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4.22 10:13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110,764
추천수 :
2,324
글자수 :
792,371

작성
24.04.12 04:26
조회
56
추천
2
글자
20쪽

양덕자(洋德子)

DUMMY

장군이 항파두리 공방에서 여러가지를 점검하고 그날 저녁은 제주 읍성에서 묵었다.


그 전날 저녁에 제주에 도착하여 육지의 일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제주의 일들에 대해서도 전해 들었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받을 시간이 없었다.


하여 노정과 함께 늦은 저녁을 먹고 귤림당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너가 말한 것 중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더구나.”


“말씀하십시오.”


장군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홍진과 유형원도 있었지만 노정은 장군을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알아주었던 사람이었고 후방인 제주에 남아서 굳은 일들을 처리해주는 소중한 사람이었기에 장군이 경청하는 자세로 대답하였다.


“지금까지 너가 해온 일들은 그 이유가 명확하고 지나침이 없었는데, 어제 말한 일만 만(萬)자를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도저히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구나.

지금 전쟁이 한창인 이때에 굳이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냐?”


이미 뭍에서도 운부와 유형원 등에게 사전동의를 받을 때 같은 질문을 받은 장군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겠지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너의 어머니 일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던 너이니 그러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냐?”


“지금 서인과 남인 중에 서인들의 세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글쎄다. 우리 남인이 동인에서 갈라져 나오게 되면서 기축옥사같은 몇번의 부침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


“그런 연유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들의 세가 날로 더해지는 것에 대한 답은 아닐 것입니다.

서인들의 영수인 송시열 등이 하는 일들을 보면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저들이 내세우는 사문난적, 존주대의며 소중화라고 하는 것은 백성들의 삶이나 조선의 미래와는 거리가 먼 성리학자들의 정신승리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잘것없는 대의에 불나방처럼 유림들이 몰리고 있고 앞으로 더더욱 그럴 것이며 몇 세대 뒤에는 이나라의 임금마저 헤어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질문과 벗어난 이야기에 노정이 무슨 말을 하는가 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우리가 전쟁에 승리해 군권을 장악하고 조정의 다수를 점하며 여러 개혁을 해 나가겠지만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여 곧 한계에 다다를 것입니다.

결국 수십만 즉 수온즈믄의 서인 유림들의 반격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겠지.”


“그러면 저들 서인들은 실사구시(實事求是)에 도움이 안되는 하잘것없는 대의에 점점 뭉쳐질 것입니다.

허나 남인들은 하나로 뭉칠만한 것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흐흠, 지난 기해년의 예송논쟁에서 우리 남인들이 힘을 합쳐 서인들과 싸우지 않았더냐?”


“그것은 저들이 짜 놓은 존주대의의 틀안에서 싸운 것 아닙니까?

조선의 사상은 이미 저쪽 방향으로 너무 많이 치우쳐져 있으니 그 반대방향으로 크게 움직이지 않는한 정상적인 생각이 자리를 잡을 수 없습니다.”


장군이 종이에 서인 쪽으로 치우쳐진 종모양의 정규분포 그림을 그려서 보여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중심을 정상적인 이쪽으로 당겨오려면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최소한 그 대척점에 우리의 지향점을 만들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상식적으로는 굳이 저래야 하는가 하겠지만 이런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것으로 저들과 다름이라는 것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무너지지 않을 우리들만의 성채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계층 세대 젠더 간의 대립이 첨예하던 헬조선에서 온 장군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극우 극좌나 남혐 여혐들의 주장들을 많이 봐 왔었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그런 주장들은 너무나 쉽게 받아들여지고 그들의 신념이 되어 극한의 대립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상대편과는 다름을 만들어 무너지지 않는 사상의 성곽이 되었다.


장군이 있던 새성전교에서도, 외부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모나미 패션조차도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계시록의 내용을 실천하는 남들과는 다른 그들 만의 성전을 만드는 큰 역할을 하였다.


‘샤이 트럼프들에게는 투표라는 실천할 수단이 있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양반들의 가스라이팅에 수백년을 눌려 있던 샤이 조선 백성들을 하나로 움직이게 하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하다.’


