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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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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4.22 10:13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110,762
추천수 :
2,324
글자수 :
792,371

작성
23.12.1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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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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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22쪽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DUMMY

영남 유림들이 상주 공격을 시작하면 바로 보은 근처까지 진격한 뒤 속리산 산자락에 숨어 있을 송시열을 잡아볼 요량이었던 장군으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런 십장생들이!’


장군의 마음의 소리가 입 밖에 나오려는 순간 운부가 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왜 군사를 물렸다더냐?”


“이유를 물어도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공성준비가 더 필요하여 며칠 뒤에 공격할 것이라고만 하였습니다.”


“그럴 것이면 상주성 앞까지는 왜 갔다더냐?”


“급히 알리러 오느라 알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제 아침까지는 당장이라도 성을 함락시킬 것처럼 하고서는 상주성 오백보 앞에 진까지 쳤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들끼리 비밀 회의를 하더니 군사를 물렸습니다.”


원래 상주를 공략하려던 영남 남인들이 장군이 흉탄에 맞아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멈추었었다.


이번에 장군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에 혁명군이 회덕을 공략하는 날 동시에 상주를 공략하기로 하였고 상주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는데 다시 멈추었다고 알려 온 것이었다.


‘벌써부터 배신을 하려는 것인가? 그런데 왜?’


이전 미래를 보았을 때 영남 남인들이 배신을 한 것을 보긴 하였지만 장군이 살아 돌아와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배신의 조짐이 보이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송시열을 벌써 잡은 것인가? 상주를 함락시키기도 전에? 그럴리가···.’


장군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도무지 왜 영남 남인들이 공격을 멈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 *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그럴 듯한 의견을 얻지 못하고 다음날 저녁이 되어 제장들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있었다.


“2연대는 회덕 동쪽의 산성들을 모두 정리하였고 남쪽으로는 옥천까지 이어지는 방어진지를 구축완료 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북쪽으로 진군하여 금강 아래까지 정리를 완료했습니다.”


이집과 이광성이 전과를 설명하였고 운부가 3연대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3연대는 영남 남인들이 배신을 할 수도 있어 군 전체를 남동쪽으로 내려 보내었는데 영동군과 가야산 고령으로 이어지는 방어선을 잘 구축하였다 합니다.

내일쯤이면 신병들이 가야산과 고령으로 충원이 되면 2개 대대를 빼서 다른 곳을 지원 보낼 수 있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마자 움직이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상주만 점령이 되었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어찌된 것인지 소식이 없습니까?”


장군이 상주 쪽 상황을 묻자 운부가 대답하였다.


“알아본 바로는 영남 우도 유림과 좌도 남인들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는 것 같다 합니다.

당취들이 백방으로 알아보려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 참 답답하군요.

도무지 공격을 중단시킨 이유를 모르니....”


이광성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 놈들은 매일 책상 앞에서 글이 나 읽고 하는 놈들이니 말이 통할리가 있겠습니까?

언젠가 배신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누군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선비 정신이 어쩌고 하더니 약조를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할 수 있습니까?”


공격이 멈추어진 내막을 모르는 가운데 영남 남인들에 대한 성토가 계속 이어지는 중에 군관이 들어와 보고하였다.


“지금 막 장시규 장군께서 도착하였습니다.”


서해 수군을 맡고 있던 장시규가 왔다는 소식에 회의를 잠시 멈추고 들어오게 하였다.


“장군께서 깨어 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걱정해주신 덕분입니다.”


서해의 수군은 태안반도의 안흥진과 소근진을 점령한 다음 안흥진과 인근 포구에 판옥전선 수십척을 정박시키고 북쪽의 덕적도를 전진기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덕적도에 기지를 건설하면 강화도가 지척이라 장군이 자못 궁금하여 물었다.


“덕적도에 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섬에 예전에 있던 고성이 있어 진지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물길이 거세어 배를 오가는 것에 어려움이 많고, 결정적으로 큰 배를 정박할만한 포구가 없습니다.”


‘예전에 백제를 치러 소정방이 수군을 몰고 왔을 때 덕적도로 왔다더니 거짓이었던가?

저 말 대로면 수만 대군은 커녕 수천만 되어도 힘들겠는데...’


