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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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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42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23 06:00
조회
2,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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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글자
9쪽

자금성 3)

DUMMY

일단 센위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상대는 영혼 없는 수작 따위는 통하지 않는 영악한 아가씨다.

“거절할 방법은 없어. 하지만 호랑이 굴에 떨어져도 정신만 차리면 살길이 생긴다잖아. 차분히 생각해보자. 우선 상대가 누구냐? 이것부터...”

눈물자국이 마르지 않은 센위는 무슨 생뚱맞은 얘기냐는 표정이다.

“태후는 여걸이야. 비슷한 경우라면 천 년 전 무측천 정도지. 당의 전성기, 개원開元의 치治가 열리는 바탕을 다진 명군, 측천무후는 82살로 죽었는데 말년에 후사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고 해. 그래서 젊은이들을 눈여겨보곤 했는데 그때 눈에 띈 게 상관완아上官婉兒(664 ~ 710)야. 13살부터 무후를 30년 가까이 모신 완아는 역모 사건으로 멸문당한 집안의 여식으로 노비 신분이었어.

「나를 원망하느냐?」

13살 소녀에게 무후가 묻자 응구첩대로 대꾸했지.

「원망하면 불충이고, 원망하지 않으면 불효가 됩니다.」

이 한 마디로 즉석에서 발탁된 완아는 노비신분을 면해. 똑똑하고 기개 있는 여자아이를 찾던 50대의 무후는 완아를 제자나 딸처럼 여겼다고 해. 가르쳐보니 언변, 지혜, 문재, 공무에 두루 능한 재녀라 더욱 아꼈지.

무후에게 정치를 배우고 노비 생활로 세상물정을 익힌 완아는 온갖 문서들을 황제대신 결재하곤 했어. 당시 정치가 제대로 돌아간 데는 완아의 역할이 적지 않았어. 34세가 되자 조정문서들 대부분이 그녀를 통해 내사인內舍人이라 불렸고 무후가 황제로 즉위하자 건괵巾幗(여자 머리장식) 재상이라 불렸어.“


시큰둥하던 센위가 어느새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곳 세우고 있다.

“난 네가 똑똑하다는 걸 알아. 네 나이에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맞선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냐? 또 시대변화를 통찰하는 안목이란 나이와 상관없이 어려운 일이고... 이 두 가지를 해낸 네가 어디 보통 사람이냐 이거야. 자신감을 가져. 측천무후의 마음을 잡은 완아처럼 서태후 생각을 읽고 대응해. 그러면 길이 생기리라 믿어.“

센위가 문득 말했다.

“상관완아는 나도 알아. 닮고 싶은 인물이기도 했고. 근데 서태후가 과연 무측천 만큼 총명하고 유능한 군주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건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하지만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빈 구석이 많을수록 기회도 많지 않겠어?”

일국의 지존을 도마에 올려 멋대로 평가하는 재미에 저도 모르게 마음이 풀렸는지 배시시 웃고 있는 센위였다. 더 이상 내 앞에서는 허세부릴 필요가 없어서인지 껄렁한 태도를 지워버린 센위는 제법 다소곳한 모습이다.


황궁으로 들게 된 것은 열병식 이틀 후였다. 회색 파오쯔袍子(두루마기)에 짧은 겉옷 꽈즈落子의 환관이 우리를 안내했다. 나와 꼬맹이들은 상체를 수그리고 좁은 보폭으로 걷는 검정 바지에 환관 모자의 안내인을 따라 자희태후가 있는 서 6궁으로 향했다. 서태후로 불리우는 이유는 서 6궁이 거처라서다. 동 6궁에 사는 또 다른 태후는 동태후로 불리운다.

황궁은 천안문을 지나 오문午門에서 시작된다. 오문을 지나 사자 받침의 태화문부터가 황궁. 높다란 월대에 가려 태화전은 지붕 끝자락만 보인다. 무려 석자 깊이로 깔렸다는 전돌 광장을 끝없이 걸었다.

업무공간인 외조外朝 건물(泰和殿, 中和殿, 保和殿)이 3단 화강석으로 쌓은 월대月臺위에 직선 으로 늘어서 있다. 외조를 지나니 내정. 이곳 건물 역시 세 개(乾淸殿, 交泰殿, 坤寧殿). 건청문 사자상은 태화문 사자들보다 조신해 귀가 처지고 눈도 깔고 있다. 모름지기 여인은 듣지 도 보지도 말라...?

무위無爲라는 현판이 있는 교태전交泰殿 대들보의 봉황은 용 위에 있었다. 음양이 뒤바뀐 것. 어쩌면 서태후의 장난 아닐까? 한자와 만주어가 병기된 현판들. 문門의 오른쪽 획이 삐쳐 올라가지 않았다. 용龍이 걸려 넘어질까 해서란다. 내정의 門자는 모두 그렇단다.


