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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4.22 10:13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110,766
추천수 :
2,324
글자수 :
792,371

작성
22.11.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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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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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9쪽

부산진과 진주성

DUMMY

“첨사 나리,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살겠습니다.

우리가 역도들과 내통했다니요.”


두모포 만호가 두들겨 맞은 볼기짝을 연신 만지며 하는 말에 부산첨사가 대답했다.


“어쩌겠는가? 우리가 배를 빼앗긴 것은 사실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날 아침에 수군들을 정리하고 육군으로 편제를 하라는 명을 받았다며 경상 좌병사가 내려왔고 부산첨사와 두모포 만호가 역도들에게 배를 빼앗긴 것을 물어 볼기짝을 치고는 역도들과 내통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며 잡아 가두었다.


이곳 감옥은 왜관 관련한 문제들이 자주 발생해서인지 규모가 꽤 큰 편이었는데 남녀 옥사가 따로 분리되어 실내에도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지키는 군졸들은 옥사 밖에 있어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였다.


“동래부사께 탄원을 넣어보면 어떻겠습니까?”


“동래부사가 아무리 요직이라고 하나 좌병사 보다가 품계도 낮은 데다가 이 일은 군사에 관계된 일이니 잘못하다가 일이 더 커질 수 있네.”


“이대로 여기 군사들을 모두 데려가고 나면 왜놈들이 날뛰면 어떻게 합니까?

애당초 좌수사께서 우리를 제주로 데려가지 않은 것도 왜관을 관리해야 하니 그러하신 것 아닙니까?”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나도 답답하구먼.”


“왜놈들이 왜관을 더 큰 곳으로 옮겨달라고 아우성인데 우리를 좌병영으로 압송하고 부산진을 폐쇄하면 왜놈들이 난리라도 일으키면 어쩝니까?”


“그래도 군사들은 모두 동래로 데려가서 동래부사가 지휘하게 한다 하지 않던가?”


“왜놈들은 바로 옆에서 두고 감시를 해야 합니다.

틈을 주면 바로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 왜관에 상주하는 자들이 오백이 넘고 그 중에 칼을 쓸 줄 아는 자들이 이백 가까이 됩니다.

그 놈들이 부산진성을 점령하고 농성을 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허긴 왜놈들은 자네가 잘 알기는 허지.”


두모포 만호 김원상은 제주에서 군관으로 복무한 적이 있었는데 부모의 상을 당해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중에 풍랑을 만나 일본에 표류를 하였던 적이 있어 왜의 사정을 잘 알았다.


두모포 만호가 목소리를 낮추서 말했다.


“차라리 제주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부산첨사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 보며 말했다.


"조용히 말하게. 누가 듣겠네."


"저는 이곳이 다시 왜놈들에게 짓밟히는 것이 싫습니다.

첨사께서 싫으시다면 저 혼자서라도 하겠습니다."


부산 첨사 이연정이 대답없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


“음, 제주사람들이 온다면 어쩌면 왜놈들이 날뛰는 것은 막을 수 있겠군.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연락을 할 것이며 그자들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겠는가?

이곳을 점령할 수 있음에도 그냥 돌아가지 않았던가?"


“이곳의 상인들이 이미 그쪽 사람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인들을 통해서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제가 제주에서 군관으로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자들이 한번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통제영을 치고 난 뒤 좌수영의 소속 전선들을 나포하기 전에 두모포 만호에게 사람을 보내어 함께 할 것을 제안했었다.


이곳은 왜관이 있어 왜놈들까지 다루어야 하니 점령하는 것이 부담이 되어 먼저 두모포 만호를 꾀어낸 다음 어떻게 해 볼 요량이었는데 여의치 않았고 그냥 전선들만 불태우는 것으로 물러났었다.


“뭐라? 그걸 보고도 안하고···”


“그때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으니 굳이 말씀드릴 필요가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자들이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고 가더군요.”


“그래서 그쪽에 연락이 되면 그 다음은 어쩔 것이고?”


“좌병사가 내일 낮에 우리를 좌병영으로 압송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제주 사람들이 여기서 두 시진 거리의 섬에 있다 했습니다.

그리고 수시로 이곳 근처를 오가며 감시도 하고 있고요.

오늘 연락이 되면 내일 새벽이면 들어와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사이 우리는 새벽에 몰래 이곳을 빠져나가 군사를 일으키면 됩니다.

