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엘지에 발등 찍히기.
첫 번째 퀘스트인 바라나시에서 아그라 가는 기차표도 끊었고. 이제 다음 퀘스트를 하러 가 볼까나?
두 번째 퀘스트는 바로 환전이다. 환전.
공항 입국장의 날 강도같은 은행환전소에서 꼴랑 50달러만 환전했고, 기차표 산다고 2000루피를 줘버렸기에 추가적으로 루피화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해외에 나가도 신용카드가 사용 가능하면 신용카드를 쓰자는 주의긴 한데...
사람들 이야길 들어보니 인도에서 고급 호텔이나 백화점 아니고서는 신용카드는 무용지물이라고 하고, 또 IT 강국 인도답게 카드 정보를 빼내는 다양한 방법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니...
또 조심해야 하잖아?
에휴... 소득신고 할 때 세금 쪼금이라도 아낄라면 카드써야 되는데...
아무튼, 환전도 할겸, 구경도 할겸, 뉴델리역을 나와 빠하르간지 메인 바자로 가보았다.
우리로 치면 인사동이나 이태원 같은거 아냐? 태국으로 치면 카오산이고. 베트남으로 치면 브이비엔이고.
여행자 거리라는건 쉽게 말해 영어가 통하면서, 현지물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한다는 의미다.
뭐 현지물가보다 비싸도 여행자거리의 가장 큰 장점은 편하다는거.
뭐 밥먹을 만한 곳도 있고, 여행사도 있고, 배낭족들도 있고, 뭐 이것저것 있으니 편하다는 것이 여행자거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빠하르간지에 가면 뭐 이것저것 있겠지라고.
그렇게 생각한 나 자신을 때려주고 싶다.
뉴델리 역에서 도로를 건너서, 달려드는 삐끼형들에게 나 표 샀어라고 외치면서 빠하르간지 초입에 들어서니!!!!
있는거라곤 릭샤와 릭샤 경적소리와 개와 소. 그리고 인도형아들 뿐....
뭐 씨바. 진짜.... 와.... 진짜....
난 나름 폐허 덕후라고, 좀 뭐랄까 그런 구시가 이런거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아니지. 이건 아니다. 와....
세상 모든 더러운 것들은 여기 다 모아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부처 형님의 가르침 중에서 일체개고라는게 있는데, 사는게 다 고통이라고 했는데, 씨발, 여기서 태어나 살면 당연히 그런 생각 들 수 밖에 없겠다.
뭔 쥐는 그렇게 많은지... 쓰레기, 쥐에, 개에, 소에, 똥에....
이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수도, 수도에서도 여행자가 몰린다는 여행자 거리란 말인가!!
아우... 진짜... 집에 가고 싶더라.
있을 거야. 다른건 몰라도 환전하는데는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용감하게 빠하르간지로 들어선다.
뭐... 용감하게 들어선다는 표현은 좀 오바긴 하고...
어떤 느낌이냐면 암튼 이태원이나 뭐 카오산로드나, 데탐이나 그런 분위기라기 보다는 지저분한 시장골목? 암튼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빠하르 간지를 걸어가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뭐가 안보인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바가지를 옴팡 씌우겠다는 식당도 안보이고, 커피 마실만한 그럴싸한 커피집도 안보인다.
여기 빠하르간지 맞아? 여행자 거리 맞아?
맞는데. 분명히 구글지도에서 확인했는데. 이거 서울의 신사동 마냥 막 빠하르간지가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그런거 아녀?
그런 의문을 품고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다. 빨리 가다간 릭샤에 치일테니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환전소가 잘 안보인다. 가끔 보이는 환전소는 느낌이 뭔가 안좋다.
인정한다. 쫄아있었다. 나는.
나는 경계태세 최고 단계에 올라가 있었다. 화스트페이스도 아니고, 칵키드피스톨이었다.
잔뜩 긴장한 상태로 있으니, 환전하는데 조금 덩치 큰 형만 있으면 안들어가게 되더라.
근데 밥을 먹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 점심 먹어야 하잖아!
그래서 몇 없는 환전상 중에서 슬슬 눈치를 보다가 뭔가 사람좋아보이는... 아니아니. 조금 덜 등쳐먹을 것처럼 보이는 환전상에 들어가보았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앞에 있는 인도형아들에게 마구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인도사람들 안싸운데며? 소리 안지른다며?
근데 막 화낸다. 힌디어를 몰라도 저건 분명 욕설이다.
어. 씨댕. 잘못들어왔다. 나가야지 하는 그 순간!
카운터 할배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보았따.
할배의 눈매가 천천히 구부러지는 것을. 웃음이 그 얼굴에 펴저나가는 것을.
상인의 얼굴이다. 상인의 미소였다.
머니 익스체인지?
조금 전 소리지르던 인격이 아니다. 다른 인격이다.
메...메이비?
바보같이 말한다.
하우 머치?
워....원 헌드레드 유에스달라.
할배의 시선은 여전히 나에게 향해있다. 그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그런데 그의 오른손은 재빠르게 계산기로 향한다.
두두두두.
7000루피 조금 안되는 금액이 계산기에 찍힌다.
오케이? 굿 프라이스. 굿 프라이스.
호오... 나쁘지 않네? 기준 환율과 거의 비슷하다.
그...그럼 함 바꿔볼까?
조심스러운 손으로 100달러를 꺼내 건내준다.
할배 미소를 지어 준 후, 내 백달라를 가져간다.
그리고 가져갈때와는 전혀 다른 손길로 천천히 루피화를 새어서 건내준다.
나는 그 돈을 기다리며 한 손에 지갑을 들고 있다.