국사시간에 배웠던 지식만 믿고 덕적도에 수군 기지를 만드는 것에 적극적으로 한 표를 던졌던 장군이라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바다가 그렇게 험합니까?”


“밀물과 썰물이 드나들 때 마다 주변 바다가 들끓는데다 암초가 곳곳에 많아 물길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장시규의 대답에 장군이 걱정스레 물었다.


“배가 좌초되거나 피해를 입은 것은 없습니까?”


“물길을 확인하던 어선 두 척을 잃었는데 다행히 사람들은 모두 구출하였습니다.”


운부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인명피해가 없었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강화도 공략을 위한 항구의 확보가 중요한데, 아무래도 태안반도를 돌아서 기지를 만들면서 올라가야 하겠군요.

그러려면 태안과 서산 읍성을 모두 점령하면서 가야 할 터이니 시간이 많이 걸리겠습니다.”


“덕적도 남서쪽 오십리에 울도라는 섬이 있는데 주변의 섬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어 배를 여러 척 정박할 수 있으니 교두보로 활용이 가능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반나절이면 덕적도에 닿을 수 있으니 그곳에 포구를 만들면 덕적진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장시규가 지도에 위치를 표시하며 말하자 장군과 제장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호, 그것참 다행한 일입니다.

위치를 보니 북쪽으로 오가는 뱃길의 중간에 있어 도움이 많이 되겠군요.”


“네, 울도에 포구가 완성이 되면 먼저 백령도를 공략하여 북쪽 뱃길을 확보할 예정입니다.

강화도 공략은 인근 물길에 익숙해져야 하니 좀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장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급할 것 없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시지요.

게다가 백령도를 점령하면 평안도 안주까지 가는데 지금처럼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어지겠군요.

그런데 백령도까지는 뱃길이 멀어 많은 군사를 움직이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덕적도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자, 경기도와 황해도 등지에 있는 수군영의 배들을 모두 징발하여 강화도로 옮겨간 덕분에 해안 쪽 기지들이 모두 비었습니다.

해서 공략하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광성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그 놈들이 강화도로 바로 쳐들어올까 겁을 먹었군요.

내친김에 백령도를 넘어 초도까지 점령하면 황해도를 공략할 길이 열리는 셈이니 좋은 소식입니다.”


운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러면 평안도에 이어 또 다른 거점이 생기겠군요.

그런데 평안도 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안주성을 점령한 뒤로 해안 지역의 진성들을 공략하며 점령하고 있고 자모산성 인근에서 두어 번 공격이 있었는데 잘 막아내었다 합니다.”


운부의 말에 우정치가 대답하였는데 우정치는 서해를 오가며 곳곳에 보급을 하는 일을 책임지고 있었고 안흥진 쪽에 있다가 이번에 장시규와 함께 왔다.


“추가로 군사를 지원할 필요는 없다 합니까?”


“안주에서 군사들이 많이 보충이 되었고 인근의 착호군들이며 포수들이 속속 합류하여 군세는 오히려 관군을 압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함경도에서도 기근과 역병으로 백성들이 많이 합류하고 있다하니 하루 빨리 많은 물자를 보낼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렇겠군요. 그러려면 황해도가 빨리 확보되어야 하겠군요. 황해도에 들어간 당취들에게 좋은 소식이 없습니까?”


“고을마다 반란이 일어날까 경계가 삼엄하여 활동이 쉽지 않는가 봅니다.

또한, 황해도가 무격들의 입지가 강하여 그들을 설득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합니다.”


“황해도는 그런 문제가 있었군요.”


“하지만 이제 농사철이 시작되어 움직이기 쉬워졌을 것이니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게만 되면 우리가 남쪽과 북쪽에서 포위를 하는 격이니 저놈들이 똥줄이 타겠군요.”


“맞는 말입니다.”


“하하하”


제장들이 웃으며 흡족해하는 중에 청주성과 상주쪽에 보냈던 세작들이 돌아와서 확인하러 갔던 진모리가 들어왔다.


“장군님, 지금 급히 확인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일 입니까?”


“지금 전라 순무사 구문치의 신병 처리 문제로 청주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왔고, 상주에서도 벽운자가 왔습니다. “


“잘 되었군요. 이쪽으로 들이지 그랬습니까?”


