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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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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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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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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8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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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1쪽

화천대유(火天大有)

DUMMY

공산성 전투가 끝난 후 장군은 이틀 동안 공산성 안에 있는 영은사에 머무르면서 민심을 수습하였다.


영은사는 세조가 창건하여 묘은사로 불렸다가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 절에 머물러 안전하게 피신을 하기도 하여 은적사로 불리기도 하였다.


임진왜란때에는 승병들이 훈련을 하고 승병장 영규대사의 지휘하에 금산전투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호국사찰로서의 역할도 하였는데, 이는 공산성 자체가 방어하기에 좋은 곳이기도 했지만 영은사 바로 아래에는 금강으로 나가는 숨은 나루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나루터가 관리가 잘 되지 않아 토사가 많이 쌓여 수위가 낮을 때에는 연못처럼 쓰이다가 수위가 올라가면 안쪽까지 물이 들어와 직접 배를 타고 나갈 수도 있었지만, 원래 역사에서는 나중에 영조때가 되어 아예 위쪽으로 석축을 쌓고 위에 정자를 지어 만하루라 이름 붙이게 된다.


이번에 장군이 영은사 스님들에게 이 나루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앞에 쌓인 토사를 걷어 내고 나루터가 제 기능을 하게 만들었는데, 혹시나 청주성 전투가 길어질 경우 이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먼저 회덕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청주성에서 봅시다.”


“살펴 가십시오. 장군님.”


영은사 앞 나루 밑까지 여러 사람들이 나와서 장군을 배웅하였다.


남해에서 올라온 수군들은 이번 전투에서 경험을 쌓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경기도와 황해도 공략을 위해 서해로 떠났고 1연대 군사들이 남아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금강을 통하여 청주로 진격하기로 하여 1연대의 대대장이며 중대장들이 모두 나왔다.


장군이 배를 타고 그동안 내린 비로 수위가 올라간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 나리진(羅里津, 세종시) 건너편에 내려서 회덕으로 들어갔다.


“장군님, 꼭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회덕에 도착하자 특전대장 진모리가 조용히 장군을 찾았다.


“무슨 일이냐?”


“보은 인근에서 송시열을 잡아왔습니다.”


‘속리산 자락에 숨어 있다 했는데 보은에 숨어 있었다고?’


장군이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송시열을 잡았다고? 그게 정말이냐?”


“정확히는 누군가가 잡아왔습니다.”


“누군가?”


“그것이···”


진모리가 뜸을 들이면서 말했다.


“장군님을 저격했던 자입니다.”


* * *


송시열이 문영후와 소장파 제자들을 다그치던 다음날 아침 일찍 집을 나와 보은 쪽으로 향했다.


집안의 가노 몇 명과 외손자인 윤주교, 그리고 제주에서 올라온 문영후, 문징후, 문창업이 동행했다.


“오늘 나오기 전에 주역점을 보았는데 화천대유(火天大有)를 뽑았습니다.”


중간에 낮참을 먹는 중에 문영후가 말하자 송시열이 기쁘게 축하해 주었다.


“오호! 한동안 점이 안쳐진다 그러더니 이제 드디어 괘가 보이는가 보오.

화재천상(火在天上) 대유(大有)라. 대유원형(大有元亨)이니 아주 길한 괘로 구나.”


송시열도 평소에 주역을 공부하였기에 손가락을 꼽아 보며 궤에 대해서 좋게 말하자 문영후가 신이 났다.


“그러합니다. 君子以 遏惡揚善 順天休命(군자이 알악양선 순천휴명)이라 했습니다.

군자가 악한 것을 막고 선한 것을 드날려서 하늘을 명을 따르는 궤이니 마침내 역도를 토벌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그렇게 될 것이요.”


“이번 원행이 큰 기대가 됩니다. 제가 그동안 제주를 탈출하면서 갖은 고생을 했는데이제서야 그 결실을 보게 되는가 봅니다.”


