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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4.22 10:13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110,755
추천수 :
2,324
글자수 :
792,371

작성
24.01.01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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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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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
21쪽

이사부의 사자

DUMMY

광주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광주 읍성 남문 앞에 광주의 유림 박광후가 유림 동료 몇 명과 자리를 깔고 처연하게 앉아 개탄하고 있었다.


‘아! 이 나라에는 도가 없다는 말인가?!’


얼마 전 청주에서 내려온 서인 동료의 말을 듣고 광주, 나주, 장성 등 여러 고을의 유생들을 규합하여 광주 읍성 남문 앞에 수십명이 자리를 잡고 앉을 때만해도 그 기세가 대단하였다.


곧 광주 읍성에서 역도들에게 부역을 하던 최석정 등의 어린 유림들이 장군을 옹호하는 방을 붙이고 고개를 뻔뻔하게 들고 다니기 시작하였다.


“이자들이 역적들을 돕는 것도 모자라 사문난적이나 하는 짓을 하다니!”


“대명 천자의 의리를 저버리고 삼한을 들어 오랑캐에게 바친 최명길의 손자가 하는 짓이니 그런 것이다.”


그들의 철없는 행동을 비난하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호남 선비들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에 오히려 더욱 힘을 내었고 주위에서 들리는 수근거리는 말들과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내뱄는 욕들은 어리석은 백성들의 소리라 치부하였었다.


하지만 사흘 전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빠져야 하겠네. 집에 일이 생겼다네.”


“으슬으슬 추운 것이 몸이 안좋구먼··· 허험.”


갑자기 몇 명씩 빠져나가는 듯하더니 점점 숫자가 줄어 들었는데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해 하였다.


“우리는 이런 파렴치한 아들을 둔 집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집 땅이 아니면 소작 받을 곳이 없는 줄 아슈?”


몰래 내막을 알아보니 그동안 의리가 있어 나가지 않고 있던 노비들이 나간다고 난리를 치고 소작인들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나서니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한 대기근에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겨우 다섯 명만 남아 처량하게 앉아 있었다.


‘내 목숨이 끊어지더라도 나는 이 자리에서 죽겠다!’


마음 속으로 되뇌며 다짐을 하는 박광후였다.


“어허, 이 사람들아. 사람이 살고 봐야지.

이거라도 쓰고 하시게.”


누군가 삿갓과 도롱이를 건네어 올려다보니 유형원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


“···”


말없이 도롱이를 받아 드는 박광후의 눈에서 눈물인지 빗물이지 모를 것이 한없이 흘러내렸다.


* * *


올해의 황해도의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음력3월에도 여러 번 된서리가 내렸고 급기야는 보름전에는 눈이 발목만큼이나 쌓여 며칠동안 녹지 않는 일까지 있어 봄 가뭄으로 말라가고 있던 밀보리가 얼어 죽고 나오던 새싹과 꽃들도 생기를 잃었다.


그래도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봄기운은 양지바른 곳에서부터 쌓인 눈을 녹이고 다시 새싹들이 조금씩 생기를 되찾자 황해도 서북부의 은율현에도 달래며 냉이 쑥을 캐러 오는 아낙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삘리리리~


꽹꽹꽹, 두둥 두둥


마을 어귀에서 풍물소리가 울려 퍼지고 소란이 일자 푸성귀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서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오늘이 사월 초파일이라더니 큰 굿이라도 하려나 보네요.”


한 젊은 아낙이 말하자 다른 아낙이 대답하였다.


“몰랐어? 지난해에 못한 사또 부임 잔치를 오늘 하신댜.”


“그러면 뭐 먹을 거라도 좀 나눠 주려나봐요?”


“먹을 거만 있겠어? 이번에 구월산에서 사당패들이 들어온다 하니 큰 구경거리가 있겠지.”


다른 아낙이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열만 모여도 잡아가고 그러더만 왠일이래?”


“한동안 계속 된서리에, 때늦은 눈에, 봄갈이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만신 원화가 큰 굿을 벌여서 액막이를 해야 한다고 했댜.