우리가 데리고 있던 군사들은 모두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좌병사가 데려온 군사가 삼백을 넘어서 쉽지 않을 것일세.”


“그러니 제주사람들이 필요한 것이지요.

우리가 소란을 피우고 있는 사이에 그자들이 들어온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동래 부사가 달려오지 않겠나?”


“동래부사는 첨사께서 설득을 해 주셔야지요.”


부산첨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네. 연락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뒤에 옥바라지를 하러 올 것입니다.

좌병사 그 탐학한 자가 온다고 할 때부터 이럴 줄 알고 방법을 생각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얼마 후, 저녁시간이 되어 옥 밖으로 죄수들의 가족들이 몰려 들었다.


이 시기에는 옥사에 갇히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그 가족들이 장만을 해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옥밖으로 뚫린 작은 창으로 음식이 들어오자 두모포 만호가 입고 있던 옷 소매를 조금 찢은 다음 음식으로 나온 찐 오징어에서 먹물을 덜어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에 찍어서 글자를 몇 자 적어서 밥그릇 안에 집어넣어 내다 보냈다.


다음날 새벽, 두모포 만호가 몰래 창문 쪽으로 다가가 창틀을 뜯어 내었다.


창틀이 이미 뜯겨져 있었던 듯 밑에 박힌 가로막대를 제거하자 창틀이 통째로 뽑혀 나왔고 부산첨사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알았나?”


“제가 이 동네 출신 아니겠습니까?

어릴 때부터 좀 험하게 자라온지라 어지간한 곳은 모르는 곳이 없습지요.”


“이래서 상피제(相避制, 관련된 고을을 피해서 관리를 파견하는 것)가 필요한 것이구만.”


원래 연관이 있는 곳에 부임을 하는 것을 금하였는데 김원상의 경우는 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왜놈들이 왜관을 넓은 곳으로 옮겨 달라고 수시로 도발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 특별한 경우로 두모포 만호로 임명이 되었다.


“자, 자, 너희들 둘이 먼저 나가거라.”


옥사 안에 함께 갇혀 있던 군관들 중 날랜 자들 부터 조용히 내보냈다.


“어서 빠져나가시지요.”


날랜 자들이 밖으로 나가자 이번에는 부산 첨사가 빠져나갔다.


옥사에 붙은 창문은 좀 높은 편이고 아래위로는 좁고 옆으로 길쭉해서 빠져나가기 쉽지 않았는데 덩치가 작은 자들은 그래도 어렵지 않게 빠져나갈 수 있었고 부산첨사는 덩치가 좀 크긴 했지만 먼저 나간 자들이 밖에서 잡아 주어 잘 나갈 수 있었다.


옥사 밖에는 둥글게 담장이 높게 쳐져 있었는데 제일 밑에 세명이 서로의 어깨를 잡고 서고 그 위에 두 명이 올라가 서게 한 다음, 날랜 군관 세명을 차례로 담을 넘어가게 하였다.


잠시 후 세명이 문밖에서 졸고 있던 군졸들을 제압하고 밖에서만 열 수 있는 담장 문을 열었고 옥사의 군졸들도 제압이 되었다.


“너희들은 모두 자유이니 알아서 갈 길을 가거라.”


옥사에 함께 갇혀 있던 죄수들도 몇 명 함께 빠져나왔는데 모두 동문쪽으로 달아났고 두모포 만호와 부산 첨사는 군관들과 함께 군사들이 있는 중영으로 향했다.


“옥문이 열렸다!”


“죄인들이 저쪽으로 도망간다. 잡아라!”


동문 쪽으로 가던 자들이 발각된 것인지, 기절해 있던 군졸들이 깨어나 소리 친 것인지 부산진성 안에 소란이 일었고 잠시 후 중영 건물 옆 창고에 불길이 치솟았다.


불길을 신호로 연락을 받고 절영도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혁명군의 판옥선 세척과 병선들이 도착해서 군사들 수백명이 쏟아져 나왔고 포구 쪽의 서문이 안쪽에서 열렸고 부산진성이 점령 되었다.


원래 처음에는 동래지역 상인들과 거래를 많이 하고 있던 낙원 상단주 김만수가 경상 좌수사를 잘 설득해서 어떻게 해 보려 했는데 제주를 공격하라는 어명이 급박하게 내려오는 바람에 경상 좌수사가 제주를 공격하러 떠나게 되자 포기를 하고 있었다.