장군이 왜 조선 백성들의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줘야 하는지를 예 들어가며 설명을 하였고 노정도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 이미 늦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관서지방과 영남지방 우군들까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전에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우리끼리 싸우다가 무너질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미륵이라고 자처하면서 나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미 금산사에서 그렇게 한 것 아니더냐?”


“그것은 그 믿음을 염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 것이고 그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조선의 모든 백성들을 아울러야 하는 것이고 정치라는 것은 그런 맹목적인 믿음을 배제하여야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사실은 그 부분도 조금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조금 안심이 되는구나.“


* * *


오졸개만에서는 물을 모두 빼내었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오면서 보니 공사가 많이 진행되고 있어 보입니다.”


장군의 말에 오졸개만과 성산 포구의 일을 도맡아 관리하고 있는 이세훈 대행수가 대답하였다.


이세훈 대행수는 전쟁의 초반에는 남해안과 서해안으로 세작들과 전쟁물자를 수송하는 일에 깊이 관여를 하였지만 어느정도 안정화가 되고 나서는 이곳에 눌러앉아 오졸개 항구를 만드는 일과 화란 상인들을 상대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구경하러 가시겠습니까?”


오졸개만 서남쪽의 조선소에서 물이 빠진 만으로 들어서니 여기 저기에 구획을 나누어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저건 뭡니까?”


장군이 가리키는 쪽에 큰 원통에 줄을 묶어 돌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하, 저건 화란에서 온 사람들이 알려준 기술인데 단단한 돌에 구멍을 뚫는 방법입니다.

저쪽은 돌이 단단하여 특별히 저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현무암이라 하면 검은색의 구멍이 숭숭 뚫린 암석을 떠올리지만 오졸개만은 조금더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한 조면암질 현무암도 많이 분포하여 일반 도구로 작업하기 쉽지 않았다.


밖으로 드러난 바위라면 정으로 구멍을 뚫어 쐐기를 박아서 부술 수 있지만 이곳은 바닥을 뚫고 들어가야 하고 조면암질 현무암은 화강암 정도의 강도를 가지고 있어 정이나 지레만으로 작업을 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장군이 화란 동인도회사(VOC)에 내어준 땅에 건물들을 짓기 위해서 화란의 기술자들이 많이 들어왔고 제주사람들도 그곳에서 일을 많이 하고 있어 이런 고충을 전해 듣고 해결책을 알려 주었다 하였다.


큰 원통은 구리 합금으로 된 것인데 바닥에 모래를 넣어주면서 좌우로 돌리면 모래가 연마제가 되어 구멍을 쉽게 만들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원래 중동지역의 채석장에서 사용하던 기술인데 그 동네에 있던 화란 동인도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통해 전수되었다.


“오호, 훌륭하군요.”


여기 저기를 다니며 일의 진척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격려한 다음 오졸개만을 가로질러 화란 상단 마을로 올라갔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화란 상단 마을을 등지고 나무 그늘 아래에 한 사내가 머리에는 갓을 쓰고 아래에는 서양식 옷을 입고 옆에 도포를 걸어놓고 앉아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 사람은 현묵자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장군이 성큼성큼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현묵자께서 어디 갔나 했더니 여기 있었군요?

날씨가 참 좋습니다.”


홍만종이 깜짝 놀라 뜨개질 거리를 의자에 내려놓고는 일어났다.


“장군님, 어서 오십시오.”


“그런데, 저것은··· 뜨개질이 아닙니까?”


“아니 이걸 알고 있습니까?

그런데 좀 전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뜨개질 말입니까?

실을 떠서 물건을 만드니 뜨개질이지요.”


“뜨개질이라··· 괜찮은 말이군요.

앞으로 그렇게 불러야 하겠습니다.”


“그나 저나 옷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이것 말입니까?

역시 장군님은 좋아할 줄 알았습니다.”


홍만종이 허리춤에서 부채를 꺼내어 촥 펴면서 한바퀴 돌며 옷맵시를 뽐내었다.