그런데 사대부가 대놓고 굿판을 벌이지는 못하니 사당패들을 불러서 탈놀이를 크게 한다네.”


“허긴 거기도 마지막에 굿거리가 들어있긴 허지.

올해 초파일에는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더니 잘되었구만.”


“그러네요. 다같이 구경가요.”


* * *


“모두 멈추어라!”


“짐을 꼼꼼히 살펴라!”


마을 어귀에서 풍물 놀이를 시작하던 중에 갑자기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요? 우리는 은율 현감님이 불러서 온 사당패란 말이요.”


꼭두쇠가 나서서 큰 소리로 항의하자 군관이 말했다.


“알고 있다. 그 현감님께서 요즘 역도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등짐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라 하셨다.”


“우리 짐들은 다 오늘 탈놀이를 위한 것들이요.

보시오. 아무것도 없소.”


분위기가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이 보이자 포기하고 짐꾼들이 등에 멘 짐을 내려 놓았다.


“아이고, 그것참! 조심히 좀 다뤄 주시오.”


곳곳에서 포졸들과 짐꾼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건 뭐냐? 뭘 숨겨놓기 좋아 뵈는 구나.”


군관이 사당패가 등 뒤에 메고 있는 큰 탈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그냥 탈입니다. 탈”


탈을 메고 있는 사당패들이 뒷걸음질을 치자 군관이 쫓아 가서 잡아 채었다.


“이리 내놓아라!”


“아이쿠!”


탈을 메고 있던 젊은 사내가 쓰러지면서 탈이 바닥에 깔렸다.


“아이고, 이를 어째!”


꼭두쇠가 급하게 뛰어와서 사내를 일으키고 탈을 살폈다.


“사자탈이 깨어졌으니 어쩔 것이요?! 사또나리께서 오늘 액막이로 사자를 꼭 데려와 달라고 했는데···”


“금만 조금 갔구만.

그리고 탈은 저기도 또 있지 않느냐?”


“이번에 대기근을 넘기려면 사자를 다섯 마리를 탈놀이에 올려야 한다고 만신이 말했는데 이걸 어쩔 것이요?”


“그것 참, 잘 붙이면 되겠구만. 어쨌든 모두 확인해야 한다!”


“자! 보시오. 뭐 아무것도 없지 않소.”


“뭐 그렇구만. 미안하게 되었소.”


사자탈을 까뒤집어 일일이 보여 주자 군관이 멋쩍은 듯이 말하고 군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빨리 마을을 한바퀴 돌아야 하니 서둘러라.”


꼭두쇠가 큰소리로 말하며 사당패들을 독려했다.


“길산이 너는 사자탈을 잘 고쳐보도록 하고 나머지는 탈을 쓰고 마을돌이를 시작하자.

기근이라 씀씀이가 없을 터라 최대한 많이 돌아야 하니 넷으로 나뉘어서 올라가자.”


“네! 꼭두쇠어른.”


다시 풍물 소리가 울리고 사자가 앞장서고 탈꾼들도 탈을 쓰고 춤을 추면서 뒤따르며 마을길로 접어 들었다.


“우리집 마당도 한번 밟아 주시오.”


마을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쌀이며 담뱃잎이며 값나가는 것을 가져와서는 사당패를 잡고 마당으로 이끌었다.


“문 여소 문 여소 주인 주인 문 여소

만인간 만복이 들어갑니다!”


상쇠가 구성진 목소리로 외치고는 마당으로 들어가 한차례 자진모리 장단으로 놀고는 축원을 하였다.


“높은 산에 정기 빌고 낮은 산에 기도하고

구월산 높은 곳에 산신제를 지내주고

비파곶 깊은 물에 용왕제를 지내주고

···”


원래는 정초에 지신밟기를 하지만 올해는 역병이 돌아 못하였기에 원하는 곳이 많았고 특별한 부탁을 하는 곳도 있었다.


