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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4.22 10:13
연재수 :
96 회
조회수 :
110,761
추천수 :
2,324
글자수 :
792,371

작성
23.12.03 09:35
조회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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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21쪽

온새미로 돌아오다.

DUMMY

장군이 금산사 법회를 했던 그날 밤은 금산사의 북동쪽에 있는 심원암에서 머물렀었다.


장군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자 다음날을 위해서 편히 쉬게 해주려는 금산사 주지스님의 배려였다.


금산사에서 동쪽계곡을 따라 들어가다가 다시 북쪽 산등성이를 타고 한참을 오르니 삼층 석탑과 함께 요사채와 작은 법당이 나왔고 행자승이 맞이했다.


“주지스님이 말씀하신 대로 청소를 다 해 놓았습니다. 곧 이부자리를 봐 드릴 테니 이곳 요사채에서 주무시면 될 것입니다.”


장군이 합장을 하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동안 저는 잠시 탑과 법당을 둘러보고 있겠습니다.”


특전대원들에게 주변의 정찰을 지시하고 있는 지은남을 남겨 두고 장군이 혼자 석탑을 돌아 법당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법당안을 들어서자 노스님이 앉아 있다가 장군을 돌아다보았다.


‘어, 암자에는 아무도 없을 거라 했는데···

이왕 들어온 것 그냥 나갈 수도 없고···

그나 저나 암자에 딸린 법당이라 그런지 너무 비좁군.’


장군이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말했다.


“큰스님께서 계신 지 모르고 실례를 했습니다. 자리를 조금 비켜 주시면 인사 여쭙겠습니다.”


큰스님이 장군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본인 마음자리도 모르는 놈이 무슨 자리 타령인고?”


“네? 마음자리라 하시면···”


장군이 얼떨결에 우물쭈물 물어오자 큰 스님이 호통을 쳤다.


“네놈 욕심이 끝없이 맴도는 그 자리가 바로 마음자리니라!

그 자리를 잘 찾아야 할 것이다.”


‘어이쿠, 깜짝 놀랐네. 이게 선문답 그런건가?’


“잘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음자리를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무간지옥으로 떨어지지.”


장군이 멍하니 대답을 못하고 있자 큰스님이 벌떡 일어나면서 한마디 한 뒤 혀를 끌끌 차면서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제는 인정할 때도 되었건만··· ㅉㅉ”


* * *


장군이 정신이 번쩍 들어 마음을 다 잡고 생각이 들끓고 있는 곳을 들여다보았다.


‘저것은 나의 본성이 아니라 탐욕이 들끓고 있는 것이었구나.

아! 돌아 가고자 하는 나의 욕망때문에 일을 그르칠 뻔하였다.

큰스님의 호통이 아니었으면 정말로 무간지옥으로 떨어졌겠군.’


장군이 마음을 비우고 솟구쳐 나오는 생각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다스리기를 한참이 지나자 붉게 물들었던 오로라가 조금씩 맑아졌다.


‘지금의 상태는 참선을 통해서 도달하는 경지와 같다고 볼 수 있겠군.

그리고 생성되고 소멸하는 자아를 없애면 윤회를 끊고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서 미래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고 그것이 나의 의지이다.’


장군은 자신의 의지를 명확히 했다.


‘나로 인해 창조된 세계라면 그 세계에 대해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지.

그렇다고 무작정 돌아가겠다는 생각만으로는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겠지.’


결국은 본질에 집중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지금의 상태는 두가지로 보여 진다.

하나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하기를 반복하여 나타나는 자아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아가 그로부터 생성되어지고 소멸되어서도 변함없이 존재하는 순수의식의 상태이다.

순수의식의 상태는 변화가 없고 스스로 존재하는 실존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나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같은 것이라고 하겠군.’


장군이 관(觀)한 바로는 실존의 상태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전지(全知)한 존재인데 그 자체로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자아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내가 미래를 본 것처럼 자아의 상태에서 생각을 일으킴으로 순수의식의 정보를 알 수 있겠지.

하지만 그냥 돌아가야 하겠다는 집착으로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으니···’


깊은 삼매 끝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질문이 잘못된 것이었고 접근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어!

