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仙人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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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건은 어느새 자신이 한라산 입구에 서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얼떨떨했다.
내가 산을 어떻게 내려온 거지?
그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욱이 산 아래인 데도 백록담 정상에서 들었던 소리가 여전히 들리는 듯했다.
어찌 된 건가?
배고픔 때문에 헛것을 본 건가?
아니면 잠시 꿈을 꾼 것인가?
고태건은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분명한 사실 몇 가지는 내가 백록담에 올랐고, 기도를 올렸고,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들은 이야기가 선명하게 기억난다는 것인데...
"그 서복 신명이라는 분이 제시한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예나가 물었다.
"제주도가 중립국으로 독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나는 너무도 의외의 답에 놀라 다시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지금의 탐모라가 한라산에서 만난 서복 신명님의 계시로 이루어졌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습니다.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된 것이지요."
고태건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계시는 계시라 하더라도 현실은 또다른 현실의 문제인데 말이야.
예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태건을 쳐다보았다. 그때 인터폰이 두 번 울리고 고태건은 자신 앞에 있는 스크린으로 메모를 확인하고 예나에게 말했다.
"벌써 저녁시간이 다 되어 가는군요. 강 실장이 식사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는 연락이네요. 강 실장이 다른 무엇보다도 끼니 하나는 정확히 챙겨주는 사람입니다."
고태건이 웃으며 예나에게 저녁 의사를 물었다.
"저는 인터뷰가 끝나는 대로 다른 일정이 있습니다만, 괜찮으시다면 말씀을 계속 들었으면 하는데요."
고태건은 알겠다고 하고 인터폰으로 샌드위치와 과일, 차를 내오도록 지시했다. 수행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고 바로 다과를 내왔다.
예나는 고태건이 권하는 과일을 집어 들며 이어서 질문을 했다.
"그럼 탐모라 독립의 배후에 서복 신명님의 계시 외에 혹시 어떤 또다른 배경이라도..."
"물론 있습니다. 한라산에서 내려와 집무실로 돌아온 뒤, 강 실장에게 서복과 불로초, 제주도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가 맞는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러셨겠죠. 다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서복 신명님이 대통령님께 이야기한 제주도의 ‘진정한 역사’란 또 무엇입니까?"
"제주도 시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세 분이 건국했다는 신화 외에 다른 무엇이 더 있다는 것입니까?"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신명님의 이야기로는 자신이 직접 겪은 역사라고 했습니다."
"서복이 활동하던 당시는 진시황 때이니 기원 전인데 제주도의 시원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것인지 도무지 헤아리기가 어렵네요."
"제가 들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나는 진시황이 총애하던 방사였다. 방사들이 다루는 분야는 크게 두 가지로 의경醫經, 경방經方, 방중房中, 신선神僊을 포괄하는 주로 의학과 약방에 관한 기술인 방기方技와 천문天文, 역보歷譜, 오행五行, 시구蓍龜, 잡점雜占, 형법刑法을 다루는 수술數術이었다.
그래서 방기와 수술 그 두 분야를 합쳐 흔히 방술方術이라 했다.
방사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방술이 양생養生은 물론이며 신선술神仙術과도 관련이 있다고 주장을 하여 진시황에게 불로불사不老不死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다.
나는 의술과 약으로 병을 고치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점사를 보고 하늘의 운세를 읽어서 재앙을 막고, 근심을 덜며, 복을 내리는 사람의 운세를 돌보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가 진시황의 눈에 처음 들었던 이유도 점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때문이었다.
28개의 별자리들과 오성五星, 일월日月의 운행을 따라 하늘이 가진 형상의 실마리를 잡고, 그로부터 만물의 형상을 살펴 그 안에 드러나 있는 귀천과 길흉의 의미를 구하고 분석하는 나의 능력이 황제가 자리를 보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황제로부터 신임을 얻어, 세상에서 기억하고 있듯이 어린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삼천의 무리를 데리고 불로초를 구하는 선단을 꾸려 삼신산三神山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1차 탐사 후 다시 2차 선단을 꾸릴 때 황제의 광기가 더해지는 것을 보며 불로초 없이는 결코 고향에 되돌아갈 수 없는 운명임을 알았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2차 탐사에서는 반드시 불로초를 찾아야만 했다.
