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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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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324

작성
19.05.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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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글자
10쪽

화석 공주 4)

DUMMY

알프레드와 나는 덕국 공사관을 통해 기술도입계약을 진행하는 한편 주주가 될 태감들의 일자리도 마련했다. 출궁대상 태감들 중 조직관리나 회계지식이 있는 인재를 선발했다. 출궁 사유가 꼭 늙어서만은 아니었다. 황궁 적응이 어렵거나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다.

선발한 3명 중 두 명은 20대였는데 윗전의 비위를 거슬러 쫓겨난 경우였다. 농촌 출신인 왕이는 어릴 때 개에게 고환을 물려 고자가 되었다. 곱상하게 생긴 아삼은 집이 가난해 어릴 때 팔려갔는데 바로 거세당해 입궁했다. 성품이 곧아 미움 살 인품은 아닌데 쫓겨났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연영은 더 이상 묻지 말라고만 했다. 아마도 문제는 이들이 아니라 쫓아낸 윗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다른 한 명은 40대의 장년이라는데 겉보기로는 60줄 노인이다. 이연영은 그를 추천하면서 조직관리의 달인이니 절대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전생의 회사생활 경험을 살려 3사람과 함께 지내며 조직관리부터 설명했다. 기술문서는 영어와 독일어일 수밖에 없어 아라비아 숫자와 알파벳을 가르쳤다. 문장 해석은 못해도 단어 정도는 읽어야 하니 불가피한 교육이었다. 어차피 공장운영은 독일 기술자들이 하겠지만 이들의 톈진 생활지원은 우리 몫이었다. 직공을 뽑아 훈련시키고 관리하는 일 역시 우리 몫. 우선은 백 명 정도로 시작할 예정이지만 공장이 대형화 되어도 적용될 수 있도록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다.

방직공장은 건물을 올리는 중이지만 장비 도착까지는 1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원료확보와 판매대리점 선발, 협력업체 정비 등 준비할 일은 많았다.

나는 창업 준비에 5.5단을 동원했다. 인기상품인 면직물 공장은 도둑들의 표적이 될 것이었다. 경비업무를 무비학당 생도들에 맡긴다면 현장훈련이 될 것이니 서로가 좋은 일이었다. 방직공장이 내는 경비료는 5.5단의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무비학당은 우리의 우정을 다져가는 요람이었다. 센위 19살, 나 22살, 알프레드 31살, 나이차가 컸고 신분과 국적 또한 달랐지만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 모든 차이들은 사라졌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공주, 센위에게는 황궁에서 보고 들은 가십거리가 풍성했다. 발랄한 소녀는 엄숙한 궁중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에 양념을 섞어 주었고 그때마다 우리는 뒤집어졌다.

“마마님 수라상에는 120가지 요리가 나와. 다 벌리려면 상이 좁으니 일단 서른 가지 쯤 차려. 맛본 건 치우고 새 걸로 채우지. 마마님이 어떤 접시를 바라보면 난 얼른 그 요리를 앞 접시에 덜어다 바치고...”

문득 고개를 젖히더니 거만스레 눈을 내리깔며 요리접시를 바라보는 시늉을 낸다. 무언 극에 익숙해진 알프레드가 얼른 벤치 밑의 도토리를 주워 공손히 두 손으로 바친다.

“음, 잘 했노라.”

도토리를 천천히 집어 든 센위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대부분은 손도 대지 않아. 드시는 요리도 한 두 수저뿐 세 번 드시지는 않지. 무얼 좋아하는지 알려지면 위험하니까. 같은 요리에 세 번째 수저를 대려하면 시립한 늙은 태감이 헛기침을 해. 그러면 얼른 수저를 멈추지.”

외교관 신분인 알프레드의 관심사는 단연 시국담.

풋풋한 청춘들의 화제는 다양했고 내 단골 메뉴는 열강들의 정세 예측이었다. 각박한 현실은 언제나 상상을 뛰어넘기 마련, 게다가 내 예측은 조만간 다가올 현실이었으니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다.


시공을 건너뛴 세월을 방황하던 내게는 어느덧 꿈이 생겼다. 나는 그 꿈을 원래 역사에 접목해 소설로 엮어갔다. 내가 들려주는 『유럽정세 예측』의 정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센위와 알프레드의 반응을 보며 소설을 수정해갔다. 그것은 그들이 내 꿈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며 설득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열강들은 언젠가 한바탕 홍역을 치를 거 같아. 산업혁명 선발주자와 막 시작한 후발국들, 식민지 부자들과 이제부터 그걸 가지려는 나라들, 저마다 더 큰 뼈다귀를 노리며 으르렁대는 중이야. 개싸움이 평화적으로 마무리될 리가 없으니 결국에는 서로 물고 뜯겠지.”

개싸움, 뼈다귀 등을 들먹이자 알프레드의 표정이 불편해진다. 하지만 이내 쓴 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런 말 들어도 싸지. 아귀다툼 벌이는 장사치나 진배없는 꼬락서니들이니...”

알프레드는 내 가설(?)의 가능성을 인정했다.