“우리 집은 특별히 사자가 부엌에 들어왔다 갔으면 하오. 구월산에 산신령이 들어왔소.”


* * *


어느덧 저녁때가 되어 은율현 관아건물 앞의 큰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덩! 따기 덩 따! 얼쑤!!!


잠시 후 은율현감이 나와서 자리를 잡자 타령장단에 맞춰서 큰 백사자가 한 마리 등장하였다.


우오오오!


마을을 돌 때에는 사람 둘이 들어가는 작은 사자였는데 이번에는 사람 셋이 들어가는 큰 사자가 나오자 사람들이 눈이 동그래졌다.


이 시기는 탈춤이 지금처럼 완전히 형식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특히 황해도는 무격의 세가 강하여 무당들이 주가 되어 하던 놀이굿의 일부로 탈놀이가 행하여 졌고 당취와 사당패등에서도 탈놀이가 정형된 형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인조때 공의(公儀)로서 연희되어 오던 산대연희(山臺演戱)가 폐지되자 이에 종사하던 재인들이 한양 근교에 산대놀이 단체를 여럿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황해도 쪽에도 직간접적으로 전승이 되면서 장단점을 취하여 탈춤으로서 그 형식이 잡혀가고 춤사위도 전문적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특히 사자 춤은 황해도 이북지방에서 이전부터 전승되던 것이었는데 탈춤에 포함되지 않았다가 이번에 때이르게 들어오게 되었다.


“어이쿠, 저 짐승은 무엇이라 합니까?”


운율현감 옆에 앉아있던 구월산성별장이 놀라운 표정으로 하는 말에 현감이 웃으면서 답했다.


“저게 사자라고 하는 것인데 액막이에 좋다고 하여 굿을 줄이고 사자춤을 특별히 넣어달라 하였네.”


“저것이 아주 사나워 보이는 것이 나쁜 기운들이 싹 달아나겠습니다.”


“꼭 그렇게 되어서 하루빨리 이 기근이 끝났으면 좋겠군.

그런데 이런 탈놀음을 언제 본 적이 있소?”


“저는 처음입니다.”


“그렇다면 중간 중간에 좀 화나는 부분이 있어도 모른 척 하는게 좋을 것일세.

저놈들이 탈을 쓰고 한다고 아주 짓궂은 면이 있다네.”


“말은 좀 들었습니다. 양반들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다고···”


현감이 대인배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뭐 그런 재미로 보는 것이지.

그나저나 오늘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네.

별장이 군사들을 데리고 온 덕분에 이렇게 마음 놓고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소.”


“별말씀을요. 그동안 역도들 때문에 여럿이 무리 지어 모이는 것을 막아서 불만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한번 풀어주려 하시는 큰 뜻이 있으시니 제가 보탬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네.”


은율현에는 읍성이 없어 군사들을 많이 두지 않았고 그나마도 기근으로 동원할 여력이 없어 관할하에 있는 산성별장에게 군사를 데리고 오라 하였다.


“청송록죽(靑松綠竹) 군자절(君子節)”


어느덧 첫번째 목중이 나서서 불림을 한 다음 목중 춤을 추기 시작했고 춤사위가 이어지며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에라 쉬-“


목중들이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가자 말뚝이 나와서 한마디 하였다.


“수인사연후에 대천명이요, 봉제사연후에 접빈객이라. 수인사 들어가겠다. 청송록죽 군자절”


말뚝이가 한참 춤을 추다가 들어가고 양반이 나와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다가 양반이 말뚝이를 찾았다.


“에라 말뚝아!”


“예이~”


말뚝이가 나와서 양반을 희롱하는 것이 오래 이어지다 좀 멀쩡한 양반이 말을 건넸다.


“네이놈 말뚝아!

오늘은 좋은 날이로다.

그동안 우리 고을에 원님이 없어서 송사가 있어도 옆 고을에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여야 했는데 몇 달 전에 새로 현감께서 부임해 오셨으니 이 아니 좋을 쏘냐?”


“그것은 그렇소만, 애당초 우리 은율현에 현감이 왜 없어졌을까요?”


