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남. 자연마나]
“얘기 들어보니까요, 그 해외파가 끼어들었데요. 글쎄. 최황빛나하고 손문경은, 그 있잖아요.”
대공에게 전달된 것 같은 영상은 아직 모두에게 전달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청휘열해는 풍강흰달 팀이 승리했다는 소문만 일단 들었다.
하지만 현장에 참여했던 조교 등의 라인을 통해 대공부에 퍼진 소문을 유모가 능력껏 엿듣고 내내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열해에게 일러바쳤다.
“아유, 아가씨도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교 활동을 하셔야······.”
‘그랬구나.’ 열해는 보일 듯 말 듯 그러나 보이는, 옅은 미소를 입가와 눈매에 살짝 띤 채 듣다가 이내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가만히 있었다.
***
진실.
-타임 크리스털을 찾게 된 건 두 번 다 흰달이 관련된 게 분명함.
해외파인 칭시호 제국의 최황빛나와 독고 남매, 청구국 출신 손문경은·박서비앙 등은 먼저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정탐꾼이 보내는 메시지를 듣고 드디어 결단을 내렸다.
“확률은?”
-우연이 아니란 생각에 75%.
그러자 손문경은은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그의 능력을 이용하자.”
최황빛나는 끄덕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꼭 검증해봐야겠어.’
박서비앙은 말했다.
“빨리 끝내고 가자. 나 오늘 그날이라 짜증 난단 말이야.”
*
“서라!”
스-팟!
송조병권이 쏜 화살이 개로 변해 달아나는 흰달의 옆구리를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면서 핏줄기를 남겼다.
‘저 개새끼.’
-왜 이리 잘 뛰는 거야.
이 말은 곧 잘도 달아나고 있다는 뜻.
김신은우도 아웃 됐다. 은우와 흰달 파에서 남은 건 저 녀석뿐인데. 혀를 빼문 채 헐떡거리며 동으로 뛰었다가 서로 뛰었다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저렇게 악을 쓰고 끝까지 달아나는지 원······.
이미 저희 팀은 타임 크리스탈 공정 전개는 완전히 불가능한 상태가 되고 물 건너간 마당에.
청휘보연은 외쳤다.
“반은 반대로 돌아!”
“안돼! 각개격파를 당할 수 있어. 함께 움직여야 해.”
홍천사태의 말이 옳았다.
해외파 때문이었다.
알로사우루스 청휘소덕은 중상을 입은 채 피를 철철 쏟으면서도 악착같이 경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걸기기만 해봐라.’
화태 변경백파 송조병권과 야오재승, 열상국 본토파 홍천사태와 변전상철, 중해공국파 청휘소덕과 청휘보연이 연합한 채 흰달을 쫓고 있었다.
그들이 힘을 합친 건 세 팀이 뒤엉켜 싸우다가 송조병권이 화를 내며 제의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간, 꼴 좋다. 씨앙! 우린 다 죽고 해외파 년들만 어부지리겠구나!”
홍천사태는 즉시 받아들였다.
“모두 그만!”
청휘보연은 화를 냈다.
“우린 이미 망했어, 젠장!”
그녀는 검을 휘둘러 나뭇가지를 베며 분풀이를 했지만 그들의 말이 너무나 맞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어쩌다 보니, 돌아보니 남은 것은 그들 여섯뿐이었던 것.
이게 다 흰달 때문이었다.
세 팀 모두 흰달-흰달 팀부터 잡겠다고 몰려들었다가 서로 내친김에 ‘저것들, 잘 만났다. 이것들이?!’ 하는 식으로 서로 다른 편의 건축사, 광부는 물론이고 인간계 직업군까지 모두 아웃시켜버렸던 것.
상부상조.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경쟁심 때문에.’
이미 그들은 어느 팀도 자체적으로 타임 크리스털 공정을 전개하기는 아예 틀려버렸다.
여기에서 그들이 서로 몇 명만 더 죽이면 완전히 해외파 좋은 일만 시키는 거였다.
최소 지금 남은 여섯 명이라도 힘을 합쳐서 해외파를 끝장내야 한다.
