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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고양이님의 서재입니다.

대기근을 넘어 조선을 해방하라! - 탐라제국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들고양2
작품등록일 :
2022.05.11 10:10
최근연재일 :
2024.04.22 10:13
연재수 :
9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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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92,371

작성
22.11.0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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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금산사 미륵법회

DUMMY

두두두두두


지금의 논산에 해당하는 은진현 황화천 강변을 따라 수십기의 기마병들이 아침 공기를 가르며 질주하였다.


선두에는 월도를 들고 수염을 멋드러지게 기르고 있는 불혹의 사내가 흑두건을 쓰고 달리고 있었다.


“워! 워! 워!”


맞은편에 한 개 중대 정도의 기병이 달려오자 앞에서 달리고 있던 사내가 말을 멈춰 세웠다.


“아침 공기가 아주 상쾌하오.”


“좌수 나리께서는 날로 관운장의 풍모를 닮아 가십니다.”


기병대장 박한립의 칭찬에 한껏 기분이 좋아진 이광성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좌수라니, 그냥 화적 두목이라 해두게.”


“하하하, 알겠습니다. 화적떼의 산채는 별고 없으십니까?”


“저놈들이 자꾸 귀찮게 하길래 그저께 한번 크게 혼쭐을 내어주었더니 어제 오늘은 구문치 패거리들이 조용하구만.”


전주에 있던 전라감영이 북쪽으로 올라간 뒤 큰 전투는 없었으나 금산과 회덕(대전)의 사이에 있는 산속에서는 척후병들끼리 크고 작은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다.


금산의 서쪽은 대둔산을 중심으로 이광성이 동쪽은 진모리가 요지마다 요새를 구축하며 유격전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이광성의 화적떼(?)가 이런 유격전에 적응을 잘하였고 좋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임피 김제 등에 분산되어 배치되어 있던 제 1연대는 북쪽으로 진격하여 은진현의 황하천 남쪽에 진지를 구축하고 주둔하고 있었고 박한립이 이끄는 기병대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기병대들은 자주 주변지역들을 돌아다니며 순찰을 하고 있었고 가끔은 이광성도 대둔산에서 바람도 쐴 겸 내려와 정보를 주고받고 돌아가곤 하였다.


그 사이 장시규와 조민수가 이끄는 해군은 북쪽으로 진군하여 안면도를 점령하였고 서산쪽의 안흥포과 소근포를 점령하여 북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그동안 조정에서는 허적을 도제찰사로, 병조판서 이완을 한남도원수로 임명하였고, 훈련대장겸 어영대장인 유혁연을 하삼도 순무사로 삼아 훈련도감과 어영청의 군사 이천을 이끌게 하여 청주로 내려 보냈고 충청도의 군사들을 청주로 불러 모았다.


그 사이에 북쪽의 안주성이 점령되고 평안병사 성익이 사로잡히는 변고가 발생하자 급히 평안 감사 민유중을 양서순무사(兩西巡撫使)로 임명하고 전 어영대장 이여발을 중군으로 삼아 군사 일천을 데리고 올라가게 하였다.


반란군이 전라도 일부지역을 점령하던 초기에는 초토사를 보내어 진압을 하려던 것이 그동안 수군이 궤멸되고 경상도와 충청도 일부지역까지 점령되면서 하삼도로 전란의 범위가 확산되고 이제는 평안도에까지 번지자 총력전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에 전주감영의 사람들을 고이 돌려보냄으로써 아직은 서로 간에 약간의 협상의 여지가 있는 편이기도 하였는데, 이미 청주에 수천의 군사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었고 다른 지역의 군사들까지 가세를 한다면 오천이상의 군사들이 회전(會戰)을 하게 될 수도 있어 양측 모두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서로 대규모의 전투는 피한 채 군사들을 집중시키는 중이었고 충청도 서남쪽과 금산 일대를 중심으로 작은 접전만 가끔 일어나는 중이었다.


