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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식객의 서재입니다.

도서관식객 인도겉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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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식객
작품등록일 :
2019.07.16 14:18
최근연재일 :
2019.09.06 12:46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7,617
추천수 :
343
글자수 :
75,937

작성
19.07.25 16:40
조회
364
추천
15
글자
8쪽

근성있는 남자가 인기있는 시대는 지났다.

DUMMY

파하르간지의 간지나는 뒷골목을 빠져나와 큰길을 만나니 반갑기가 신작로 저리가라네.


왕복 4차선의 대로를 따라 코넛 플레이스를 향해 걸어갔다.


코넛 플레이스라는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 하면, 뉴델리 여기 오기 전에 숙소를 예약하려고 호텔 예약사이트를 돌아다니던 중, 어떤 호텔이 코넛 플레이슨지 코코넛플레이스인지에 있고, 그래서 안전하다는 댓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뉴델리의 청담동, 뉴델리의 가로수길 이라나?


방금 뉴델리의 이태원인 파하르간지에서 뜨거운 맛을 본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실 난 서울에서도 가로수길 유명해진 다음엔 한번도 안갔는데.


암튼 뭐 이것저것 있다고 하니까 가면 뭐 밥 먹을때가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어가는데!!!!


나마쓰떼.


흠칫.


갑자기 누군가 옆에서 나타난다.


뭐여. 클로킹이여?


힌디어로 헬로우는 나마쓰떼야.


알아 임마. 그 정도는 알아.


땡큐는 힌디어로 단냐왓이고.


묻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힌디어 강습을 한다.


얼굴을 보니, 저는 당신을 등쳐먹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단냐왓? 땡큐? 그래요? 몰랐네요. 알려줘서 단냐왓. 바이바이.


배웠으면 바로 써먹어줘야지. 근데 발음이 안좋았나보다.


안 간다.


꺼져도 힌디어로 알려달라고 할까?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내 바이바이를 듣고서도 싱글생글 웃으며 나를 따라 걷는다.


어디 가는데?


코넛 플레이스.


어디서 왔는데.


파하르간지.


아니. 그거 말고. 니네 나라.


코리아.


남쪽?


아마도?


내 무성의한 대답에 갑자기 크게 웃는다.


난 그때 확신했다.


이 친구는 나에게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자본주의 웃음 기술을 발동했다는 것을.


자. 넌 나에게 또 무엇을 바라는가. 어디 한번 노래 불러봐.


인도는 며칠이나 있는데?


응. 3일.


오늘 첫날?


아니. 이틀째. 나 내일 가. 이거 그냥 환승하다 스탑오버 건거야. 내일 갈 거야.


인도에 왔으면 아그라에 가봐야 해.


응. 근데 나 내일 가.


타지마할을 안 보고서는 인도에 왔다고 할 수 없어.


어. 근데 나 내일 가거든.


뉴델리는 그냥 도시일 뿐이야.


그래 그래. 근데 나 내일 간다고.


아그라에 가보고 싶지 않니?


오케이. 오케이. 알겠어. 아그라 좋은 것도 알고, 타지마할 기깔나는 것도 아는데 나 내일 간다니까! 내일 가서 시간이 없다고 임마!


나는 자리에 멈춰서서 그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 눈에 담긴 의미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마. 분명 기회가 있어.


미안하다. 내가 착각했구나.


니가 내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구나. 모르는게 아닌데도 너는 너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구나.


내가 인도형아들의 근성을 우습게 봤구나.


고맙다가 뭐라고 그랬지?


단야왓.


그래. 나 아그라 못가. 다음에 갈게. 다음에 뉴델리 오면 너 찾아서 아그라 데려가 달라고 할게. 오늘 대화 즐거웠다. 단야왓. 빠이.


그렇게 말하고 시선을 돌리고 빠르게 걸어갔다.


하지만 여기에서 포기하면 인도삐끼가 아니지.


아니.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난 그냥 학생이야. 그저 영어공부 할겸, 또 정보도 알려줄겸.


그래. 학생. 나도 이야기 들었지. 학생이라고 영어공부 시작한다고.


근데 그 학생 우리나라에도 많아. 안녕하세요. 저 공부하는 학생인데요, 참 얼굴에 복이 많으시네요...


야. 근데 영어공부하려면 영어쓰는 나라 사람들과 대화해야지 않겠니?. 난 영어권 국가 아닌데.


