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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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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4.2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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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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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제1차 교육자 대회

DUMMY

장군이 송시열을 남해의 절도로 압송하게 하고 광주로 내려왔다.


제일 먼저 광주읍성 동북쪽의 산자락에 고홍진이 옥토망월(玉兎望月)의 형국이라며 점지해준 자리에 조성된 공동묘지를 방문하여 제를 올려 영혼들을 위로한 다음 광주 읍성으로 들어섰다.


“장군님 어서 오십시오.”


“고생이 많습니다. “


유형원이 전주로 올라간 뒤 이곳은 최석정을 비롯한 젊은 유림들이 이끌고 있었다.


전주는 유형원의 본가인 부안이 근처에 있기도 하여 유형원이 데리고 있던 제자들 그리고 가노들만 데리고 올라갔고 부족한 인력은 장군이 부활한 금산사를 비롯한 절에서 온 사람들과 장군이 역병을 다스렸던 홍산 인근의 사람들 등으로 충원하였다.


광주는 체계가 많이 잡혔지만 육지로 올라온 뒤 처음으로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였고, 앞으로 이쪽을 중심으로 인재들을 많이 육성할 것이라 젊은 사람들이 남아서 교육 등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이제 보리가 수확되고 있어 어려움은 많이 없습니다. “


“이번에 새로 신병 일천이 졸업하고 칠백여명이 입소합니다.

농사철이 되어 신병이 계속 줄고 있습니다.”


“인재를 발굴이 어느정도 결실이 보여 작은 마을에도 사람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석정 등에게 재정문제, 군사, 교육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는데 이미 유형원에게 들은 것도 있고 편지로 알고 있는 사실들도 있었지만 어떤 것은 새로운 내용도 있었다.


“송광사에서 스님들이 올라와서 목판 만드는 것을 가르쳐서 광주에서도 목판 인쇄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문제는 목판을 만들 재료 수급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뭐 그래도 기초 교재 인쇄 정도는 가능 하겠지만···”


목판을 인쇄하려면 적당히 마른 나무를 켜서 나무판을 만들어 바닷물에 오래 담가 둬야 글자를 새기기도 쉽고 나무 결이 뒤틀리지 않는데 그 과정에 시간이 좀 필요하였다.


이미 반계수록 인쇄와 선전물 인쇄를 하기 위해서 있던 목판을 많이 가져다 써서 남은 분량이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절에서 사용할 것까지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활자 인쇄가 빨리 되어야 하겠군요.”


장군의 말에 최석정이 대답했다.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시켜서 활자를 만들어보게 했는데 크기를 줄이는 것이 쉽지 않는가 봅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하나도 없군.’


“제주에도 시켜 놓았으니 이번에 가서 진척이 있는지 확인해봐야 겠습니다.”


제주에도 주물을 다루던 사람들을 데려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것을 연구시키고 있었지만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한자는 뜻 글자라 글자 크기가 좀 커도 되지만 한글은 글자 크기가 작아야 하는데 크기를 줄이자 모서리가 뭉개지는 등 기술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한양에 올라가면 주자소의 장인들이 있을 터이니 그들에게 만들게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세종대 이후로 한글로 된 책을 많이 인쇄하지 않았으니 글자크기를 줄일 필요가 없어 기술발전이 없었겠지.

잘 안되면 음절을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해서 인쇄를 해야 하려나···’


“여기 있는 장인들도 절간에서 주물 작업을 많이 했던 자들이니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군요.

어쨌든 화란 상인에게 기술자들을 구해달라고 부탁해 놨으니 뭔가 방안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종이 수급은 좀 나아졌습니까?”


이번에는 박두세가 대답하였다.


“이제 닥나무가 물이 올라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전라도 전체에 제대로 교육이 시행되려면 상당히 부족할 것입니다. “


“허긴 붓으로 글씨를 쓰니 종이 낭비가 심해서 쉽지 않겠군요.”


“네, 더하기 빼기 연습은 가능하면 땅에다 작대기로 그리거나 산가지로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빈 공책은 필요하니까요.”