문영후가 오랜만에 괘가 나온 데다 길한 괘가 뽑혀서 그런지 희희낙락함이 너무 눈에 뜨이자 송시열이 정색을 하며 단속을 하였다.


“대저 주역의 괘라 함은 음과 양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것이니 그 괘를 읽어 나타나는 경지의 이면도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易)이라 하는 것이요.

알악양선 순천휴명(遏惡揚善 順天休命)이라 함은 괘 자체를 설명하는 것도 되지만 군자가 스스로 악을 멀리하고 선을 드러내며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순응해야 하는 마음 가짐을 요구하는 것이요.

마땅히 이 괘를 받은 자가 자만하지 않고 스스로 삼가고 경계할 때에만 대유(大有)를 누릴 수 있을 것이요.”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가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소.

그러니 자중하고 이만 서둘러 출발하세.”


“알겠습니다.”


문영후가 크게 개의치 않은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일행이 다시 출발했다.


“소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가는 도중에 송시열의 외손자 윤주교가 대열 뒤쪽에서 나귀를 타고 천천히 오고 있는 송시열에게 다가와 말했다.


“말해 보거라.”


“외조부께서는 고장군과 협상을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고장군은 역도들의 수괴로서 성리학을 부정하는 사문난적과 같은 자들 아닙니까?”


“제주는 검은 돌이 나는 곳이니 흑석의 땅이다. 그 땅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으니 그 땅의 사람들은 흑수(黑水)에 사는 자와 다름이 없는 것으로 짐승과도 같은 것들이다.”


“주자(朱子)를 공척한 윤휴가 여강(驪江)가에 살아 검을 려(驪)로 흑수(黑水)라 하는 것은 잘 알겠습니다. 허니 그런 자들과 어찌···”


송시열은 윤휴가 중용의 주석을 놓고 주자의 해석을 그르다하고 장구를 멋대로 고치자 사문난적이라 하여 참적(讒賊), 적휴(賊鑴)라 하고 또한 사는 곳인 여강(驪江)을 비하하여 흑수(黑水 - 검은 물)이라 부르고 있었다.


“사람에게는 음과 양이 있고 일에는 의(義)와 리(利)가 있으며 물건에는 백과 흑이 있다. 사대부에는 의가 있으니 백이나 그자들은 리(개인의 이익)만을 쫓으니 흑이며 우리 사대부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자들이다.

필요할 때고 쓰고 버리는 것에 거리낌이 있을 필요가 없다.”


“알겠습니다.”


윤주교가 말로는 긍정을 하나 떨떠름한 표정이 보이자 송시열이 장황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북쪽의 오랑캐가 사나워 잠시 사대를 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의 소중화(小中華)를 신념으로 삼고 있다.

주자의 학문으로 이치를 궁구하고 심성을 존양하여 이를 몸으로 실천해서 확충시키는 것을 주(主)로 삼고, 공경(敬)으로써 시종(始終)을 통관(通貫)하는 공(功)으로 삼아 곧음(直)을 지킨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승리하는 길이다.

내 일찍이 효종대왕을 독대할 때 중원의 오랑캐를 물리치기는 쉬우나 자기 한 몸의 사의를 제거하기는 어려운 법이니 이것은 주자가 당시 인군에게 말씀하신 지론임을 들어 양병을 위해서는 기강을 확립해야 하고 기강의 확립을 위해서는 군주의 사심을 없애야 할 것을 강조하였으니 이와 같은 이치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주자가, ‘내가 만일 만 길이나 되는 절벽처럼 굳게 서 있다면 어찌 우리 도(道)를 빛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였듯이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내는 것과 성인(聖人)이 만사(萬事)에 대응하는 것은 곧음(直)뿐인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곧음을 추구하면 주문(朱門; 주자의 문하)의 정법(正法)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게 되는 것이다.”


