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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34,296
추천수 :
2,420
글자수 :
408,390

작성
19.10.27 08:00
조회
239
추천
22
글자
11쪽

두 번째 생일

DUMMY

"누나! 오늘 연습은 다 끝난 거야?"


한율이 연습실 밖에서 음악을 듣다가 아리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 이어폰을 빼며 물었다.


"응, 공연일이 다가오는데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하잖아. 너무 무리는 안 하려고. 율이 너는?"

"나도 끝내고 누나 보러 들렀지. 떡볶이 먹으러 갈래?"

"나, 체중 조절하는 중이라 탄수화물은 최대한 피하는데."


아리가 웃으며 한율을 쳐다보았다.


"아쉽네. 오늘 내가 한턱 내려고 했는데 말이야."

"왠일이야? 율이가?"

"뭐, 가끔은 이런 날도 있지. 가자 누나. 탐모라에서 내가 잘 아는 데가 있는데 맛이 정말 기가 막혀. 누나도 가끔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잖아."


한율이 웃으며 애원하는 투로 아리의 팔을 붙들고 매달렸다.


"그래, 알았어. 옷 갈아 입고 나올 게. 조금만 기다려."


연습실에서 나온 한율과 아리는 버스를 타고 탐모라 젊은이들이 모이는 시청광장 근처 음식점 골목으로 향했다.


"30년 된 떡볶이 집이라니...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집이야?"


아리가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려고 메뉴가 붙은 벽을 쳐다보다 신문에 실린 가게 기사를 보고 놀라서 말했다.


"그렇다니까. 누나도 먹어 보면 알 거야. 떡볶이에도 전통의 맛이란 게 있다는 걸. 맛있다고 나보고 맨날 사달라고 하지는 마."

"왜? 음악한다고 늘 배고프란 법 있어? 돈 많이 벌면 되지."


아리는 떡볶이와 김밥, 튀김을 종류별로 골고루 시키며 말했다.


"누나! 아니, 탄수화물 안 먹겠다고 하던 사람이 그렇게 많이 시키는 거야?"


한율이 눈이 휘둥그래지며 주문하는 아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뭐, 기왕 먹으려면 확실하게 먹고 다음에 절식해야지. 그런데 오늘 진짜 무슨 날이야?"

"누나와 내가 공연 연습을 시작한 지 3주째 되는 날."

"야, 너 자꾸 놀리지 말고. 너 생일이야?"

"아니..."


한율이 갑자기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럼 뭐야?"


자꾸 캐묻는 아리의 물음에 한율이 이야기를 막 꺼내려는데, 양념에 잘 버무려져 빨간색 윤기가 잘잘 흐르는 떡볶이, 김밥, 튀김이 하나 가득 담긴 커다란 접시를 주인 아주머니가 들고 왔다.


"모닥치기 나왔어요."

"모닥치기요?"


한율이 처음 듣는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주인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아니 학생, 여태 이름도 몰랐어? 우리 집 오는 손님들은 다 이 모닥치기 때문에 오는 거야. 아까 주문한 것들 양념에 모두 버무려 나온다 해서 모닥치기라 불러. 우리가 원조야, 원조."


주인 아주머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


한율과 아리가 동시에 뜻을 이해하고 한 목소리로 답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그런 두 사람을 쳐다보고 웃으며 바삐 주방에 들어가 뜨끈한 국물에 어묵을 한 그릇 담아 내왔다.


"이건 귀여운 손님들에게 서비스!"

"와, 잘 먹겠습니다! 누나, 식기 전에 어서 먹자!"

"응, 잘 먹을 게!"


아리는 한동안 절제했던 탄수화물이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하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한 접시를 순식간에 비우고 난 아리는 다소 느긋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햐~ 진짜 맛있는데. 그래 이야기 해 봐. 너 분명 오늘 무슨 날이지. 진짜 생일 아니야?"


한율은 세 번째 접시를 비우며 말했다.


"음··· 말하자면 두 번째 생일이라고 할 수 있지."

"응? 그게 뭐야? 두 번째 생일이라니? 음력생일 양력생일 두 번씩이나 챙기는 거야?"

"으···응 그게 아니구."


"그럼 도대체 뭔데?"

"내가 다시 살아 가게 된 날."