“사노 (私奴)인 검충(檢忠)·유립(劉立)이 자기 상전을 찔러 죽였으니 읍을 폐한 것이 아니더냐?”


“사노가 상전을 찔러 죽인 것이 우리 현 백성들의 잘못이 아닐 진데 어찌 현을 폐하여 백성들을 고생을 시킨다는 말이요?”


“노비와 그 주인의 의리가 없어지는 강상(綱常)의 변이 일어난 것이니 온 읍의 백성들이 반성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반상의 법도는 이토록 지엄한 것이다.”


“어허, 그 놈의 반상의 법도! 참 지겹지도 않으시요?”


“예끼 이놈!

원래 강상의 죄는 읍을 폐지하는 기간이 10년이나, 흉년에 진휼을 베푸는데 장애가 되니 기한이 차지 않았지만 읍을 복구시켜 준 것이다.

나랏님의 은혜가 하해와 같지 않으냐?”


“녜, 녜, 참으로 은혜롭소이다.

은혜가 활활 타오르니 한바탕 춤이나 추어야 겠네.

참나무 장작은 화장작!”


말뚝이의 불림소리에 맞추어 잦은 돔부리 장단이 울리자 양반과 말뚝이가 다같이 춤을 추고 퇴장을 하였다.


이번에는 노승이 등장하여 최괄이와 한참 실랑이를 하면서 춤대결을 하였고 최괄이가 말했다.


“그래 이 중놈아! 네놈이 팔도를 그렇게 돌아 다녔다니, 저기 남도에 역도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알고 있느냐?”


“물론, 알고 말고. 나는 눈을 감고도 천리를 보니 모르는 것이 없노라.”


“그러면 거기에 운부라고 하는 네놈과 같은 땡중이 스스로 제갈량(諸葛亮)이나 유기(劉基)에 밑돌지 않는다고 떠벌리면서 미륵이라 칭하는 고장군의 책사로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어허, 그놈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는가 보구나.

그러는 네놈은 몇 년 전 우리 은율현이 폐읍이 될 때 현감이 누구인줄은 아느냐?”


“새로 온 현감이 중요하지, 옛 현감은 뭣이 중한가?”


“그때 그 현감이 지금 역도들의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으로 있는 이집이라는 자라네.”


“어허! 현을 폐지하게 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역적질이라니··· 쯔쯔쯔쯔”


“관노도 아니고 사노비가 상전을 죽인 것이 그 현감 잘못일까?

그리고 그때는 현을 폐하게 만들기는 했으나, 지금은 비누라는 것을 보내주어 역병을 막고 있으니 그것은 좋은 것이냐 나쁜것이냐?”


최괄이가 노승을 소매로 후려치면서 소리쳤다.


“이놈이 역도들을 싸고 도는 것을 보니 역도들과 한편인 게로구나.”


“네놈이야 말로 역도들이 만든 비누를 쓰고 있으니 역도와 똑 같지 아니하냐?”


노승도 지지 않고 최괄이의 면상을 부채로 후려치자 최괄이가 어이쿠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나서 말했다.


“에라 쉬- 야, 저 뒷절 중놈이 억세긴 억세다. 고비 고사리 두둑에 도라지 더덕을 먹고 구월산 산삼 섞어진 물을 먹는 중놈이 억세긴 억세다. 야, 중놈아. 이번에 황주 정방산성으로 가 보자-. 청천백일에 자운동”


노승과 최괄이가 한참 춤으로 대결하다 최괄이가 마침내 노승을 사정없이 두들겨 내쫓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에라 쉬-, 그 놈의 중놈 때문에 이상한 말을 하여 우리 원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구나.

사또 나으리! 소인은 그저 오입장이로 저런 것은 잘 모르옵니다.

하여 오늘은 저년을 한번 얼러보겠습니다.”


