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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강 님의 서재입니다.

나도 가면 하나를 주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이리강
작품등록일 :
2020.05.20 21:58
최근연재일 :
2020.06.15 23:08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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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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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
글자수 :
120,996

작성
20.05.21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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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도 가면 하나를 주웠다 1]

DUMMY

대문 밖 담벼락에 면한 텃밭엔 잡풀이 무성했다. 풍강혜몸은 호미질에 열중해 있었다.


꺾이고 잘리고 뜯어먹힌 고추와 토마토의 모종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엄마의 모습을 흰달은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 집을 지을 때, ‘건축사(건축가면사)’가 정령들에게 허락받은 건축용 대지의 면적은 400㎡였다.

400㎡의 대지 안에 주택을 짓고 담장을 둘러 경계를 세웠다.

담장 안의 마당이나 뒤뜰 등 자투리땅에는 간단한 가금류나 채소 등을 키울 수 있었지만, 담장 밖의 땅은 아니었다.

아무리 온종일 잡초를 뽑고 괭이와 쇠스랑으로 맨땅에 다시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원예사나 농사 혹은 종묘사한테 사 온 씨앗이나 모종을 심어본다고 한들. 아무리 잡초를 뽑는다고 해도 다음 날이면 다시 넝쿨과 잡초투성이와 가시나무밭으로 변할 뿐인걸. 곤충이나 벌레, 새가 씨앗과 싹을 냉큼 파먹거나 잘라버리거나. 혹은 두더지가 이랑과 고랑을 모두 들쑤셔놓거나, 멧돼지, 고라니가 와서 반드시 훼손해버렸다.



“왔니?”

풍강혜몸은 호미를 쥔 손의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미소지었다. 얼굴과 손엔 주름이 자글자글했다.

실제 나이는 40세였지만 겉모습은 70세는 넘어 보였다. 허리는 구부정했다. ‘젊음’을 팔았기 때문이었다.

그녀 방의 서랍 속에는 금발에 푸른 눈, 하얀 피부의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처녀의 사진이 한 장 있었다.

혜몸은 일어나더니 허리가 아픈지 손등으로 허리를 두드렸다.

“읍내에서 종묘사(종묘가면사)가 분명히 될 거라고 했는데······. 특별히 정령의 승인을 받은 모종이라고 했었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네.”


종묘사가 시골 늙은이 대하듯 사기를 처먹은 거다. 정령이 허락한 땅이 아니라 그렇다. 근본적으로 소비자에게는 일체의 수렵과 채취, 농사가 허락되지 않았다.

인간에겐 아득한 옛날에 지구를 ‘종멸’한 대죄가 있다. 서기(西紀. 서력기원) 시대에 한 번, 동기(東紀. 동력기원) 시대에 한번.

모두 두 번.

종멸대전쟁.

그때의 인간들은 서로 곤륜산보다도 더 큰 불덩이들을 사방팔방에서 일으켜 땅속과 물속까지 모두 종멸했다.


‘와, 어떻게 곤륜산보다 큰 불덩이를 만들 수가 있지?’ 학교에서 처음 배운 후에 흰달은 한동안 늘 이런 의문을 떠올리곤 했었다.


그리고 인간들은 열신에 의해 세워진 신기(神紀) 시대에 살고 있었다.


“새봄이 오걸랑 같이 먹자꾸나.”

엄마는 피곤한 듯 마당의 낡은 평상에 걸터앉아 잡초의 대를 손아귀로 잡고 부러뜨렸다.

집의 안마당과 뒤뜰과 담벼락에는 가시나무와 잡초와 가시덩굴들로 무성했다. 집 벽과 지붕도 온통 넝쿨로 뒤덮여있었다.

한때 닭장이던 것의 곰삭은 흔적은 넝쿨과 잡초와 가시나무들 속에 파묻혀있었다. 채소를 가꾸려고 일궜던 마당의 텃밭 흔적은 더는 보이지도 않았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흰달은 평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9년 전.

“야! 우리하고 친구 먹으려면 숲에 들어가서 개복숭아하고 산딸기를 따와야 해. 여기 형들한테 바쳐라.”

흰달 또래의 사내아이들과 그보다 윗길의 소년들은 갓 빠가당 마을로 이사 온 흰달에게 텃세를 놨다.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던데. 큰일 난다고.”


“킥킥, 바보. 겁쟁이.” 아이들은 마구 놀렸다. “도시에선 그렇게 가르쳤나? 우리는 괜찮거든.”

덩치가 큰 소년은 이런 아이들의 대거리와는 상관없다는 듯 입에 강아지풀의 줄기 하나를 문 채 등을 돌리고 있다가, 다릴 꼰 채 논 쪽만 보며 다리를 흔들며 앉아있다가 드디어 다리를 풀고 뒤돌아섰다.

