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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아닙니다. 거짓말일지도.

메칼로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마니
작품등록일 :
2016.01.05 01:02
최근연재일 :
2019.03.13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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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30,491

작성
16.10.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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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미친 달의 노래(1)

거짓말이야. 아닐 수도 있고.




DUMMY

‘도둑이라고?’

바스 거리의 바실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갈립은 다른 것보다 도둑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그러고 나서 메칼로가 ‘거래한 사이’라고 말한 것과 에셀이 ‘테리아의 메칼로’라고 말한 것을 차례로 떠올렸다.

지드는 메칼로를 아르반의 기사단에서 보낸 인물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테리아는 대륙의 북쪽 끝, 여름 바다에 접한 작은 왕국의 이름이다. 어째서 아르반 사람일 메칼로가 테리아 인으로 불리는지, 국왕의 친위기사단장에게 신뢰를 받는 남자가 무슨 이유로 도둑과 거래를 했는지 그로서는 짐작이 되지 않았다.

메칼로나 그의 부하들이 평범한 기사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관 짓기 힘든 단어들이 연달아 튀어나오니 갈립은 정말로 이들이 아르반에서 온 조사단인지, 지드가 속임수에 빠져 실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까지 생겼다.

“그런데 에밀리오, 숲에서 길을 잃은 도둑을 잡아오다니 너답지 않은 실수라고 해야 할지, 너답지 않은 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메칼로가 소개에 이어 소년에게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건넸다. 에밀리오가 차가운 얼굴로 코웃음 쳤다.

“길을 잃은 도둑이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자리에 은신처를 만들어놓고 며칠씩 감시하지는 않겠지.”

소년의 대꾸에 에셀이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했다.

“어두운데 숲에서 헤맬 수는 없으니 잘 곳을 나무 위에 마련한 것뿐이오.”

“동물이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고 냄새가 심한 나무를 쌓아놓고, 은신처에서 백 걸음은 떨어진 곳에서 변을 보고, 아래에서 보이지 않도록 나뭇가지로 공들여 벽을 만드는 게 하룻밤 자려고 하는 짓은 아닐 걸.”

조목조목 반박하는 에밀리오의 말에 에셀이 입을 다물었다. 불쌍하게 보이려는 시도도 포기했는지 그가 적의 어린 눈으로 메칼로를 쏘아보았다. 메칼로는 그의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겼다.

“알마스트의 수도 경비대가 찾아내지 못할 정도라면 아르반을 벗어났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겼지만 이런 곳까지 와 있었군. 마을을 감시하던 중이었다면 우리로서는 네가 주민들의 실종과 관련 되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할 말이 있나?”

“바실의 아들들이 마녀나 괴물 따위랑 관련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우스운 일 아냐?”

에셀이 삐딱하게 대꾸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나는 마녀나 괴물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너 역시 같은 생각일 거다. 털어놓으시지.”

“털어놓으면 믿어주시겠다?”

조소하듯 말하고서, 에셀은 제 앞의 사람들을 휙 둘러보았다. 부하들이 지휘자를 닮는지 메칼로와 마찬가지로 적의도 긴장도 없는 표정으로 구경하는 중이었다. 못마땅한 얼굴인 사람은 자신을 사로잡은 소년과 늙은 기사 한 명뿐이다.

“한바탕 움직여서 잠도 달아나버렸으니 들려줘 보라고. 알마스트에서 날리던 도둑이 바그랏트 시골구석에서 뭘 훔치던 중이었는지 꽤 궁금하니까.”

에셀은 기분 상한 듯이 이마를 찡그렸다가 이윽고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2화. 미친 달의 노래>



“에셀! 기사님!”

소녀가 외쳤다.

“기사님! 자비를! 신들의 이름으로 자비를!”

가련한 목소리가 몇 번이나 등 뒤에서 울렸지만 에셀은 돌아보지도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자비를······!”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다가 마침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나는 기사 따위가 아니라고······.”

외투 자락이 펄럭이게 힘껏 걸으면서 그가 중얼거렸다. 이제 와서 말해봐야 소녀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기사는 그런 작자들이 아니야. 멍청하고 순진한 촌 계집 같으니라고.”

여자와 아이를 보호하고 괴물과 싸워? 그는 코웃음을 쳤다. 세상이 동화인 줄 아나.

알마스트에는 흰 망토를 걸친 기사도 녹색 망토를 걸친 기사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으나 그곳에서 여자와 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그들의 남편과 아버지의 일이었다.