“그것이··· 약간···”


진모리가 선뜻 말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자 장군이 재차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도착한 사람들은 바로 들이겠습니다.

그전에 먼저 이것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청주 곳곳에 이런 괘서가 붙어있다 합니다.”


진모리가 괘서를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아니, 이런!”


여기 저기서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괘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었다.


[역도의 수괴 고장곤은 겉으로는 세종의 치세로 돌아간다 하며 조선을 위한다고 있으나 그 실상은 그의 외조부로부터 역적의 피를 물려받은 자다.


역적으로 사사된 회은군 이덕인의 외손이 고장곤이고 이덕인은 역적 심기원 등과 함께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다가 잡혀서 제주도에서 사사 되었다.


또한 그 딸은 병자호란때 강도(江都)에서 청나라로 끌려가 청나라 한(汗)의 시녀로 있었고 나중에 공신 피파이(皮牌)의 첩으로 살았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으니 정절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녀자들도 많은데 어찌 왕실의 여인으로 정결한 지조를 지키는 모범을 보이지 못하였단 말인가?


그 이후 조정에서 은혜를 베풀어 은전을 풀어 속환을 하게 만들어 주었건만, 은혜를 갚지 못할 망정 다시 제주로 숨어들어가 역적 민회인 강씨의 소생들을 청나라로 데려가려고 하였다.


그 회은군의 딸이 제주도에 숨어살면서 낳은 자식이 고장곤인 즉, 3대를 이어가며 역적질을 하고 있으며 이제 이 나라를 전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실로 고장곤은 정절을 잃은 환향녀의 더러운 피가 흐르는 자인 것이고 삼대를 이은 역적의 피가 흐르는 금수만도 못한 자인데 어찌 절의를 아는 사대부로서 이런 자의 놀음에 놀아나고 있는 것인가?


조선의 모든 유림들과 백성들은 즉시 떨쳐 일어나 역도들에 맞서서 조선의 종묘와 사직을 지켜라!]


한참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이것을 어디서 얻었다 합니까?”


운부가 물었고 진모리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청주 곳곳에 붙여져 있었는데 이것 한 장 겨우 구했다 했습니다.

이것 말고도 한글로 된 것도 있고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 하다 합니다.”


운부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렇다면 이미 그 전에 내용이 퍼졌다는 것인데··· 상주에서 영남 남인들이 물러난 것도 이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진모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도 유림인 무위자 곽세건도 그런 말을 했다 합니다.

지금쯤 벽운자가 들어올 것인데···”


진모리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벽운자가 들어왔다.


이번에 유림군이 공격을 멈춘 이유를 알아내고자 경상우도 쪽을 안정화시키는 일을 하고 있던 벽운자를 급히 상주로 보냈었다.


“우도 유림 곽세건의 말에 의하면 근기 남인들이 그날 아침에 사람을 보내어 상주 진격을 멈추어 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면서 지금 보고 있으신 것과 같은 내용의 글을 보냈고 지금 우도 유림과 좌도 유림의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군사를 일단 뒤로 물렸다 합니다.”


벽운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운부가 물었다.


“그래서 어느 쪽이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것입니까? 좌도 유림일 것 같기는 합니다만···”


“맞습니다. 일부는 아닌 자들이 있지만 좌도 유림 대부분이 그렇다 합니다.

곽세건이 우도 군사들 만으로 상주를 점령하겠다고 하면서 강경하게 나가고 있지만 설득이 쉽지 않은가 봅니다.”


“그런데 누가 저 내용을 알아낸 것입니까? 제주도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것 아닙니까?”


“송시열이 알아 왔다 합니다. 제주도에 있던 사람이 와서 알려 주었다 합니다.”


진모리가 주먹을 움켜쥐고 말했다.


“분명 문영후 그자일 것입니다. 예전에 제주도를 공격하게 만든 것도 그 놈의 짓이 아니었습니까?”


이광성도 양 주먹을 움켜쥐고 성토하였다.


“저런 의리를 모르는 놈들이 있습니까?!

서둘러 청주로 진격하여 의리를 모르는 놈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어야 할 것이오!“


이집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제 막 이곳을 점령하였으니 바로 진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서둘러 방을 붙이고 전단을 살포하여 저들의 논리를 깨뜨려야 합니다.