최괄이가 노승을 유혹하다 퇴장을 안하고 그동안 한 켠에 우두커니 있던 새맥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내 너하고 한번 놀아보자꾸나. 창송록죽 군자절-“


최괄이 새맥시를 후리고 새맥시가 튕기다가 결국 넘어가고 함께 춤을 추다가 퇴장하고나서 할미와 영감 마당이 되어 할미가 뚱딴지의 발에 차여 죽자 무당이 나와 지노귀굿을 하였다.


챙챙챙챙! 두둥두둥!


굿이 끝나자 최괄이가 다시 등장하였다.


“아 쉬-

저기 남쪽에는 이미 봄이 왔는데 아직 이 황해도 땅에는 봄이 오지 않고 있으니, 오늘은 사자 다섯 마리를 몰아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고 봄을 불러와 올 가을에는 풍년가를 불러보자.

사자를 몰아오너라!”


마부가 나와서 사자를 몰아오고 타령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덩! 따기 떵따! 얼쑤


사자 다섯 마리가 마당과 관객들 사이를 오가며 한참을 논 다음 마당 중앙에 모여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다가 한 명이 신호를 하자 뒷발로 벌떡 일어서고 음악이 멈췄다.


우와아아!


사자 다섯마리가 벌떡 일어서는 광경에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최괄이 크게 소리쳤다.


“잡아먹어라!”


둥!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사자가 갑자기 앞발을 놓는가 싶더니 그대로 앞으로 달려들어 은률 현감과 구월산성별장을 덮쳐 버렸다.


우지끈!


“어이쿠!”


나무로 만든 사자탈이 쪼개지는 소리가 크게 나며 산성별장이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들 깜짝 놀라서 아무 소리도 못 내었고 최괄이가 탈을 벗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고장군 휘하에 있는 걸승이다.

지금부터 은율현은 고장군의 혁명군과 함께할 것이다!

모두 움직이지 마라!”


사자탈 아래에서 은률현감과 구월산성별장이 목에 칼이 겨눠진 채 기어 나왔다.


앞쪽에서 좌우로 도열해서 칼을 차고 서 있던 군사들 스무 명도 달려든 사자에 놀라 뒤로 자빠지거나 멍하니 있다 뒤쪽에 접근해 있던 사람들에게 제압되었다.


구경꾼들 뒤에서 삿갓을 쓰고 서 있던 서생 하나가 무릎을 치며 외쳤다.


“오호라! 저것이 우산국을 정복한 이사부의 나무 사자였던 것인가?”


* * *


반식경 후 수십명의 사람들이 은율현 동쪽 삼십여리 거리에 있는 구월산성으로 향했다.


“서둘러라! 달이 지기 전에 도착해야한다.”


사월 초파일 반달이 길을 밝혀 주고 있었지만 산길이 험하여 시간이 지체되자 선두에서 걸승이 사람들을 재촉했다.


걸승을 비롯한 당취들은 한참 전부터 이미 이지역의 사당패와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무격등과도 협력을 하여 사월 초파일에 크게 굿판을 벌이기로 하였다.


하여 평안도에서 사자탈을 공수해 오고 단도를 여러 집의 부엌에 숨겨 두고 있다가 사자를 들여 가져와서 무장을 하였고 걸승이 최괄이 탈을 쓰고 전체 조율을 하였다.


걸승은 전라도에 탈춤을 전승하기위해 여기 저기서 배워왔는데 평야지대인 전라도는 농악이 우세한 지역이라 전승이 쉽지 않았지만 이번에 그 덕을 톡톡히 보았다.


“누구냐?! 멈추어라!”


일행이 구월산성 서문 아래에 도착할 때 즈음 서문위에서 번을 서던 군졸이 소리치자 별장을 수행하였던 군관이 앞에 나서며 말했다.


“우리가 돌아왔소. 문을 여시오.”


성문위에서 한참 소란이 있더니 군관 하나가 성문위에서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요?”


“별장께서 돌아왔소이다. 문을 여시오.”


“별장께서는 내일 아침에 오시기로 하시지 않으셨소?”


“별장께서 약주를 좀 과하게 하시더니 무슨 변덕이 들었는지 급히 돌아가자 하셨소.”