“빨리 새로운 필기구를 만들어야 겠군요.”


‘연필이나 펜을 써야 하려나···

그럴려면 종이가 반들반들해야 할텐데···

돌가루를 입히면 된다고 했었던가.

이것도 화란 상인들이 좀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갈 길이 아주 멀구나.’


교육과 관련한 것들을 점검한 후 농업에 대한 것도 점검하였다.


“혹시 남만에서 새로 가져온 작물들의 작황은 어떻습니까?”


박두세가 대답하였다.


“강변의 모래땅에 심은 땅콩은 잘 자라고 있고, 감자는 꽃이 피면 따주라고 해서 따주고 있습니다.”


“고구마는 좀 어떻습니까?”


“고구마는 막 줄기가 서너개가 뻗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장군이 곳곳에서 모은 작물들을 시험 재배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제주와 강진 그리고 광주읍성 인근에서 재배지를 만들어 두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사에는 일가견이 있군.

손바닥만한 땅덩이만 있으면 뭐라도 심고 보는 민족이니 이정도야 쉬운가 본데···’


장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박두세가 계속 말했다.


“그리고 달포 전에 광주읍성 밖에 많이 심은 남만초(南蠻椒)가 아주 잘 자라고 있습니다.

벌써 꽃도 피고 작은 열매가 달린 것도 있습니다.”


“오호, 먼저 핀 꽃이나 열매는 따주고 재배를 한번 해보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따지 않고 재배를 한 것과 작황을 비교를 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해 봐야 겠습니다.”


장군의 옆에 있던 진모리가 물었다.


“그런데 그 남만초라는 것이 고초(苦椒)를 말하는 것 아닙니까?”


박두세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모리가 계속 말했다.


“이번에 장군님이 아주 작정을 하신 건가 봅니다.

관군들이 아주 혼쭐이 나겠습니다.”


진모리는 원래 신병훈련 관련한 것을 점검하려고 장군과 내려왔다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쳐서 지겨워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는데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나서자 다들 무슨 이야기 인가 의아해하였고 진모리가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저놈들이 남한산성에 틀어박혀서 농성을 할 것 아닙니까?

남한산성을 산세가 험해 공략이 쉽지 않다 들었습니다.

해서 우리가 성벽 한 곳을 점령하고 바람을 등지고 저 고초가루를 날리면 저놈들이 눈을 못 뜰 것이니 그때 들이치려 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

근데 이건 먹으려고 많이 재배 하라고 한 것인데···”


“아니 저 남만초는 독초가 아닙니까?

그것 먹고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장군 덕분에 담배를 끊어야 했던 박두세가 진모리의 말을 듣고는 물어왔다.


“듣다 보니 갑자기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남령초(南靈草)는 끊으라고 하고 남만초는 먹으라고 하니 뭐가 맞는 것입니까?”


원래 담배 좀 태우던 최석정도 갑자기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것참 흥미롭습니다.

글자 한 자차이로 장군님께 이렇게 다른 대접을 받다니요.”


‘이것들이 그동안 담배 끊느라고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본데···

내막을 다 알고 있는 최석정까지 일부러 저러는 것을 보면···

이럴 때에는 정공법으로 가야지.’


“남만초 즉, 고추라는 것은 남쪽의 따뜻한 지방에서 유래한 여러해살이 풀로서···”


그날 장군이 흡연의 유해성과 고추의 좋은 점에 대해서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었다.


* * *


그날 밤, 장군이 설동백을 만났다.


장군이 그동안 노력을 하였지만 이시기의 조선은 여자가 일선에 쉽게 나서지는 못하는 분위기라 저녁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많았소.

앞으로는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오.”


말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설동백을 안아주며 장군이 말했다.


장군이 쓰러 졌을 때 전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사람들의 이목때문에 올라가지 못하고 홀로 밤새 정화수를 떠놓고 밤새 빌고 있던 모습을 환영속에서 보았고 그 이후로도 혼자서 힘든 시기를 이겨내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예전처럼 반말을 할 수 없었다.


거기다 자신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고 결혼도 해야 할 것이니 이 시대의 스탠다드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었다.