아니. 괜찮아. 공부하는 길은 하나가 아니야.


오 뭐야. 이 신박한 대답은? 무슨 국가별, 인종별 답변이 정리된 매뉴얼 같은 거 파나?


그래. 아무튼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고. 갓 블레스 유.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발걸음을 빨리 했는데, 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춘다.


허... 그놈 참.


알았어. 아그라 이야기는 미안해. 근데 코넛 플레이스는 왜 가는데?


집요한 놈.


그냥. 산책.


산책? 코넛 플레이스 내가 안내해 줄 수 있는데.


괜찮아. 잘 가. 바이바이. 공부 열심히 하고.


그쪽으로 가면 주차장 밖에 없는데. 내가 안내해 줄게. 기념품 안 필요해? 엄마, 누나, 이모, 동생. 선물 사줘야지. 저쪽으로 가면 바자 있어. 칩. 베리베리 칩.


이쯤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친구는 단순한 삐끼가 아니지 않을까.


날 열받게 해서 깽값을 받으려는 그런 큰 그림이 그려져 있는게 아닐까.


응. 난 선물 안살 거야.


저쪽에 가면 주차장 밖에 없다니까.


나 자동차 좋아해.


그래? 그럼 드라이브 할래? 내가 안내해 줄게.


아니. 나는 그냥 보는게 좋아. 차 멀미가 심하거든.


그래? 그럼 같이 봐줄게. 내가 차에 대해서 설명해줄게.


아 씨바 진짜...


내가 그래도 삐끼라면 좀 겪어봤다고 자부하는데, 이 친구는 집요하다.


론리플래닛에 써져있는데로 정색빨고 말해야 되나.


야. 고마운데, 나 혼자 있고 싶거든. 그러니 이만 따라와줄래?


어. 이해해. 그래. 그럼 좋은 하루 보내. 대화 즐거웠어.


그리고는 빠이빠이 하더니 사라진다..


어? 뭐지? 저렇게 쉽게?


막상 그렇게 보내고 나니 좀 미안해진다.


내가 괜히 친절한 학생을 편견으로 오해한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코넛 플레이스로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조금 반성을 했다.


내가 오전 내내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던 일 때문에,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예의없이 군 것은 아닐까.


그 친구도 그냥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진짜로 영어공부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인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조금이라도 인도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가지게 해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그를 내가 오해하고, 미워하고, 예의없이 행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반성하고 있는데!!!


그놈이 앞에 서 있다.


나에게 빠이빠이를 하고는 뒤로 돌아서 골목길을 통해 나보다 질러 가서 날 기다린 것이다.


하하하. 귀여운 새끼.


졸라 씨바...


날 보고는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나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보이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버렸다.


***


커피숍이나 식당마다 무서운 표정의 아저씨들이 문을 잡고 있다.


에어컨 바람을 공짜로 즐기려는 불청객들을 막기 위해서.


다행스럽게도 무서운 표정의 아저씨는 외국인인 나를 손님으로 생각해주었나 보다.


나는 아저씨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 아이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근성있는 삐끼가 사라질 때 까지 충분한 시간을 때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원한 에어콘 바람에 쌉사름한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좀 살 것 같았다.


나는 커피숍에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는 김에, 인터넷으로 델리에 뭐가 있나를 검색해보았다.


아니, 해보려 했다. 화면의 알람을 보기 전까지.....


‘통화는 되지만 인터넷은 안되거덩!’


유플러스 개개끼야!!! 에어텔 씨발라마야!!


와이파이 비번 받아서 접속해 이 망할놈의 시츄에이션이 왜 발생하게 된 건지 검색해봤는데 뭐 방법이 없다.


통신사도 엘지고, 휴대폰도 엘지다. 엘지 개개끼들아! 암튼 야구팀부터 맘에 드는게 뭐 하나도 없어!!


암튼 적당히 커피를 마시고 다시 거리로 기어나왔다.


그 사이 근성 없는 삐끼형은 사라졌지만, 해는 정오를 지나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거리에 걸려있는 온도계에 38이라는 숫자가 찍혀있다.


허허허허.


나는 왜 인도를 왔을까. 하필 하고 많은 날들 중에 몬순을 바로 앞둔 이 때에 인도를 왔을까.


멍청한 나를 때려주고 싶다. 졸라 패주고 싶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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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도 상륙 준비 +7 19.07.16 606 23 10쪽
1 인도를 방문하시계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6 19.07.16 1,397 3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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