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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강 님의 서재입니다.

나도 가면 하나를 주웠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이리강
작품등록일 :
2020.05.20 21:58
최근연재일 :
2020.06.15 23:08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8,180
추천수 :
873
글자수 :
120,996

작성
20.05.2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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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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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남작님의 세 번째 남편감]

DUMMY

청년은 그녀의 오른쪽에 찰싹 붙어있었다.

몸을 그녀 쪽으로 기울인 채 얼굴은 그녀의 오른쪽 어깨와 목, 턱·뺨쯤에 붙어있었다. 오른손은 그녀와 배와 가슴에 걸쳐져 있었는데 팔꿈치는 그녀의 배꼽 위쯤에 놓여 있었다. し자처럼 그 부분에서 꺾여진 팔뚝은 비스듬히 왼쪽 가슴을 가로질러 올라가며 누르고 있었다. 손목은 가슴 위쪽-쇄골쯤에 있었고 손가락들은 그녀의 왼쪽 어깨쯤을 잡고 있었다.

청년의 왼쪽 뺨의 감촉이 느껴졌고 무게가 느껴졌다. 가슴을 누르는 팔의 무게감과 오른쪽 어깨를 반쯤 잡은 손가락들이 주는 감촉이 느껴졌다.

깜박.

열해는 두 번쯤 눈꺼풀을 감았다가 떴다.

인지와 기억 사이의 부조화.


니잉닁늬잉닝


청년의 괴상한 잠꼬대 같은 소리에 열해는 다시 눈을 깜박였다.

사내는 살짝 뒤척이며 더 파고들었다. 동시에 그녀의 어깨 피부에 닿는 액체의 감촉. 주룩. 그건 사내의 입에서 흘러나온 침이 그녀의 살갗에 닿는 거였다.


“제가 가서 열쇠를···”

“비켜봐라.”


‘대공님?!’


핫!


벌떡!

청휘열해는 허리를 일으켰다. 사내의 오른손이 그녀의 가슴에서 미끄러져 내리며 떨어졌다.


쿵, 쿵!

“남작님!”


화들짝!

열해는 청년의 배와 가슴을 두 발로 밀어내듯 차버렸다.

퍽.

열해는 모든 사고를 끝냈다. 전혀 모르는 사내였다. 자신이 어젯밤 이 청년과 함께 잔 기억이 없었다.


꽝!

거의 동시에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굉음이 들려왔다.


쿵.

꽈당!


경첩이 떨어져 나간 문짝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내는 소리와 침대 밖으로 나가떨어진 사내가 바닥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거의 동시였다.

청휘열해는 반쯤 내려가 있던 잠옷을 재빨리 끌어 올렸다.


“아오.”

사내는 벌떡 일어났다.

덜렁.

덜렁.


“남작님!”

열해를 부르며 달려오는 유모의 소리.

“갸악!”

“어머!”


유모 혼자가 아니었다.

유모는 달려오다가 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벌어진 손가락들 사이로 사내의 알몸을 구경했다. 특히 사타구니 쪽을. 열해의 고모[자식 관점에서 부모 중 어느 쪽이든 무조건 성씨를 따르는 쪽의 부나 모에 해당하는 분의 누이나 언니에 해당하는 호칭]인 청휘희정은 손바닥으로 입만 가린 채 부리나케 오며 눈을 크게 뜨고 구경했다.

‘어머, 튼실한 것 좀 봐.’

‘어머, 어머.’


중해대공도 있었다.

열해의 친조부인 소라치 자작과 한 분 조모님도 있었다. 대공부(大公府)의 빈객 업무를 담당하는 종7품 관리 좨주(祭酒)도 있었고, 잡임의 시녀도 보였다.

그들은 모두 방 안으로 몇 걸음 걸어들어오다가 멈춰 서거나 아예 문밖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방안만 보고 있었다.


“허.”


청휘열해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알몸의 사내가 사타구니를 드러낸 채 문 쪽을-그들 쪽을 보며 서 있었다.

그들 앞에 적나라하게 펼쳐진 모습은 명백했다.

전화해도 안 받고······.

-전화기도 꺼놓고 막판까지 뜨거운 밤을 보내느라 그런 것이냐? 그렇게 문을 두드리고 불러도 대답이 없더니 잠옷을 입을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더냐?

-하지만 저놈은 왜 그럼, 그 시간 동안에 옷이라도 입지 않고 저런 망측한 모양새로 빤히 서 있는 건가?


“아유.” 열해의 유모는 비로소 제정신이 든 듯 열해에게 마저 달려가며 감싸준다.


일부다처, 일처다부가 허용된다고 해도 불륜이 허용되는 건 아니었다. 더구나 중해공국의 군주이며 대공이신 증조부님의 성에 와서 증손녀란 것이 외간남자와 보란 듯이 불륜을 저지른 것이라면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라치 자작은 사내가 손녀딸의 남편들이 아니란 걸 알았다.