* * *


전주 남서쪽의 모악산 자락에 위치한 금산사 미륵전 앞 광장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미륵전 앞에는 누대를 세웠고 남쪽의 보제루 쪽에는 미륵 탱화를 걸어 두었고 입구와 주변에는 여러 가지 번(幡)을 써서 걸어 두었는데 불교적인 내용도 있지만 미륵의 현신인 장군을 찬양하는 글귀도 있었고 혁명의 구호들을 적어 둔 것도 많았다.


금산사는 장군이 구출될 때 당취들이 거점으로 사용하였던 곳이었고 전주공략을 위한 교두보로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큰 역할을 해왔고 미륵신앙의 거점이기도 하는 등 장군과 인연이 많았다.


그동안 금산사 주지인 도원 스님이 장군이 이곳에 나타날 때마다 부탁을 하기도 하였고 다른 여러 스님들도 꼭 불자들에게 가르침을 달라는 요청을 하였는데 매번 거절을 하다가 잠시 전쟁이 소강상태가 된 틈을 타 법회를 가지기로 하였다.


장군이 불교에 대해서는 깊이 아는 바가 없었던 터라 고사를 하고 있었는데 서원에서는 저렇게 큰 가르침을 주고서는 어찌 도량에서는 금강(金剛)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느냐고 성화를 하는 통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다음날은 전주에서 혁명군 군사 퍼레이드를 계획하고 있었고 그 이후로는 북쪽으로 진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 날이 법회를 하기에 가장 적합하였다.


한낮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운집하였고 사전에 간단한 다른 일정이 있고 난 후 바로 장군이 미륵전 앞 누대위에 앉았다.


원래는 방석을 놓고 가부좌를 하고 앉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입식생활에 익숙한 장군이 특별히 부탁하여 의자를 마련하여 놓았고 연꽃 모양으로 꾸며 놓아 제법 그럴 듯하였다.


이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운집할 것을 고려하여 목소리를 잘 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였는데 그동안 연설을 많이 해와서 배에서부터 목소리를 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긴 하였지만 바닥에 앉아서는 제대로 큰 소리를 내기에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이렇게 스님들과 불자님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주지스님을 비롯한 금산사 스님들께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금강의 깨달음을 달라고 하시는데 제가 괜히 불자님들께 실례를 범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섭니다.

저는 불교에 조예에 깊지 않아서 법문을 설할 수는 없고 하니 문답으로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궁금한 것이 있으신 분들은 일어나서 저에게 물으시면 제가 대답을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장군 딴에는 겸손을 한다고 법문을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오히려 즉문즉설을 한다고 하니 역시 미륵의 화신은 다르다며 장내가 술렁거렸다.


몇 달 전 제주에 내려왔던 무량사의 상운스님이 제일 먼저 일어나 질문을 하였다.


“무량사의 상운이라고 합니다.

제가 일전에 제주에 내려갔을 때 장군께서 손가락을 들어 보이시며 우리가 지금 손가락을 보고 있지만 실상은 그 안의 대부분은 텅 비어 있다 하셨습니다.

우리 불교에도 인연생기(因緣生起)하고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인(因)과 연(緣)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법(法)이고 이것이 공(空)이라하였습니다.

하여 장군께서 말씀하신 텅 비어 있다는 의미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과 의미가 통한다고 보여집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첫 질문부터 어렵구만.

아니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런 것만 들었지 저런 건 들어보지도 못했다.

인과 연이며 법은 또 뭣이란 말인가?

법은 그냥 성경책 같은 불교 경전 같은 것이 아니었나?

일단 시간을 좀 벌어봐야겠군.’


장군이 짐짓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불교 교리에 대해서 잘 몰라서 인과 연 그리고 법에 대한 이치를 잘 모르겠습니다.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쉽게 말하면 인이란 직접적인 원인을 말하고 연이란 간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아는 인연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법이란 그러한 인과 연에 의해서 나오는 모든 것이라고 보면 되는데 삼라만상과 같은 존재 그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여러 인과 연이 다 갖추어져서 화합하면 비로소 사물 즉 손가락이 생성되는 것인데 이러한 사물은 여러 인과 연에 귀속되는 것이므로 사물 자체에는 자성(自性) 즉 고정된 성품이 없다고 할 수 있고 그러므로 무(無)하다고 할 수 있고 공(空)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손가락이 있지만 텅 비어 있는 것이니 그것은 만물이 공하다는 것과 의미가 통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음, 그냥 손가락이 보이는 이치를 설명해 주면 되겠군. 괜히 교리를 깊이 파헤치면 뽀록나기 딱 좋지.’