하나님은 기도에 답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고, 자아와 순수의식이 둘이 아니고 본질은 하나인 것을!’


마침내 주위에 보라색 오로라가 생겨나는가 싶더니 보다 깊은 근원으로 이끌어진 장군이 탄식을 하였다.


‘아! 이래서 부처님께서 말로 설명이 안된다고 한 것이었구나.’


이 세계는 모든 입자들의 위치와 상태 등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 무한의 데이터(정보)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데이터로부터 시작되어 파동이 발생하고 파동이 실체화되어 입자가 만들어지는 이치였고 미시의 세계에서의 현상은 거시의 차원에서도 같은 원리로 우주적인 규모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한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마치 거미줄처럼 필라멘트 구조로 퍼져 나가는 것이 바로 우주가 만들어지는 원리인 것이고 장군이 다른 세계로 오게 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세계가 창조된 이치었다.


‘데이터에서 의지가 일어나 하나의 세계가 창조되고 그 세계는 다시 데이터로 이어지고 또 다른 의지가 생겨나서 다른 세계가 창조되는 구나.

마치 태초의 혼돈위에 말씀이 있고 빛이 생겨나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인가?’


장군이 조금씩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결국 이 세계는 기존 세계의 데이터 위에 나의 의지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세계인 것인가?

데이터라는 것은 이 세상의 본질이지만 그것을 실체화한 것은 의지인 것인데 그렇다고 다시 의지를 내는 것으로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니 그것은 방법이 아닐 것이다.’


문득 처음 순수의식에서 자아가 찰나에 생성되고 소멸하던 것을 떠올렸다.


‘저 데이터라는 것은 순수의식과 같은 것이고 생성되고 소멸하던 자아는 의지로 인해 새로운 세계가 생겨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데이터가 순수의식이고 세계는 자아와 같은 것이구나.

그리고 순수의식과 자아는 둘이 아니듯이 데이터와 생성된 세계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가 순수의식에서 생멸하는 자아를 통하여 투영된 미래를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순수의식을 통하여 미래가 중첩된 곳으로 연결이 가능할 것이다.’


장군이 마음을 정리하고 순수의식에 집중하면서 깊은 명상에 빠져 들었다.


“장군님, 저희들에게 돌아와 주십시오.”


“미륵께서는 깨어나서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처음에는 희미하게 들리던 것이 점점 크게 들리면서 다시 환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산사 주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장군이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장군이 이번에는 의지를 일으키지 않고 순수의식에서 자아를 관조하며 내면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았다.


“장군님, 저희들에게 돌아와 주십시오.”


“미륵께서는 깨어나서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마침내 사람들의 의지가 차원을 넘어 장군의 자아에 공명하기 시작하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돌아오기를 원하는 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의지가 장군의 자아에 충만해지자 강렬한 진동과 함께 그 의지에 이끌리는 듯하더니 환영이 지워지면서 문득 희미한 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이것은 내 귀에 들리는 소리인 것인가?’


그 소리가 점점 또렷해 지면서 손과 발의 감각이 돌아오고 높이 뻗은 나무기둥과 서까래 같은 것이 보이고 주변 사물들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군님이 깨어나셨다!”


옆에서 장군의 상태를 보고 있던 의원이 소리쳤고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장군이 눈을 뜨고는 낮고 쉰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는 어디이고 얼마나 지났습니까?”


“이곳은 금산사 미륵전이고 쓰러지신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전라감영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인가?’


장군이 바로 깨어날 기미가 안보이자 보안 문제도 있으니 어수선한 전주 관아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마침내 돌아왔구나.’


“일어나고 싶습니다.”


장군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의원이 급히 말렸다.


“너무 급히 일어나면 탈 날 수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괜찮습니다. 일으켜 주십시오.”


사람들이 장군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커어억 엌 엌!”


장군이 일어나 앉으면서 가슴을 부여잡고 괴로워하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했다.


“장군님, 괜찮습니까?”


“허어엌 커엌! 쿨럭!”


장군이 시커먼 핏덩이를 하나 토해 내었다.


‘이것 때문에 살아나지 못했던 것인가?’


핏덩이 하나를 토해내고 나자 답답했던 가슴이 뚫린 듯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옆에서 내미는 물로 입을 헹구고 목을 축인 장군이 한결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부축해 주십시오.”