“누가 싫어하였나 봅니다.”


“노정 대감께 보여드렸더니 아주 질색을 하였습니다. 하하하”


‘홍만종이 화란문물에 빠져 있다 하더니 정말이로구나.

덕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있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었나?’


홍만종은 반계수록을 보고는 제주에 눌러 앉았는데 유형원이 육지로 올라오고 난 뒤에도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아 궁금해서 알아보았더니 화란문물에 빠져 있다 하였다.


보통은 서양의 종교나 과학기술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이 순서지만 홍만종은 특이하게 생활적인 것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이쪽에 눌러살면서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묵자께서는 아예 여기에서 살고 있는가 봅니다.”


“여기 있으면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음식도 새롭고 이 뜨개질도 그렇고 모든게 신기합니다.”


“조만간 화란으로 갈 기세입니다.”


“안그래도 화란말을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참 아호도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는 현묵자 말고 드 돈커 쯔뷔예헐(De Donker Zwijger)로 불러 주십시오.”


김현백이 그 말을 알아듣고 말했다.


“드 쯔뷔예헐은 침묵공이 아닙니까?

그러면 드 돈커 쯔뷔예헐은 어둠의 침묵공이라··· 현묵자(玄默子)를 화란어로 한 것 아닙니까?”


“하하하, 그렇지요.”


“드 돈커 쯔뷔···. 따라하기도 힘듭니다.

차라리 바다양자에 덕덕자를 써서 양덕자(洋德子)로 하면 어떻습니까?”


장군의 말에 홍만종이 눈을 크게 떴다.


“오호, 바다양에 덕덕이라··· 바다를 넘어서 덕업을 쌓는다는 뜻입니까?

그것도 좋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조선 최초의 서양 오덕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장군님 벌써 여기 와 있으셨군요.”


잠시 여러 이야기를 하며 웃고 떠드는 사이에 프랑수와가 왔다.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만사 제쳐두고 달려왔습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이세훈 대행수를 통해서 들었는데 이미 쌀 십만석을 모두 가져왔다고요?”


“보내주신 일꾼들 덕분에 한꺼번에 수십척을 움직일 수 있으니 일이 수월하였습니다.”


“남는 것 별로 없는 일인데 그 정도라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곳에 새로운 무역 거점이 생겼으니 그것이 남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화란 상단 마을로 들어와 새로 생긴 건물의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보내주신 유리 장인 말입니다.”


“네, 혹시 무슨 사고라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들어보니 그 유리장인이 가톨릭의 선교사였습니다.

혹시 알고 있었습니까?”


“네, 알고 있었습니다만···”


“화란은 신교를 믿고 있으니 서로 경쟁관계가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가톨릭 쪽 사람들을 보내 주신 것입니까?”


“아하,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저희 동인도회사는 이윤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곳입니다.

해서 종교가 다른 곳은 물론 네덜란드의 적국과도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유리장인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마침 그자가 적임자였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 선교사가 속한 예수회는 선교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조선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조선에 발을 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직접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이렇게 도움을 주면 나중에 우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그 이유가 더 와 닿는군요.”


“제가 사전에 언질을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하하하, 어쨌든 우리는 유리 장인을 구했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마카오에 가야 할 일이 있다고 하니 이번에 내려가실 때 마카오로 데려다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런데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소유가 아닙니까?

그들과 교류를 많이 하십니까?”


“포르투갈은 적국이나 마찬가지이니 거의 하지는 않습니다만,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이윤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화란 남쪽의 프랑스령 플란데런 출신이라 그쪽의 예수회 사람들과도 안면이 좀 있습니다.”


‘어쩐지 이름이 프랑스스럽더라니...’


“그 사람들에게 조선에 대해서 잘 말해 주십시오.”


“물론입니다.

그리고 지난번에 말씀하신 차관과 배 구매는 제주가 전쟁을 승리하여 조정을 장악하고 난 다음이면 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 열척이라면 온즈믄(십만)길더면 충분할 것인데 두온즈믄(이십만)길더나 필요합니까?”


