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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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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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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08,390

작성
19.10.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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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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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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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천부관天符館

DUMMY

오성은 예나의 연락을 받고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는 아무런 이유도 묻지 않고 신시에서 만나자고 했다. 예나는 그 길로 택시를 타고 오성이 준 명함에 나온 주소로 향했다.


신시 입구에 도착하자 오성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예나는 오성을 알아보고 서둘러 다가가 인사를 했다.


"신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성이 웃으며 예나를 반갑게 맞았다.


"탐모라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어요. 너무 좋은데요."


예나는 신시 입구에 세워진 거대한 통천문을 감동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신시란 이름이 이곳과 너무나도 잘 어울려요. 로마의 바티칸 시국市國처럼 탐모라에 있지만 또다른 시국 같은 느낌인 것이 놀라워요!"


예나는 신시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신비스러움에 들떠 소녀처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질식할 것만 같았던 시간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기분이야.

그런데 왜 이분을 만나면 이상하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게 되는 걸까?


"제가 오늘 뵙자고 한 것은..."


예나는 자신이 만나자고 한 이유를 오성에게 설명하려 했다. 그러자 오성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게 하고 싶으신 이야기는 천천히 들려주시고, 일단 신시에 오셨으니 몇 군데를 둘러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오성은 통천문을 지나자 예나를 신시의 남서쪽 방향에 있는 천부관으로 안내했다.


"아마도 이곳에 가장 관심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천부관은 거대한 대리석을 통째로 깎아 세운 것 같은 반듯한 회백색 건물이었다. 건물 양 측면에는 대형 초록색 유리창이 엇갈려 나 있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나뭇잎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곳은 전 세계에서 인간의 정신과 영적인 내용을 다룬 서적과 경전, 희귀 고서들을 수집해 모아 놓은 곳입니다. 총 9,900여 만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지요.

모든 자료는 전자화되어 있어서 탐모라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신인들도 원격으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오성이 천부관 입구에서 지문 스캔을 하자 음성안내가 나왔다.


"오성 원장님 반갑습니다."

"동행하는 1인이 있어요."


오성이 단말기를 향해 말했다.


"신원 확인이 필요합니다."


오성은 단말기 음성을 듣고 예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죠?"

"제가 한 것처럼 지문 스캔을 하시면 됩니다."


예나는 스크린에 손을 얹었다.


"신예나 PD님 반갑습니다."


예나는 당황했다.


아니, 직업까지 말하면 어떻게 해!

이런 눈치 없는 기계 같으니.


예나는 멋쩍어 하며 오성의 기미를 살폈다.

오성은 그저 웃기만 했다.


투명한 초록 유리문이 열리자 5층 높이의 천부관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장대한 실내 열람실은 수 십 개의 옅은 장미빛 열주들이 세워져 있는 대형 홀이었다.


홀 길이는 수십 미터가 되어 보였다. 긴 홀 복도를 빙 둘러싸고 이어지는 다섯 층의 대형 공간에는 수천 개의 자작나무 책장들이 즐비하고 책장에는 수많은 종류의 책들이 가득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불타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예나는 천부관 실내를 둘러보며 상상했다.


천장 위쪽 중앙에 있는 긴 타원형 채광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1층 열람실 공간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밝혀주고 있었다. 홀 중앙에 서 있는 예나의 구두 앞축도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천부관에는 이곳 열람실 외에도 특수자료실, 연구실, 강의실과 세미나실이 있습니다."

"와, 정말 엄청나네요!"


예나는 열람실을 채우고 있는 천부관의 방대한 자료들과 규모에 놀라 계속 탄성을 지르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오성에게 물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자료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고 보니 아직 명함도 드리지 않았네요. 사실 방송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나는 이미 기계가 말해버린 신분을 뒤늦게 밝히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오성에게 명함을 주었다.


"네,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를 만나자고 하신 건 일과 관련해서는 아니신 것 같은데요."


