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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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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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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일어나는 풍운 2)

DUMMY

1899년 7월,

태감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생도부대의 거취를 정할 시기가 다가왔다. 더 이상 베이징에 머무를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비록 의화단의 난은 없었지만 시베리아 철도부설과 부동항을 노리는 아라사는 여전히 둥베이를 호시탐탐하고 있다. 조만간 같은 운명을 맞을 청나라와 아라사.

내 소설 『유럽 정세예측』에서 이들은 둥베이와 극동 시베리아에서 각각 피난처를 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나는 센위를 찾았다.


“내가 보기에 태후마마는 복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벌을 받는 삶을 사시는 것 같아요.“

잡담 끝에 센위가 불쑥 말했다. 나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금성에서의 그녀는 따꺼 시절과 다르다. 무엇을 말하건 함부로 대꾸하면 안 된다. 눈치없이 나오는 대로 대꾸하다 귀에 거슬리는 말이라도 나오면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입을 다문다. 이것이 상삼기(양황기, 정황기, 정백기) 출신의 귀족, 기하인들의 성격이다. 누군가가 심문하듯 꼬치 꼬치 캐물으면 아예 상대도 하지 않는다. 친왕의 딸이자 화석공주의 작위까지 받은 그녀는 기하인 중의 기하인이었다.


“지체 높은 황태후지만 26,7세에 과부가 된 여인이예요. 곁을 지키는 건 철없는 여자 아이들뿐이고 받드는 자들이라고는 간교한 태감들뿐입니다. 먹고 놀면서 교활한 꿍꿍이만 가득해요. 상전 마음을 떠보며 아첨 떨지만 제 이익만 챙길 뿐. 마마도 알지만 그들을 옆에 두지 않을 수 없어요. 이게 바로 벌 받는 게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그새 정이 들었는지 진심으로 측은해하는 표정이다.

“환경을 바꾸어보면 어떨까요?”

뚜벅 던졌다. 우리는 톈진에서와 달리 자금성에서는 서로 존댓말을 한다.

“신하나 궁녀, 태감이 아닌... 조계 외교관처럼 왕실을 대표하는 신분. 또는 외국 황실 인사들...”

뜻밖의 말에 호기심을 보인다.

황실끼리 오가면 이는 곧 외교. 당대의 황실들은 관료를 내세워 외국과 접촉할 뿐 스스로 나서지는 않는다. 이는 자질이 부족하고 실력도 없는 본인들 탓도 있지만 이들을 궁에 가두고 전횡을 일삼는 관료들 탓이 더 컸다.

“이 나라에는 수백 년에 걸쳐 쌓인 방대한 자산이 있지요. 지난 주식공모에 50만 냥이 순식간에 모인 것만 봐도 그 규모는 짐작됩니다. 아직 초창기지만 생산도 안정적이고. 쟁여둔 자산을 투자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례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진취적 기상이 부족합니다. 이번 사례를 알려 모험심을 부추기면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센위는 묵묵히 끄덕였다.

“동방교역을 독점한 영국에 맞선 아라사는 시베리아 철도로 동방진출을 꾀하는 동시에 부동항에도 눈독들이고 있습니다. 노회한 영국은 일본을 대항마로 부추기고... 열강들은 목하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연횡합종도 활발하고... 덕국은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만 터키 제국과 동맹을 맺고 영국, 프랑스 등은 러시아와 연합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중입니다.”

톈진에서 여러 차례 나눈 대화였지만 센위는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이 모든 정세는 관료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절차를 통해 외국과 접촉하고 다시 본국에 보고해 훈령을 받는 식으로 느릿느릿 진행되고 있지요. 하지만 바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분들끼리 만난다면... ”

잠시 말을 끊고 센위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인간적 친분까지 더해진다면 보다 덜 소모적이고 창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고 사료됩니다.”


“짝짝짝”

느닷없는 박수소리. 깜짝 놀라 문 쪽을 보니 이연영이 태후를 모시고 서 있었다.

“탁견이네.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참신한 이야기.”

태후가 들어서며 말했다.

“그동안 신 역관을 자주 보지 못한 게 후회될 지경이라네.”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센위를 바라본다.

“네 말이 맞다. 난 늘 벌을 받으며 지냈단다. 하지만 그런 나를 측은히 여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이건 아까부터 들었다는 얘기였다.

“아라사 이야기를 더 들려주게. 그곳 황실은 어떤 사람들인지도... ”

나는 생각을 가다듬었다. 31살의 짜르, 니콜라이 2세와 OTM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는 아기 자매들.

니콜라이 2세 1868년 5월 18일 ~ 31세

로마노프 황가 자매들의 머리글자 OTM --- 올가 4살, 타티아나 2살, 마리아 1살.

태후의 등장은 서쪽을 향한 아라사의 시선을 동방으로 돌려세울 기회였다. 세계철도의 꿈에 아라사를 끌어들이고 아무르 강 일대의 유대인들과 접촉할 기회였다. 다가오는 혁명 시대를 경고하고 왕실과 나라의 피난처와 보험이 필요함을 알릴 기회였다.


“그 동안 짜이펑 공을 모시며 그분의 박식함과 인간적 매력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아라사의 짜르, 니콜라이 2세도 공과 비슷하신 분이라 들었습니다.”

