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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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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34,324
추천수 :
2,420
글자수 :
408,390

작성
19.10.11 12:00
조회
342
추천
32
글자
8쪽

테라코타Terracotta

DUMMY

한정은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분명 꿈이었지만 내 품에 안긴 예나의 체온, 피부와 입술의 감촉은 실제처럼 너무도 또렷하고 생생하다.

하지만 꿈에서 예나의 얼굴은...


한정은 순식간에 동현의 얼굴로 바뀐 예나의 얼굴을 떠올리며 생각이 어지러웠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털어내려고 서둘러 일어나 샤워를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오전이 하루처럼 길게 느껴졌다. 한정은 오후가 되면서부터 수시로 스마트 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예나는 오후 내내 아무 연락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일 말고 탐모라에서 만날 사람이 누굴까?


한정은 서울에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보다 가까이 있는 예나에게 더욱 초조해 하는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구나.


한정은 먼저 연락을 해 보려고 스마트폰 잠금 장치를 여러 번 풀었다가 바로 다시 마음을 바꾸고 일에 집중하려 했다.


그냥 기다리는 거야.


퇴근 시간이 다 되어 갈 즈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예나의 문자였다.


'선배, 연락이 늦어서 미안해요. 저 지금 선배 집이에요. 천천히 오세요.'


예나가 집에?

예나가 집에서 기다리다니.


한정의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부리나케 예나에게 전화를 했다.


"예나, 집이야? 언제 도착했어? 내가 빨리 갈 게. 아참, 저녁은 무얼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어?"


한정은 조급함에 두서없이 말했다.


"네, 선배 방금요. 열쇠가 잘 작동하네요. 천천히 오세요. 저녁은 아무 거나 좋아요. 과일을 약간 가져왔어요. 그럼 저 선배 올 동안 작업실 구경하고 있어도 되나요?"

"그럼, 물론이지. 그래 조금만 기다려. 곧 갈 게."


한정은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단골 레스토랑에 연락을 했다.


"이한정인데요. 네, 오랜만이죠. 그동안 좀 바빴습니다. 시금치 라비올리와 마르가리따 피자, 그리고 시저 샐러드와 해물 토마토 파스타를 하나씩 포장해 주세요. 30분 내로 가겠습니다."


예나는 전화를 끊고 조심스럽게 작업실 문을 열었다. 타운하우스가 높은 곳에 있어서 지하였지만 문과 마주한 정면 통창으로 보이는 저물어 가는 어두운 하늘의 붉은 노을이 그림 같았다.


벽에는 탐모라의 사계절 풍경이 담긴 스케치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동현 선배와 셋이 같이 있을 때에도 늘 모델을 해달라고 졸랐었는데.


예나는 한정이 자신을 따라 다니며 괴롭히고 장난치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한정은 그림의 대상이 무엇이든 자신만의 느낌으로 해석해 형상을 해체하고 다시 구조화해서 화려한 색을 입혔다.

단순화한 짙고 굵은 회색의 선과 면 사이에서 보라색과 청색, 붉은 색과 노란색, 짙은 초록색과 갈색, 주황색과 하늘색을 오묘하게 섞어 독특한 조화로움을 나타내는 게 한정 그림의 매력이었다.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예나는 항상 오케스트라의 환상적인 선율을 듣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예나는 한동안 보지 못했던 한정의 그림들을 오랜만에 하나씩 들여다보며 그동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지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방 한 구석에 세워져 있는 조각상 받침대를 발견했다.


어? 뭐지?

선배가 그림 말고 조각도 했었나?


받침대 위의 조각상은 긴 천으로 덮여 있었다.


설마, 내가 봐도 선배가 화내지는 않겠지?


예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천 한쪽 끝을 잡아당겼다.


긴 목, 반듯한 이마, 큰 눈과 또렷하게 선 콧날, 다물어진 도톰한 입술, 뒤로 묶은 긴 머리.


너무도 익숙한 모습에 예나는 깜짝 놀랐다.

화려하지도 거칠지도 않은 지극히 절제된 아름다움이 표현되어 있는 테라코타 두상 조각을 보고 예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한정 선배...


레스토랑에 들러 급하게 주문한 음식을 챙겨서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한 한정은 서둘러 포장된 음식을 부엌에 놓고, 예나를 찾아 지하 작업실로 내려가다 예나의 울음 소리에 놀라 허겁지겁 작업실로 뛰어들어갔다.


"예나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예나는 테라코타 앞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린아이처럼 흐느껴 울고 있었다.

한정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우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두리번거리던 그는 벗겨진 테라코타 두상을 보고서야 벌어진 상황이 추측되었다.


"왜 말하지 않은 거죠?"


예나는 아직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한정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뭘? 내가 너를 모델로 작업한 거 말이야? 우리 예나가 내 작품에 진짜 감동했구나."