‘어쩌려고, 저게.’


하지만 그들만큼이나 혹은 더 황당하고 당황한 쪽은 풍강흰달이었다.

‘여기는 어디야? 이 사람들은 다 뭐야?’



‘어머!’

언제 또 핸드폰까지 들이댔는지, 열해의 고모인 청휘희정은 아주 이런 일에는 재빨랐다.

찰칵.


흰달은 얼른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렸다.


-아주 좋았어요. 100점 만점 자세였어요. 다음은···


핸드폰이 사진 자세에 만족한다는, 기운을 북돋아 주는 정해진 평까지 대놓고 하자 청휘희정의 부친이자 열해의 조부인 소라치 자작은 호통을 쳤다.

“당장 그거 치우지 못해!”


흰달은 그 틈에 이 모든 게 믿기지 않아서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린 채 다시 한번 침대 쪽을 봤다.

‘예쁘다!’

순간적으로 봤지만 예뻤고 다시 봐도 예뻤고, 좀 더 찬찬히 봐도 예뻤다.

침대 위에서 내려와 서는 그녀의 머리칼은 연하고 부드러운 갈색이었다. 눈썹도 연한 갈색이었다.

눈동자의 색도 갈색이었다. 얼굴은 하얗다.

흰색의 잠옷도 예뻐 보였다.

분명히 자신이 그 침대에서 같이 누워있다가 그녀가 차서 떨어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나에게 영화 같은 일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크기의 방이었다. 가구와 천장과 바닥, 벽체와 실내장식 모두 그랬다.

‘큰일 났다.’

이런 온갖 생각과 상황 판단 등이 그의 머릿속에서 뒤엉켰고 감정도 뒤죽박죽이었고 눈도 그녀를 보았다가 자신의 알몸을 노려보거나 쳐다보는 엄청 높은 사람들로 보이는 이들을 보느라 우왕좌왕했다.

문짝을 통째로 뜯고 들어올 만큼 자신이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하단 생각도 들었다.

‘내가 저분의 침대에 숨어들었나 보다. 알몸으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오머.”

찰칵.


자책감으로 머리 양쪽을 두 손으로 잡았던 흰달은 아, 얼른 다시 두 손을 내려 사타구니를 가렸고.

‘내 가면.’ 하고 비로소 기억이 떠올랐는데······.



“너!” 하고 소라치 자작은 소리쳤다.

자작의 첫 번째 자식이자 장녀인 청휘희정은 아예 향사였다. 나이가 이제 57세나 되는데도. 이젠 틀렸다고 봐야 했다.

남편 복도 없다. 세 번이나 혼인했지만, 지금은 과부였다. 아비인 그의 집에서 아예 눌러살다시피 했다.

돈 생기면 ‘젊음의 포춘크리스털’을 사느라 탕진하기 일쑤였으니 겉보기엔 갓 서른 초반으로 보였다.

그가 소리친 것은 이런 딸년이 대공 앞에서도 사내의 알몸 사진을 찍는다고 망나니처럼 구는 모습 때문에 더욱 면목이 없어서 미칠 지경인 심사의 발로였던 것.


흰달은 자신에게 화를 낸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내 가면.’

흰달은 또 두리번댔다.


청휘열해는 자기부정, 현실부정 등의 과정을 십수 초 되는 시간 동안 겪다가 침대 옆에 떨어져 있는 가면 하나를 문득 발견한 후 그것을 계속 응시했다.


중해대공도 그 가면을 비로소 발견했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공뿐만 아니라 소라치 자작도 자작의 부인인 우후범범도, 대공부의 종7품 관리 좨주도, 잡임의 시녀도, 열해의 유모도 이 순간 너무도 확실한 상황이 발생해서 모두 그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흰달이 가면을 빼앗길 새라 몸을 날리며 그 가면을 잡았기 때문이다.

허리를 숙인 채 가면을 줍느라 한껏 치켜 올라간 흰달의 엉덩이는 그 어느 때보다 빵빵해 보였고 단단해 보였다.



대공은 몸을 돌리더니 방을 나가버렸다.



***


대공의 서재.


대공은 업무용 책상 뒤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의 넷째이자 삼남인 청휘정청 소라치 자작이 들어와 송구하다는 듯 두 손을 모은 채 섰고 대공은 질문을 던졌다.

“남편이 둘이라고 하던데 그중 하나더냐?”

‘아니겠지.’


“아닙니다.”



대공에게는 삼남이녀의 자식이 있었다.

평생 열 명의 아내를 두고 현재도 두 명의 아내가 있지만, 그 평생에 아들딸은 3남 2녀뿐이었다.