장군이 부축을 받아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미륵이시여!”


장군이 밖으로 나오자 미륵전 앞의 뜰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엎드리면서 절을 하였고, 잠시 후 미륵전 앞 연단 위에 앉아서 말 문을 열었다.


“태초에 온새미앎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전에 작업하던 교회중에 온새미로교회라는 데가 있었는데, 이렇게 쓰게 되는군.

언제나 변함없는 본연 그대로라는 온새미로의 의미가 이럴 때 알맞지.

데이터나 정보 이런 걸로는 뭔가 적절하지 않고···’


“그 온새미앎에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우주만물의 법칙과 일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니 유(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실체가 없으니 또한 무(無)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군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강렬했던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마침내 온새미앎에 의지가 발현하니 한 점에 중첩되어 있던 빛이 퍼져 나가며 실체가 없던 것이 실체가 생겼으며 만물이 창조되고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중첩되어 정해지지 않았던 것이 실체화되니 그것은 다시 온새미앎이라 할 수 있고 그로부터 새로운 의지가 생기면서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지고, 다시 또 다른 세계가 반복해서 만들어져서 마치 거미줄처럼 뻗어 나가니 온 우주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장군이 여기까지 말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골랐다.


“장군께서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보시고 오신 것이 아닙니까?”


“오! 듣고 보니 그러하군요.”


단상 옆에 있던 한 스님이 말하자 주위의 몇몇 스님들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말없이 경청하고 있었다.


장군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세계는 나의 의지로 만들어졌지만 모두가 평등한 새로운 세상이라는 씨앗을 남긴 것으로 나의 사명은 끝이 났었습니다.


하여 나의 자아는 더 이상의 구함이 없는 온새미앎의 순수의식속에서 생겨나고 없어지기를 반복하며 있었습니다.


생과 멸의 찰나의 순간 속에서 자아가 생 할 때마다 남겨진 형제들에 대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수하게 중첩된 미래는 모두 사명을 다한 나의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돌아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돌아와 달라는 형제들의 의지가 내게 닿았고 그 의지에 이끌리어 돌아왔습니다.


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이적이 행해진 것이 아닙니다.


수없이 많이 중첩된 미래 중에 단하나의 제가 돌아올 수 있는 미래가 형제들의 의지가 모여서 실체화된 것입니다.”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두 주먹을 힘있게 쥐며 말했다.


“제가 다시 이자리에 선 것은 모두 형제들의 염원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그 의지를 받들 것이니 형제들은 저를 믿고 끝까지 함께 합시다.


우리가 가는 길은 멀고 힘들 것이며 지금처럼 많은 피를 흘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바로 실현될 수가 없고 몇 세대가 지나 우리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이루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오늘의 일을 생각하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형제들이여!


모두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갑시다”


‘사이비가 될 지언정 분단으로 핵전쟁이 나는 것은 막아야지.’


장군의 낮지만 힘있는 외침에 군중들이 환호했다.


“장군님 만세!”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


* * *


췡췡췡췡

삘릴릴리~~


해주 수양산성 서쪽에 자리한 우이산의 서낭당 앞마당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원래 우이산은 황해도에서 구월산과 더불어 명산으로 조선 초기만해도 나라에서 관리하던 국사당이 있어 기우제 산신제 성황제를 주관하던 곳이었다.


세조에서 명종대를 지나면서 불교와 함께 단군 숭배와 무속 신앙 또한 극심한 탄압을 받아서 그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지만 여전히 고려 만신이라 하여 황해도 지역의 무격은 그 의미가 남달랐다.


워어이 워어이


마당에서는 애진이 소나무 가지를 들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춤을 추다가 뒤로 자빠질 듯이 몸을 젖히며 소리를 내질렀다.


이날의 굿은 내림굿으로 신어머니인 탄실의 주관하에 신딸 애진이 신을 몸에 받는 강신무를 행하는 중이었다.


“신을 받아 보아라!”


만신 탄실이 크게 소리치자 애진이 격렬하게 춤을 추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제단 앞에 걸려있는 긴 무명으로 된 산신다리 앞에 엎어졌다.