그 뒤에 두모포 만호를 설득해 보려다 실패하고 나서는 진주 남쪽 지역을 점령하는데 집중하고 이곳은 판옥선을 이끌고 오가면서 시위를 하는 정도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전날 밤에 동래상인 조필만이 연락을 취해왔고 세작으로 보내 놓은 용초도 상인에게서도 같은 정보가 들어오자 급히 가덕도에 정박해 있던 판옥선 세척과 병선들을 동원하여 부산진성으로 향하였고 절영도 뒷편에 숨어 있다가 부산진성에 불길이 오르자 바로 부산포구로 상륙한 것이었다.


곧 경상 좌병사 이간이 붙잡혀 왔고 군사들도 제압되었고 나중에 동래 부사가 군사들 오백을 이끌고 달려왔으나 부산 첨사 이연정이 설득에 나섰고 왜관을 잘 제어해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동래부사 정석이 결국 군사를 물리고 돌아갔다.


* * *


“오랜만에 뱃속에 술이 들어가니 뜨뜻한 것이 아주 좋구나. ”


진주성 남강변의 촉석루에 풍악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정에서 역도들을 토벌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고 경상우도쪽에도 역도들의 무리들이 기웃거리기 시작하자 경상 우병영에서도 손을 놓을 수 없어 토벌군을 준비하였고 출정을 앞두고 있었다.


출정 전에 경상 우도의 유림들이 나서서 조촐한 잔치를 준비하여 군사들을 위로를 한다고 하여 이곳 촉석루에서 아침나절부터 앞풀이로 풍물소리가 울리고 음식과 술이 속속 차려지고 있었다.


우병사 정영이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나는 저 응막쾡쾡 시끄러운 풍물소리 보다 울림이 있는 가야금이나 간드러지는 아쟁소리가 더 좋은 것 같소이다.”


정영의 말에 곽세건이 풍물꾼들을 내다 보내고는 말했다.


“우병사 대감께서 봄이 되니 심금을 울리는 소리가 끌리시는가 보오이다.

기생들이 제대로 준비를 하는 동안 논개의 얼이 흐르는 남강변에 꽃들이 만발했으니 잠시 경치라도 구경하시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우병사가 옆에 앉은 기생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논갠지 노리갠지 그건 잘 모르겠고 오늘은 이 야들야들한 기생을 옆에 끼고서 흠뻑 취하고 싶소이다. 어허허”


갑자기 옆에 앉은 관기들, 음식을 나르고 있던 관노들 그리고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시는 것이 느껴지자 우병사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내 그만 날이 너무 좋아 그만. 어허 참.”


여전히 정영의 얼굴에는 내가 뭘 어쨌느냐는 듯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때까지는 논개의 의기를 기리는 사당이 건립되거나 공식적으로 국가에서 포상이 내려진 적이 없었고 일개 관기를 표창해야 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양반들도 많았다.


하지만 천대받던 기녀의 몸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성심을 기록한 유몽인인의 어우야담등도 나왔고, 순국한 바위에 義巖(의암)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기도 하는 등 많이 알려져 있었고 진주에 부임하는 목사나 우병사 등 관리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라고 해도 지방의 풍속을 함부로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지라 분위기가 영 어색해지자 곽세건이 급히 나서서 진정을 시켰다.


“우병사 대감께서 내일 역도들을 치러 출정하시느라 긴장이 되어서 그런 것이니 다들 이해하시오.

옛날 이곳에서 왜장을 잡아 죽였듯이 오늘 또한 뜻깊은 날이 아니던가?”


우병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치. 그렇치. 내일 출정을 하기전에 병사들의 회포를 풀게 하는 것이니 어찌 뜻깊지 않겠소.

기근으로 힘든 시기에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어 고맙소이다.”


“우병사 대감께서 매번 이렇게 이 늙은이의 사정을 봐주시는데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소이까?”


곽세건이 고개를 돌려 밖에 있는 가노에게 명했다.


“여봐라. 내일 출정할 군관들에게도 술과 음식을 아낌없이 갖다 주거라.

그리고 잔치준비가 다 되었으면 모두 들어오라 일러라.”


“예이~.”


“무위자께서 우병영의 군관들에게까지 신경을 써주니 참으로 감읍한 일이오이다.