송시열이 무슨 말인지 모를 정신승리의 장황한 썰을 늘어 놓고 있는 가운데 각자의 동상이몽이 깊어지고 있었다.


다음날 저녁때 즈음 송시열 일행이 보은 동북쪽 속리산 기슭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송시열 문중의 땅이 있는 곳으로 그 땅에 농사를 짓고 있는 소작인들과 외거노비들이 모여 살고 있었고 그 중 조금 큰 기와집으로 들어섰다.


“대감, 그런 일을 벌여 놓고 여기에 나타나다니 참으로 뻔뻔하오이다.”


송시열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양, 한 사내가 툇마루에서 활을 들고 일어서며 말했고 동시에 지붕위에도 사람들 일어나며 활을 겨눴다.


“어허! 조금 오해가 있었네. 잠시 진정하시게.”


송시열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진정시키려는 순간 함께 온 문창업(문영후의 사촌 무관)이 칼을 빼 들고 송시열의 앞을 막으며 소리쳤다.


“네이놈! 누구 안전이라고 이러는 것이냐?!”


티잉! 슈욱~ 퍽!


“으아악!”


말릴 새도 없이 앞의 사내가 활을 매겨 쏘았고 문창업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고 문영후와 문징후는 사색이 되어 주저 앉았다.


“다음은 누가 또 나설 것이오?”


그 사내의 말에 송시열이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아무도 나서지 마라! 별일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진정이 되자 송시열이 다시 달래러 나섰다.


“이보게. 엇복이. 오해가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나?

내 자초지종을 말해 주겠네.”


엇복이가 활을 내려놓고 툇마루에 걸터 앉았다.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이 일은 모두 여기 제주에서 온 자들이 한 것일세.

자네도 이미 알아채고 한 놈을 쏘아 죽이지 않았나?”


송시열의 바닥에 주저앉은 둘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문영후와 문징후가 경악을 하였고 송시열이 모른척하며 계속 말했다.


“내가 영남 남인들을 저지하려고 그 사안을 도제찰사 허적에게 알려 이용하게 한 것은 사실일세.

허나 잠시 그 일로 청주성에 가는 사이에 이 자들이 방을 곳곳에 붙이는 사단을 벌였다네.”


이 마을은 병자호란 이후 환황녀들에 대한 말들이 크게 오가며 세상이 시끄러울 때 송시열이 그들을 모아서 문중 땅에 농사를 짓게 하고 일부는 착호군으로 만들었고 가노처럼 사용하기도 하면서 여러 궂은일을 처리해 오고 있었다.


송시열을 비롯한 양반들이 비록 환향녀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는 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여 살 길을 마련해 주기도 했는데 전란으로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그들을 포용함으로써 큰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었다.


또한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양반들이 멍석말이도 하면서 상민들과 노비들을 직접적으로 착취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일부이고 대농의 경우 한 가문의 호노(戶奴)나 집사노(執事奴)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따로 있어 그들을 통해서 관리가 되고 있어 일종의 자치계(自治契) 같은 형태로 운영이 되었다.


그래서 노비들과 소작인들을 잘 관리한 양반들의 경우, 비록 고려시대의 호족 같은 정도의 위세는 떨치지는 못했지만, 개간 등을 통하여 체계적으로 조직된 가노들 집단을 수십 이상씩 부릴 수 있었고 임진왜란때 의병들이 활약한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고장군의 혁명군이 육지에서 세를 확산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함과 동시에 양반들을 쉽게 배제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고 송시열이 고장군을 설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영남 남인들에게 알렸다면 환향녀의 일이 널리 알려지는 것은 기정 사실이 아니었소이까?”


엇복이의 추궁에 송시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허나 고장군 그자가 환향녀의 아들인 것 또한 기정 사실이니 언젠가는 불거질 일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나중의 일이지 않소이까?