장군이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하였다.


“역시 불교의 사상은 깊이가 있어 감히 제가 그 경지를 따라가지 못하겠군요.

하지만 굳이 말씀을 드리자면 일견 뜻이 통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손가락이 보이는 이치를 따지자면 우리가 빛을 통해서 사물을 보는 이치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빛이 손가락에 부딪쳐 돌아오는 것을 눈을 통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손가락 내부는 아주 작은 원자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넓은 해변의 모래알 한 개와 같이 아주 작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는 모두 비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손가락을 인식하는 바는 그 작은 원자를 직접적인 원인인 인이라 한다면 빛이라는 매개체와 원자와 원자사이에 작용하는 빛을 반사시키는 힘은 간접적인 원인인 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두가지 인과 연으로 인식된 손가락은 실상은 텅 비어 있으니 공하다 할 수 있겠으나, 원자라는 것이 실재하고 있어서 없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니 공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으로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하면서도 뭔 말 하는지 잘 모르겠다.’


여기 저기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불교에서도 만물은 공하나 또한 공하지 아니하다고 하고 있으니 그 이치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상운스님이 합장을 하고 자리에 앉자 다른 스님이 일어나서 물었다.


“그렇다면 현상계를 유지하는 모든 존재는 공하면서도 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저 돌멩이도 또한 영원불변 하는 존재이니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음··· 불성이라면 영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인가?’


이부분은 장군이 사전에 생각해 보던 바였는데 장군이 어떻게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는가는 영원히 풀어야할 숙제였다.


“제가 불성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나 사물의 영원 불변하는 본질과 불성은 다르게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본다는 것은 현재의 차원, 즉 현상계에 국한된 것이고 제가 말한 원자 또한 억겁의 세월이 지나면 결국은 사라지거나 다른 것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니 그 또한 유한할 수는 없는 것이고 차원을 넘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 불성이라는 것은 차원을 넘어서 인과 연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사물의 본질과 불성은 다른 것이겠지요.”


‘내가 차원을 넘어서 올 수 있었다는 것은 나의 영혼은 그러한 차원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장내가 술렁거리면서 누군가가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불성을 깨닫는다면 영원 불변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아, 이런 식으로 가면 밑천 딸리는데···’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군요.”


장군이 대충 얼버무리자 상운스님이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전에 장군께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닫고 난 뒤에 불립문자를 하신 이치를 설하셨는데 그것이군요.

그런데 수학이나 자연을 연구해서 언어를 풍부하게 하면 그런 어려운 것도 종국에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그러한 것입니까?”


‘이거는 땡큐지. 내가 이런 피곤한 말장난 같은 것을 하는 이유는 기승전 과학기술발전인데···’


장군도 미소로 화답하며 말했다.


“당연합니다. 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차원의 이치는 수학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우리의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수학을 해야하고 자연을 연구하고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스님이 물어왔다.


“그렇다면 종국에는 인간이 신이 되는 것도 가능해지는 것입니까?”


“과연 신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신이 세상 모든 것의 법칙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있을 뿐 그런 존재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이 전지전능하며 도덕적으로 완결한 존재를 말한다면 불가능 하다고 할 수 있고 그런 존재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도 전지전능하지는 못하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부처님을 만나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습니다만 전지전능하며 도덕적으로 완결한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렇습니까?”


“그런 존재가 있다면 지금과 같은 모순 덩어리인 세상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전생에서 유일신에 대한 장군의 생각이었다.


비록 유일신교 계열의 사이비인 새성전교를 믿고 있었지만 장군의 본바탕은 유일신에 회의적인 편이었다.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멀리 서역에는 야소교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천주라는 유일신을 믿어서 천주교라고도 하는데 신의 이름으로 다른 나라로 가서 힘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잡아서 노예로 팔고 있습니다.

또한 신의 이름으로 죄 없는 사람을 마녀로 몰아서 화형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 자들이 믿는 신이 전지전능하며 도덕적으로 완결한 유일신이라면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당연히 신의 이름을 더럽혔으니 바로 벌을 받았거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것이지요.”