“이렇게 얼굴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릅니다.”


설동백이 장군의 얼굴을 손으로 천천히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동안 여러 번 편지로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얼굴을 직접 마주하니 애틋함이 절로 묻어나와 이렇게 서로 마주 보고만 있어도 좋아서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잠시 후, 설동백이 주저하며 말을 꺼내자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한참 지났는데 달거리가 없습니다. 해서 혹시나···”


설동백이 말 끝을 흐리자 장군이 말했다.


“알고 있소.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날 것이오.”


“아아··· 알고 있으셨군요. 저는 홀로 너무 걱정이 되어···“


“걱정마시오. 그리고 이번 전쟁이 끝나면 결혼을 합시다.”


설동백이 장군의 품에 안겨 안도하며 다시 어깨를 들썩이자 장군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다 잘 될 것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그리고 고맙소.”


장군이 설동백의 눈가에 맺혀 있는 눈물을 닦아주며 입을 맞췄다.


눈물이 흘러내려 조금 짭짤했지만 그녀의 입술은 달콤하였다.


‘아, 달포정도 밖에 안된 것 같은데 몇 년 만에 만난 것 같구나.’


둘이 손을 잡고 벽에 기대고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장군이 말했다.


“내 옛날 이야기를 하나 해 줄까하오.”


“재밋겠네요. 해주세요.”


장군이 눈을 감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먹던 삼한 시대가 있었소.

나라 이름을 대한이라고도 했는데 그 나라의 어느 마을에 한 아이가 있었소.

어느 날 속리산 깊은 산속의 폭포수 아래에서 쉬고 있던 중 어떤 여인을 만났지.”


장군이 자신의 전생의 이야기를 옛날 이야기 인 것처럼 적당히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아이가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그녀는 삼한에 속한 작은 나라의 왕을 모시고 있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나중에 그 아이는 전쟁에 나갔다가 크게 다쳤을 때 그녀를 다시 만나 작은 나라의 신하가 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둘은 함께 할 수가 없었고 그녀는 350년쯤 나중에 다시 만나 사랑을 하자고 말했지.”


“350년을 뛰어넘은 사랑이라니··· 참 예쁘네요.“


설동백이 장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오며 말했다.


‘향기가 은은한 것이 새로 만든 창포 향을 첨가한 비누로 머리를 감은 건가?’


장군이 향기에 취해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작은 나라의 왕은 나쁜 왕이었소.

겉으로는 백성들에게 천국의 삶을 줄 것처럼 말하였지만 뒤로는 거짓으로 기만하며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가로채는 악행을 일삼았지.

그 아이는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진실을 알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삼한에 큰 역병이 들었소.

삼한의 이웃나라에서 시작된 역병이었는데 이웃나라의 황제가 숨기는 바람에 삼한에서 대처를 할 시간이 없어 그 역병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소.

이웃나라에서 역병을 옮겨온 원흉은 바로 그 작은 나라의 왕이 보낸···”


장군이 문뜩 어깨가 무거워 옆을 돌아다보니 설동백이 쌕쌕거리며 자고 있었다.


그녀가 깰까 장군이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하다가, 잠시 후 깊이 잠든 듯 보이자 조심스레 안아서 이부자리에 눕혀주었다.


‘나도 피곤하군.’


장군도 옆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으음”


설동백이 몸을 뒤척이며 장군 쪽으로 돌아 누웠다.


장군이 흘러내린 설동백의 머리카락을 가닥가닥 머리위로 올려 주었다.


‘업어가도 모르겠군.

그동안 걱정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잤으니 피곤했겠지.’


장군이 쓰러지고 난 뒤 치성을 드리느라 못 잔 것도 있었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생긴 스트레스성 불면증으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던 것이 장군이 오고나자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 오랜만에 꿀잠을 자는 중이었다.


“이제야 함께라니··· 아, 꿈만 같구나.”


장군이 바로 눈앞에 있는 설동백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중얼거리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 * *


다음날 광주의 향교 건물에 교육관련 사람들 백여명이 모였다.


