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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Light 서재입니다.

신인 GODMAN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BrainLight
작품등록일 :
2019.09.20 09:55
최근연재일 :
2019.12.25 08:00
연재수 :
97 회
조회수 :
34,266
추천수 :
2,420
글자수 :
408,390

작성
19.10.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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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우주목宇宙木

DUMMY

오성과 예나는 산책로를 따라서 신시 위쪽으로 계속 걸어 올라갔다. JKS관이 보이자 오성은 건물을 그대로 지나쳐 건물 왼편으로 나 있는 좁은 오솔길로 들어섰다.


예나는 말없이 오성의 뒤를 따라 걸었다.

길 좌우로 키 큰 편백나무와 삼나무,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나 찾을 수 없는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오성과 예나가 숲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하늘이 빠르게 움직이며 먹빛으로 변했다. 두텁고 짙은 회색 먹구름이 낮게 깔리면서 금새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세찬 바람이 나무들 사이로 불어와 예나의 머리칼을 정신없이 흩뜨렸다.


"괜..찮...으신..가..요?"


뒤따라오는 예나를 돌아보며 말하는 오성의 목소리가 강한 바람으로 끊겨서 드문드문 들렸다.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넘겨서 붙들며 예나가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급작스레 변하다니 이상하네요. 아직 멀었나요?"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걸으시지요."


예나는 무엇을 보러 가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참았다.


뜻하지 않게 발을 들여 놓은 이 신비로운 곳에서, 오늘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없이 그냥 일어나는 대로 나를 맡겨 보자.


다른 누군가를 죽이려 했던 그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에고를 죽이고,

외부를 향해 떠나야 한다고 여겼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 중심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 조셉 캠벨 Joseph Campbell


예나는 오성의 뒷 모습을 보고 걸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비교신화 학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평소와 다른 자신이 되어 보기로 결심했다.


숲속으로 깊이 한참을 가다 오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람도 이내 잠잠해졌다.


꿈속의 꿈길로 들어가는 것 같구나.


오성과 예나가 멈춘 고요한 공간 한 가운데에는 수령을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한 둥치에서 사방으로 구불구불 굽어져 나온 수십 개의 가지들이 숲을 타고 들어오는 빛을 받아 신비하게 반짝였다. 땅에서 솟아오른 굵고 긴 뿌리들은 땅으로 향하는 거목의 또다른 가지들처럼 보였다.


나무가 주는 신령함에 예나는 말을 잃고 잠시 멍하니 있었다.


구불거리는 가지들이 모두 일어나 당장이라도 하늘로 솟아 오를 것만 같아.


예나는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 '잭과 콩나무'가 떠올랐다.


푸드덕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는 새의 날개 소리에 예나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오성이 나무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우주목입니다. 신시에서는 신단수라고 합니다."


우주목, 신단수...


"우주목은 우주의 축을 상징합니다. 우주목이 있는 곳이 바로 세계의 중심이 되지요."

"세계의 중심? 그렇다면 지금 이곳이 세계의 중심이란 말인가요?"


"세계의 중심이란 곧 우주화되는 장소, 성화되는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의례와 기도로 성스러운 에너지가 가득 찬 곳을 말하지요.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에 이런 우주목이 있어 왔습니다.

7천 년 전부터 신단수는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축이자 생명력이 흐르는 통로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축의 하나였지요."


"우주목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뿌리는 땅으로 뻗어 있고,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서 우주목이 하늘과 땅을 교류하는 입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주목을 통해서 고대로부터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와 소통하기를 바랬습니다."


"초월적인 존재라면 신...?"

"네, 인간의 능력으로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을 모두 의미합니다. 세계의 중심을 그리스어로 옴파로스omphalos '배꼽'이라고 했는데, 그런 곳에는 대부분 그 상징인 우주목이 있었습니다."


"이를 테면 오벨리스크obelisk도 그런 우주목 상징의 하나인가요?"

"그렇습니다. 한때 세계를 지배한 영웅들이 이집트의 유물 오벨리스크를 모두 갖고 싶어 했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바로 인간의 우주화, 성화의 열망을 담은 우주목이었으니까요."


"그럼 우주목으로 하늘과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 있었겠네요."

"우주목은 역사가 있습니다. 태초에 인간이 갖고 있는 영적인 능력을 상실하기 전에는 누구나 어디서나 우주와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감에 의존하는 생활에 익숙해지자 능력이 퇴화되었고, 아주 소수만이 그런 능력을 갖게 되어버렸습니다. 제사장이 대표적인 그런 소수의 능력자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샤먼, 무당입니다.


제사장이나 샤먼들은 성스러운 장소에서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습니다. 우주목은 바로 그들과 하늘을 연결하는 매개체였습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종교가 제도화되면서 영적 능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마저 사라지게 되자, 우주목은 단지 제물을 바치며 기도를 올리는 곳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우주와 소통하는 영적인 능력...


예나는 예전에 본 탐모라의 본향당 생각이 났다.


"그럼 이곳 탐모라의 본향당本鄕堂 당목도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곳이었겠군요. 사오백 군데가 넘는다고 하던데요."

"네, 바로 그런 생활문화 때문에 탐모라가 영지로 알려진 것이기도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당목을 보고 나무를 숭배하고 나무에게 기도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목이 신단수 우주목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실재가 나무를 통해 현현했다는 우주목은 생명의 나무이고 지혜의 나무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실재는 생명의 근원, 우주의 창조성, 우주의 중심, 지혜의 원천이 되는 신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를 말합니다. 더 중요한 건 인간 자체가 바로 우주목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지요."


인간이 우주목이 될 수 있다?