괴물? 아무리 집어삼켜도 만족하지 못하는 배고픈 괴물이라면 있었다. 자신의 편안한 한 걸음을 위해 피하는 대신 짓밟고 지나가는 괴물도 있었다. 망토를 두른 기사들이 그들과 싸웠던가? 아니다. 그 반대였다.

기사들은 괴물의 수족이었다.

수도 경비대의 추적을 피해 숨어있던 곳에서 들리는 소식은 가족들이 괴롭힘 당하는 이야기뿐이었다. 다음에는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더니 마지막으로 들은 소식은 그들 형제가 손잡았던 귀족 가문이 쓸려나가고 왕과 모후가 탑에 갇히고 광장에서는 몇 명이나 목이 잘렸다는 내용이었다.

귀족들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전에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그들 형제는 귀족들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었다. 귀족들 역시 뒷골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이 주로 상대한 쪽은 수도 경비대에 속한 하급 관리들이었다.

그러다 친한 관리의 주선으로 받은 일거리가 뜻밖에도 재앙덩어리였다. 높은 양반들이 시키는 일을 하니 하는 것에 비해서 대가가 후하고 일하기도 편하다고 좋아했던 것이 어리석은 실수였다. 세상에 쉽게 돈 버는 일 따위는 없다. 진작에 배웠던 그것을 왜 잊어버렸을까.

어째서 늘 냉정했던 큰 형이 그런 실수를 했을까.

그들 형제가 뒷골목을 주름잡는 패거리라고 해도 기사와 군대를 거느린 귀족들 앞에서는 오합지졸과 다름없었다.

일이 틀어지자 깊이 관여한 형제들은 수도를 떠나 숨어야 했고 다른 형제들은 경비대에 잡혀갔다가 남의 등에 업혀서 나왔다. 그 후로도 도망 간 형제들을 내놓으라며 몇 번이나 행패를 부려서 다들 죽은 듯이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그런 소식을 열흘에 한 번씩 띄엄띄엄 듣다가 마침내 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믿을 수가 없어서 직접 뛰어가 보기까지 했다. 성문 밖으로 포진한 병사들을 보고 돌아갔으나 그 후로도 들려오는 소식마다 좋은 이야기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가족들만은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아예 아르반을 떠났다.

메칼로는 비웃듯 말했지만 그는 정말로 실력 있는 도둑이었다. 빈손으로 떠났지만 먹고 살 걱정은 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필요하면 먹을 것을 훔치고 입을 것이 필요하면 입을 것을 훔치면 된다.

돈이 필요하면 그것도 훔치면 될 일이었으나, 막상 길을 떠나자 시작부터 자신의 생각이 틀려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수도에서 태어나 평생 수도에서 살아온 알마스트 토박이였다. 건물과 건물이 맞닿아 있고 길거리에는 항상 사람이 보이는 큰 도시에서 살아온 그에게 집도 사람도 보기 힘든 시골이란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뭘 훔치려고 해도 딱딱한 빵이나 갓 낳은 달걀 정도가 고작이었다. 해안 지역은 해적 때문에 아예 꿈도 꾸지 않았고 곧장 바그랏트의 수도로 향했으나 통과하는 영지마다 떠돌이를 보면 붙잡아서 심문하는 통에 계획을 바꿔야 했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알리예와 나일의 부모였다.

짐마차의 바퀴가 부서져 길가에 서 있던 그들을 도와준 인연으로 일꾼이 된 것이다. 집 떠난 지 오래 되어 지친 에셀이었다. 밤이슬을 맞으며 밤을 보내거나 농가의 헛간에 몰래 숨어 자다가 쫓겨나는 일에 질린 나머지 농번기 동안이라면······ 하는 생각으로 머물렀다.

막상 땀 흘려서 일하고 대가로 음식과 숙소가 보장되는 생활을 해보니 그 단순하고 평온한 나날이 싫지 않았다. 알리예는 도시의 여자아이들과 달리 순수하고 꾸밈없었으며 나일은 막냇동생인 팔리를 떠올리게 했다. 그들의 부모인 부부 역시 처음에는 무뚝뚝했지만 바그랏트 인 특유의 보수적인 태도일 뿐 곧 순박하고 정 깊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싫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곳에서의 생활을 생각보다 더 좋아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는 끝이었다.

‘망할 놈의 괴물······.’