"다시 살아 가게 된 날? 그럼 언제 죽을 뻔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응, 맞아 누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날이야."

"뭐야 그게? 야, 니가 예수님이야? 죽었다 부활이라도 하게?"


"누나, 진짜야. 나도 내가 어떻게 다시 살아난 것인지는 나중에 들어서 알았어."

"진짜야? 어찌 된 일이야? 어떻게 죽을 뻔했던 건데? 교통사고로 다쳤는데 누가 구해 준 거야? 아니면 심각한 병이라도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나은 거야?"

"이건 진짜 누나에게만 처음으로 하는 이야기야."




두텁게 밀려온 파도가 검은 바위를 감싸며 부서져 내렸다. 흰 물보라가 커다란 바위틈 사이로 스며서 사라지자, 바위 표면에 남은 흰 물거품이 숨구멍처럼 곳곳에 동그란 물구멍을 내고 이내 꺼졌다.


마스터 Z는 해질녘 인적이 드문 서귀포 포구 앞 해변을 혼자 거닐고 있었다. 산책을 할 때마다 들고 다니는 주장자로 앞을 떼며 걷는 걸음에 모래 사장에는 그의 발자국과 주장자 자국만 무심히 남았다.


그때 멀리 으스름한 바닷가 바위 무더기들 사이에 사람인 듯 움직임이 없는 검은 물체가 얹혀져 있는 바위가 눈에 띄었다.


마스터 Z는 순간 불길한 예감에 주장자를 내던지고 젖은 바위들 위를 성큼성큼 건너뛰어 황급히 검은 물체 쪽으로 다가갔다. 바위에는 익사한 듯이 보이는 교복차림의 남학생이 누워 있었다.


음... 아직 혼은 뜨지 않았다.


마스터 Z는 가까이 다가가 이미 사그라진 숨을 개의치 않고 중지 손가락으로 싸늘한 몸 곳곳의 혈도를 눌렀다.


학생의 얼굴에 핏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굳어 가던 몸이 서서히 풀리고 입에서 울컥 바닷물이 쏟아져 나왔다. 보랏빛으로 죽었던 입술에 붉은 색이 돌기 시작했다.


약하지만 다시 숨을 쉬고 있는 어린 학생을 바라보며 마스터 Z는 오래전 자신의 일이 떠올랐다.




"안 갈래. 안 간다니까!"

"야, 그러지 말고 같이 가자!"


마스터 Z는 가기 싫어하는 친구를 끌고가다시피 억지로 데리고 동네 강가에 헤엄을 치러 갔다. 친구들과 한참 물장난을 할 때였다.


"허 푸! 허 푸! 사람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요!"


갑자기 어디선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나는 쪽으로 돌아다보니 억지로 데려온 친구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마스터 Z는 허둥지둥 친구가 허부적대는 곳으로 뛰어들어 있는 힘을 다해 그를 끄집어냈다.


하지만 이미 그의 팔다리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마스터 Z는 숨이 끊어진 친구를 등에 업고 울며울며 한참을 걸어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마스터 Z 등에 업힌 아들을 본 친구의 부모는 그에게 사정없이 달려들어 때리며 울부짖었다.


"아니, 이 놈이 뉘집 귀한 자식을 죽게 한 거야!"

"······"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날 이후 마스터 Z에게는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어차피 죽는 데 왜 태어나는 것일까.

알 수가 없다.

어느 누구도 답을 해주지 못한다.


그렇게 살아 갈 이유를 잃고 염세주의자가 된 마스터 Z는 결국, 고등학교 때 공동묘지의 어느 무덤 곁에서 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동네 어르신이 그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가 그를 살려 놓았다.


"왜 저를 죽게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나요!"


깨어난 마스터 Z는 자신을 구해준 어르신에게 화를 내며 바락바락 대들었다.


철썩!


"정신 차려 이놈아! 부모님에게 받은 목숨을 함부로 하다니!"


마스터 Z는 그날 세차게 빰을 얻어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던 기억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그때의 내 나이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이지?


"학생 정신이 드는가? 학생!"


마스터 Z는 혈색이 돌아온 학생을 흔들어 깨웠다.


"여기는... 누구신..."


거슴츠레 눈을 뜬 학생이 말을 하려다 다시 정신을 잃었다.