“잘 안보이니 횃불을 더 밝혀 보시오.”


성문 앞에 놓인 가마에는 산성별장이 널부러져 있었고 군관이 횃불을 가까이 갖다 대었다.


“어허! 긴가민가 하오이다.”


여전히 성문위에서 경계를 풀지 않고 있자 아래에서 외쳤다.


“잘 안보이면 직접 내려와서 보면 될 것이 아니요?”


“그럴 수 없는 건 잘 알지 않소?

그런데 기근이라 금지된 술을 마셨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소이다.”


“오늘은 신임 현감 부임 축하 자리인지라 특별히 술을 준비하신 것이오.

여기 따로 술 한동이를 보내 주셨소.”


군관의 지시로 술동이를 진 일꾼이 앞으로 나와 지게를 흔들었다.


“어허! 귀한 술 넘친다. 조심해라!”


술이 출렁이는 소리가 들리자 군관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우리끼리 상의를 좀 해야 하니 기다리시오.”


군관이 사라지고 성문 아래에서는 물건들을 내려 놓느라 소란이 일었다.


“거기 음식들도 모두 가져와 내려놓아라!”


“어허! 넘어진다.”


한참 후 성문 위에 군관이 다시 나타났다.


“물건들은 그대로 두고 모두 십보 밖으로 물러서시오.”


“알겠소이다.”


성문위에 군사들 십여명이 활을 겨누고 있는 사이 성문이 조금 열리고 군사 셋이 나오고 성문이 다시 닫혔다.


“별장 나으리가 맞습니다.”


군졸이 먼저 별장이 앉아있는 가마를 확인하고 크게 소리쳤다.


“술이 있습니다.”


“음식도 많이 있습니다.”


“와아아! 먹을 거다!”


성문위에서 활을 겨누고 있던 군사들이 활을 거두고 만세를 불렀고 잠시 뒤 다시 성문이 크게 열리며 군관이 군사들 십여명과 함께 나왔다.


“별장 나으리부터 뫼시어라!

나머지는 그대로 있고 일꾼들만 나와서 물건들을 나르시오.”


“자! 어여 들어 가서 쉬세! 어영차!”


성문 밖에 나온 군사들이 별장이 앉은 가마를 들고 들어가고 일꾼들이 나와서 소리를 크게 내지르며 지게를 들쳐 지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우리도 들어가도 되겠소?”


아래에 있던 군사들이 다가오며 말하자 군관이 급히 제지했다.


“어허! 아직 움직이지 말아라!”


걸승이 계속 다가오며 말했다.


“어허! 그 놈 참 의심도 많기는···”


“이놈들! 이놈들이 이상하다. 성문위에는 뭣들하느냐?! 이놈들을···”


성문위에서 평안도의 자모산성에서 내려온 김득발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말했다.


“성문 위는 우리가 이미 점령했지비.”


김득발 김기발 형제는 함경도에서 다른 사냥꾼들과 함께 내려왔는데 이날 구월산 근처에서 혹시나 은율현에서 구월산성으로 소식을 알리러 가는 자들이 없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나중에 걸승 일행과 합류하여 함께 서문 근처까지 왔다가 서문 쪽에 소란이 이는 사이 서문 인근의 수군문으로 잠입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성문이 열리고 물건을 들이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성문위의 군사들을 제압하였다.


구월산성 서문이 장악되고 나자 성안의 나머지 군사들은 한참 곯아떨어져 있던 중이어서 큰 저항없이 제압되었다.


며칠 후 허사포진이 있던 은율현 서북쪽의 비파곶으로 개량 판옥선 네 척이 올라와 정박했고 군사 삼백이 은율현으로 들어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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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척산 전투(feat.신기전) 1 24.01.18 143 1 21쪽
84 화천대유(火天大有) 24.01.08 153 4 21쪽
» 이사부의 사자 24.01.01 149 4 21쪽
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7 3 21쪽
80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09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78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89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8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7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3 13 14쪽
74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1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6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09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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