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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831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5.08 13:00
조회
2,699
추천
80
글자
7쪽

둥베이 1)

DUMMY

아라사 황실의 사냥 행사는 매 사냥과 하운드 사냥 두 가지다. 매 사냥감은 토끼나 여우고 하운드 사냥은 사슴. 어디까지나 스포츠일 뿐 많이 잡는 목적이 아니기에 사냥감을 발견해도 한 박자 늦게 개를 풀어주곤 한다. 사냥감에게 도망갈 시간을 준 다음 추격하며 마음껏 달리는 것이다.

우리가 쫓는 순록의 질주는 말을 능가하는 속도였다. 겨우 따라잡은 사냥개들이 날뛰는 순록을 몰아대며 요란하게 짖어댔고 뒤늦게 도착한 니콜라이는 엽총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며 겨냥했다. 탕! 초여름 벌판을 울리는 총성과 함께 망아지만한 순록이 쓰러진다. 세파트와 보르조이들이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흔들며 헉헉 댄다.

“우리 조상들은 순록을 타고 이동했다고 하네. 지도자급만 탔다는데 왕관들에서 발견되는 순록 뿔 장식이나 문양이 그 증거지.”

사냥 후의 포도주 한 잔에 쾌활해진 니콜라이 2세였다.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순록은 말로 바뀌었지. 이제는 말이 기차로 바뀌는 시대로군.”


여름 별장의 뜰에서 다함께 하는 저녁 식사는 흥겨운 축제였다. 숙수들은 마당의 화덕에서 순록 고기를 굽고 하인들은 군데군데 피운 작은 모닥불에 젖은 나뭇잎을 덮어 연기를 피운다. 시베리아식 모기불, 연기가 식탁을 피해 흐르게끔 바람을 가늠해 피운다.

식사 끝날 무렵, 잔잔한 선율이 들려온다. 몰이꾼 식탁의 미쉔카가 발라라이카를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가 차츰 흥겨워지자 몰이꾼 사내 둘이 나서더니 춤추기 시작했다. 발을 힘차게 뻗고 접는 동작, 제 자리에서 뛰어오르며 팔을 휘두르는 율동, 웃으며 감상하던 짜르가 박수를 치자 시종이 미쉔카와 춤꾼들에게 금화를 하나씩 준다. 화석공주가 칭찬했다.

“활기 넘치는 춤입니다.”

“추운 지방이라 빠르고 크게 움직이는 동작이 많지요.”

쾌활하게 대꾸한 니콜라이는 이어갔다.

“저건 키예프 지방의 민속 춤입니다. 어느 날, 힘든 하루를 마친 석공이 팔다리를 접었다 펴며 쭉쭉 뻗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었답니다. 때마침 지나던 키예프 대공이 그 활기찬 율동에 반해 궁정 무희들에게 배우게 했다나요.”


여름 별장은 일행 모두를 수용할 만큼 넓지 않았다. 숙소 주변의 야영지에 세워진 천막을 배정 받은 나는 일찌감치 돌아와 모닥불을 쬐며 오붓한 망중한을 즐겼다. 야영지 옆의 시내 건너에서 희끗한 게 움직인다. 늑대였다. 새끼 두 마리를 거느린 흰 늑대가 냇가에서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이윽고 구름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밀자 목청을 뽑으며 길게 하울링을 시작한다. 잠시 후 멀리서 호응하는 다른 녀석들. 그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잠을 청하며 뒤척이는데 문득 싸한 느낌이 등줄기로 흐른다. 번쩍 정신이 든다. 천막 가리개를 살그머니 비집고 내다보았다. 모닥불 뒤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초록빛 두 개. 나보다 큰 덩치의 늑대였다.

녀석은 몇 발 다가왔다 한두 발 물러나는 식으로 조심스레 모닥불로 다가온다. 궁금스럽다는 표정과 늘어뜨린 꼬리에는 위협적인 기세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냇가에서 나를 바라보던 호기심 많은 녀석의 친선방문인 모양이었다. 놀라지 않도록 다정하게 혀를 차며 달랬다. 이윽고 경계를 푼 녀석은 모닥불에 전신을 드러내며 다가왔다.

불 옆에 궁둥이를 붙이고 처억 앉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며 몸을 쬐기 시작한다. 일렁이는 모닥불이 녀석의 눈에 황금색 반점으로 박혀있다. 무언가를 주고 싶다. 하지만 움직이면 달아날세라 꼼짝달싹 못하고 시선만 맞추고 있었다.

