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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강 님의 서재입니다.

나도 가면 하나를 주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이리강
작품등록일 :
2020.05.20 21:58
최근연재일 :
2020.06.15 23:0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192
추천수 :
873
글자수 :
120,996

작성
20.06.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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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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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대결 스펙톨 대 영지]

DUMMY

대공은 침묵했다.


그러자 같은 식탁, 왼쪽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소야 백작 청휘명준은 손자를 거들었다.

“제 막내아들 동훈이의 셋째 자식입니다.”


“알지.”

대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기특한 녀석이었다.

“다른 가족이 주는 혈통화 가면 따위도 싫고 다른 사람이 주는 생득권 가면도 받기 싫다고 했던 아이지. 그러다가 이번 열신유희에서 공을 세워 혼자 힘으로 가면을 획득했다지.”

“그렇습니다.” 소야 백작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6등급 공룡 가면입니다. 알로사우루스죠.”


가면의 등급이 열신서훈의 등급을 결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열신서훈의 등급이 반드시 가면의 등급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열신의 서훈’은 가면사가 될 수 없는 혈통·유전인자의 존재, 사람을 가면사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로 결정된다.

만들 수 없다면 향사이다.

한 명이라도 만들었다면 일단 기사이다.


“훌륭하다. 청휘 가문의 자식이라면 그런 의기가 있어야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풍강흰달은 중해공립 아카데미에 입학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

“흰달이 대공님께 거짓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열해 누나도 속였고 청휘 가문을 모두 속인 겁니다.”


청휘소덕에게 열해는 6촌 누나였다.


흰달은 고개를 돌려 열해 아가씨를 봤다.

그녀는 식탁의 꽃장식만 물끄러미 보는 듯했다. 미소도 없었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무엇을 속였느냐?”

대공은 언짢았다.

첫 번째 이게 열해와 소덕이 사전에 짜고 이 자리에서 결국, 이런 식으로 터뜨리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자식들은 모두 열해와 세 번째 남편감 때문에 삼각지의 식읍 문제와 이터널 중앙정부 귀속 여부의 결정이 뒤로 밀어지는 거로 생각하고 있다. 이것에 불만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작당해서 이 자리에서 촌놈을 날려 버려 아예 촌놈과 열해가 그 문제에 껴있는 상황 자체를 없애버리려는 수작으로 판단했다.

세 번째, ‘어른이란 것들이.’ 왜 자신들이 직접 문제 삼지 않고 저 밑의 증손자에게 시키느냐는 거였다.

‘제 딴엔 자신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하겠지. 물론 제 부모와 조부와 당연히 의논했겠지.’


“풍강흰달은 스펙톨이 없습니다. 없으면서 있다고 대공님을 속였습니다.”


‘누가 그걸 모를까 봐.’

“열해야. 할 말 없느냐?”


열해는 여전히 서 있었다.

“만일 소덕 오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는 매우 실망스러울 겁니다. 어떻게 대공님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제 남편감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런 식으로.’

고얀 것.

대공은 실망스러웠다.

노여웠다.

꼴 보기 싫었다.

고개를 돌려 청휘소덕을 봤다.

침묵이 흘렀다.

‘다들 내가 원하는 게 무언지 눈치챈 사람이 없단 말이냐? 있다면, 알면서도 내일까지 기다려줄 만큼의 아량과 인내 따위도 없었던 거냐? 설령 그렇다고 한들, 스펙톨이 없는데 거짓말을 한 거라고 한들 내가 상관하지 않겠다면 어쩔 테냐?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이 지랄들을 한단 말이냐.’

“네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


소덕의 조부인 소야 백작 청휘명준은 부친의 어투에서 ‘경고’를 알아챘다.

‘이 문제를 이 자리에서 꺼내기 싫어하신다.’

소덕과 소덕의 아비인 청휘동훈 모두 그를 봤다.

풍강흰달은 분명 스펙톨이 없다.

자신이 직접 박쥐가면사를 시켜 밤에 열해의 방을 염탐하게 했고 열해와 유모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다.

대공인 부친의 뜻과 기분을 거스를 것이냐.

이게 문제였다.