내 나중에 중앙으로 복귀하면 갚을 날이 있을 것이오.”


“말씀만이라도 고맙소이다.

우리 유림들도 역도들이 하루라도 빨리 토벌되어야 좋은 것이니 너무 마음쓰지 않으셔도 되오이다.”


“이번에 군사들을 동원하는 것도 많이 도움을 주시지 않으셨소.

기근으로 떠도는 유랑민들이 많아 군사들이 도통 모이지 않았는데 유림들이 나서서 가노들을 선뜻 내어놓으니 아주 한시름 놓았소이다.”


“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리하게 한 것이니 괘념치 마시오.

다들 농사일로 힘 깨나 쓰는 자들이니 많이 도움이 될 것이외다.”


“어허, 그런 것이오? 아하하하”


앞에 앉은 진주목사 김덕원이 나서서 한마디 하였다.


“이런 좋은 자리에 시가 한수 없어서 되겠습니까?

제가 비록 운도 잘 모르고 율은 더더욱 모르나 한시를 한 수 지어 올리겠습니다.”


“암, 암, 이런 때에 시가 없어서야 되겠나.”


김덕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남강은 수없이 흐르고 흘렀으나 (남강만경류南江萬更流)

그날의 나라를 위한 충절은 (왕위국충절往爲國忠節)

바위에 굳건히 새겨져 있네 (각의암완연刻義巖宛然)

그 바위에 우뚝 선 그 여인 (기암립기녀其巖立其女)

왜장을 껴안고 강에 몸을 던졌으니 (포왜장투강抱倭將投江)

백명의 장정보다 낫지 아니한가? (불사백장정不似百壯丁)

그날의 의기가 오늘 다시 살아나니 (금활기의기今活其意氣)

바야흐로 새봄이 오는 것과 같구나 (여방신춘래如方新春來)”


곽세건이 시의 내용을 음미하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고 정영이 큰 소리로 치하를 하였다.


“오호호, 내 비록 시경은 첫 장만 넘기고 던져버렸지만 뭔가 가슴에 확 와 닿는 시였네.

어서 이리와 내 술 한잔 받게나.”


김덕원이 쑥스러워하며 술잔을 받았다.


“시가 대구(對句)도 맞지 않고 졸렬합니다. 괜히 누를 끼친 것이 아닌지 심려스럽습니다.”


곽세건도 한마디 하였다.


“한시라는 것이 대구와 운율을 중시하나 운율이라는 것이 조선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시를 짓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나?”


“암요, 암요, 맞는 말씀입니다."


옆에 있던 이방이 나서서 맞장구를 쳤고 다들 훌륭한 시라며 치켜 세웠다.


"우리 같은 범인들은 한줄이라도 짓기 어려운 게 한시가 아니겠습니까?”


"논개의 의연한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소이다."


모두들 웃고 떠드느라 곽세건과 김덕원이 서로 살짝 눈빛을 주고받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하였다.


그렇게 웃고 떠들며 한식경 정도가 지난 후, 밖에 나갔던 가노 우두머리가 들어와서 말했다.


“지금 밖에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바로 기생들을 들이겠습니다.”


“그래. 오늘 잔치를 크게 한번 벌려 보자꾸나.”


곧 촉석루 위로 기생들 수십명이 가야금을 들고 얼굴을 얇은 천으로 가리고 들어왔다.


기생이 들어오자 정영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제서야 술맛이 좀 돌겠구나.

뭘 부끄럽다고 얼굴을 가리고 들어온게냐?

어디 천을 들추고 얼굴을 한번 보여 보거라."


정영이 달려 내려갈 기세로 말하자 곽세건이 말리고 나섰다.


"우병사께서는 뭘 그리 급하시오. 곧 얼굴을 공개할 것이니 잠시만 있어 보시오."


곽세건이 밑으로 내려가 기생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너희들은 저쪽으로 가서 우병사 대감과 별장들과 군관들 뒤쪽으로 가거라.

너희들은 앞에 있는 진주목사와 아전들 뒤쪽으로 가거라.”


기생들이 우루루 촉석루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자 곽세건이 큰 소리로 외쳤다.


“잔치를 시작한다!”


갑자기 기생들이 가야금 아래에 숨겨 놓은 단도를 꺼내 들고 각자 맡은 사람들 뒤쪽에 다가가 칼을 들이대고 섰다.