장군이 내려오겠다고 전갈을 보내면서 그 전부터 한번 해 보고 싶었던 교육관련 사람들을 모아서 친목을 도모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여러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올라오게 했다.


사회를 보는 최석정의 소개로 장군이 나섰다.


“저는 여러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조선이 왜란과 호란 두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번 대기근을 넘어 큰 나라에 사대하지 않는 강한 나라로 거듭나는 길은 첫번째도 교육이고 두번째도 교육입니다.

그런 중요한 교육의 일선에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양반과 상놈으로 나누고 또 상민과 천민으로 우리를 갈라서 통치하려는 자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선봉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혁명군들도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새로운 학문을 전파하여 저들의 사상을 붓으로 깨부수고 있는 여러분들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전쟁에 이기고 조정을 장악한다고 해도 몇 백년 동안 이어져온 반상의 법도와 성리학이라는 틀을 깨부수지 못한다면 결국은 다시 저들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을 깨부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동안 양반을 비롯한 한줌도 안되는 자들만이 누리고 있던 배움의 기회를 우리 모두가 누리게 하는 것 입니다.

그 배움을 통하여 팔도의 백성들 모두가 무지에서 벗어날 때 저들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진정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 배움의 길의 가장 앞에 여러분들이 서있는 것입니다.”


장군의 간단한 개회사를 하고 바로 설동백이 나왔다.


“우리가 셈법과 도형 같은 것을 가르치면서 그게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형을 배우는 필요성에 대해서 한가지 예를 들어 설명할까 합니다.

뒤로 가면 조금은 어려울 수 있지만 다 몰라도 되니 그 원리만 아는 것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설동백이 종이차트를 열었다.


“이런 모양의 땅이 있습니다.”


종이차트에는 장군이 대략 그려준 조선의 모양의 땅이 있었다.


“이런 모양의 땅의 크기를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 땅이 이렇게 종이처럼 평평한 곳에 있다면 자로 재고해서 그 대략적인 크기를 알 수 있겠지요.

하지만 실제 땅은 평평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이렇게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나누어 모든 삼각형의 크기를 더하는 방법입니다. “


설동백이 다음 장을 펼치고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한반도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다시 다음장을 펼쳤다.


“그러면 삼각형의 크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먼저 이렇게 각도와 직선 거리를 알면 한쪽에서 다른 쪽의 거리를 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각형의 두개의 각을 알면 이 삼각형의 크기를 구할 수 있습니다. “


설동백이 삼각함수를 써서 도형의 크기를 구하는 방법을 설명하였는데 조금 어려운 주제라 몇몇 사람들만 이해를 하는 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설동백이 여러 개의 삼각형으로 나눠진 한반도 지도 모양의 땅이 있는 종이차트를 다시 열었다.


“제가 간단하게 삼각형의 크기를 구하는 방법을 설명하였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여기의 다른 모든 삼각형의 크기를 구할 수 있고 그것을 모두 더하면 이 땅의 대략적인 크기를 알 수 있겠죠.

좀 더 자세하게 크기를 구하려면 이 삼각형을 좀 더 작게 만들면 더 정확한 크기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바로 앞 장의 한반도 지도를 열었다.


“아는 분들도 많을 것인데 이 땅은 바로 우리 조선 팔도의 지도 모양입니다.

여기쯤에 광주읍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도형과 셈법을 잘 배우면 더 정확한 조선의 지도를 그릴 수 있고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를 더 잘 아는 것은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설동백 다음에 제주에서 올라온 절간 노비인 아한이 나왔다.


“제가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 처음 배우는 사람들이라 설동백님처럼 어려운 것을 가르치면 내일 부터는 모두 도망가서 앞에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놀이를 통해서 가르치고 있는데 그 경험을 여러분께 공유해 드릴까 합니다.

제가 이렇게 놀이 판을 만들어 왔으니 다 같이 해보면 좋겠습니다.”


아한의 모범 사례를 소개하는 시간이 끝나고 최석정의 진행으로 서로 간의 경험과 고충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는 구례에서 교육을 담당하다가 얼마전에 잠시 진주로 가서 교육을 하였는데 갑자기 말이 달라지니 교육이 쉽지 않았습니다.