청나라에서 속환한 사람들에 대한 문제는 이미 왕명으로 엄단을 한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장시규가 덧붙였다.


“맞습니다. 회은군의 일 또한 심기원이란 자가 추대만 한 것이지 회은군이 직접 역모에 가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 아닙니까?

더구나 사대부라는 자들이 이렇게 전쟁의 책임을 스스로 지지를 못하고 아녀자들에게 그 책임을 넘길 생각을 하다니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어 저들의 질타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일까지 이용하려 한다며 성토를 하기 시작하여 점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의견이 오갔다.


한참을 뒤에서 듣고만 있던 장군이 말했다.


“저는 이번에는 무대응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네? 어찌···”


“이번 건은 명분적으로 저 쪽에게 약점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백성들의 의견이 둘로 쪼개질 수 있습니다.

지금 영남 남인들 조차도 어찌해야 할 지 몰라 갈팡질팡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일은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일들에 잊혀지는 것이고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계속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저놈들의 말에 대응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하루 빨리 공산성을 깨뜨리고 도성으로 진격해야 합니다.”


장군이 전생에서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본 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새성전교에 대한 음해(?)가 많았지만 얼마 지나면 관심이 없어지는 것을 수없이 보았고 오히려 괜히 몰려가서 대응을 하기 시작하면 방송을 타게 되고 점점 일이 커지기 일쑤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몇 년 전에 있던 예송논쟁이 이런 민감한 사안이 커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였고 서인과 남인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되어버렸지 않은가?


운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스레 물었다.


“저도 동의를 하는 바입니다.

어떨 때는 침묵이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장군님의 가족과 관련된 일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장군이 약간 비장한 투로 대답하였다.


“괜찮습니다. 이 나라를 위한 큰일에 비하면 저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들 장군의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운부가 말했다.


“그래도 내부적으로는 단속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서둘러 곳곳에 사람들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 * *


“어찌 내 허락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이더냐?!”


청주 밖의 한 서당 건물에서 송시열이 노기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앞에는 송시열의 문인들을 비롯하여 젊은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것이··· 이 사안은 고장군에게 아주 불리한 건이 아닙니까?

널리 알려서 고장군이 환향녀의 아들이며 역적의 자손이라는 것을 퍼뜨려야 하지 않습니까?”


제자 권상하가 고개를 들고 말하자 송시열이 혀를 찼다.


“내가 그걸 몰라서 그동안 조용히 있었던 줄 알았더냐?

그런데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이런 사단을 벌여?!”


“그렇지만 이미 충주의 남인들과 영남의 남인들이 모두 알고 있는 바 아닙니까?”


“이 사안은 영남 남인들을 분열시켜 북쪽으로 못 올라오게 만드는데 쓸 용도였다.

그런데 이걸 곳곳에 써 붙여서 온 나라 사람들이 다 알게 만들면 어쩌자는 것이냐?!”


권상하가 움찔하는 사이 송시열의 외손자 윤주교가 말했다.


“무려 역적의 자손이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역적의 자손이 또 역적질을 한다면 백성들도 등을 돌릴 것입니다.”


송시열이 외손자를 탐탁치 않게 보고 있자 옆에 있던 문영후가 나서서 옹호했다.


“맞는 말입니다. 고장군 패거리들도 제주에서 이 사실을 쉬쉬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사안이었다면 널리 알리지 않았겠습니까?”


“이것 보시오, 문인경. 내가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 몇 번을 말했소?

그대만 조용히 있었으면 아무도 자세한 내용을 몰랐을 것을 일을 이렇게 키워 놓은 것이오?”


문영후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어차피 영남 남인들이 알게 되었으니 금방 모두 알게 될 것 아닙니까?

그럴 거라면 우리 서인들이 먼저 널리 알려서 그 공을 우리가 가져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논산 쪽에서 올라온 유생 윤택이 말했다.


“맞습니다. 그리고 문인경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우리가 자초지종을 알려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또한,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실절한 여인을 취하여 배필로 삼으면 벌써 자신이 실절한 것이라 하였으니 실절한 환향녀의 자식인 고장군의 일이니 근거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기축봉사에서 스승님께서도···”


송시열이 호통을 쳤다.