보불전쟁에서 알자스로렌을 빼앗긴 프랑스는 앙앙불락하고 있다. 해운을 장악해 동방교역을 독점한 영국에 도전하는 제정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동방진출을 도모하는 동시에 부동항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노회한 영국은 극동으로 뻗어가는 러시아의 대항마로 신흥국 일본을 부추기는 중이고... 러일 전쟁의 단초는 이미 열리고 있었다.

“열강들은 각축을 벌이고 있어. 이면으로는 연횡합종도 활발하고... 덕국은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만 터키 제국과 친하지. 영국, 프랑스 등은 러시아와 가깝고... 전단戰端은 아마도 이들 두 그룹 사이에서 열리기 쉬울 거야.”

20년 후, 이들은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나뉘어 1차 세계대전을 벌인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너무 나간 이야기였다.


알프레드의 관심은 갈등의 전개 양상이지만 나의 관심은 갈등 이후의 세상이었다.

“전쟁이 될지 혁명이 될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그 홍역을 치르고 나면 세상은 바뀔 거야. 이를테면 지금 왕조들의 대부분이 사라진다던가...

왕조를 갈음하는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면 귀족문화는 사라지고. 기득권층이 축적해온 거대한 부 또한 흩어지겠지. 대혼란시대가 올 거야. 나라를 세우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건 한 순간.

그 아까운 것들을 보존해 의미 있는 무언가에 활용할 수 있다면...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그 무엇... 이를테면 인류의 유산으로 보존될 연구, 대토목 사업 등등.“

잠시 침묵했다. 기발하고도 엉뚱한 그리고 무거운 이야기라 우리는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앉은 벤치 위로 넉넉한 그늘을 드리운 포플러 나무에서 매미들이 기세 좋게 울어댄다.


1차 대전 후 제정러시아, 오스만 제국 등 구시대의 주인들은 사라진다. 그들의 거대한 부 또한 산산이 흩어진다. 참혹한 시대가 온다. 무자비한 폭력과 무뢰배들이 날뛰는 아수라장. 문화는 파괴되고 자본은 약탈당한다. 인류의 자산은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 무참히 파괴될 것이다. 나는 아까웠다. 허무하게 사라진 그것들을 활용해 생산적인 무언가를 했더라면...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그 무엇... 인류의 유산이 될 지식, 대 토목사업 등등. 내가 구상하는 소설의 주제였다.


나는 유대인을 생각했다. 금융제국 로스차일드를 키우고 신비단체 프리메이슨을 지배하는 유대인. 드레퓌스 사건으로 촉발된 시오니즘 운동은 이제 건국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끈질긴 저력의 원천은 생활화된 탈무드, 토라의 교양, 그리고 금융지식. 사라질 운명의 왕조들이 명맥이나마 유지하려면 이들을 배워야한다. 돌궐 비석은 말한다.

『성을 쌓는 자, 망하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는다.』

그렇다. 이게 바로 진리다. 유대민족이 살아남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나라가 없어서였다. 정착할 나라가 없어 떠돌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몰살을 면하고 살아남았다. 화가 복이 된 경우다.

러시아 황실, 오스만 제국의 칼리프, 그리고 청나라 황실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운명이다. 그러나 지혜를 발휘해 피난처를 만든다면 명맥은 어찌어찌 유지할 수 있으리라. 피난처가 꼭 영토만은 아니다. 로스차일드에게 영토가 있는가? 프리메이슨의 땅이 있는가? 지혜로운 문화와 장치를 발명한다면 이 또한 훌륭한 피난처가 될 수 있다.


나는 이어갔다.

“왕실이나 국가도 비상시의 피난처나 보험이 필요해. 그러려면 유대인을 배워야 할 거야. 러시아는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아무르 강 기슭 오지로 쫓아냈다고 해. 둥베이에 보금자리를 제공한다면... 그들의 협력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 힘이 있을 때 보험에 들 필요가 있어.”


“세계를 잇는 교통망. 미주에서 베링 해협을 거쳐 유라시아,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철도망. 그리고 수에즈를 지나 보스포로스, 다다넬스 해협을 거쳐 세바스토폴 항까지 이어지는 해운 항로... 이 정도면 국가건설 못지않게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잖아?

쾰른 대성당은 백년에 걸쳐 세워졌다 들었어. 철도는 막 시작된 첨단기술이니 앞으로 수백 년은 이어갈 거야. 영토가 아니라 철도망을 근간으로 삼는 국가...“

“철도망으로 국가를 삼는다...?”

센위가 끊고 들어왔다.

“맞아, 아무래도 그것만으론 어렵겠지. 바이칼 동쪽 시베리아는 미개척지야. 둥베이도 비슷하고. 둥베이는 청나라의 피난처가 되고 바이칼과 치타 동쪽의 극동 시베리아는 제정 러시아의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거야.

연구소를 세우고 도시 인프라를 세울 정도의 힘은 아직 있으니 피난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극동 러시아와 둥베이 청나라가 협력해 백년 정도로 길게 잡고 세계 철도망 건설을 추진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야.”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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