태후의 얼굴에 살짝 호선이 그려진다. '이건 짜르가 우유부단하고 대가 약한 자라는 말이렷다...‘

“아라사 조정은 유대인에 적대적이고 핍박받은 유대 지식층은 극렬한 반정부활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

슬쩍 눈치를 살폈다. 비록 외국 이야기지만 반역에 관한 사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후는 별다른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가정적으로 행복한 분이지만 제국의 황제로서는 고민이 많으신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태후는 끄덕였다.

“아라사 황제의 인품과 가정환경 그리고 당면과제까지... 깔끔하군. 전부터 느꼈지만 신 역관의 박식함은 그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야.“


태후의 호기심에는 끝이 없었다. 피터 대제 이래의 로마노프 왕조 역사에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 그리고 부동항을 향한 아라사의 동방정책까지 이야기는 이어졌고 결국 저녁식사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태후의 식사에 초대받은 외부인사는 처음이노라 이연영이 귀띔해주었다. 실로 놀라운 얘기였다. 이 여인은 평생 혼자서 밥을 먹었단 말인가? 식사하며 나누는 담소의 즐거움도 모르고 살았단 말인가? 초대하면 기쁜 마음으로 달려올 당대의 기인이사들이 줄을 설터인데... 외로운 식탁은 고집불통의 외골수로 이어지는 법. 측은했다.

듣던 대로 수십 가지 요리가 차려진 상 앞에서 난감해진 나는 센위의 눈치를 보았다.

“드실 요리를 가리키면 됩니다."

태후가 웃었다.

“차림이 좀 요란하지? 나도 이러기는 싫다네. 하지만 무얼 잘 먹는지 지켜보는 눈이 있다고 해서 ... 안전을 위한 위장막이지.”

기가 막혔다. 밥 한 끼 먹는 데도 눈을 속여야한다면 부귀영화가 다 무슨 소용이랴...!

병사들과 같이 먹던 내게 그날 저녁의 요리는 문자 그대로 산해진미였다. 상어 지느러미 찜에 자주 수저가 가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태후가 문득 말했다.

“신 역관 집안은 부자였던 모양이군. 그건 먹어본 사람 아니면 즐기지 않는 요리인데...”

조선의 역관 집안에서 샥스핀 찜을...?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내가 이걸 먹었던 곳은 21세기의 호텔 중식당이었다. 나는 적당히 둘러대었다.


“평양성 전투 때 좌보귀 부대 주방장이 솜씨를 부린 적이 있었습니다. 포로수용소의 일본 장교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는데 정통 중식을 선보였습니다.”

“호오, 국위선양을 한 셈이군. 나중에 이름을 알려주게. 상을 내리겠네.”

여걸 대이랑을 떠올린 나는 가만히 웃었다.

“그 주방장은 여자입니다. 좌 장군 부대의 따꺼로 통하는 여걸이지요.”

태후의 눈길이 센위를 향한다.

“따꺼는 여기도 한 명 있는데, 아무래도 기인들에는 여걸이 많은 모양이로군.”

그 여걸에 본인도 들어간다 여겼는지 문득 미소를 짓는다.


거창한 식사를 마치고 차가 나오자 태후는 화제를 이어갔다.

“아라사 황실과 교류한다면 공통 관심사로는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구상해 두었던 소설의 내용대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관심사는 단계별로 달라질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첫 번째 접촉은...”


로마노프 왕조나 청나라 황실은 저마다 유서깊은 문화를 간직한 가문. 일단은 문화교류를 통한 교제가 자연스럽다. 신하들과는 공유하기 어려운 황실만의 고민을 나눌 정도로 우정을 쌓아야한다.

다음에는 정치적 실적 쌓기. 아라사의 동방정책은 시베리아 철도개통과 부동항 확보가 목표다. 블라디보스톡 노선은 둥베이 북쪽의 하얼빈지역을 통과하는데 청나라와의 전쟁 없이는 어렵다는 게 관료들의 판단. 이 문제를 양국 황실이 나서서 해결하면 황실의 위신이 서고 전쟁도 막을 수 있으리라.


이 과정을 통해 신뢰가 쌓여갈 것이다. 다음은 신하들과 나눌 수 없는 고민을 나누는 단계. 즉 생존전략이다. 아라사와 중국, 두 나라 왕조들의 평균수명은 2~3백년 남짓했다.

자고로 왕조들의 교체시기는 시대적 변화시기와 일치하곤 했다. 지금 유럽에서는 『세기말적』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면서 정치, 문화 등 사회전반에 걸친 급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이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다. 맞서봐야 당랑거철이니 역사의 파도에 휩쓸려 무너질 뿐. 여기에 대비한 피난처, 그리고 보험도 필요하다.

“황실간 교류의 목적은 서로의 생존을 위한 협력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공통 관심사라 사료되옵니다.”

깊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태후를 바라보며 말을 마쳤다.


복잡한 표정이 된 태후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일찍이 그 누구도 절대권자 앞에서 감히 왕조교체에 대해 논하지는 못했다. 지금 왕조의 종말을 들먹이는 이 젊은이는 대체 누구인가? 어느 날 갑자기 센위와 함께 나타난 이 젊은이는 어쩌면 하늘이 내게 준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태후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 많았다.”

센위를 향한다.

“오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지 말거라. 우리만의 숙제로 남겨두자.”

위험할 수도 있는 오늘 발언을 문제삼지 않겠다는. 내 입장을 배려한 발언이었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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