“네놈이 이 스승을 모욕하는 것이냐? 내가 이런 머저리들을 데리고···

이 내용은 남인들 입에서부터 먼저 나와서 퍼져 나갔으면 아주 좋았던 사안이었다.

그리고 세간에 말들이 어지러이 오가고 있을 때 내가 나서서 저들과 협상에 나서고자 하였거늘··· 이렇게 일을 틀어놔?!”


송시열이 말하다 말고 골치가 아픈지 양 미간을 짚었다.


“아니다. 내가 말을 말지···

모두들 조용히 자숙들을 하고 있거라!”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외손자 윤주교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 급히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채비를 해 놓거라.

문인경도 같이 갈 것이니 채비하고 기다리시오.”


* * *


“저는 더 이상 이곳에 있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목사 영감도 계시고 하여 여러가지 일들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더이상 그럴 수가 없겠습니다.”


최석정과 함께 왔던 박두세의 말에 광주목사 오두인이 대답했다.


“스스로 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있어서 이곳이 이만큼 질서가 잡히지 않았는가?

우리가 없어지면 전라도의 사대부들은 누가 대변한단 말인가?”


“하지만 유림들이 저렇게 성문 밖에 앉아서 시위를 하면서 우리가 지나가면 개 돼지 보듯이 하니 너무 힘듭니다.”


이미 혁명군 본부가 있는 광주에도 고장군에 대한 소문이 전해진 것인지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서인 유림들이 들고 일어나 광주읍성 앞에 몰려와서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도 여기 저기서 소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광주목사 오두인의 설득으로 혁명군에 협조해서 여러가지 사무를 처리해주고 있던 젊은 선비들도 많이 동요하고 있었고, 광주목사 오두인도 그걸 알기에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매일 그 앞을 지나가야 하는 그대들이니 심적으로 많이 힘들겠지.

내 충분히 이해하네.”


광주목사 오두인도 혁명군에 협조해 조건부로 인(印)을 넘겼지만 역적의 후손에 환향녀 문제까지 걸려 있으니 꺼림직 함을 버릴 수는 없던 터였지만 그렇다고 젊은 유림들이 동요하는 것을 손 놓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네 생각은 그러하다 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그러한가?

이 사안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도 들어 보도록 하세.”


오두인의 말에 한 유생이 나섰다.


“외조부인 회은군 이덕인의 일은 실제로 역모에 참여한 것이 아니고 심기원 일당이 옹립하려고 하였던 것뿐이니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다른 유생이 말했다.


“하지만 그 어미에 대한 것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장선징의 아들 장훤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실행(失行)한 자의 자손은 사판(仕版 - 벼슬아치의 명부)에 끼일 수 없다는 것은 국법에 분명하게 있지 않습니까?”


이에 박두세가 반대 의견을 말했다.


“회절강(回節江)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조를 잃은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고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한 조정의 잘못이니 그 강에서 몸을 씻음으로 절개를 회복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미 왕명으로 선포한 것을 무시하고 실행(失行)이라 하는 것은 오히려 불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참 동안 유생들이 말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피력했다.


“명곡(明谷 최석정의 호),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오두인이 한 켠에서 말없이 홀로 조용히 있는 최석정을 보고 묻자 최석정이 입을 열었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성문 밖을 보면 전라도의 유생들이 몰려와서 고함을 치며 고장군을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누구 하나 하지말라고 제지하거나 쫓아내려는 자들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이곳에 있은 지 한참이 지났건만 사람들은 여전히 질서 정연하며 도둑질이나 남을 해하려는 자들을 본 적이 없으며 오히려 남을 도와주려 하고 인정이 넘칩니다.

허나 조선의 유림들은 그들의 수장인 고장군을 역도라 비난하며 환향녀의 자식이라 실절했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이란 말입니까?

어찌 보면 말로만 백성을 위한다고 하는 유림들이 실절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장군의 의도를 찰떡 같이 곡해하는 최석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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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척산 전투(feat.신기전) 1 24.01.18 144 1 21쪽
84 화천대유(火天大有) 24.01.08 153 4 21쪽
83 이사부의 사자 24.01.01 149 4 21쪽
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8 3 21쪽
»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10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78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90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8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7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4 13 14쪽
74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1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6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09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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