마스터 Z는 체온이 더이상 떨어지지 않도록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몸을 감싸주고, 기력이 떨어진 학생의 정수리와 가슴에 한참동안 기운을 넣어주고 사람을 불렀다.



박영철은 마스터 Z의 지시에 따라 한율 곁을 삼 일째 지키고 있었다.


"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계속 잠만 자던 한율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살려 달라고 외쳤다. 박영철은 놀라 팔을 사방으로 휘저어 대는 한율을 깨웠다.


"학생! 괜찮은가? 학생!"


한율은 자신을 흔드는 손길에 잠을 깨고는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바다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 거야, 아니면 악몽을 꾼 거야?"


박영철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는 한율을 살피며 물었다. 한율은 낯선 박영철을 의아하게 올려다보고 자신이 있는 곳을 두리번거렸다.


"아...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요?"

"기억이 잘 안 나는가본데, 바닷가에 쓰러져 있는 학생을 발견했어. 물에 빠졌던 것 같은데..."


박영철은 한율의 기억을 되살려 주려고 자신이 본 상황들을 설명해 주었다.


맞다. 바다로 걸어 들어갔었지.

그렇다면 내가 다시 살아난 거란 말이야...?


한율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말이 없었다.


"오늘이 며칠이에요?"

"학생이 이곳에 온 지 벌써 삼 일째야.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은데 연락처를 알 수 있어야지. 그래도 주말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한율은 바다에 빠져 죽기로 작정했던 그날이 생각났다. 학교에서 패거리들에게 둘러싸여 뭇매질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과 가슴 부위들을 만져보았다.


모든 게 다 그대로야.

아픈 몸도.

내가 살아 있다는 것도.

그렇다면 이제 난 그들에게서 영영 벗어날 수 없다는 건데...


한율은 학기 내내 시달려 온 시간들보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시간들이 더욱더 두려웠다. 입술을 깨물며 참으려 했지만 눈물이 주루룩 뺨을 타고 흘렀다.




"율이 너..."


한율이 말한 뜻밖의 이야기에 아리는 눈물을 흘리다가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물었다.


"그럼 스승님께서 너를 구해 주신 거야?"


한율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근데 애들이 너를 왜 그렇게 괴롭힌 거야?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야?"

"몰라. 내가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무시했던 거 같기는 해. 못살게 했던 아이들은 다들 잘 살고 공부도 잘 했던 아이들이었으까. 내가 만만한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라고 생각했었나 봐."


"아빠... 아빠가 안 계셔?"

"응, 엄마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랑 헤어지셨다고 했어."


"그래도 연락하고 만날 수는 있잖아. 내 친구도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엄마랑 사는데 한 달에 한 번 재혼한 아빠집으로 놀러간다고 하던데."

"난, 아버지 얼굴도 몰라. 사진도 하나도 없대. 그리고 이젠 다 컸잖아. 아버지를 찾을 나이가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해방될 나이지."


한율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음악도 그때부터 시작한 거야. 몰랐던 소질을 알게 해 주셨거든."

"율이 너에게 음악이란... 그런 거였구나!"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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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세 개의 거울 (1) +2 19.10.25 302 24 8쪽
35 영안靈眼 (2) +3 19.10.24 274 23 8쪽
34 영안靈眼 (1) +3 19.10.23 293 28 9쪽
33 재회再會 +2 19.10.22 278 27 8쪽
32 천부신검天符神劍 +2 19.10.21 285 27 11쪽
31 호종단胡宗旦 +2 19.10.20 285 24 8쪽
30 사후를 위해 사는 자들 +2 19.10.19 298 25 9쪽
29 삼합비경三合秘景 +3 19.10.18 279 31 8쪽
28 비룡승천飛龍昇天 +1 19.10.17 275 26 7쪽
27 맥脈 +1 19.10.16 333 32 11쪽
26 고양이와 호랑이 +1 19.10.15 327 29 9쪽
25 선인仙人골 +1 19.10.14 346 26 9쪽
24 그것을 원합니다 +1 19.10.13 334 2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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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신인의 언어 (1) +3 19.10.05 451 36 9쪽
15 가을 속 여름 +2 19.10.04 471 34 11쪽
14 제왕의 터, 왕후지지王侯之地 +4 19.10.03 458 3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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