문득 영문 모를 잔잔한 기쁨이 샘물처럼 가슴 속에 괴여온다. 이번 여행이 오로지 이 순간을 위해 있었다는 무척 비논리적인 깨달음...! 그리고 벅찬 기쁨. 나도 모르게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다.

그렇구나, 이제 작림과 함께 둥베이로 떠날 시간이구나.

천천히 일어선 녀석은 내 바보 미소에 화답하듯 달을 바라보며 한바탕 목청을 뽑더니 후다닥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꽤 먼 곳에서 다시 기나긴 하울링이 들려온다. 툰드라의 밤이 너무 짧다는 투정인가?


베이징으로 돌아온 이홍장과 센위는 저수궁부터 찾았다. 이홍장의 보고를 들은 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으셨소. 그만하면 저들도 만족했을 터, 앞으로의 협조는 잘 되겠지요.”

“모두가 둥베이 철도부지 덕분입니다. 니콜라이 2세 폐하는 철도망 구상에 심취해 계십니다. 또한 공주마마의 풍부한 교양을 칭찬하셨습니다. 황실교류의 초석이 놓여졌음을 경하드립니다.”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부류와는 거리가 먼 이홍장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센위의 활약이 컸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따꺼가 아라사 황실을 한바탕 흔들어놓고 온 모양이로군.’


철도망 구상이 내 작품이라는 사실은 센위와 태후 등 몇 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다. 따라서 이번 일에서 나는 공주의 보좌관일 뿐 어떤 역할도 없었다. 그러나 진상을 아는 태후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진 역관을 어찌 포상함이 좋겠느냐?”

오라버니처럼 여겼지만 신하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던 센위인지라 눈만 껌벅인다.

“그는 조사에 능하니 감찰어사로 황실을 돕도록 하면 어떻겠느냐?”

2등 시위인 감찰어사는 정 4품관. 역학훈도는 조선의 종 7품이니 몇 단계나 건너뛴 고속 승진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그런 차이쯤은 안중에 없다. 그의 방책이 황실의 위기를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이 관심사였다. 황실이 곧 국가라고 믿는 태후에게 진 역관은 나라의 충신이었다. 그러나 센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충성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 황실을 장기 말쯤으로 여긴다. 꼬맹이들과 주변사람들은 아끼지만 그건 우정이고 애정이지 충성심은 아니다. ‘외국인이라서 그런가?’ 생각해본 적도 있지만 국가나 황실을 보는 시선이 어쩐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았다.


“마마님 뜻대로 하소서.”

다소곳이 답변을 올린 센위는 잠시 후 말했다.

“저는 명색이 기하인이면서도 둥베이를 제대로 본 적이 없습니다. 아라사와 본격적으로 어울리기 전에 이번에 진 역관이 승차하면 함께 살펴보고 싶습니다.”

화석공주가 아라사를 다녀오는 동안 생각이 많았던 태후였다. 돌아온 센위에게서 전에 없던 생기를 발견하자 자신도 궁밖으로 나서고 싶은 생각이 부쩍 든다. 시국도 조용하니 자신이 궁을 한 두달 비운다고 무슨 일이야 있겠는가?!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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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78 로젠리터
    작성일
    19.05.08 14:22
    No. 1

    늘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말없는장미
    작성일
    19.05.08 18:37
    No. 2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검은사하라
    작성일
    19.05.11 02:38
    No. 3

    준다 ㅡ 줬다
    한다 ㅡ 했다

    혹시 현재진행형 문장이라 생각하시고, 이렇게 쓰시는 건가요? 음... 문장의 매끄러움은 어색함이 없는 거랍니다.

    쓰시고 한번 소리내 읽어보시길 부탁드려요.

    구성은 좋지만 가독성은 좋지 않은 문장이고, 맺음말은 상당히 어색합니다 ^^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88 하산
    작성일
    19.05.11 16:07
    No. 4

    말문 트이기 직전의 아기들이 내는 소리.
    『알리불리 글리골리 갈리글리코...』
    그렇게 연습 중입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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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무비 학당 4) +2 19.04.28 2,535 64 9쪽
27 무비 학당 3) +1 19.04.27 2,478 61 7쪽
26 무비 학당 2) +1 19.04.26 2,529 67 8쪽
25 무비 학당 1) +2 19.04.25 2,613 68 9쪽
24 자금성 4) 19.04.24 2,507 66 8쪽
23 자금성 3) +2 19.04.23 2,519 75 9쪽
22 자금성 2) +3 19.04.22 2,509 66 8쪽
21 자금성 1) +1 19.04.21 2,607 70 9쪽
20 톈진 天津 7) +1 19.04.20 2,597 70 7쪽
19 톈진 天津 6) +1 19.04.19 2,590 7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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