전란이 한창인데다 기근으로 먹을 것이 없는 이 때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나서지도 못하게 되지 않았소이까?”


이들은 환향녀의 자식들이 대부분이라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면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만들어져 이번 사안에 심각하게 반응했고 송시열도 그것을 잘 알기에 급히 달려와 조근조근 설득을 하고 있었다.


“그거야 금방 잊혀 질 것일세. 그리고 고장군 그자에게 비난이 갈 것이고···”


“지금 청주의 상황을 몰라서 하는 것입니까?”


“내 다 생각이 있다네.

내가 역도들과 협상을 할 것일세.”


엇복이가 코웃음을 쳤다.


“허! 그렇게 해 놓고 잘도 협상이 되겠습니다.”


“역도들도 이 배신자들을 넘겨준다 하면 대화에 응할 것일세.

그리고 지금은 전라도만 점령해서 아직까지 유지가 가능한 것이지 더 이상은 힘들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야.

이미 광주에도 젊은 유림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하네.

그리고 청나라와는 누가 갈 수 있을 것이며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해서 고장군도 지금까지 몇 번이고 조정과 협상을 시도하려 하지 않았던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고장군이 협상을 받아들인다면 저를 요구하겠지요.

시작 전에 이미 넘겨줄 계획일 수도 있고···”


엇복이가 의혹을 제기하자 송시열이 답답하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그럴 것이라면 청주의 군사들을 보내서 잡아들이게 하면 되지 내가 굳이 여기에 올 필요가 없지 않았겠나?

협상이 성사되면 내 신변을 보호해 줄 그대와 같은 사람이 내게는 꼭 필요하다네.

그리고 이 협상은 남인들 몰래 해야 하는 것이라 가노들을 쓸 수도 없으니 저 자들을 끌고 가 줄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고.”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게 뭔가?”


“우선 바리데기를 우리에게 돌려주십시오.”


“알겠네. 건리덕(件里德)을 돌려보내라는 서찰을 써 주겠네.”


건리덕은 바리데기를 음차해서 쓴 이름으로 서로 같은 이름이지만 양반인 송시열은 건리덕으로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하였다.


“저 자들은 포박해서 광에 가두고 대감님은 뒷방에 잘 모시어라!”


잠시 뒤 송시열이 써준 서찰을 가지고 마을 사람 세 명이 가노 한 명과 함께 청주로 길을 떠났고 사흘 뒤 바리데기를 데리고 돌아왔다.


“자, 그럼 저 제주 놈들을 끌고 회덕으로 가도록 하세.”


송시열이 이제 되었다는 듯이 말하자 엇복이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만 가도록 하겠습니다.”


“뭐라?!”


“대감께서 역도들과 협상이 가능하다면 저도 협상이 가능하겠지요.”


“자기를 쏴 죽이려던 놈을 저들이 무얼 믿고 협상에 응한다는 말인가?”


“저도 선물을 가지고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선물이라니···.”


“자기를 쏴 죽이라 사주하던 놈이 있지요.”


“네 이놈! 컥!”


송시열 뒤에 서있던 사내가 송시열의 뒤통수를 때려 기절시켰다.


* * *


장군이 옥천의 금강변 화인나루 쪽의 작은 산채로 가서 두 팔을 뒤로 해서 묶여 있는 엇복이를 마주했다.


‘삼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고···. 덩치는 그리 크지 않는데··· 눈빛이 살아있구나.’


이자 덕분에 죽을 뻔했지만 또한 그 덕분에 좀 더 진심을 다해 세상을 바꿔볼 결심이 섰으니 어쩌면 운명적인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었다.


“마침내 보게 되었습니다.”


장군이 처음부터 깍듯하게 대하자 엇복이 약간 당황해하지만 여전히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소이다.”


“덕분에 고생 좀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상전을 배신하고 잡아오게 된 것입니까?”


“우리 대부분은 상민들로 송시열이 상전이라고 할 수는 없소이다.