“무슨 신명을 모시고 드는고?”


“일월성신을 먼저 모시고 듭니다.”


“그러면 본색을 찾아 보아라.”


애진이 마루 위에 올라와 뒤에 해, 초승달, 별 등이 양각되어 있는 동경(청동거울)인 일월명두를 들고 춤을 추었다.


“솟아 일어나라!”


애진이 소나무 가지에 홍색치마와 노랑저고리입고 남쾌자를 입힌 일월대의 머리 부분에 일월명두를 매달아 놓고는 몸을 뒤로 젓혔다 일어나면서 절하기를 사방에 반복하였다.


“이번에는 무슨 신이 들었는고?”


애진이 다시 마당에 내려오자 만신이 다시 물었고 한참 동안 여러 신들이 들었다 나오기를 반복하였다.


“오방신장이 하강할 때 장군은 어떤 장군이 들었는가?”


“최영장군이 들었습니다.”


“고려 최고의 장군신이 들었구나.”


“김유신 장군도 들었습니다.”


“삼한일통한 장군께서도 오셨구나.”


“임경업 장군이 듭니다.”


“조선 최고의 무신이 드셨구나.

천지신명을 모시고 대신으로 불릴 수 있는지 그 본색을 찾아보거라”


애진이 마루위로 올라가 부채와 방울을 찾아들고 한참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신을 모시었으면 영이 대주는 대로 움직여보거라!”


탄실의 말에 애진이 다시 껑충 껑충 뛰면서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다 높이 쌓은 제단을 딛고 물동이 위에 놓인 작두위로 한걸음에 올라섰다.


어허! 어허!


신이 오른 애진이 작두 위에서 소리를 내지르며 발을 몇 번이나 움직여 구르고는 드디어 공수받고(신탁을받음)는 아래로 내려왔다.


탄실이 내민 오방신장기를 직접 뽑고는 애진이 붉은 기를 어깨에 걸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장군이 살아돌아왔구나.

단군께서 오셨도다!”


꽹꽹꽹꽹

둥둥둥둥~~


그 뒤로도 한동안 강신무가 이어졌다.


* * *


잠시 몸을 추스른 장군이 금산사 입구에 있는 군영에서 운부와 유형원을 만났다.


“혹시 내일 회덕을 공격할 계획입니까?”


장군의 물음에 운부가 깜짝 놀랐다.


“그렇습니만···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지금 바로 군령을 내려 중지시키십시오.

그리고 공주로 올라가던 군사들도 보조를 맞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군님이 살아나셨으니 서둘러 공격할 필요가 없긴 합니다만, 연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미 적들의 군사들이 많이 보강이 되었을 테고, 내일 아침에 청주성에서 일천이 더 내려올 것입니다.”


장군이 서두르는 이유는 다음날 새벽부터 치러질 전투에서 혁명군 수백이 전사할 것이었고 며칠간 회덕을 공략하면서 일천 이상이 죽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까지는 산위에서 소수의 군사들이 접전을 하였으니 목숨을 내놓고 달려드는 공세가 관군들을 주춤하게 하여 쉽게 진군할 수 있었지만, 평지에서 전투가 벌어지자 오히려 조직적으로 전투를 해야 할 때에 마음이 급하여 달려드니 허점으로 작용하여 양측이 큰 사상자를 내고 진퇴를 거듭하는 결과를 낳았다.


장군이 죽고 난 후에 적군도 계속 보강이 되어 추가로 수백의 사상자를 내고 회덕을 점령하게 되지만 여러 날 여러 전투에서 이천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대부분이 전투 경험이 많았던 군사들이어서 나중에 휴전을 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운부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미 오백이 보강된 것은 알았지만 내일 아침에 일천이 더 내려올 줄은 몰랐습니다.

바로 군령을 내리겠습니다.”


운부로서는 너무 급히 공격하는 것 같아 말리고 싶었지만 송시열이 회덕에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군사들이 흥분하여 원흉을 잡아 죽여야 한다고 나서니 어쩔 도리가 없어 총공격을 하기로 하였던 지라 무척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운부가 바로 군령장을 써서 급히 전령에게 보내고 말하였다.


“나머지 일은 제가 북쪽으로 올라가서 처리할 것이니 이제 그만 가서 쉬시지요.”