같은 말인데 전라도에서 쓰는 말과 경상도에서 쓰는 말이 다르고 같은 말이라도 억양이 다르니 가르치는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장군님께서 처음에 글을 가르칠 때 한양말로 가르쳐야 한다고 했을 때, 배우는 사람들이 한양에서 살 것도 아닌데 왜 그런가 했는데 이제 이해가 되었습니다.

팔도의 사람들이 다 한양말을 할 줄 알면 어디가도 팔도의 말을 다 익힐 필요가 없겠지요.”


최석정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말을 비교해 볼 수 있게 한양말과 사투리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문에는 찾아볼 수 있는 옥편이 있는데 그런게 있으면 가르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오호, 사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벌써 나오네.

옛날에 닥쳐! 말모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었는데···’


장군이 감탄을 하면서 덧붙였다.


“말모이라는 것이 필요하군요.

우리 말을 모두 모아서 그 의미를 설명하고 각 지역의 사투리도 비교해 놓은 책을 하루 빨리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모르는 말이 있으면 말모이를 찾아보면 되겠지요.”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일어나 말했다.


“저는 화순에 있었는데 농사철이 되니 안나오는 아이들이 태반입니다.

처음에는 뺀질거리던 아이들만 조금씩 안나왔는데 점점 잘 따라하던 아이들이 안나오고 있습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같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부분은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배우고 싶어도 부모들이 당장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 보다 일을 시켜서 얻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니 최대한 여러 혜택을 주는 것으로 해보는 수 밖에요.”


최석정의 말에 장군이 생각했다.


‘역시 아직은 교육의 필요성이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는구나.

이건 나도 특별한 대책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더 잘되어 가는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그리고 아이들 수준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도 많이 있습니다.

특히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게 좋은 아이들이 많아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힘이 듭니다.”


“좀 전에 아한님이 소개한 사례처럼 놀이로 가르치는 방법을 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잘하는 아이에게 못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게 했더니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분위기도 좋아지고 그사이에 다른 학생들도 가르칠 수 있고요.

혼자서 다 하는 것보다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누군가의 호소에 여기 저기서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니 장군의 마음이 흐뭇해졌다.


“그리고 숫자를 세는 방법을 빨리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떨 때는 일 이 삼 사로 하고 어떤 때는 하나 둘 셋 넷으로 하니 많이 헷갈립니다.”


“이 부분은 장군님이 방안을 준비하고 있으니 들어봤으면 합니다.”


최석정의 말에 장군이 앞에 나왔다.


“이 문제는 처음 숫자를 소개한 후부터 계속 있어 왔던 문제였고 이제는 한가지 방법으로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들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장군이 앞에 세워진 종이 차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선에서는 이미 이렇게 정리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숫자를 세는 것은 순우리말만 사용하는 것으로 하였고 큰 숫자 세는 법도 정리를 하였습니다

먼저 작은 숫자 부터 보면 이제부터 숫자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로만 셀 것입니다.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은 그대로 사용할 것이고요.

그리고 100은 온, 1000은 즈믄이 되겠습니다.”


장군이 처음 숫자를 소개할 때 일 이 삼 사 이렇게 가르쳐 보았는데 사람들이 숫자를 세는 모습을 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현대의 한국에서는 처음 숫자를 배울 때 일 이 삼 사 로 배워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자를 쓰지 않는 평민들이나 천민들에게는 숫자세는 법을 추가로 익혀야 되는 일이었다.


양반들이야 한자를 아니 둘 다 상관없었고 장군도 입에 익은 것으로 하다 보니 둘 다 쓰고 있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고 결국 더 늦기 전에 결단을 내렸다.


‘프랑스에서는 숫자 세는데 덧셈도 하고 곱셈도 하고 별 짓 다 하는데 이정도 불편함은 전혀 문제가 아닐 것이지···

기수(基數)니 서수(序數)가 달라서 헷갈릴 염려도 없으니 외국인들이 한글 배울 때 불편한 점도 하나 줄어 들겠지.’