“해외파가 우승하게 놔둘 순 없어! 우린 그래도 모두 열상국에 속한 사람들이야. 칭시호와 청구에서 온 것들한테 크리스털 공정경쟁을 빼앗긴다면 대대로 웃음거리가 되는 거잖아!”
모두 공감했다.
사자로 둔갑해 있는 야오재승, 회색곰 변전상철, 알로사우루스 청휘소덕은 인간의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인간의 말귀를 알아들을 순 있었다.
최황빛나.
칭시호 제국 헤이룽공국 다싱 변경백 최황 씨 가문의 혈통.
자연멘탈 측정에서 풍강흰달 다음인 2등을 찍었다. 비록 흰달과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수치였지만.
가면은 비변형·비둔갑·가면비노출형의 인랜드 타이판이었다. 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뱀의 독과 기술을 그대로 쓴다.
그녀의 이빨에 물리거나 손톱에 할퀴면 단백질성 신경독인 타이폭신이 즉시 퍼져 온몸이 마비되고 심장마비에 걸린다.
독고 남매.
칭시호 제국 헤이룽공국 다싱 변경백에 소속된 남작 가문 혈통.
쌍둥이였다.
가면도 같았다.
둘 다 완전 둔갑형의 벨로시랩터였다.
이 공룡은 서기 시대의 문화종 가면이었다. 자연종 같지만, 실상은 영화가 만들어 낸 영화종 계통의 가면이었다.
벨로시랩터는 모티브로 삼은 데이노니쿠스보다도 피지컬이 더 컸다. 그리고 ‘벨로시’란 이름을 따온 실제 자연종 공룡인 벨로키랍토르보다도 몸무게가 무려 10배나 많이 나갔다. 각종 능력치 또한 훨씬 높은 준위로 상향 적용된 공룡이었던 것.
그러므로 진짜 자연종 가면인 벨로키랍토르 따위는 피지컬적으로 벨로시랩터에게 비교도 되지 않았다.
손문경은.
19세.
청구국 라선 변경백 손문 씨 가문의 혈족.
가면은 비변형·비둔갑·가면노출형의 백정 희광이(死刑執行人)였다.
그리고 청구국 출신 박서비앙은 완전 둔갑형인 ‘거쿨인’ 가면사였다.
‘거쿨인’은 전차 문명인 동기[동력기원] 시대에 존재했다는 거인족이었다. 키가 3m에 힘이 최소 인간의 10배 이상이었다.
이 넷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상처 하나 없이 몸이 멀쩡한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합의했다.
“우리가 못하면 그들도 못 하게 하자. 모두 성공 못 하게. 게임을 원점으로 되돌리자.”
“아앗!”
송조병권이 쏜 화살이 빗나가자 청휘보연은 비명을 지르며 아까워했다.
그들은 모두 흥분한 상태였다.
일단 흰달만 보였다. 그래서 흰달을 너무 끝장내고 싶어 환장한 사자, 회색곰, 몸통이 터져 뼈가 드러난 채 피를 철철 흘리는 알로사우루스, 검사, 궁수, 뇌극대사 상태인 그들은 죽어라 개-흰달을 쫓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해외파를 찾고 있었다.
그때 최황빛나, 손문경은 등이 보였다.
‘저깄다.’
그들을 향해 작정하고 달려온다.
그러자 그들도 방향을 틀었다.
송조병권은 소리쳤다.
“왔구나, 이 연놈들! 한번 해보자는 거지?”
덕분에 흰달은 코를 씰룩거리며 이리저리 달아나다가, 바위틈에 난 굴속에 슬쩍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두리번대도 더는 쫓아오는 전투종 가면사들이 없는 게 확실해지자 비로소 그늘진 나무 옆에서 멈춰 섰다.
헤, 헥.
혓바닥을 잔뜩 뺀 채 헐떡거리며 나무를 등지고 엉덩이를 깔고 앉아 숨을 돌리며 생각했다.
‘드디어 네 개 파가 완전히 붙어 막장 싸움을 벌이나? 왜들 그래? 사이좋게 지내야지.’
수.
퍽.
꽝!
느닷없는 사태에 흰달은 엉덩이를 떼며 아주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겅.
바로 코앞에는 삽 하나가 꽂혀 있었다.
툭.