유형원도 적극 권했다.


“그래, 군사일은 운부 대사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니 너는 그만 가서 쉬도록 하여라.”


장군도 급한 마음에 군사일까지 챙기느라 제대로 못 쉰 터라 몸 상태는 아직 회복이 필요하였다.


‘그러고 보니 좀 어지럽군.’


* * *


“어찌 계속 대감께서 만나주지 않으시는 게요?”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매일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장군이 깨어날 때 즈음 회덕(대전) 동쪽에 봉화대가 있는 계족산 기슭에 자리한 남간정사 아래의 산문에서 소란이 일고 있었다.


이곳은 송시열이 강학을 하며 제자를 가르치는 곳으로 원래는 흥농서당이었는데 한 칸의 재실을 붙여서 남간정사라 하였다.


송시열은 얼마 전까지 속리산 인근 숨어 있었는데 이번에 장군을 쏘는 일이 성공을 하자 자기가 한 일임을 널리 알리고 바로 이곳으로 내려와 있었다.


건장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산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고 하인들이 둘이 나와서 막으며 실갱이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꼭 들어가야겠소. 저리 비키시오.”


“송시열 대감께서는 오늘 이곳에 안계시다. 나중에 다시 오거라.”


“대감께서 여기 계시는 것을 이미 확인하고 왔소이다.”


“이놈이, 어서 물러 서라는 데도!

어이쿠!”


한참을 실랑이를 하다 말고 젊은 사내가 앞을 가로막는 하인을 옆으로 밀쳐 버리고 산문을 넘어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저놈 잡아라!”


안에 있던 하인들 여럿이 급히 뒤쫓았지만 사내의 걸음이 워낙 잽싸서 쉽게 따라잡지 못하였다.


안에는 송시열의 거사를 듣고 몰려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사내는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고 곧장 남간정사로 달려 갔다.


마침 남간정사 앞의 연못 근처에 송시열이 여러 서인 유림들과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을 보자 사내가 큰 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대감마님, 소인 엇복이 이옵니다.”


사내의 숨소리가 씩씩거리고 기세가 흉흉한 지라 송시열의 옆에 있던 젊은 유림 하나가 나와서 나서서 막아서며 소리쳤다.


“네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이러고 있는 것이냐?! 저리 썩 가지 못할까!”


송시열이 웃으면서 나섰다.


“걱정마시오. 이놈은 내가 데리고 있는 놈이오.

잠시 실례 좀 하겠소이다.”


송시열이 그렇게 말하고 엇복이라는 사내를 데리고 남간정사 뒤쪽의 서재인 능인암 쪽으로 올라갔다.


“네이놈, 조용히 숨어 있으라고 했더니 어찌 이곳에 내려온 것이더냐?!”


“대감께서 이번 거사를 성공하면 바리데기를 놓아주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네가 고장군을 쏜 것은 맞지만 그 놈이 아직 숨이 붙어 있지 않더냐?

어찌 이리 사리 분별을 못할꼬?”


“저는 고장군을 쏘는 것만 하기로 약조 하였습니다요.

거리가 멀어서 죽일 수 있는 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허험! 쏘았으면 당연히 죽여야 하는 것이지!

그리고 건리덕 (件里德) 이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니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리데기(件里德)도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제가 잘 말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식구들을 그만 놓아주십시오.”


엇복이가 언성을 높이며 대들듯 말하자 송시열이 눈에 힘을 주고 다그쳤다.


“네놈도 저 역적놈들에게 물들은 것이더냐?!

갈 곳 없이 떠돌던 놈들을 받아 주었더니 이제 내게 대들어?!

그리고 거기 가본들 이미 네놈이 한 짓이 있는데 받아 줄 것 같으냐?”


“놓아주면 우리끼리 저 멀리 북방의 산속에 들어가 조용히 살것이오.”


“알겠다. 일단 조용히 물러가 기다리거라.

우리도 조만간 이곳을 정리하고 화양계곡으로 갈 것이 지척이지 않느냐?”


송시열이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자 엇복이도 결국 단념을 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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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8 3 21쪽
80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09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90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8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7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4 13 14쪽
74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1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6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09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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