드디어 도착한 서태후의 거처, 저수궁은 거대한 자금성에 걸맞지 않게 작고 아담했다. 우리는 낙수당樂壽堂의 우람한 마당석 앞에 정렬했다. 안내해 온 태감이 다가가 나직이 말하자 끄덕인 궁녀가 우리를 훑어본다. 센위와 비슷한 연배. 궁녀들은 17,8세가 되면 궁을 나와 시집을 가야 한다. 따라서 이 궁녀는 마마님으로 불리우는 고참이리라.

“혹시 몸이 불편하거나 소피 마려운 사람 있는가?”

왕아汪兒가 살았다는 듯 얼른 손을 든다. 이어서 우아를 제외한 꼬맹이들 모두가 손을 들었고 결국 센위까지 측간을 다녀왔다. 소세간에서 씻고 온 꼬맹이들에게 궁녀가 일렀다.

“마마를 뵙게 되면 절을 해야 한다. 한번 절하고 엎드린 채 세 번 조아린다. 알겠느냐?”

“예” 꼬맹이들은 먹이 받아먹는 제비새끼들처럼 일제히 입을 벌렸다.

“또한 마마께서 시키기 전에 먼저 말하면 안 된다. 권하기 전에 먹어서도 안 된다. 알겠느냐?”

“예”

“곁눈질 하거나 잡담해도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알겠느냐?” 는 끝없이 이어졌다.


엎드려 조아리는 꼬맹이들을 본 태후의 얼굴이 밝았다.

“어서 오너라. 내 너희가 보고 싶어 안달했었느니라.”

팔을 벌린다. 시립해 있던 궁녀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우물쭈물하는 왕아를 태후에게 슬며시 밀어준다. 왕아를 무릎에 앉힌 태후는 뺨을 만져보며 물었다.

“몇 살이냐?”

“여섯 살입니다.”

"친구들은 언제부터 함께 지냈더냐?”

부끄럼을 타 비비꼬던 왕아가 센위를 힐끗 했다.

“어느 날 따꺼가 데려왔어요.”

“따꺼 .... ?”

센위가 나섰다.

“아이들이 저를 그렇게 부릅니다. 마마.”

태후는 박장대소를 한다.

“거 참, 대단한 따꺼로구나.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아 보이는데.”

조마조마 했다. 태후의 오해를 이대로 둘지 아니면 사실대로 밝혀야 하는지...


그러나 왕아에게 과자를 집어준 태후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조선의 역관이라 들었다. 역관이 어찌 제식 훈련에는 관심을 두었더냐?”

화제가 바뀌어 천만다행이었다. 이 까다로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단어를 피해가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역관 일 덕분에 해외 문물을 자주 접했습니다. 마차에서 기차, 자동차로 이동 수단이 바뀐 세상이고 화약무기의 시대입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백여 년 전, 영길리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이를 통해 국력을 다진 양인들은 기차와 증기선, 총과 대포를 갖춘 군대도 만들었습니다. 이것들을 만든 것은 결국 인간. 일찍이 각하께서는 관비유학생을 해외로 보내셨고 양무洋務(근대화 정책) 운동을 후원하셨다 들었습니다. 일단 씨는 뿌린 것입니다.

역병을 두려워 함은 전염 때문입니다. 그 역병보다 더 빠르게 퍼지는 게 바로 교육 효과입니다. 백련교나 태평천국의 도당은 잘못된 생각에 감염된 무리입니다. 못된 말이 삽시간에 수십만을 감염시킨다면 올바른 생각 또한 그럴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 결국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정신을 굳건히 하는 데는 훈련을 통한 긴장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익히게 되었습니다.“


“제식훈련이 양무운동의 기본이라는 뜻인가?”

“그러하옵니다. 건강한 몸에 올바른 정신이 깃든다는 뜻입니다.“

흐음, 왕아를 무릎에서 내려놓은 태후는 아이들에게 손짓했다.

“과자들 먹어라. 왜 그렇게 불편하게들 있느냐?”

다시 나를 향한다.

“그 효과가 나타나려면 얼마나 걸린다고 생각하느냐?”

양무운동의 결실을 언제나 거둘 수 있겠는가? 돌멩이를 던져 바다를 메우려는 어리석음은 아닌지...! 그녀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의구심이었다.


“영길리는 150년 전에 산업혁명을 맞이했습니다. 이후 숱한 시행착오와 사회격변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한 그들로서는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이미 닦아놓은 길을 가면 되니 빠른 속도로 따라잡을 수 있고 성공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일본입니다. 하지만 한계는 있기 마련,

제아무리 압축해도 한 세대정도는 족히 걸릴 것입니다. 일본의 명치유신도 40여년에 걸친 성과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만큼 있느냐는 점입니다.“

태후의 고개가 가만히 주억여진다.

‘그렇다. 과연 청나라에게 그만큼의 시간이 주어질 것인가?’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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