마녀라느니 괴물 이야기는 그도 믿지 않았다. 나일을 납치한 것은 분명 사람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찾아낸다는 말인가. 말을 타고 갔다면 이미 멀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일에 관여해 봐야 위험한 꼴만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는 머리를 휘저어버렸다. 그리고 주머니를 더듬어 빵을 꺼냈다. 그것을 뜯어 먹으면서 알리예나 나일 대신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이곳에 오기 전, 다른 곳을 떠돌던 때······. 그러다 문득 여기 오기 전에 주머니가 찢어진 일이 생각났다.

밤중에 농가에 몰래 들어가 닭을 훔치려던 때였다. 닭들이 시끄럽게 울어대자 주인이 몽둥이를 들고 뛰쳐나왔고 그는 꿈틀거리는 닭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달렸었다. 등 뒤로 주인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을 들으며 밤길을 달리다 어느 순간 주머니가 가벼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닭이 주머니의 약한 부분을 찢고 달아나버린 것이다.

그것을 대충 꿰맸었다. 그제야 에셀은 주머니를 새삼 확인했다. 자신의 엉성한 실력으로 수선했던 주머니 가장자리가 지금은 감쪽같이 멀쩡했다. 멀쩡할 뿐 아니라 붉은 색으로 소박하나마 작은 꽃도 수놓아져 있었다.

누가 한 일인지는 뻔했다. 농사일에 손마디가 굵어진 어머니 대신 식구들의 옷을 수선하는 것은 알리예가 맡고 있었다.

“참견쟁이 계집애 같으니라고. 남의 물건에 멋대로······.”

에셀이 투덜거렸다. 꽃이 뭐야? 내 주머니가 아가씨 손수건인 줄 아나?

그는 달빛으로 푸르스름한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처음 보는 길이 한동안 쭉 이어졌다가 이윽고 낮은 언덕을 만나며 구불구불 휘어졌다. 에셀은 자신이 숲 서쪽의 길을 따라 걷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생각하지 않았다.

‘말을 탔더라도 이런 밤중에 길을 벗어나 달릴 수는 없어. 더구나 말에는 나일도 실려 있어 무거울 테고······.’

나일의 납치범이 지나갔을 길을 걷고 있으니 그 자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부러 살려서 데려갔다면 당장은 위험하지 않을 테고. 목적이 뭘까. 노예사냥? 미치광이 살인마? 알마스트에서는 저주나 마법 의식에 쓰려고 사람 고기를 은밀하게 구하는 자들도 있었어. 아니야. 이 시골에 자기가 마녀라고 생각하는 미친 여자가 있다면 차라리 무덤을 파겠지.’

문득 돌아본 숲 안에서 불빛이 깜박거렸다. 나일의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불빛은 나무에 가려져 먼 하늘의 별처럼 희미하게 보였다 사라지고는 했다. 그가 밤새 숲을 헤매도 아들을 발견할 일은 없다. 나일은 고개를 숙이고 말발굽 자국이 남은 푸르스름한 길을 내려다보았다.

달이 밝으니 멀리 갈 수는 있겠지만 분명 안전한 길을 따라 이동했을 것이다. 그러니 길을 걷고 있으면 결국 만나게 되었다. 상대방은 목적지에 닿으면 멈출 것이고 에셀은 계속해서 걸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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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아침 아가씨의 성채(1) +11 17.01.02 604 28 12쪽
110 <3부. 테리아의 메칼로 - 프롤로그> +32 16.12.31 652 33 10쪽
109 <2부 완결 후기> +34 16.11.04 851 27 2쪽
108 <2부. 바그랏트의 메칼로 - 에필로그> +13 16.11.04 667 31 7쪽
107 며칠간의 일 +16 16.11.03 639 31 11쪽
106 이름 +14 16.11.03 698 26 13쪽
105 관계 +14 16.11.01 794 29 11쪽
104 의심 +16 16.10.31 715 28 10쪽
103 제물 +12 16.10.30 553 28 16쪽
102 형적(形跡) +18 16.10.28 699 2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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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자귀의 신(1) +14 16.10.18 650 25 14쪽
95 의문(3) +18 16.10.17 760 29 14쪽
94 의문(2) +8 16.10.16 626 30 14쪽
93 의문(1) +12 16.10.13 738 25 13쪽
92 미친 달의 노래(3) +22 16.10.11 688 27 15쪽
91 미친 달의 노래(2) +14 16.10.10 848 30 13쪽
» 미친 달의 노래(1) +16 16.10.08 695 3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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