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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840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18 06:00
조회
2,619
추천
66
글자
8쪽

톈진 天津 5)

DUMMY

센위가 데려온 곳은 허름한 만두 가게였다.

“톈진의 명물 구불리 만두狗不理 包子야. 전에 본 만두 따윈 잊어버려. 그딴 거랑은 아예 격이 다르니까.”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어른 주먹만 한 만두가 나왔다. 오므리다 생긴 큰 주름 대신에 고운 주름이 같은 간격으로 자잘하게 잡혀있다. 두어 번 꾹 찍어 만든 투박한 주름이 아닌 정성스레 만든 촘촘한 주름.

"주름이 15개 이상이라야 제대로 된 구불리 만두야.“

쫄깃쫄깃하면서도 입에 붙는 얊은 만두피. 돼지고기와 각종 재료로 빚은 소의 육즙이 배어나오는 맛이 과연 일품이다.

“여기 장궤掌櫃 (가게 주인)는 고귀高貴라고 내 친구야. 16살 때 가게를 냈는데 3년 만에 이곳 명물이 되었지. 고집이 세서 별명이 구불리인데 그게 만두 이름이 돼버렸어. 이젠 톈진에 와서 이걸 먹지 않으면 오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정도야.“


“실컷 먹어. 우공동모왕. 오늘 만두는 조선에서 온 형아가 낸다니까.”

미어터지게 베어 문 만두를 씹으며 고개들을 끄덕인다. 우공동모왕...? 중얼거리자 센위가 설명했다.

“나이순으로 성을 이어붙인 거야. 하나씩 부르면 성가시잖아.“

꼬마들 성은 동북 출신인 10살짜리 우于, 한 살씩 줄면서 산동의 여아 공孔, 산서 동董, 절강 모毛, 그리고 안휘 출신의 막내, 6살배기 왕汪으로 이어진다. 외우기는 쉽겠다. 우于만 사내아이고 나머지는 모두 계집애들이었다.


2개씩 먹어 치운 꼬마들은 작은 트림과 함께 손을 놓는다. 하지만 뭔가 아쉬운 눈치.

“또 다른 이곳 명물은 마화麻花 (꽈배기) 야. 18번가에 있어 스빠졔 마화 十八街 麻花라고들 부르지. 만두 후식으로는 딱인데... 그것도 살 거지?”

용케 그 말만은 알아들었는지 돌쇠의 인상이 꾸겨지기 직전이다. 돌쇠 발을 지그시 밟으며 얼른 대꾸 했다.

“그럼, 우공동모왕이랑 따꺼를 사귄 날인데 당연히 그래야지.”

아이들은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발까지 구른다.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친 김에 만두도 포장해 아이들마다 한 봉지씩 안겨주었다.


18번가로 가면서 센위가 설명했다.

“이곳 마화는 복숭아씨 속살에 매실이랑 열 댓가지를 섞은 반죽에 참깨 반죽을 꼬아 만들어. 실타래를 꼬아 만든 꽃모양이라 마화麻花지. 달고 바삭한데 오래 둬도 물렁해 지거나 상하지 않아.”

도착한 가게 문 위에 석자도 넘어 보이는 초대형 마화가 보란 듯이 걸려있다.


후식까지 먹은 아이들은 병영 입구로 우리를 바래다주었다. 겨우 몇 시간 어울렸을 뿐인 데도 헤어지기가 섭섭한지 시무룩하다.

“우공동모왕을 보려면 어디로 가면 되니?”

시무룩하던 얼굴들이 확 밝아진다. 일제히 눈을 반짝이며 좋아한다.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섭섭했을까?

“우린 사는 데가 따로 없어요. 그날그날 적당한 곳에서 자니까.”

우于의 말에 가슴이 찌르르 해진다.

“그래도 하루 한 번씩은 하이허로 가요. 거기 가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고...”

동냥하기도 좋다는 말은 쏙 빼놓는 우于 씨 아이였다.

“그럼 이틀 뒤, 아까 만났던 거기서 볼까?” 일제히 끄덕인다.

그런 나를 센위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아이들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꾀죄죄한 얼굴이지만 총기가 반짝이던 눈망울, 행복한 표정으로 꽈배기를 먹으며 조잘 대던 모습. 싸준 만두를 가슴에 품고 좋아 어쩔 줄 모르던 6살배기 왕아汪兒, 실컷 먹어 도 된다는 말에 동생들에게 양보하려던 만두를 슬그머니 집던 우아于兒, 그 어린 것들이 노숙을...! 애틋해 가슴이 멘다.