한정은 순간 당황해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엉뚱한 말로 얼버무렸다.


"네, 맞아요."

“미안해. 모델비는 내가 계속 앞으로 맛있는 거 사주는 것으로 하자. 어때? 배고프다. 우리 밥부터 먹을까?"


한정은 예나의 손을 잡고 작업실에서 나와 1층으로 올라갔다.


"예나가 좋아하는 이태리 요리들을 사왔어."


한정은 음식 포장을 열고 예열용기에 옮겨 담아 오븐에 넣은 뒤 와인을 가져왔다. 예나는 장난을 치듯 살짝 한정의 앞치마를 빼앗아 두르고 과일을 씻어서 접시에 수북이 담았다. 한정이 그런 예나를 쳐다보며 빙긋이 웃었다.


"오늘은 어디서 먹을까? 바람이 많이 불어 3층은 좀 춥겠지?"

"아무 데나 좋아요, 선배."


한정은 부엌과 연결된 테라스 쪽 긴 접이식 창문을 열어 젖히고, 이동식 전기난로를 가져왔다. 두 사람은 이미 어둑해진 동네 너머로 멀리 열을 지어 어른거리는 밤바다의 황금 불빛들을 바라보며 데워진 이태리 요리들을 하나씩 즐겼다.


요리가 바뀔 때마다 예나는 너무 맛있다고 칭찬을 하며 평소보다도 많이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예나가 거실에 있는 스피커에게 말했다.


"예나야, 쇼팽의 녹턴 틀어줘."


음악을 들으며 한정은 예나가 그리울 때마다 작업실에 들어가 그녀의 모습과 기억을 쏟아내며 그녀를 잊으려고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선배, 기다림은 참 슬픈 시간이에요."


예나가 다정한 눈빛으로 한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예나의 말을 들으며 한정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한정! 뭐라도 말해야만 해!


"예나, 그러니까 말이야..."

"그날요. 동현 선배에게서 반지 받은 날요. '왜 이 반지를 준 사람이 한정 선배가 아닌 동현 선배지?’ 라고 생각했었어요."


순간 한정은 충격을 받아 두 눈이 커졌다.


예나가 나를?

동현이 아니라 정말 나를?


한정은 귀를 의심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건가?


"예나..."

"저도 몰랐어요. 선배 탓하는 거 아니에요. 동현 선배가 아니었다면 저도 몰랐을 거예요. 정말로요."


한정은 자신이 한없이 비겁하게 느껴졌다.


"저... 그래서 오늘부터 동현 선배에게 더이상 미안해 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만 간직하기로 했어요."


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선배 작업실에서 조각상을 보기 전까지는 정말 확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테라코타에서 선배의 마음을 느꼈어요. 너무도 따뜻한 손길로 제게 말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어요."


휴우~


한정은 예나의 말을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오랜 동안 참아 왔던 기나긴 한숨을 토해 냈다.


"선배, 그래서 지금 이 순간부터 이 반지 빼려구요."


예나는 말하면서 손에 낀 반지를 뺐다. 그리고 한정에게 주었다. 한정은 예나가 건네 준 반지를 받아 들고 들여다보며 마음 속으로 말했다.


동현아, 네 몫까지 내가 잘 할 게.


"예나, 괜찮다면 이걸로 내 마음을 받아 주겠니? 이 반지 동현과 내가 같이 고른 거야. 이 반지가 네게 전해졌을 때 난 이미 내 마음을 네게 주었다고 생각했어."


예나의 심장이 '쿵!' 했다.


"선배..."

"미안하다. 그동안 솔직하지 못해서..."


예나는 한정의 말을 더 듣지도 않고 손가락을 그에게 내밀었다.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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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영안靈眼 (2) +3 19.10.24 274 23 8쪽
34 영안靈眼 (1) +3 19.10.23 293 28 9쪽
33 재회再會 +2 19.10.22 278 27 8쪽
32 천부신검天符神劍 +2 19.10.21 285 27 11쪽
31 호종단胡宗旦 +2 19.10.20 287 24 8쪽
30 사후를 위해 사는 자들 +2 19.10.19 298 25 9쪽
29 삼합비경三合秘景 +3 19.10.18 280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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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선인仙人골 +1 19.10.14 347 26 9쪽
24 그것을 원합니다 +1 19.10.13 334 28 9쪽
23 매우 사적인 인터뷰 +1 19.10.12 366 31 10쪽
» 테라코타Terracotta +4 19.10.11 343 32 8쪽
21 우주목宇宙木 +5 19.10.10 378 29 11쪽
20 공명共鳴 +5 19.10.09 374 31 8쪽
19 천부관天符館 +4 19.10.08 402 3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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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신인의 언어 (2) +2 19.10.06 403 39 8쪽
16 신인의 언어 (1) +3 19.10.05 451 36 9쪽
15 가을 속 여름 +2 19.10.04 472 3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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