손자 소덕의 존재감을 이참에 확실히 대공인 부친에게 부각할 수만 있다면 뭐가 되었든지 성공이었다. 여기에서 물러서는 것은 언뜻 좋은 듯 보이지만 후에 가면 오히려 제 말에 책임도 못 지는 유약한 놈으로 평가될 것이다. 손자놈이 대공님에 맞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줄도 아는 기백이 있는 놈이란 걸 심어줘야 한다.

끄덕.

-그렇다고 해라.


대공은 소야 백작과 소덕 사이에 오가는 눈치를 모두 엿보고 있었다.

“소덕아, 그렇게 자신하느냐?”


“네. 흰달은 스펙톨이 없으면서도 있다고 대공님께 분명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식 교육을 아주, 잘 시켰어. 그렇게 대단하더냐? 이 일이. 네 손자가 강단이 있구나.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대공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했으므로 소야 백작은 미소지었다.

“손자의 말이라면 저야 늘 100% 믿습니다.”

“데시오 준남작령을 걸고도?”

움찔.

소야 백작은 다시 한번 여기서 멈추라는 부친의 경고로 알아챘다.

데시오 준남작령은 이번에 부친이 소덕의 부친이자 자신의 막내아들인 청휘동훈의 영지로 주기로 약속한 땅이었다.

가문 회의에서도 그렇게 결정이 난 사항이었다.


돌연 당사자인 청휘동훈이 일어났다.

“제가 걸겠습니다. 저도 제 아들 소덕의 말을 100% 믿습니다. 아들의 말을 믿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저 촌···풍강흰달에게 데시오 준남작령을 줘버리겠습니다.”


“그건.”

“뭐?”

“여보.”

“아빠.”

그 결연함에 다들 웅성댔다.


대공은 곧게 세우고 있던 허리를 힘없이 등받이에 무너뜨렸다. 그러다가 다시 허리를 펴며 곧추세웠다.

눈매가 부리부리해졌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래도, 풍강흰달이 만일 스펙톨이 있다면 너희가 그를 거짓으로 몰아붙인 잘못이 있으니 그 대가로 데시오 준남작령을 그에게 주겠다고 맹세해라. 이래도 흰달에게 스펙톨이 없다고 자신하느냐? 너희끼리 결정이 나거든 그때 나에게 다시 한번 말하거라.”

그리고 대공은 등받이에 허리를 깊숙이 기댄 후 눈을 감았다.


-오지 마.

소덕이 자리에서 벗어나 조부인 자신과 부친이 있는 자리로 와서 의논하려고 하자 소야 백작은 즉시 손을 틀어막았다.

-그 자리에 있어. 인제 와서 물러선다면 확신 없는 말을 꺼낸 것이니, 오히려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다.

“동생.”

“소야 백작.”

누나와 형이 자신을 말리려고 한다.

“그렇습니다.” 소야 백작은 말했다. “흰달에게 스펙톨이 있다면 그 대가로 데시오 준남작령을 그에게 준다고 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대공은 눈을 떴다.

“너희도 다 맹세하느냐?” 대공은 청휘동훈과 소덕을 번갈아 봤다.

눈에서는 불꽃이 일어나는 듯했다.


“네.”

“네.”


하. 대공은 고개를 내저었다.



흰달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런 흰달의 모습을 본 대공은 그 옆의 열해를 봤다.

“너는 나에게 용서를 빌 마음 따윈 영영 없는 거냐?”


열해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대공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되었다. 그만두자. 여기까지 하자.’

이제 이 한판의 연극 같은 일을 그만둘 때였다.

‘자식놈들이라는 게.’

“빠가당 마을에서 온 풍강흰달, 너는 스펙톨이 없다. 너는 열해에게 거짓말을 했고 나에게도 거짓말을 했다.”


“아닙니다. 저는, 스펙톨이 있습니다.”



열해의 심장은 쿵, 했다.


“뭐?”

다들 놀랍고 어이없었다.

‘설마!’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저것이!”

이렇게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고.


대공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설마.’

대공은 자의참군사를 통해 풍강흰달에 관한 모든 정보를 보고 받았다.