“처음 몇 달은 불편할 수 있습니다만 금방 적응될 것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던 듯 큰 이의가 없었다.


“그리고 만을 없앨 것입니다.”


“네?”


사람들이 놀라는 가운데 장군이 다음 차트를 넘겼다.


“만은 한자 이기도 하고 단위가 크니 굳이 그렇게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10000을 써 보면 동그라미가 네 개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민족은 숫자 셋이 기본인데 넷이 기본이 되면 정서에 맞지 않겠죠.”


사람들이 여전히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보였고 장군이 숫자를 지휘봉으로 짚으며 말했다.


“그리고 숫자에는 이렇게 10,000,000처럼 쉼표를 붙여서 읽을 것인데 매 네번째 마다 붙이면 1000,0000 처럼 너무 길어서 읽기 불편해 집니다.”


“그럼 만은 어떻게 읽습니까?”


“만은 열 즈믄으로 읽으면 됩니다.

십만은 온 즈믄으로 읽게 되겠죠.”


“그 다음은요?”


“그 다음은 이렇게 다른 단위를 만들 것입니다.”


장군이 말을 하며 다음 장을 펼쳤다.


“윷놀이에 보면 도, 개, 걸, 윷, 모라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숫자를 셀까 합니다.

도는 말이 한 칸 움직이고, 개는 둘, 걸은 셋, 윷은 넷, 모는 다섯 칸 움직입니다.

그래서 도개걸윷모에 즈믄의 믄을 붙여서 도믄, 개믄, 걸믄, 윷믄, 모믄으로 할까 합니다.

도믄은 즈믄이 한 개이니 1,000이고 개믄은 즈믄의 즈믄이니 동그라미가 여섯개가 붙어 1,000,000이 됩니다.

그리고 걸믄 윷믄 모믄은 아래와 같습니다.”


1,000 = 즈믄, 도믄

1,000,000 = 개믄

1,000,000,000 = 걸믄

1,000,000,000,000 = 윷믄

1,000,000,000,000,000 = 모믄


최석정이 차트를 보며 재밋다는 듯이 말했다.


“도는 돼지이니 한자로 하면 돼지 저를 써서 저믄이라, 즈믄이랑 같은 모양이니 원래부터 있던 말 같군요.”


“아, 그렇게 됩니까?”


“월을 셀때에는 일월 이월 삼월 이렇게 세고 있는데 그것도 바꿔야 하겠군요.”


“그렇습니다. 12월은 동지가 있으니 동짓달, 1월은 설이 있으니 섣달 나머지는 이름을 지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오늘 바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나머지는 나중에 생각해 보고 좋은 의견이 있으면 여기 최석정님에게 보내주면 정리를 해서 배포를 할 것입니다.”


“도형의 이름도 바꿔야 겠습니다.

삼각형이 아니고 세모꼴로 바꾸는게 좋겠습니다.”


“만석꾼도 열즈믄석꾼으로 바꿔야 하려나요?”


여기 저기서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그런데 이게 입에 익으려면 좀 오래 걸리겠군요.

특히 만을 열즈믄으로 바꾸는 것은요.”


누군가의 말에 장군이 의지를 분명히 했다.


“뭐든 처음에는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만 이상을 세어본 경우가 거의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지금이 새로운 방식으로 바꿀 가장 좋은 때입니다.

성리학만을 학문으로 생각하고 만세(萬歲)도 부르지 못하면서 소중화를 꿈꾸는 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 만(萬)이라는 글자를 조선에서 없애는 것으로 우리의 의지를 보였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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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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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교육자 대회 24.04.02 61 0 24쪽
92 송시열과 독대하다 24.03.12 118 1 21쪽
91 그녀는 예뻤다 +2 24.03.03 107 2 16쪽
90 미 투 24.02.22 107 2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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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척산 전투(feat.신기전) 1 24.01.18 144 1 21쪽
84 화천대유(火天大有) 24.01.08 153 4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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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7 3 21쪽
80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09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78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89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8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7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4 13 14쪽
74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1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6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09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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