오성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지극히 사적인 일입니다. 지난 번 호텔 정원에서 뵈었던 일과 관련해서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어요. 업무와 무관한 일이라 하는 일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입구에서 그만 탄로가 나고 말았네요."

"신 PD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어렵게 이곳까지 오셨으니 가장 중요한 곳도 한 번 보시면 어떨까요?"

"희귀 도서들보다 더 중요한 자료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예나가 놀라서 물었다.


"네, 아주 중요한 자료들이지요. 지하 1층에서 4층까지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입니다. 보시겠습니까?"


오성은 호기심이 가득한 예나의 표정을 보고, 바로 지하 4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스르르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지하 4층에서 내리자 거대한 불투명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지하 자료실이 보였다. 자료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다시 거쳐야만 했다.


"이곳 자료들은 무엇이 다른가요?"


입구에서 예나가 물었다.


"들어가서 보시면 알게 됩니다."


유리문이 열리자 자료실 안에서 수 만 개의 불빛이 깜박이며 움직였다. 예나는 깜짝 놀라 그만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 이게 다 무언가요?"


서가에는 책을 대신해 푸른 불빛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투명 데이터 계기판들이 일렬로 가득히 꽂혀 있었다.


"신인들의 정보입니다."

"그게 어떻게..."


예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인들의 정보라니...


"신인들은 자신들의 정보를 이곳에 백업해서 보관해 놓고 있습니다."

"신인의 정보를 저장해 놓는다고요?"


"사실 영지靈知 단계에 오른 신인은 저장된 정보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우주에 기록된 데이터를 임의대로 볼 수 있으니까요. 이 기록들은 그 전 단계에 있는 신인들이 필요한 경우 살펴볼 수 있도록 자료로 남겨놓는 것입니다."


한정 선배가 한 말이 맞았구나.

직관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왜 그래야 하는 건가요?"

"자신이 선택한 삶을 통찰하며 완성하기 위해서이지요."


통찰?

완성?


예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자료실 사방에서 번쩍이는 데이터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오성이 말한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오성은 그런 예나를 보며 말했다.


"인간이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볼 수 있게 되면, 이제까지 의식을 가려 온 종교적인 환상, 국가에 대한 환상, 죽음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것을 신인들 세계에서는 신명神明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한 걸까?


"여기 가까이 와서 보시겠습니까?"


오성은 차례로 꽂혀 있는 데이터 계기판 중 하나를 선택해 아래에 붙어 있는 일련 번호를 가리켰다.


18208890199611202316*#


"이 번호들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신인의 성별, 태어난 국가와 도시,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입니다."


"말하자면 신인들의 ID와 같은 거군요. 그런데 마지막 자리는 불이 들어온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네요."

"인가를 받은 신인은 마지막 끝자리에 불이 들어오게 됩니다. 여기 마침 방금 불이 들어온 신인이 있군요. 보이시죠?"

"인가요? 누구로부터 인가를 받는다는 말씀인가요?"


예나는 새로 불이 켜진 계기판을 응시하며 물었다.


"하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서天書라고 하지요."


천서?!




오성과 예나는 천부관을 나와 로터스 가든 쪽으로 향했다. 예나가 로터스 가든 근처에 핀 꽃들을 구경하는 동안 오성은 따뜻한 카와카와kawakawa 차를 가져와 예나에게 권했다.


"마셔보세요. 머리가 금방 상쾌해질 겁니다."


카와카와 차는 입안을 화하게 하는 맛이 났다. 오성의 말 그대로 몇 모금을 마시자 머리가 가볍고 맑아졌다. 오성은 천천히 걸으며 중앙에 있는 마고홀과 산책로 쪽으로 예나를 안내했다.


"아까 신인의 단계가 있냐고 하셨죠? 그건 수행의 단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정지正知부터는 천부관의 모든 자료를 자유로이 볼 수 있습니다. 그 전에 초지, 입지立知는 일부 자료만 열람이 가능합니다."