인간과 우주와의 소통


예나는 오성이 말하는 이야기들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아마 당장은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우주는 천체 외에 다른 의미를 가진다는 말씀인 것 같은 데요..."


"우주란 살아있는 생명 그 자체이지요.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주기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죽고 재생하지요.


식물 역시 그렇습니다. 계절에 따라 소생하고 소멸하며 다시 순환하는 재생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영원함, 불멸의 상징으로도 이야기되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생명나무나 불로초와 같은 것일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것이 생명나무이거나, 불로초이거나, 세계의 중심이든, 우주축이든, 지혜의 나무이든, 혹은 신의 거처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생명의 신성을 저마다 자기들 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것일 뿐이지요."


생명의 신성함...


"나무나 약초처럼 살아있는 실재를 통해서 변화하고 재생하는 생명력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끊임없이 창조하고, 수많은 형태로 재생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힘, 우주적 생명에너지 말입니다."


예나는 나무를 좀더 가까이 느끼고 싶었다.

발을 떼어 신단수 앞으로 막 다가가려는데,


"잠시만요!"


오성이 낮은 목소리로 예나를 저지했다.


"우주목이 있는 곳 주변으로는 대부분 특별한 샘이 있습니다. 신시에서는 '마고 성수'라고 합니다."


마고?


예나는 문득 고대 그리스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생각났다.


"마고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설명드리겠습니다. 성분을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마고 성수에는 고순도의 에너지가 담겨 있습니다. 정화와 치유의 에너지를 주는 물이지요."


오성은 말을 마치고 신단수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세워진 정자로 향했다. 정자 앞에는 작은 통천문이 있고, 통천문을 지나 원목으로 된 팔각형 지붕의 정자가 나왔다. 정자 중앙에는 허리 높이의 팔각면 화강암 우물이 있었다.


각 면마다 중앙에는 은빛 둥근 버튼과 그 아래 성수가 나오는 가느다란 은빛 파이프가 있었다. 오성은 정자 입구에 걸려 있는 편백 물컵 하나를 집어 마고 성수를 받아서 나왔다.


"신단수 앞에 가기 전에 이 성수로 손과 입을 씻으세요. 눈과 귀도 좋습니다. 원하시면 몇 모금 마셔도 좋구요."


예나는 오성이 준 성수로 손과 눈, 귀, 입을 모두 씻고 한 모금을 삼켰다. 차고 맑은 물을 타고 투명하고 맑은 기운이 예나의 몸으로 흘러 들어와 퍼졌다.


"이곳은 원래 수행이 깊은 신인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되는 구역입니다. 아까 먹구름은 바로 그것을 경고한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무사히 이곳까지 오셨으니, 이제 신단수와 교류하겠습니다."


내가 우주목과 교류를?


예나는 두려웠다.


"괜찮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하는 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오성은 예나를 신단수 앞으로 데려갔다.

거대한 우주목 앞에 서자 예나는 자신이 아주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한낱 들풀처럼 느껴졌다.


"눈을 감습니다. 숨을 길게 내쉽니다."


오성은 예나가 따라올 수 있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예나는 곁에 오성이 있다는 것에 안심하며 눈을 지긋이 감았다.


길게 내쉬고 난 뒤 저절로 들이마셔지는 숨으로 맑고 신선한 숲속의 공기가 예나의 몸을 채웠다.


"몸에 의식을 집중합니다. 손의 느낌을 느껴 봅니다.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이제 손을 들어서 신단수로 가져갑니다. 신단수를 느껴 봅니다. 그 느낌에 집중합니다. 느껴집니까?"

"네."

"그 느낌에 계속 집중합니다."


나무에 손이 닿자, 손안 가득히 미묘한 무언가가 채워지고 몸안으로 흘러드는 것 같았다. 그러다 순간 나무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로 느껴지면서 자신의 몸이 나무와 하나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엄마의 품에 안긴 것 같은 아늑함.


"이제 신단수와 대화를 합니다. 어떤 이야기든 좋습니다. 그리고 신단수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 봅니다."


분명 오성 원장님의 목소리인데...


오성의 음성이 점점 멀어지면서 저 멀리 지나가는 바람소리처럼 느껴졌다.

예나는 신단수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신단수는 수 천년 동안 그곳에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예나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했다.


어떻게 알죠?

구름과 바람이, 빛과 소리가, 네 심장이 내게 들려주니까.


오성은 예나 뒤에서 예나를 지켜보며 그녀를 향해 가만히 양 손을 들어 에너지를 보냈다.


숲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새소리로 한 차례 시끄러워지더니 이내 다시 정적에 잠겼다.


잠시 후 예나는 눈을 떴다.

예나의 두 뺨은 흐르는 눈물로 젖어 있었다.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쉽니다."


예나는 여전히 눈물에 젖은 채 해맑아진 얼굴로 오성이 말하는 대로 따라 했다.


"신단수와 대화를 나눴습니까?"

"네."


예나는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인연,

인연이다.


오성도 예나의 오라 색깔이 바뀐 것을 보며 말없이 웃었다.




- 신인 GO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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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영안靈眼 (2) +3 19.10.24 273 23 8쪽
34 영안靈眼 (1) +3 19.10.23 291 28 9쪽
33 재회再會 +2 19.10.22 277 27 8쪽
32 천부신검天符神劍 +2 19.10.21 284 27 11쪽
31 호종단胡宗旦 +2 19.10.20 285 24 8쪽
30 사후를 위해 사는 자들 +2 19.10.19 297 25 9쪽
29 삼합비경三合秘景 +3 19.10.18 278 3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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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선인仙人골 +1 19.10.14 346 26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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