“우병사 대감, 오늘 준비한 잔치가 어떻소이까?”


우병사가 깜짝 놀랐으나 자기한테는 칼이 들이대지지 않자 장난을 친 줄 알고 말했다.


“아니 농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오?”


곽세건이 큰 소리로 꾸짓었다.


“그동안 그대가 이곳에 와서 한 짓을 생각 해 보거라.

군포(軍布)를 온갖 트집을 잡아 퇴짜를 놓고 좋은 것은 받아서 네놈 집사람들을 통해서 팔아먹고 군사들에게는 못쓸 것만 주니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지 않더냐?

네놈은 뒤에 있는 기생 문순천이 잘 뫼실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뭐! 뭣이라?!”


우병사가 뭐라고 하는 사이 뒤에 있던 문순천이 우병사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병사께서는 저와 함께 촉석루를 뛰어내리시지요.”


우병사가 문순천이 자기를 안고 남강에 뛰어내린다는 말에 깜짝 놀라서 급하게 몸부림을 치며 외쳤다.


“네 이놈! 이것 놓아라!”


문순천은 손이 솥두껑만하고 호랑이라도 때려 잡을 만한 장사 였는지라 비록 무과 출신인 우병사라도 꼼짝달싹을 못했다.


“어허, 농 좀 한 것 가지고 엄살이 너무 지나치구만. 병마절도사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담이 약해서야~ 쯧.”


곽세건의 말에 겨우 한숨을 돌린 우병사가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네 이놈! 지금 이것이 뭘 하는 것이냐?

모두들 칼을 버리고 물러서지 못할까?

곧 우병영의 군사들이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우병영의 군사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이미 군관들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우리 가노들이 모두 잡아 들였을 것이오.

내 쓸모가 많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소이까?”


“네놈들이 역적들과 한패였던 것이냐?!”


“이제 상황 판단이 되셨소?

이제 그만 혐의를 인정하고 오라를 받으시오.

그렇게 버티다가 허리 부러질 것 같소만···”


“무슨 혐의를 말하는 것이냐? 나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때 갑자기 김덕원이 품속에 있던 책자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에 그 증좌가 있습니다.

제가 비록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았으나 군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확인해 보니 진주목사가 공석인 틈을 타 진주목의 군포에 손을 댄 것을 확인했습니다.

혼자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아전들을 족치면 구체적인 증좌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곽세건이 말했다.


“진주목사는 놓아주시오.”


진주목사의 뒤에서 단도를 겨누고 있던 특전대원이 칼을 거두고 물러섰다.


김덕원이 칼이 겨누어졌던 목을 쓸어 만지며 일어섰다.


몇달 전 부임한 진주목사 김덕원은 우병사 정영의 비리를 몰래 조사하다가 며칠 전 부터 분위기가 좀 이상한 것을 느끼고 무슨 일이 있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게 이날인지는 몰랐다가 곽세건이 하는 말을 듣고 눈치를 채었다.


그래서 시를 짓는다고 말을 하고는 넌지시 곽세건을 떠 보았는데 과연 반응이 있었고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고 품속에 간직하고 있던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적은 책자 꺼내어 비리를 고발하였다.


“모두 포박하여 끌고가라!”


기생으로 분장해 있던 특전대원들이 바로 우병사와 아전들을 포박하여 끌고 나갔다.


우병영에서도 특전대원과 우도 유림의 가노들이 군관급들을 제압 완료하였고 각 군현에서 동원되어 올라왔던 군사들은 오히려 반겼다.


진주성이 평정되자 다른 군현들도 접수를 시작하였는데 군사들을 병영에 올려 보내고 남은 군사들이 별로 없었던 터라 큰 저항 없이 평정이 되었고 고령과 거창 이남의 경상 우도 지역이 모두 장악되었다.


경상 우도 지역이 장악이 되자 순천과 광양쪽만 남았었는데 순천 부사는 자기들만 고립무원상태에서 군량도 얼마 남지 않아 더이상 버틸 수가 없어지자 결국 항복해 왔다.


작가의말

이태원 참사에 조의를 표합니다.


위에 나온 문순천은 실제로 호랑이를 때려 잡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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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척산 전투(feat.신기전) 1 24.01.18 144 1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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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이사부의 사자 24.01.01 149 4 21쪽
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8 3 21쪽
80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10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78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90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8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7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4 13 14쪽
74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1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7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09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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