그리고 하늘에서 300km/h의 속도로 내려와 し자처럼 방향을 틀며 개 와일러(흰달)의 가슴-정확히는 가슴뼈를 노린 거였다-에 두 발로 드롭킥을 날리려다가 삽자루에 그대로 부딪히며 완전히 뻗어버린 송골매가 떨어져 있었다.
‘?’
흰달은 재빨리 주위를 두리번댔다. 해외파의 건축사와 광부 등 인간직종 가면사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흰달은 달아나지 않았다.
기다렸다.
건축사가 말했다.
“네가 우리에게 크리스털을 찾아줄 수만 있다면 네 몫으로, n분의1로 20년 치의 타임 크리스털 공정 사용권을 나눠 주겠다. 열신의 이름을 걸고 해외파가 약속한다. 이건 여기 없는 최황빛나와 손문경은 등도 이미 동의한 약속이다. 콜?”
흰달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혓바닥을 내밀고 헐떡이면서 아양 떨 듯 꼬리를 흔들었다.
코를 씰룩거렸다.
-팔로우 미. 팔로우 미.
컹, 컹.
그가 달려가자 모두 따라왔다.
‘이게 무슨 냄새지?’
타임 크리스털 공정경쟁이 막 시작된 처음에는 몰랐었다.
쌔 하고 뭔가 박하 향 같기도 한, 이상한 냄새가 느껴져서 절로 코가 실룩거렸을 뿐이었다.
‘와일러 둔갑 시의 기초적인 체격과 신체 능력’ 수치에는 없는 후각을 자신이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음.’
하지만 울렁이는 냄새였다.
자석처럼 끌렸다.
그리고 크리스털의 냄새일 지도 모른다는 걸 확인했을 때.
‘이게 웬일?’
그리고 두 번째도 맞아떨어졌을 때.
‘어, 이게 웬일!’
자신이 정확히 타임 크리스털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을 때 약간 충격을 받았었다.
‘미쳤나 봐.’
-팔로우 미. 팔로우 미.
그래서 지금 해외파 인간직종 가면사들과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꼬리를 흔들며 자신이 아는 황인종들의 언어-신성 아메리아 제국과 루샤 제국을 중심으로 한 언어-중 아는 ‘팔로우 미’를 외치며.
컹, 컹!
-여기, 여기.
“와, 진짜네!”
“진짜 타임 크리스털이다.”
그들은 좋아했다.
“대박.”
“넌 진짜······.”
다들 말문이 막힐 만한 개코였던 것.
“후각 능력 0이었지 않았어?”
“아무리 후각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크리스털 냄새를 맡는 거냐고.”
‘냄새가 난다, 냄새가.’
드디어 세 개의 타임 크리스털을 모두 찾게 해준 흰달은 이번엔 수용체 크리스털을 찾으러 갔다.
크-헝!
창, 챙!
우릉, 쩡!
나머지 사람들이 싸우는 소리는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흰달은 생각했다.
‘열심히들 싸우고 있구나. 고생들이야, 다들. 흥.’
그는 달려갔다.
백색 크리스털, 수용체 (크리스털)의 냄새는 타임 크리스털의 냄새와는 또 달랐다. 그는 확인해봐야 했다.
이것도 맞나 틀리나.
그가 가시넝쿨로 더부룩한 곳으로 뚫고 들어가자 해외파의 인간직종 가면사들은 밖에서 멈춰선 채 봤다.
흰달은 코를 낙엽과 잡풀로 뒤덮인 땅바닥에 대고 냄새를 맡더니 앞발로 ‘팍팍, 팍.’ 세 번쯤 때렸다.
-여기, 여기.
다들 기뻐하면서도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맞아?”
“오.”
“진짜 여기가 맞는다면, 이 개 너는 정말······.”
꿀꺽.
해외파가 영입한 광부의 실력은 대단했다.
손에서 곡괭이가 나오더니 괭이자루를 움켜쥔 채 힘을 불어넣자 괭이가 황색으로 빛났다.
‘6등급 광부.’
그리고 힘껏 땅을 찍자 땅이 흔들리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불쑥.
그리고 백색의 수용체 크리스털이 솟아올라 왔다.