나야 착호군으로 관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고 가문의 온갖 궂은 일을 해주고 있었으니 서로 주고받는 관계인 것이요.”


“그래도 얼마 전까지 함께 하다 갑자기 이렇게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닙니까?”


“지난 가을에 송시열 그자가 갑자기 우리 바리데기를 겁탈하고 데려가기 전까지는 그리 나쁘지 않았소.”


바리데기는 엇복이의 터울이 있는 누이동생이 었는데 지난 가을 큰 태풍이 몰아친 다음날 송시열이 겁탈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자기 집으로 데려가 버렸고 여러 번 돌려달라 했지만 보내주지 않았다 하였다.


“그대를 저격하게 된 것도 그것 때문이었소이다.

바리데기를 돌려보내 주는 것을 조건으로 하게 된 것인데 그 뒤로도 말로만 그러겠다고 하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소.

이번에도 자신을 따라왔던 제주 놈들을 잡아서 넘기려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굳히게 되었소.”


‘말하는 것으로 봐서 거짓을 고하는 것 같지는 않군.

뭐, 이미 오면서 진모리에게 전해 들었던 이야기이니 더이상 추궁할 필요도 없겠고···’


장군이 잡생각을 하면서 듣고 있는 중에 엇복이가 송시열을 잡았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자를 자루에 담고는 묶어서 지게위에 발을 놓고는 그 위에 얹고는 또 그 위에 푸성귀를 올리고···”


“그 이야기는 이미 전해 들었으니 되었습니다.”


지루한 로드무비가 되어가려고 하자 장군이 제지를 시키고 뒤에 있는 진모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좀 불편해 보이는데 묶은 것을 풀어주죠.”


‘영화에서 보면 이렇게 하면 확실히 우리편이 되던데···’


장군의 이곳에서 해보고 싶던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해보려고 하자 함께 와 있던 운부가 기겁을 하며 말했다.


“안됩니다. 저자가 어떤 자인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하. 뭐 그렇기는 해도, 저 혼자만 있어도 저 자가 맨손으로 어찌해 볼 정도는 아닙니다.

지운학 스승님도 이제는 그러지 못하실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습니다.

저자가 여기로 오는 중에 단도만 가지고도 군관 둘을 해치웠다 했습니다.”


“군관 한명이랑 군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방심하는 틈을 타 기습을 한 것이었고요.”


장군의 말에 엇복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운부가 말했다.


“어쨌든 둘 아닙니까?”


“그래도 저렇게 계속 묶여 있으면 대화가 잘 되겠습니까?

그럼 손을 앞으로 해서 묶으면 어떻겠습니까?”


장군의 타협안에 진모리가 말했다.


“저도 있고 하니 그 정도는 괜찮겠습니다.”


운부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포승줄을 풀고 손만 앞으로 해서 다시 묶었다.


“좀 덜 불편해졌습니까?”


포승줄을 풀어주어서 그런지 엇복이가 말투가 좀 달라져서 대답하였다.


“원래도 괜찮긴 한데··· 지금이 훨씬 낫습니다. 고맙소.”


‘이게 먹히네··· 그럼, 이제 원래 물어보려던 것을 물어 볼까나.’


"다행입니다. 궁금한 것이이 있어서 몇 가지 물어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전주에서 나를 저격할 때 거리가 백오십보가 넘었는데, 그때 조준을 해서 맞춘 겁니까?”


“그 정도 거리에서는 머리를 맞추기는 힘들고 가슴정도면 조준해서 맞출 수 있습니다.”


“오호! 그 거리를 조준을 해서 맞출 수 있다고요?”


“그 총을 사용하면 바람이 많이 안 불면 이백보 까지도 가능합니다.

다른 조총은 관리가 잘 된 총이라도 백이십보 정도밖에는 안됩니다.”