“흰달이라고 했냐? 그거 다 거짓말이야.” 16세의 영정동수였다. “산에 함부로 못 들어가게 겁주려고 그러는 건데. 정령들은, 사실은 그렇게 모질지 않거든. 아이들은 봐줘.”


‘정말인가?’


“겁쟁이 같은 놈은 우리 동네에서 꺼져버려라.”

“맞아, 맞아. 나가버려, 우리 마을에서.”


결국, 흰달은 숲에 들어가 산딸기와 개봉숭아를 따왔다.

하지만 막상 동네 아이들은 흰달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며칠 동안 피해 다니며 그를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정말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동수 형이 오래.”

5일쯤 왕따 당한 채 혼자 있는데 아이들이 불렀다.


“숲에 있는 개울에 가서 가재 열 마리를 잡아 올 수 있어?”

“이번엔 진짜죠?”


결국, 흰달은 점점 더 용감해졌다.

그때부턴 숲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온몸에 옻이 옮고, 독 넝쿨에 맞고 커다란 쐐기에 쏘이고 벌에 쏘이고 지네에 물려 온몸이 퉁퉁 부었다.

“숲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엄마는 속상해했다. “왜 이렇게 속을 썩이는 거니?”

“괜찮다니까. 봐봐. 끄떡없다고. 며칠 앓다가 낫는다니까.”

보란 듯이 산지기 어른을 피해 숲을 쏘다니며 오늘은 동네 애들에게, 여자애들에게, 형들에게 뭘 가져다줄까, 따다 줄까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가 신났다.

으름, 다래, 산포도도 따다 주고.

“야아, 흰달.”

심지어 흰눈이독사에 물려 비몽사몽 숲을 빠져나왔다가 언덕배기에서 기절해 있는 그를 산지기 어른이 발견하고 겨우 집에 데려다준 적도 있었다.

“와, 흰달이 또 살아났다.”

보름 동안 앓다가 살아나자 흰달은 더욱더 기고만장해졌다.

“봤지, 봤지?”

“이렇게 질긴 놈은 처음 봤다.” 산지기 아저씨도 묘한 눈을 한 채, 엄하고 짐짓 화난 표정으로 그를 보며 경고했었다.

“정령들이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나도 그렇다. 이놈아, 그만 들어가라.”


“너희들 모두 여기 흰달을 본받아라.”

동수와 동네 형들이 불을 피워 그가 잡아 온 토끼를 구웠고, 한점을 동수 형한테 얻어먹을 때 흰달은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너, 대단하다.” 또래 여자아이들도 모닥불에 익어가는 토끼 고기를 보면서 침을 삼키면서 한껏 흰달을 치켜세웠었다.


처음엔 정령들도 봐줬던 걸까?


-숲의 것은 숲의 것으로.

그가 12살이 되던 해부터 정령들의 동티가 그의 집안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


-열상국(列桑國) 중해공국 루모이 남작령 ‘빠가당 마을’에서 온 18세의 풍강흰달을 죽일 것.


아무리 생각해도-왜 이런 열신의 주문이 그를 특정해서 내려왔는지 생각해보면, 그것밖에는 없었다.

정령들을 화나게 한 것. 열신의 유희가 열리는 곳에 그가 발을 디딜 때까지 정령들이 벼르고 있었던 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야, 끈질기다.’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흰달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간들은 알 수 없는 아주 높은 곳에서 벌어지는 일일 테니까.



“너흰, 어디에서 왔니?” ‘세 꼬리 여우가면사’가 물었다.

머리의 반-앞면은 여우의 얼굴이었지만, 귀 쪽부터 뒤로, 정수리부터 뒤통수에 해당하는 부위는 붉은 머리칼을 틀어 올려 비녀로 꽂아놓은 모습이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여우의 주둥이와 반짝이는 두 눈이 분명히 웃는 모습이다. 날카롭고 차가웠지만.

변검형(變臉形) 가면.

제2 분류상, 신체 일부만 둔갑하게 해 주는 가면을 변검형 가면이라고 했다.


“우린 여기 사는데요.”


세 꼬리 여우가면사의 눈이 흰달에게 꽂혔다.

꺼로로꺼로로. 으해응.

여우가면사는 여우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날카로운 입속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더욱 잘 드러났다.

그녀의 이름은 양이송아였다.

‘이 촌놈들이······.’

어설펐다.

옷맵시 하며 누가 봐도 촌놈이었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의 표정 좀 보라지.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벼락에 맞아 죽은 사무라이가면사 시체를 멍하니 내려다보거나 그녀의 눈을 애써 외면하거나 티 나게 딴청을 부리거나 서로 곁눈질하거나 하면서 잔뜩 긴장하고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네 이름이 뭐야?”


“여우가면사님.” 흰달은 말했다. “그건 나중에 가르쳐주면 안 될까요?”


양이송아는 어이없었다.


“으-아!”