자손의 번창은 열신에게 달려있었다.

아무리 많은 아내와 남편을 둔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넷째, 정청은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이었다.

열신의 서훈이 고작 자작이었다.

첫째이자 장남인 청휘영문(淸彙英文)의 ‘열신서훈’은 공작이었다.

둘째이자 장녀인 청휘백단(淸彙伯丹)은 후작이었다.

셋째이자 차남인 명준은 백작이었다.

‘어째 정청의 자손들은 이렇단 말이냐.’


청정은 이남이녀의 자식을 두었다.

장녀인 청휘희정은 거론할 것도 없다.

장남인 청휘현덕은 나이가 54인데 여전히 열신서훈이 남작에 불과했다.

정청의 차녀인 다정을 생각하면 대공은 한때 자신이 주었던 애정에 대한 배신감마저 들곤 했다.

애써 밀어주었던 손녀딸의 남편감이 결국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을 때 대공은 다른 남편을 들이라고 명령했었다.

손녀딸은 거부했다.

청휘상웅의 고집도 엄청났다.

손녀딸도 왕래를 아예 끊어버렸다.


“아버님은, 늘 대단하시군요.” 정청은 말했다.


대공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그의 나이는 겉보기엔 60세였지만 실제 나이는 115세였다. 아까 여사(女使)가 열쇠를 가지러 간다고 했을 때 자신이 그냥 문짝을 발로 차 부숴버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전화해도 안 받고 문은 잠겨 있는데 아무리 두드리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면 뭔가 일이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너의 넷째는···”


대공이 말을 돌리자 소라치 자작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그나마 자식 중에서 제일 괜찮은 애가 아니더냐. 열신서훈이 자작인데 고작 식읍 700호의 향(鄕) 급 영지만 떼어주면 누군들 불만이 없겠느냐? 벌써 나이가 마흔넷인데······.”

소라치 자작의 막내아들인 청휘공승(淸彙功勝)은 야망이 큰 녀석이었다. 자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았다. 그럼, 그 사내는 누구냐?”

“여식이 옷 차려입고 정리가 되면 직접 아버님을 찾아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대공은 침묵했다.

성에는 어제 연회를 마치고 하룻밤 묵은 청휘 씨 가문의 제후들과 혈족, 자손들은 물론이고 이시카 남작령의 영주인 왕산술도나 루모이 남작령의 영주인 남전재승 등 중해공국의 타성(他姓) 영주들도 남아있었다. 열상국의 다른 제후들은 물론이고 바다 건너 청구나 칭시호 제국에서 온 제후와 귀빈들도 여전히 있었다. 또한, 이번 열신의 유희에서 가면을 획득한 신출내기들과 기성 가면사들까지.

모두 빈관에 묵고 있었다.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아무리 단속한다고 해도.


대공의 비서가 들어왔다.

“소라치 자작의 손녀, 열신서훈 남작, 청휘열해가 왔습니다. 그런데, 루모이 남작령 빠가당 마을에서 온 풍강흰달이란 청년도 데려왔습니다. 열신서훈은 향사라고 합니다.”


‘풍강흰달?’

소라치 자작은 조금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부친인 대공의 얼굴을 살폈지만, 대공은 무표정했다.

-열상국(列桑國) 중해공국 루모이 남작령 ‘빠가당 마을’에서 온 18세의 풍강흰달을 죽일 것.

그리고.

[<열상국(列桑國) 중해공국 루모이 남작령 ‘빠가당 마을’에서 온 18세의 풍강흰달을 죽일 것>의 계시가 종료됨. 오늘의 유희에서 열신은 더는 풍강흰달을 대상으로 특정한 계시를 진행하지 않는다. 풍강흰달을 특정한 계시는 취소되었다.]


‘바로 이 자라고?’


“오라고 해.” 대공은 말했다.


비서는 가서 문을 열어주었고 청휘열해가 들어왔다.

흰달은 쭈뼛거리며 뒤따라 들어왔다.

두 손을 공손히 아랫배에 모은 채로.

난생처음 최고급 상표의 옷을 빼입게 된 촌놈은 그게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자신도 잘 아는 거였다. 그래서 그런지 원숭이 목에 금붙이를 두른 듯한 어색한 태만 줄 뿐이었다.

그가 그녀의 뒤에 선 채 더 오려고 하지 않자 열해는 뒤돌아봤다. 그녀가 소매를 잡아끌자 흰달은 비틀대며 딸려와 그녀의 옆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란히 섰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손만 만지작거렸다.


“좋아.” 대공이 말했다. “누구냐?”


“저의 세 번째 남편감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두 늘 행복하세요~~


작가의말

모두 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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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작님의 세 번째 남편감] +5 20.05.29 310 3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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