‘대단한데··· 조총으로 백 보 밖의 큰 표적을 맞추는 정도는 많이들 하지만 백 보가 생각보다 먼 거리라 백 보 밖의 가슴 크기 과녘은 쉽지 않는 법인데···’


장군이 여기와서 한 보가 한 걸음이 아니고 두걸음이라는 것을 알고 가늠해 보니 백 보는 백미터가 넘어 보였고 이 당시의 총으로 조준 사격은 불가능하지만 원거리 화망 형성은 가능한 거리였다.


해서 총알을 아껴야 하거나 산개해서 오는 적을 공격하는 경우는 오십보 정도에서 사격을 시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오십보백보라는 고사에서의 오십보 도망가는 것과 백보 도망가는 것은 사실 천지 차이인 것이었다.


장군이 자신을 저격했던 것은 이미 잊고 새로운 인재 확보에 대한 기대에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총열을 새로 만들어 붙였던데 안에 있는 가는 홈 같은 것은 일부러 그런 겁니까?”


엇복이가 버려두고 간 총을 가져다가 연구를 해 보았는데 안쪽에 불규칙적으로 파진 홈이 있어 혹시 특별한 기술이 있나 궁금했었다.


“아, 총열을 만들고 새로 구멍을 뚫는데 힘을 잘못 주면 그렇게 홈 같은 게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다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쏴 봤더니 다른 것 보다 훨씬 잘 나가서 그냥 쓰고 있었습니다.”


이때의 총열은 주조를 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철판을 말아서 두드려 붙여서 만들기 때문에 만들어지고 나서는 안쪽이 고르지 않으니 드릴 같은 것으로 안에 구멍을 고르는 작업이 필요 하였다.


‘역시 일부러 판 것 치고는 너무 대충 만들어져 있었더니··· 우연의 산물이로군.

그렇다면 대량생산은 불가능 하겠네.’


장군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른 질문을 하였다.


“그럼 한번 장전해서 쏠 때 얼마나 걸립니까? 하나, 둘, 셋, 넷, 이렇게 세어서요.”


엇복이가 묶인 손을 들어 움직이며 가늠해 보더니 대답하였다.


“열다섯 정도면 쏠 수 있습니다. 조준안하고 바로 쏠 거라 총알을 때려 박지 않아도 되면 열둘까지도 가능하고요.”


장군이 쾌재를 불렀다.


‘저 정도면 일분에 네다섯번은 쏠 수 있겠는데. 지금은 세번 쏘면 아주 잘 한다고 하는데···’


“혹시 처음 쏘는 사람들을 가르치면 그 정도로 쏠 수 있을까요?”


“음··· 그 정도는 힘듭니다만··· 스물 정도에 한번 쏘게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착호군은 모두 그 정도는 다 합니다.”


장군이 화력 조선의 꿈에 젖어 엇복이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정도라도 아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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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한양 가는 길목 24.04.22 40 1 19쪽
95 양덕자(洋德子) 24.04.12 57 2 20쪽
94 예수회 선교사 24.04.02 66 3 18쪽
93 제1차 교육자 대회 24.04.02 61 0 24쪽
92 송시열과 독대하다 24.03.12 118 1 21쪽
91 그녀는 예뻤다 +2 24.03.03 107 2 16쪽
90 미 투 24.02.22 107 2 19쪽
89 월미도 해전 2 24.02.15 109 2 20쪽
88 월미도 해전 1 24.02.09 121 2 22쪽
87 거북선이 출동하면 어떨까? 24.01.28 137 3 22쪽
86 척산 전투(feat.신기전) 2 24.01.22 133 2 18쪽
85 척산 전투(feat.신기전) 1 24.01.18 144 1 21쪽
» 화천대유(火天大有) 24.01.08 153 4 21쪽
83 이사부의 사자 24.01.01 149 4 21쪽
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8 3 21쪽
80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10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78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90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9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8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4 13 14쪽
74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2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7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4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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