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신의 유희]
빠가당 마을의 청년들 여섯은 공국경도(公國京都) ‘열신의 유희’가 열리는 곳으로 구경하러 갔다.
마을에선 그나마 출세한 편인 동네 형, 영정(永井) 씨 집안의 장남 동수(同秀)가 모는 2003년식 ‘비탈라’ 자동차에 잔뜩 껴 타고.
낡은 자동차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주기적으로 덜컹거렸고 흙먼지를 일으켰다.
뒤쪽 트렁크 속에 탄 채 모로 누워있던 우리의 주인공 ‘풍강흰달’은 꽤 죽을 맛이었었다.
가미카와 공국경도는 으리으리했다.
“삐까뻔쩍이네.” 삼포인호(三浦仁扈)가 중얼거렸다. “여기가 대공님의 자치령인 가미카와 ‘공국경도’여야?”
“야, 씨. 우리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가면 하나 줍는다면 대박일 거다.”
차송상절(車宋尙節)의 말하는 것 같은 일은 절대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다.
음.
그래도 혹시나 하는 0.1%쯤의 요행수를 바라는 마음들이 전혀 없지는 또 않았고.
‘혹시 모르지. 사람 일이란 건.’
“우리 중 누가 얻든···”
펑, 펑!
도시 곳곳에서는 정오가 되기 전부터 폭죽을 터뜨리고 불꽃놀이를 하느라 하늘이 번쩍번쩍했다.
“과연 우리 대공님이 엄청 쏟아붓는다야.”
촌놈들은 촌놈 티를 내지 않으려고 태가 나지도 않은 옷의 주름을 애써 만지작댔고, 침을 뱉은 손바닥으로 다시 한번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그러다가 예쁜 아가씨들이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두리번댔다.
흰달은 말했다.
“기왕이면 우리 중에 동수 형이 주워야 모양새가 좋은 거다. 그지?”
이들 중에 나이도 제일 많았고-만25세-마을 청년 중엔 가장 출세한 격인 영정동수는 ‘뭘 그런 것을 굳이 말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굳이 반박은 하지 않았다. 머리엔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인호는 말했다.
“우리 중에 500만 원짜리···”
“야.”
흰달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인호를 책망했다.
“그런 걸 말하면 어떡하니?”
그들 중에 마나스톤과 멘탈스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작령 주도(州都)인 루모이시에서 기사단장의 25명 잡임 중 한 명으로 취직해 있는 동수 형뿐이었던 것.
50만J짜리 마나스톤 한 개값은 500만 원이었다.
“에이. 괜찮아, 괜찮아. 경도 사람들이 다 도둑놈인 줄 아냐? 촌놈들, 하여튼.”
그러면서도 동수는 다시 한번 가슴팍을 만져보며 마나스톤과 멘탈스톤이 잘 있나 손으로 확인해보는 거였다.
“비켜!” 우락부락한 사내들을 대동한-척 봐도 최소 기사급 이상의 ‘가면사(假面師)’로 보이는 일행이 그들을 밀치고 지나갔다.
그들은 이내 거대한 인파 한가운데로 휩쓸렸다. “죄송합니다, 네. 안녕히 가세요.” 흰달은 꾸벅 인사하면서 즐거워했다.
“와, 방금.”
전국에서 몰려오고 바다 건너 청구국에서도 몰려오고, 대륙인 칭시호(稱始昊) 제국의 황령과 각 제후령에서 온 사람들로 가미카와 공국경도의 거리는 인파들로 바글바글했다.
곳곳에 ‘열신’의 상들을 안치한 임시 제단들이 가득했고 탑도 광장마다 세워진 채 공물들인 꽃들과 음식으로 뒤덮인 채 향을 피워올렸다.
펑, 꽈다다다, 꿍!
“와.”
“다들 길 잃지 않도록 나만 잘 따라다녀라, 알았지?”
-열신의 은혜는 바다와 같고 곤륜산과 같아서 아득한 태고이래 끝이 없었다. 신력 원년 신성한 딸, 열신의 대행자를 내려주셨네. 열신의 축복으로 홀로 신교를 생득하시었고 홀로 자라실 때 정령왕을 벗으로 삼았네. 다섯 대륙을 순행하실 때 열신의 ‘보우하사’가 내리고 뭇 정령들이 동행했네. 기쁨도 고행도 바다와 같았고 곤륜산과 같았어라. 단단한 바위 속에서 태초의 혈통들을 깨우시고···
죄 있는 혈통과 죄 없는 혈통. 그럼에도 모두가 원죄 있는 인간들.
“뭐해?”
마을의 촌정 아들인 차송상절이 흰달의 팔을 잡아끌었다.
곳곳에 설치된 확성기에서는 인간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열신의 은덕을 찬양하고 최초의 교황이 되시어 신기(神紀)를 여신 <여래여들님>의 업적을 치하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화면 속 영상들 또한 멋지고 아름다웠으므로 흰달은 잠시 귀를 기울여 듣고 멀거니 서서 구경하고 있었던 것.
“난, 내 앞에 가면이 나타나면 무조건 내가 차지할 거다.”
“나두.”
상절은, 사람들을 헤치며 앞서가는 영정동수의 뒤통수를 보며 귀엣말을 하듯 했고 흰달은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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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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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오늘 신입 가면사가 될 사람들을 호객하는 방송과 광고 간판, 광고지 등으로 넘쳐났다.
빠가당 마을에서 온 청년들에게는 꿈같은 일.