‘역시 전쟁이 이길 가능성이 보이니 적극적으로 나서려는가 보군.’


“배만 있으면 뭐합니까?

육지에 포구도 만들고 요새도 지어야 배를 댈 수 있을 것인데 그게 다 돈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보니 기술자들도 많이 필요한데 나중에 이곳 일꾼들을 고용해서 쓸 수 있을 까요?”


“물론입니다. 마을 공사가 끝나면 원하는 자들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국에도 사람들을 모집해 달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먼 곳이라 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조선을 소개한 헨드릭 하멜의 책이 유행하고 있으니 조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탄압을 피해 올라오는 위그노들이 많이 있으니 쓸만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기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절대왕정 시기로 낭트칙령 폐지로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들의 마지막 대탈출이 있기까지는 한참 남았지만 내부적으로 탄압이 계속되고 있어 가까운 네덜란드로 위그노들이 많이 유입되고 있었다.


“좋은 소식입니다.

그들 중에 인쇄 기술자들도 좀 있겠지요?”


“안그래도 제가 좀 알아보았는데 인쇄용 활자를 만들려면 인쇄용 납이 필요하다 합니다.

이번에 바타비야(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있는 화란 동인도 회사 본부)로 내려가면 인쇄용 납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납활자는 우리도 실험을 해 봤는데 잘 안되던데···’


“납으로 인쇄를 한다고요? 납은 물러서 몇 번 인쇄를 하지 못할 텐데요?”


“일반 납이 아니고 인쇄용 납이 따로 있다합니다.”


“아하, 그렇군요.

꼭 구입할 수 있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활자를 만든 기술자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바타비야로 내려갈 때 우리 사람들 몇 명을 데리고 가 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갈 겁니까?”


“좀 전에 본 홍만종이라는 자와 배 만드는 장인들을 좀 데려가 주십시오.”


“홍만종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배 만드는 장인이라면···”


“이미 몇 명은 이 마을 공사현장에서 목수로 일하고 있을 것입니다.

바타비야에 배를 수리하는 곳이 있다 들었습니다.

그곳을 견학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영을 접수한 뒤 그곳에서 배를 만들던 경험 많은 장인들을 오졸개의 조선소에 보내었는데 그곳에서 화란 배에도 들어가보고 피터등에게 조언을 듣는 등 연구를 한 뒤 올라와 장군에게 말했다.


“화란배는 조선의 배와 그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장군이 놀라서 되물었다.


“네? 조선의 배와 구조가 다르지 않다고요?”


“네, 화란의 배는 바닥이 평평한 조선의 배와 근본 구조가 같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나무 다루는 기술을 익힌다면 지금 쌀을 나르고 있는 돛 세개짜리 배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저들의 배도 평저선이라는 소리인가?

어쩐지 돛 두개짜리 배를 쉽게 만들어 내더라니···’


네덜란드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수심이 얕아서 이웃나라들과는 다르게 첨저선을 운용하기 여의치 않아 평저선을 기본으로 한 배를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영국이나 스페인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비용으로 배를 건조할 수 있게 하였고 배의 무게도 훨씬 가벼워 빠른 속도를 낼 수 있게 했기에 대항해시대 초기에 해상무역을 독점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돛 세개짜리 화란 배를 만들 수 있다면 지금으로서는 감지덕지지.

당장 영국이나 스페인이랑 맞짱뜰 필요도 없으니 첨저선은 천천히 연구해도 충분하다.’


300톤급 돛 세개짜리 배를 수십척을 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젊은 배 장인들에게 화란어를 가르치는 작업에 착수하였고 이제 바타비야 유학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배만드는 용어 정도만 알아듣는 수준이지만 우리 장인들이 눈썰미가 있으니···’


자원하나 없는 나라에서 기술만으로 세계를 제패하던 유전자를 믿고 싶어지는 장군이었다.


* * *


“숯을 더 높여 쌓아야 합니다.

도가니가 위쪽까지 충분히 달구어져야 온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장군이 프랑수와를 만나고 있는 사이에 항파두리의 유리 공방에서는 마시모가 작업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풍구를 더 세게 돌리세요.”