“나왔다!”
“맞았어.”
“와!”
“저장체도 찾는다.”
컹!
뚝.
저장체 크리스털의 크기는 3m 정도였고, 가장 넓은 곳의 가로 폭은 2m 정도였다.
“시간이 없어. 공정 전개해.”
지금이야 바로 이 자리에서 공정을 전개하지만, 이터널에 들어가면 거대한-이것보다 더 큰 크기의 저장체 크리스털을 옮겨 다른 곳에서 공정을 전개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광부의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깡, 강!
아니나 다를까.
검사 가면사 청휘보연과 백정 희광이 가면사 손문경은이 검과 행형도자(行刑刀子)를 서로 부딪치면서 싸우면서 오고 있었다.
보연은 오려고 하고 경은은 막으려고 하며 서로 다투지만 결국은 청휘보연을 쫓느라 그들 쪽으로 달려오는 셈이 되고 있었고. 동시에 뇌극대사 홍천사태를 인랜드 타이판을 내면격으로 지닌 최황빛나가 막으며 역시 결과적으론 그들이 저장체를 찾은 곳을 향해 달려오는 꼴의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빨리!”
그렇지 않아도 건축사는 이미 정령들에게 토지 사용 허가를 받는 절차 진행을 시작한 상태였다.
건축사의 발밑에서 빛이 일어나며 방사상으로 퍼졌다. 그 순간, 가득했던 가시넝쿨들과 나무들도 일제히 바큇살처럼 외부로 밀려 나갔다. 마술처럼. 저장체 주위의 땅은 거울처럼 매끈한 곳으로 변했다.
“공정 코드.”
광부는 이미 약식의 타임 크리스털 공정 코드가 새겨진 신교의 약식 스크롤을 꺼내 찢어버렸다.
그 순간 저장체를 중심으로-저장체 크리스털을 둘러싸는 삼각형의 빛나는 선이 나타났다.
광부 손에 스펙톨에 저장하고 있던 세 개의 타임 크리스털이 나타났다. 그리고 저장체를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삼각형의 꼭짓점에 하나씩 차례대로 꼽기 시작했다.
하나.
두 개.
“악!”
“으악!”
‘응?’
느닷없이 터진 비명에 광부 가면사는 흠칫했다. 높이 3m, 광폭 2m의 저장체 크리스털의 뒤쪽 꼭짓점에 타임 크리스털을 막 꽂은 때였으므로 반대편 모습이 그만큼 가려졌지만, 그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개가 보였다.
흰달.
개-흰달에게 물린 인간직종 가면사들은 질겁한 채 서 있었다. 광부는 시계방향으로 조금 돌았다.
개가-흰달이 마지막 남은 삼각형 선의, 공정 전개의 마무리에 해당하는 꼭짓점에 주둥이를 들이대는 거였다.
쿠엑, 꽤액.
구역질해댔다.
‘뭐 하는 거야?’
깡. 차자장!
홍천사태와 청휘보연은 4m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광부는 놀랐다.
‘어?’
마지막 그 삼각형 꼭짓점에 타임 크리스털이 박혀있었다.
‘뭐, 야?’
탓.
홍천사태는 손에 수벽뇌섬을 일으킨 채 달려들었다.
최황빛나는 말리지 않고 그냥 놔뒀다.
‘늦었어.’
사-스왕!
“바보!”
청휘보연과 손문경은도 싸움을 멈춘 채, 검과 칼을 움켜쥔 채 공정이 이미 진행되는 저장체를 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백색의 저장체 크리스털은 바닥에 그려진 삼각형의 빛나는 선만큼 크기가 팽창되었다.
공정경쟁 게임에서 아웃이 된 채 가면을 벗은 생도들은 최종 격전지에 이미 몰린 채 10여m쯤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촬영사가면사들과 조교들이 하늘과 땅,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크윽.’ 청휘소덕은 옆구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왔지만, 이런 꼴을 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퉁-강!
흰달을 공격하던 홍천사태의 수벽뇌섬은 나백봉삼 교수의 손에 막혀버렸다.
교수는 외쳤다.
“모두 그만! 공정경쟁 끝!”
모두 늘 행복하세요~~
- 작가의말
모두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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