“꺄-악!”

쿵쾅쿵쾅쿵!

크-억!

오른쪽 도로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오고 그 뒤로 거대한 공룡이 달려오는 소리는 요란했다.


양이송아는 그쪽으로 90도쯤 몸을 돌렸다. 하지만 공룡은 그들이 있는 쪽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돌아갔다.

흰달은 군중 속에서 사내 하나가 오른손을 들어 얼굴에 댔다가 떼는 걸 봤다.

‘가면 착용?!’

사내는 흰달과 빠가당 마을 청년들의 방향에선 정면 왼쪽쯤에서 마주 보는 방향에 있는 셈이었지만, 여우가면사의 방향에서는 그녀가 몸을 90도 돌림으로써 사내의 위치는 그녀의 등 뒤에 있는 셈이 되었다.

사내의 손에 활과 화살이 나타났다.

‘궁사가면사.’

인물계 가면. 가면 비노출 가면.

이종으로의 둔갑 변형이 따로 필요 없는 가면이 분명했고 가면 착용이 겉으로 표시되지 않는 가면이 분명했다.

흰달은 그냥 직감적으로 알았다. ‘새매로 변한 채 달아나던 가면사를 쏘았던 자다.’ 하고.


빠르게 활시위를 당긴다.


“등 뒤. 궁사.” 흰달이 말했다.


그 소리에 양이송아는 번개처럼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공중제비했다.

‘번개몰이!’

삿!

화살이 간발의 차로 그녀가 서 있던 허공을 뚫고 지나갔고 그녀의 꼬리 중 하나는 이미 정전기가 작동하는 것처럼 털들이 모두 곤두섰다.

뇌격(雷格) 상태.

쩡!

공중에서 내리친 번개가 궁수가면사를 때렸다. 하지만 궁수가면사도 만만치 않았다. 화살을 쏜 후 움직였으므로 번개도 역시 간발의 차로 애꿎은 바닥을 때렸던 것.

쿵, 쿵!

크-헝!

우당, 꽝!

한쪽에선 서기 시대의 역사종(歷史種)인 공룡으로 둔갑한 가면사와 동기 시대 인간종인 거인으로 둔갑한 가면사가 방망이를 휘두르며 싸우느라 요란했다.

삐오, 삐오! 어느 쪽의 발에든 걷어차이거나 방망이에 맞은 자동차가 밀려나고 뒤집히고 찌그러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가로등의 기둥이 꺾어지면서 어느 입간판이나 건물의 유리창을 때리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흰달과 빠가당 마을 청년들은 벌써 꽁지 빠지게 달아나고 있었다.

“오른쪽, 골목으로!”



“따라오냐, 안 따라오지?”

그들은 골목에 숨은 채 헐떡거렸다.

“후아. 야, 왜 그 여자를 도와줬냐?” 박구성규는 물었다. “헉, 헉. 후-씨. 그 여자가 눈치챈 것 같던데. 씨이. 죽게 놔두지. 헤엑.”

“오금이 저려서 오줌보가 터지는 줄 알았어.” 남구운냥은 황급히 바지를 내리더니 벽에 대고 오줌을 갈겼다.

갈기면서 맞장구쳤다.

“맞아.”

킥킥. 삼포인호는 웃어댔다.

“난 알지. 몸매가 쭉 빠졌지 않냐? 하아. 후. 흰달이 너, 목숨을 구해주면 나중에 여우가면사 하고. 하. 어떻게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거지. 음, 하. 잘하면 세 번째 남편이라도 될까 봐. 으하아. 야, 어떻게 거기서 그런 생각을 할까?”

하아, 하아.

“하여튼.”

다들 숨을 몰아쉬면서 웃어댔다.

“너무 재밌다. 그치?”

“맞아. 여우가면사가 노려볼 땐 진짜 들킨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흰달은 왜 열신들한테 찍힌 거냐? 하하하, 진짜 웃긴다.”

“맞아. 얘가 뭐라고.”

후우.

하.


“내 말이.”


달아나느라 거칠어졌던 호흡은 점차 가라앉았다. 그리고 점점 대화는 없어졌다. 조용해졌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몹시 두근거렸다.

어느 이름 모를 도시의 빌딩과 건물들 사이의 뒷골목은 한산했고, 고양이 한 마리가 한 건물 담장 위에 쭈그린 채 앉아있었다. 에어컨의 실외기들과 어느 식당의 팬이 돌아가면서 내뿜는 증기 같은 게 뿜어져 나왔다.

음식물 쓰레기통들이 몇 개 있었다.


푸드드득.

도시의 비둘기들이 똥을 싸며 날아가고, 또 건물 자투리 어딘가에 내려앉고 있었다.


꿀꺽.


“그런데 얘는 어떡하냐?”

아무도 말이 없다.




모두 늘 행복하세요~~


작가의말

모두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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