원통형으로 된 유리가마의 중간의 굴뚝으로 연기와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아래쪽에는 풍구와 풀무가 최대로 투입되어 도가니 주위에 쌓인 숯더미에 연신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도가니 안에 벌겋게 달아오른 유리를 바라보던 마시모가 말했다.


“지금 저 유리 색깔을 잘 기억해 두세요.

이제 제가 유리를 떠 내겠습니다.”


마시모가 긴 쇠파이프에 녹은 유리를 감아서 꺼낸 다음 입으로 불기 시작했다.


후우우우~


우와아아!


유리가 크게 부풀어 오르자 주위에 있던 일꾼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자, 잠시 쉬었다가 이번에는 여러분들이 직접해 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마시모가 밖으로 나와 잠시 숨을 돌렸다.


“날이 더운데 유리가마의 열기까지 더해지니 숨이 턱턱 막힙니다.”


통역을 하고 있는 프레드릭의 말에 마시모가 대답했다.


“저야 어릴 때부터 해와서 그러려니 하는데···

잘못하면 쓰러질 수 있으니 물을 많이 마셔두십시오.”


마시모는 화란어를 못해서 이시기 유럽의 만국공용어인 프랑스어로 말했고 그것을 프레드릭이 화란어로 통역하면 김현백이 제주어나 조선어로 통역을 했었는데 이날은 김현백이 없어 프레드릭이 조선어로 직접 통역을 하고 있었다.


“며칠 내로 떠나야 하는데 그사이에 기술 전수가 되겠습니까?”


“한 며칠 열심히 가르치면 제대로 하는 자가 한두명은 나올 겁니다.”


“유리 병을 만드는 것은 나중에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침 좋은 숯도 준비되었고··· 가기 전에 유리병을 꼭 만들게 해보고 싶어지는군요.”


프레드릭의 말 대로 원래 마시모의 계획은 유리를 제조하는 것까지만 이었다.


괜히 밑천을 다 내보이면 얻는 것 없이 쫓겨날 수 있으니 유리 병 제조 기술은 왕을 알현할 기회를 얻은 뒤에나 전수할 생각이었다.


마시모가 멀리 한라산을 바라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세상을 구원하는 미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미개한 이교도들의 미신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유리공방의 지붕사이로 들어오는 환상적인 빛줄기를 배경으로 나는 세상의 빛이라 말하는 장군의 모습을 본 뒤로 생각이 바뀌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라니··· 이것은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를 하심이라.’


항파두리에서도 또 다른 의미의 양덕자(洋德子)가 탄생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글이 들어있는 USB가 고장나는 바람에 올리는게 늦어 졌습니다. 

자꾸 글을 올리는 시간이 늦어지고 있어 그냥 자유연재로 해 놓으려 합니다.

자유연재로 해 놓고 일주일에 한편씩 올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주기를 자유연재로 바꾸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올립니다. 24.04.12 17 0 -
96 한양 가는 길목 24.04.22 39 1 19쪽
» 양덕자(洋德子) 24.04.12 57 2 20쪽
94 예수회 선교사 24.04.02 66 3 18쪽
93 제1차 교육자 대회 24.04.02 61 0 24쪽
92 송시열과 독대하다 24.03.12 118 1 21쪽
91 그녀는 예뻤다 +2 24.03.03 107 2 16쪽
90 미 투 24.02.22 107 2 19쪽
89 월미도 해전 2 24.02.15 109 2 20쪽
88 월미도 해전 1 24.02.09 120 2 22쪽
87 거북선이 출동하면 어떨까? 24.01.28 137 3 22쪽
86 척산 전투(feat.신기전) 2 24.01.22 133 2 18쪽
85 척산 전투(feat.신기전) 1 24.01.18 144 1 21쪽
84 화천대유(火天大有) 24.01.08 153 4 21쪽
83 이사부의 사자 24.01.01 149 4 21쪽
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8 3 21쪽
80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10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78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90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8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7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4 13 14쪽
74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1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6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09 13 1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