봉래, 방장을 거쳐 영주가 있는 탐모라까지 왔으나 불로초를 찾을 수는 없었다. 불안과 걱정, 두려움으로 잠 못드는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밤 역시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에 꿈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꿈속이었지만 나는 그가 삼신산의 신선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신선은 나를 딱한 듯이 보며 꾸짖듯이 말했다.
"네가 찾는 것은 이곳에 없다. 아니 어느 곳에도 없다."
나는 신선 앞에 무릎을 꿇고 물었다.
"신선께서는 제가 찾는 것이 무엇인 줄 어찌 아셨습니까? 저는 불로초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부디 제게 불로초가 있는 곳을 알려주십시오. 이렇게 간곡히 청합니다."
신선은 한동안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바로 꿈에서 깨어났지만 너무도 생생한 신선의 음성과 모습이 사실처럼 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꿈에서 본 신선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에 탐모라 곳곳을 헤매고 찾아다니다, 종국에는 선단과 어린 무리들을 남겨놓고 혼자서 무모하게 서난드르까지 가게 되었다.
당시 서난드르에는 선인仙人골이라고 불리는 신령한 지역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나는 그곳이라면 분명히 불로초의 행방을 아는 꿈에서 본 신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서복 신명님은 꿈에서 본 신선을 만났고, 결국 스승과 제자의 연緣을 맺었다고 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말입니까?"
예나는 전혀 듣지 못했던 서복의 이야기에 놀라며 반문했다.
"그렇습니다. 현묘진일玄妙眞一이라는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 중에 미안합니다만 불로초를 찾겠다고 나선 분이 갑자기 사제의 연을 맺고 수행이라니요... 혹시 그에 대해서도 들으신 바가 있으신가요?"
예나는 서복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다.
"저도 한라산에서 처음 서복 신명님을 만났을 때는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경황이 없어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선인골 토굴에서 서복 신명님을 다시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럼 그 이야기부터 해드려야겠군요."
고태건은 예나가 서복에 대해 관심을 보이자 흔쾌히 말머리를 돌렸다.
"서복 신명님을 또 만나셨단 말씀이십니까?"
"그랬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되실 것입니다. 그때 들은 서복 신명님과 현묘진일의 이야기입니다."
나의 기대는 헛되지 않았다.
며칠을 선인골 깊은 골짜기 속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홀연 기품이 남다른 한 노인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단번에 그가 꿈에서 본 신선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불로초를 찾고 있습니다. 제게 길을 알려주십시오."
"나는 현묘진일이다. 네가 이곳까지 찾아온 것을 보니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구나. 기어코 불로초를 찾고 싶다면 내일 인시(새벽 3시~5시)에 이곳에 다시 오너라. 다만 한 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을 반드시 나에게 가져와야 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방사입니다."
"어떠한 도술로도 네가 찾는 것을 얻을 수 없다. 술術로써 얻고자 한다면 다시는 나를 찾지 말고 바로 이곳을 떠나라."
말을 마치자 신선은 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토록 어렵게 신선을 만난 그 자리를 차마 떠날 수가 없어 그대로 머물며 다음날 새벽까지 신선을 기다리기로 했다.
밤이 깊어지자 선인골의 기온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늦가을인데 밤 기온은 겨울이나 다름이 없었다. 별다른 채비 없이 왔던 나는 주변에서 나뭇가지들을 모아 불을 지펴 몸을 녹이려 했다. 하지만 밤서리를 맞아서인지 모아 놓은 가지와 나뭇잎들은 도무지 불이 붙지 않았다.
나는 뼈 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에 온몸을 떨면서 신선을 다시 만나기도 전에 얼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지난 날 추위를 견디고, 배고픔을 견디고, 굴욕을 견디며 살아 온 세월의 수많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도대체 이곳에 왜 와 있는 건가?
이대로 죽게 된다면 그동안 헌신하며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터인데.
모든 것이 참으로 헛되고, 헛되구나...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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