그리고 할배에게 혼나던 인도형아의 눈길이 내 지갑으로 향하는 것을 본다.
잘못 본거겠지. 잘 못 본걸 거야. 내가 지금 편견에 사로잡혀서, 괜히 엄한 형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것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지갑을 다시 가방에 넣는다. 바로 꺼내야 하겠지만, 다시 가방에 넣고, 지퍼를 잠근다.
이런게 힘들다. 이런 사소한데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새우는 것이 피곤하다.
사소하지는 않겠지만, 뉴델리역에서 잠깐 동안의 신경전 때문에 나는 은근히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새워져 있다.
할배가 쥐어준 육천 구백 몇 루피를 받아들고, 찢어진 데가 없나 확인해보고 다시 지퍼를 열고, 지갑을 꺼내고, 돈을 넣고, 지갑을 넣고, 지퍼를 닫고, 가방을 가슴으로 끌어온다.
아.... 피곤하다.
이게 여행이야, 고행이야.
너무 쫄아있나? 나만 쫄아있나?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인도 개좋다던데. 막 다들 친절하고, 그렇다던데...
아무튼, 환전하고 나와서 밥 먹을 때를 찾아본다.
아침에 흙의 식감을 가진 난을 대충 먹었더니, 뭔가 좀 허한 느낌이 든다.
뭐 먹지?
하지만 난 음식에 있어서는 수구잖아. 위정척사잖아.
먹고 싶은게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다. 솔직히 식당이라고 있는데 다 내 스타일 아니다.
외롭다고 아무나 사귀면 결국 고통스러운 이별 맞게 된다.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으면 나중에 탈난다.
안되겠다.
코넛 플레이스로 가자. 거기가 졸라 청담동 같은 곳이라던데.
가즈아!
우선 환전상에서 좀 떨어지자라는 생각으로 걷는다. 걸어간다.
그렇게 몇분을 걸어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어디로 가야되지?
당신이 해외에서 길을 잃어버린다면 당황하지 말고 구글맵을 키세요!
그렇지! 우리에게는 구글맵이 있지!
그런 생각으로 나는 핸드폰을 꺼낸다.
그런데 망할,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보지못한 알람이 떠 있다.
‘통화는 되지만 데이터는 안되지롱!’
망할놈의 엘지 유플러스!!!!!
나는 보통 여행가면 현지에 가서 유심을 사서 쓰곤 하는데, 혹시나 해서, 망할놈의 로밍을 10일이나 신청해놓고 왔는데!!!
데이터가 안된다!!
데이터가 안되면 구글맵이 안된다. 구글맵이 안되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X된거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경고문구를 우선 스샷 떠놓는다. 한국 돌아가면 개지랄 떨어야하니까.
데이터가 안되니 구글지도에서 내 위치가 정확히 안잡힌다.
대충 어디에 있는지는 알겠는데 확신이 안선다.
코넛 플레이스까지는 대충 가는 방향은 알겠는데, 확신이 안선다.
그냥 걸어가?
그냥 걸어가야지. 어쩌겠어. 그냥 여기서 살아?
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발에 힘을 준다.
내가 말야. 그 캄보디아의 그 엉망진창 골목길도 다 다닌 사람인데.
용기를 내어본다.
가자. 가즈아!
그리고 한 300m 가보다 멈춘다.
이건 아닌데.
아. 씨. 점점 무서워지는데.
왜 점점 골목이 좁아지는 거지?
이러면 나가린데.
구글지도를 켜본다.
데헷. 유플러스 제휴한 에어텔에서는 데이터가 안되는데?
이렇게 써있다.
엘지 개개끼들. 야구부터 뭐 하나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다.
근데 난 호구같이 엘지 유플러스에, 엘지 인터넷에, 유플러스 티비에, 씨발 핸드폰도 G7이네. 망할놈의 엘지 트윈스 팬이고!!! 이게 제일 빡친다.
암튼 유심 사야되겠네. 비상용으로 사둘라고 했는데. 비상용이 아니라 메인으로 써야되겠네.
그 날을 떠올리니 피곤해지네... 글 쓰는데도 이렇게 피곤해지다니.
아무튼 조금씩 좁아지는 무서운 골목을 걸어가고 있는데 누가 내 등 뒤에 붙는다.
나마쓰떼.
아씨! 깜짝이야!
아... 헤..헬로우.
어떤 인도형아가 씩 웃으며 내 옆을 지나간다.
그러더니 내가 맨 가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비 케어풀.
아 씨바. 무섭게!
여기 지금 여권도 들어있고, 유에스딸라도 들어있고, 신용카드 현금카드 다 들어있는데.
무섭게 그러지마!
이거 잃어버리면 나도 씨발 뉴델리역에 호갱등쳐먹으로 가야한단 말이다!
인도형 껄껄껄 웃고는 휘적휘적 걸어간다.
안되겠다. 얼릉 큰길로.
구글지도 킨다.
니 위치 모르겠는데? 왜냐하면 데이터가 안되거든!
씨발 유플러스!
암튼 어찌저찌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든다.
사람이 참 간사한게, 조금전까지만 해도 냄새나고 시끄럽던 큰길이 이제는 안전하고, 깨끗한 도로로 보인다.
참... 이래서 사람이 진짜 간사하다.
나와서 가장 불친절해보이고, 무심해 보이는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헬로우 써! 웨얼 이즈 코넛 플레이스?
그가 나를 힐긋 보고는 말 한마디 없이 손가락만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그의 무심함이 너무나도 좋다.
코넛 플레이슨지 나발인지로 걸어간다.
뉴델리의 청담동. 가보자. 가보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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