못 바로 앞에는 두 사람이 앉을 정도의 널찍한 큰 바위가 있었다.


고태건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았다.


이곳이 서복 신명님이 뛰어들었다던 그 연못이란 말인가?


고태건은 믿기 어려웠던 이야기에서 들은 장소에 자신이 와 있다는 사실이 더욱 믿기지 않아 잠시 멍했다. 그는 서복이 처음으로 기를 터득했다던 연못 앞 바위로 다가가 말없이 걸터앉았다.

고태건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에 이끌렸다.


여기서 나도 잠시 명상을 해 볼까...?


금지화가 고태건이 바위에 앉은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곳에서 명상을 하시기를 원하시는군요."

"네."

"그럼, 눈을 감으시고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신 후 첫째, 둘째, 셋째 손가락 끝을 가볍게 모아 삼지법을 해서 무릎 위에 올려 놓으십니다. 세 손가락에 절로 기운이 모일 것입니다."


고태건은 바위 중앙으로 옮겨 앉은 뒤 금지화의 말을 따라 그대로 했다.


"폭포의 물소리에 집중하십니다. 소리를 들으며 몸을 바라보십니다. 물 소리에 담긴 에너지로 몸과 마음이 정화될 것입니다."


잠시 명상을 하고 일어난 고태건은 폭포에 모든 상념이 씻겨진 것처럼 밝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머리가 맑아지고 혼자가 아니라는 편안함이 고태건의 가슴에 잔잔히 차 올랐다.


"이제 토굴 기도를 하기 전 마지막 코스인 천화 동굴로 이동하시겠습니다."


박영철은 고태건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대나무 숲 쪽으로 안내를 했다.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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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돌이킬 수 없는 선택 +3 19.10.30 210 19 9쪽
40 거룩한 전쟁 +2 19.10.29 222 18 8쪽
39 해후邂逅 +3 19.10.28 216 19 8쪽
38 두 번째 생일 +3 19.10.27 239 22 11쪽
37 세 개의 거울 (2) +2 19.10.26 263 23 8쪽
36 세 개의 거울 (1) +2 19.10.25 302 24 8쪽
35 영안靈眼 (2) +3 19.10.24 273 23 8쪽
34 영안靈眼 (1) +3 19.10.23 291 28 9쪽
33 재회再會 +2 19.10.22 277 27 8쪽
32 천부신검天符神劍 +2 19.10.21 284 27 11쪽
31 호종단胡宗旦 +2 19.10.20 285 24 8쪽
» 사후를 위해 사는 자들 +2 19.10.19 297 25 9쪽
29 삼합비경三合秘景 +3 19.10.18 278 31 8쪽
28 비룡승천飛龍昇天 +1 19.10.17 275 26 7쪽
27 맥脈 +1 19.10.16 332 32 11쪽
26 고양이와 호랑이 +1 19.10.15 327 29 9쪽
25 선인仙人골 +1 19.10.14 346 26 9쪽
24 그것을 원합니다 +1 19.10.13 333 28 9쪽
23 매우 사적인 인터뷰 +1 19.10.12 364 31 10쪽
22 테라코타Terracotta +4 19.10.11 342 32 8쪽
21 우주목宇宙木 +5 19.10.10 375 29 11쪽
20 공명共鳴 +5 19.10.09 372 31 8쪽
19 천부관天符館 +4 19.10.08 400 33 12쪽
18 신인의 언어 (3) +2 19.10.07 393 34 10쪽
17 신인의 언어 (2) +2 19.10.06 402 39 8쪽
16 신인의 언어 (1) +3 19.10.05 450 36 9쪽
15 가을 속 여름 +2 19.10.04 471 34 11쪽
14 제왕의 터, 왕후지지王侯之地 +4 19.10.03 457 3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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