전생의 인연인가? 오늘의 만남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센위 또한 인연으로만 여겨진다. 아니면 왜...! 오다가다 만난 아이들의 불행에 왜 이리도 가슴이 저리단 말인가? 초자연 현상 이후의 나는 어느덧 미신에 가까운 직관을 믿어가고 있었다.


작림과 저녁식사를 하며 오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옆에서 듣던 다른 초장이 말했다.

“이름이 센위顯玗(현우)라면 기인旗人일지도 몰라. 한인들은 이름에 옥돌 우玗라는 글자를 기피하지. 그건 황족들 이름에만 쓰는 글자니까. 또 남자 이름에는 쓰지도 않고.”

그러자 작림도 한 마디 보태며 관심을 보인다.

“왕 초장은 유식한 사람이야. 나 같은 무지렁이하고는 다르지. 걔가 만약 기인旗人이라면 난 알아볼 수 있어. 우리끼리는 통하는 게 있거든.”

봉창 두드리는 소리들만 늘어놓는다. 나는 답답했다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 도울 방법을 찾아보자는 거지.”


작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툭 던졌다.

“데리고 있으면 되지 뭐. 빈 막사도 많은데.”

“ ... ?”

갸우뚱 했다. ‘먹고 자는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애들을 병영에 둬도 되는 걸까?’ 내 의구심을 짐작한 작림이 덧붙였다.

“둥베이에선 전사자 가족이나 고아를 부대에서 돌보는 일이 흔해. 졸지에 가장을 잃은 가족을 모르쇠하면 굶어죽기 십상이거든. 그러면 부대 사기도 떨어지고... 그러다 아예 입대해버린 애들도 많아.”


다음날 나는 본부중대를 찾아갔다. 사연을 들은 선임하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제식훈련으로 고생하신 부관님 말씀인데 그 정도야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장교식당 옆 막사 하나를 내드리겠습니다.“

간단히 해결되었다. 나는 군복 다섯 벌까지 챙겨 수선실로 가져갔다. 꼬마들 칫수에 맞추어 줄일 요량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센위는 자꾸 웃음이 나왔다. 마화까지 몽땅 바가지를 씌우자 부르르 하며 나서려는 동생 녀석을 말리던 조선 청년이 떠올라서다. 내가 여잔 줄도 못 알아보는 어리숙한 구석은 있지만 괜찮은 녀석이었다.

내 성은 아이신줴뤄愛新覺羅, 숙친왕肅親王 선기善耆의 고명딸이다. 쇠 금金을 둥베이에서는 아이신이라 읽고 애신愛新이라 쓴다. 줴뤄覺羅는 겨레, 부족. 그러니까 아이신줴뤄 센위는 『김씨 부족의 센위』즉 김센위인 셈이다.


내 눈에는 시대가 바뀌어가는 게 보인다. 그래서 새로운 시대에 적응 못해 무너져버린 황실에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집착하는 부친과 오빠들이 딱해 한 마디 했다 된통 야단만 맞았다. 철없는 어린 게 뭘 아느냐고... 내 보기에 막상 뭘 모르는 건 아버지와 오빠들이었다.

부친은 다섯 등급(친왕-군왕-패륵-패자-공)의 황족 중 최고등급인 친왕이다. 그 중에도 세습 친왕인 철모자 왕, 황실에서도 높은 신분이다. 부친은 친분을 맺은 경찰서장 가와시마 마나니와 川島浪速와 오가며 만주와 몽고 독립을 꿈꾼다. 그래서 아들들을 몽고, 일본으로 보냈다. 나도 가와시마에게 양녀로 맡기려 했다.

하지만 나는 음흉한 가와시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를 따라 일본으로 가기 싫다며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는 집을 뛰쳐나와 버렸다. 그렇게 베이징을 떠나 톈진에 온지도 벌써 두 달째. 그 동안 꼬마들과 어울리는 재미로 지냈지만 앞으로 어찌 지낼지는 막연하다. 이제 17살, 제 앞가림은 해야 하는 나이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작가의말

바얀티무르 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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