장군이 신심을 다해서 새성전교를 믿는 것도 아니면서 계속 머물고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이와 같은 이유도 한 몫을 하였다.


장군의 눈에는 새성전교가 조금 더 나쁠 뿐이지 교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존재였는데 자기들끼리 서로 공격해서 세를 갉아먹으니 굳이 나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새성전교가 거짓으로 전도를 한다고 하는데 성경이야 해석하기 나름이고, 교회의 전도 방식도 따지고 보면 직접 본 적도 없는 하느님이 가장 힘이 세다면서 전도를 하고 있으니 그 또한 거짓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현대에는 그래도 많이 좋아졌지만 중세시대의 성당이나 교회를 현대에 가져다 놓으면 새성전교보다 훨씬 나쁜 종교일 것이고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장군이 와 있는 이 시점은 그러한 학살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인 것이었다.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은 다르지 않습니까?”


“다르겠지요.

하지만 부처님이 전지전능하며 도덕적으로 완결하다고 하는 순간 다시 동일한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장내가 잠시 조용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부처님이라면 뭔가 완벽하고 그런 존재일 것 같았는데 아니라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상운스님이 나서서 물어 왔다.


“우리 모두가 부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완벽한 존재가 아님은 자명한 것이니 장군께서 말씀하신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열반의 경지라는 것은 불가능 한 것일까요?”


‘아, 이것은 잘 모르는데···’


“열반의 경지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모든 번뇌가 소멸되고 깨달음을 얻은 상태를 말합니다.”


‘오, 이것은 내가 좀 느낀 적이 있었지.’


장군이 이곳으로 오기 바로 전 장군을 괴롭히던 번뇌에서 벗어나 평안한 마음을 느끼던 시점을 떠올리며 말했다.


“번뇌의 소멸이라면 가만히 앉아서 생각을 없애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그런 상태에서는 내면의 본성에 도달할 수 있는 빛이 가득한 경지에 이르는데 과거도 미래도 없이 변화가 없으니 번뇌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지를 말하는 것이라면 가능 합니다.”


상운 스님이 대답하였다.


“대략 그런 경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상태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고통은 없어지지 않았는데요.”


이것은 장군이 생각하는 불교 등에서 말하는 참선수련의 문제점이었는데 스스로 깨달었다고는 하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결국 바뀌는 것은 없다고 보았다.


경지의 여러 단계가 있다고 하는데 혼자서만 그런 것이고 선지식이 인가를 해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그 선지식이 진실로 깨달았는가 보면 사실 아니올시다가 대부분일 것이었다.


‘결국 돌고 돌아 바보들의 향연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계속 수련하면 일여(一如)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장군이 한자로 된 문서를 많이 읽어야 해서 자주 접하다 보니 이런 말도 대충 의미가 와 닿았다.


“과연 그것이 얼마나 가능한 것입니까?

누군가는 스스로 장좌불와 한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여전히 이 차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몸뚱이는 이곳에 있고 마음만 다른 곳에 있다면 저기 있는 돌멩이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장좌불와에 대한 것은 예전에 너튜브에서인지 어디에서인지 본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CCTV를 설치해서 보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그래도 괴로움에서 벗어났으니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것이 아편과 같은 약을 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아편을 하여도 그런 경지는 도달할 수 있다 들었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만 말했습니다.

경지에 이르는 것은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남쪽 바다의 어느 섬의 주술사는 점을 칠 때 남명초를 한웅큼씩 피운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접신에 성공을 하고 점괘를 낼 수 있으면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그 경지라는 것이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어쩌다 보니 모두까기를 시전하고 있는 장군이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금강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른 것이라 경지가 높은 스님들은 별 말없이 조용히 있었다.


결국 분위기 수습을 위해 상운 스님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때를 위하여 지금까지 장군의 뻐꾹이가 울었던 것이었다.


“미륵은 언제 어떻게 오는 것입니까?


유사이래 말법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습니까?


그럴 때 마다 우리는 미륵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 모두가 미륵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면 되지 않습니까?”


장군이 목소리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말하였다.