흰달의 어미가 흰달이 아홉 살 때 도시를 떠나 빠가당 마을로 들어간 후엔 그 촌구석에 틀어박힌 채 공국경도는 와본 적도 없는 자였다.

열신의 유희가 있던 날 그 골목에서 있던 싸움에 대해서도 이미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가면을 쓰고 사라진 시점부터 열해의 차에 탄 시각 사이의 행적도 파악했지만 분명 신교의 성소나 스펙톨 특허점에 들리지도 않았다. 성소와 특허점에도 물어봤다. 흰달 인상착의의 사내가 들린 적도 없었던 것.

무엇보다 스펙톨을 사려면 3억이란 돈이 필요했고 그걸 마련하려면 삼보부터 팔아야 했지만, 또한 이걸 팔기 위해 성소에 들렸던 사람 중에 흰달은 없었다.

‘그 어떤 경우이든 불가능해.’

흰달도 열해도 그들과 관련된 누구도 대공부에서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했다.


“있다고?”

다들 이 뜻밖의 사태에 완전히 당황해버렸다.

‘데시오 준남작령까지 걸었는데······.’

“에이, 설마.”


소야 백작 청휘명준은 찡그린 채 있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서 열해를 노려봤다.

‘설마 열해, 네가 나를 역으로 속인 것이냐?’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열해는 흰달을 말렸다.

“여기에서 그만둬.”

‘얼마나 더 거짓말을 하겠다는 거야?’


“나, 바보 아닙니다.” 흰달은 의젓하게 어깨를 폈다. “하지만.”

‘알았어요.’

드륵.

그리고 의자를 뒤로 더 밀어냈다.

“그럼 나는 그, 그만 가보겠습니다.”

열해에게 꾸벅 인사하고 대공 쪽을 향해 꾸벅 인사하고, 여기저기 보이는 대로 허리를 숙여 보인 후 몸을 돌렸다.


“가긴 어딜 가?” 다들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는데 청휘소덕은 쫓아가 흰달의 어깨를 뒤에서 잡아챘다.

“이 자식, 이대로 가겠다고?”

순간적으로 소덕은 흰달이 스펙톨이 있다고 했을 때 진짜인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런데 도망가?’

“스펙톨도 없는 게 감히 우리를 끝까지 농락하고 가겠다고? 누구 맘대로. 대공부가 우스워?”

“아, 아닌데요. 난, 난 그냥. 그만 갈 때가 된 것 같아서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흰달은 다시 한번 넙죽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야!” 대공의 다섯째 자식이자 히다카 자작령의 영주인 청휘선애의 손녀, 청휘금교(淸彙金姣)가 소리쳤다.

“만찬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고 내빼겠다고? 모두 저 녀석을 잡아!”

그녀는 무엇보다 아끼고 아끼던 비단옷을 망친 것 때문에 화가 났다.


쿵!

식탁이 들썩였다.

“모두 멈춰라.”


모두 멈췄다.

쥐죽은 듯이.

돌처럼.

대공을 봤다.


“스펙톨이 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할아버지, 그냥 보내주세요.” 열해는 애원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 사람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촌놈일 뿐입니다.”


“어서.”


아가씨의 눈물을 보자 흰달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스펙톨에 대한 증명.

흰달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빈손이었다.


슷.

그 오른손에 가면이 나타났다.


“아!”

“저런!”

“맙소사.”

“있잖아!”


털썩.

소야 백작 청휘명준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만찬장엔 순간적으로 놀랄 만큼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있었어.”

이렇게 중얼거리는 청휘소덕의 음성은 너무도 잘 들렸다.

남들보다 약간 늦게-대공을 보다가 이상한 분위기 때문에 뒤돌아보고서야 흰달의 오른손에 있는 가면을 발견한 열해는 문득 놀라운 걸 깨달았다. ‘가면은?’ ‘잘 보관했어요.’ 만찬장으로 오기 전 흰달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순간 흰달의 손에서 가면이 사라졌다.

‘스펙톨이다. 어떻게?’


이 순간 대공의 눈은 무시무시하게 빛나고 있었다.

‘뭔가 있구나. 저 녀석.’




모두 늘 행복하세요~~


작가의말

모두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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