심장이 흥분되었다.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나도 가면사가 되고 싶어.’
열망들로 흘러넘치는 사람들과 거리를 따라가며 흰달의 마음도 불끈 달아올랐다.
셋! 둘! 하나!
뎅!
“와아!” 도시 곳곳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울렸다.
드디어 <열신의 유희>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뎅!
정오였다.
[열신의 유희]
허공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열신이 요구하는 목숨의 수는 99명]
<특정하지 않은 자들>
-백작 1명의 목숨
-자작 1명의 목숨
-남작 3명의 목숨
-기사 10명의 목숨
-향사 30명의 목숨
······
[소비자 특례 규정 적용]
도시는 조용해졌다가 다시 웅성웅성 떠들썩해지기 시작했다.
“백작을 죽이라고?!”
누구도 열신이 무엇을 요구할지 사전에 알지 못했다. 열신을 사역하는 신교의 대주교이든 주교이든.
심지어 교황마저도.
인간의 희생을 요구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열신의 요구가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못했다.
인간에게는 지구를 두 번씩이나 ‘종멸’시킨 대죄악의 원죄가 있고 열신의 자비로움으로 다시 존재하게 되었다.
-이런 희생을 통해 열신은 인간이 오만함을 되돌아보고 원죄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기를 원하심이니라.
사람들은 문득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축제에 참여한 백작들도 꽤 될걸? 대륙에서도 오고, 청구국 남궁가 백작도 왔다는 뉴스를 봤는데······.”
“아마 몰랐겠지. 이런 유희가 벌어질 줄. 백작 간에 서로 피 터지겠는걸. 먼저 죽이는 자가 장땡일 테니까.”
자신의 젊음과 수명과 시간을 팔아먹으며 살아야 하는 ‘소비자’들에겐 성역불가침의 영역으로 존재하는, 잘 먹고 잘사는 제후들이 죽는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쌤통이었다.
억눌린 절망과 좌절, 상대적인 부러움의 괴리에서 오는 광기 같은 측면이었지만. 영주들이 당할 낭패를 생각하면 고소했던 것.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성은 남아있었다.
“우리나라 백작을 살리려면 천상 인디아 제국이나 동유로파연방국에서 온 제후들을 죽이는 게 최선이야.”
“루샤 제국 새끼들이나 아메리아 제국 놈들이 왔으면 딱 맞는데.”
“그놈들은 대놓고는 못 오지. 하지만 숨어들어와 있을지도 모르지.”
흰달은 그런 것 따윈 관심 없었다. 촌 단위를 벗어난 기사나 영주급 가면사들 간의 싸움이나 생활 반경 이상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따윈 뭐가 되었든지.
“에에?”
그는 반쯤은 깨어있고 반쯤은 덜 깬 듯한 기분이었다. 공황 상태였다.
-열상국(列桑國) 중해공국 루모이 남작령 ‘빠가당 마을’에서 온 18세의 풍강흰달을 죽일 것.
믿기지 않았다.
“풍강흰달이란 녀석은 어떤 놈일까? 그놈을 특정해서 죽이란 요구는 매우 특이한데······.”
“분명 신들의 노여움을 살만한 짓을 했겠지. 제후들이야 우리 같은 소비자가 건드릴 깜냥조차 안되지만 빠가당 마을에서 온 촌놈 따윈···”
“해볼 만하지.”
여기저기서 떠들어댔다.
바로 옆에서도.
꿀꺽.
“어떤 놈일까?”
“일단 촌놈을 족쳐보면······.”
사람들이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빠가당 마을에서 온 여섯 명의 청년들.
차송상절, 박구성규, 삼포인호, 남구운냥은 얼어붙은 사람처럼 서로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었다.
영정동수는 찡그린 얼굴로 눈을 껌벅껌벅, 볼살을 꿈틀대며 굉장히 극적인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갈학강은 무표정하게 이마를 살짝 찌푸린 채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어떡···”
“조용히 해.” 인호가 입을 열자 동수는 재빨리 막았다.
“어이! 거기 촌놈들.”
펄럭, 펄럭!
슈-퍽!
군중 속에서 날아오르던 새매가 화살에 꿴 채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모두의 시선은 그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새매는 지면 위 3m쯤 높이에서 ‘반-곰’ 상태로 변신하면서 사람들 위로 떨어졌다.
“악!”
쿵.
끄으으으-엉!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대한 괴수 같은 것의 울음소리가 길게 뻗으며 들려왔다 싶은 순간.
흰달은 공중에서 공중제비하면서 칼을 내리치는 사무라이 가면사의 팔을 휘둘러 쳐내는 거대한, 얼굴과 팔은 곰의 모습을 했고 나머지는 인간의 모습을 한 ‘변검형’ 가면사를 봤다. 가면사의 왼쪽 어깨엔 화살이 박혀있었다.
퍽!
사무라이 가면사의 팔 한 짝이 날아갔다.
“악!” 사람들은 사방으로 물러나거나 달아났다.
쿠엉, 쿠엉! 곰은 네 발로 달려갔고, 번쩍! 꽝! 사무라이 가면사의 머리 위로 갑자기 번개가 내리쳤다.
척.
“흥.” 눈앞에 꼬리가 세 개가 달리고 머리는 여우 형태인, 가슴이 불룩하고 허리가 개미처럼 가는 끝장나는 몸매의 여자가 착지하면서 코웃음 쳤다.
흰달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모두 늘 행복하세요~~
- 작가의말
모두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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