“우리를 괴롭히는 고통이 가진 자들의 핍박에 의한 것이라면 그자들을 우리 스스로 벌하고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괴롭히지 못하는 제도를 만들면 될 것입니다.


대기근에 의해서 모두가 굶어 죽는 괴로움이라면 그런 때를 대비해 더 많이 비축을 할 수 있게 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다른 곳에서 사올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늙고 병드는 것에서 오는 고통이라면 의학을 더욱 많이 연구하여 병을 없애고 젊음을 더 오래 유지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닙니까?


또한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죽음이 늦게 오도록 할 수도 있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떤 지 알아낼 수 있으면 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수학을 발전시키고 자연을 더 많이 연구하고 다양한 제도를 만들어 내면 가능해지는 일입니다.


제가 왜 세종대왕께서 미륵이라고 한지 아시겠습니까?


세종대왕께서는 모든 백성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셨고 그 증거중의 하나인 한글을 직접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에는 세종대왕 혼자서 하셨으니 지금에 와서 남은 것은 한글뿐이지만 우리모두가 함께 그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일을 하던 누군가가 내일 죽더라도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이어나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미륵이 아닙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모두가 함께 한다면 기꺼이 미륵이 되겠습니다.

우리 모두 다 함께 힘을 합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곳곳에서 장군의 신봉자들이 일어나서 호응을 하였다.


“와! 다 함께 미륵세상을 만들자!”


"미륵이시여!"


잠시 후, 조금 분위기가 진정이 되자 장군이 마무리를 하였다.


“저는 유학도 그렇고 불교도 그렇고 도교나 무속신앙 등 모두가 저마다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모두 존중합니다.

하지만 한가지만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그 어떤 종교나 사상도 사람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은 이정도로 마무리를 하는 것으로 하고 제가 하나 찾는 것이 있습니다.”


장군이 자리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찾는 것은 불상인데 옛날 백제와 신라, 고구려가 있던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입니다.

이름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략 이런 모양이 될 것 같습니다.”


장군이 전생에 책 등에서 보았던 것을 떠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오른쪽 발목을 왼손으로 잡고 왼쪽 무릎위에 올린 다음 오른 팔꿈치를 오른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뺨을 살짝 짚었다.


그리고 오른 무릎을 살짝 낮추자 몸이 조금 숙여진 자세가 되었고 장군이 눈을 반개하고 그대로 한참을 있었다.


‘아 쒸! 이 자세로는 사유는 할 수 없겠는데··· 욜라 불편하잖아.’


잠시 후 장군이 눈을 뜨고 자세를 바로 하고는 말했다.


“누가 이런 불상을 보신 분이 있습니까?”


못 본 것인지 대답을 하는 자가 없었다.


‘역시 신라에서 모두 거둬갔나 보군··· 경상도 쪽을 뒤져야 하나?’


“어쩌면 신라가 있던 경주 쪽에서 찾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혹시 보게 되면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작가의말

오늘은 모두까기의 날이니 종교인들은 마음의 준비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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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삼죽(三竹)과 미수(眉叟) 23.12.25 159 4 18쪽
81 공산성 전투 23.12.17 178 3 21쪽
80 패드립을 대하는 자세 23.12.10 210 3 22쪽
79 회덕 전투 23.12.03 202 2 21쪽
78 온새미로 돌아오다. 23.12.03 190 2 21쪽
77 죽음의 인과 연 - 욕망 23.11.26 208 2 15쪽
76 죽음의 인과 연 - 환영 23.11.26 198 2 16쪽
75 두개의 행진 +1 22.11.12 574 13 14쪽
» 금산사 미륵법회 +3 22.11.07 572 16 22쪽
73 영남 남인과 전주 양반 +1 22.11.05 579 13 19쪽
72 부산진과 진주성 +1 22.11.01 607 14 19쪽
71 부안읍성전투 3 & 금산 의적 이광성 +1 22.10.29 622 14 16쪽
70 부안 읍성 전투 2 +1 22.10.24 653 13 20쪽
69 부안 읍성 전투 1 +1 22.10.22 715 13 17쪽
68 전략 회의 +1 22.10.17 709 1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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