"신인들도 도서관 열람에 차등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예나는 신인이 아닌 자신과 같은 사람도 열람이 가능한지를 묻고 싶었으나 오성의 답변을 듣고서 바로 물음을 접었다.


"신인 입문 초기에는 오히려 이런 정보들이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자신이 아는 것 같은 착각에 쉽게 빠질 수 있으니까요."


지식으로 이해하고 아는 것 말고 또 다른 앎?


오성은 예나의 생각을 알아차리고 이어 말했다.


"천부관에 있는 자료들은 영적인 각성을 한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스스로 정신적인 변형과정을 겪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쓴 내용들입니다. 수행의 정도에 따라 결코 이해할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자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머리로만 읽고 안다고 그것이 체득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면을 성찰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천부관은 어떤 때 찾게 되나요?"

"각자의 수행 단계에 따라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천부관이 생기기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그때는 스승님께서 직접 제자의 수준에 따라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저도 입지 때 갖고 있던 책을 모조리 불태우고 6개월 동안 아무 책도 보지 못하게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오성은 그때가 선한 듯 엷은 미소를 띠었다.


"스승님이시라면 지난 번에 말씀하신 마스터 Z이신 건가요? 좀 색다른 스승이시네요. 일반적으로 우리가 만나 온 스승들은 책과 더 가까이 하도록 이끌어주는데 말입니다."

"네, 스승마다 주는 가르침이 다르기도 하지만, 제자들의 준비도 저마다 다 다르니까요. 저는 그래도 아주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제 사형은 2년 간이나 세상의 책을 못 보셨어요."


"그러한 가르침을 참아 내는 거야말로 수행이네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맞습니다. 그러한 가르침을 받았을 때 각자가 받아들이는 자세와 마음이 다릅니다. 끝까지 견뎌내는 사람도 있고, 끝내 참지 못하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성 원장님은 그런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나요?"

"그 당시 어린 저는 무조건 스승님을 믿었습니다.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한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다'라고요.

그리고 한참만에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미라래빠Milarepa라고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미라래빠요? 처음 듣는데요."

"11세기에 살았던 티벳의 성자로 알려진 분이죠. 미라래빠의 스승 마르빠Marpa는 미라래빠가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흑주술로 수십 명을 죽이고 자신을 찾아온 것을 알고, 6년 반이라는 세월 동안 미라래빠에게 돌탑을 쌓고 허물기를 계속하게 했습니다.

미라래빠의 마음을 시험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가 저지른 죄의 댓가를 소멸시켜 주기 위한 시련이었지요."


어떻게 사람에게서 그런 지독한 인내심이 생길 수 있는 것일까?


오성은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자란 대나무가 우거진 숲 근처에 다다르자 나무 의자에 앉으라고 예나에게 권했다.


"그럼 오늘 저를 만나자고 하신 이유를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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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해후邂逅 +3 19.10.28 216 19 8쪽
38 두 번째 생일 +3 19.10.27 239 22 11쪽
37 세 개의 거울 (2) +2 19.10.26 263 23 8쪽
36 세 개의 거울 (1) +2 19.10.25 302 24 8쪽
35 영안靈眼 (2) +3 19.10.24 274 23 8쪽
34 영안靈眼 (1) +3 19.10.23 292 28 9쪽
33 재회再會 +2 19.10.22 277 27 8쪽
32 천부신검天符神劍 +2 19.10.21 285 27 11쪽
31 호종단胡宗旦 +2 19.10.20 285 24 8쪽
30 사후를 위해 사는 자들 +2 19.10.19 298 25 9쪽
29 삼합비경三合秘景 +3 19.10.18 278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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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부관天符館 +4 19.10.08 402 33 12쪽
18 신인의 언어 (3) +2 19.10.07 393 34 10쪽
17 신인의 언어 (2) +2 19.10.06 402 39 8쪽
16 신인의 언어 (1) +3 19.10.05 451 36 9쪽
15 가을 속 여름 +2 19.10.04 471 34 11쪽
14 제왕의 터, 왕후지지王侯之地 +4 19.10.03 458 3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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