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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837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24 06:00
조회
2,507
추천
66
글자
8쪽

자금성 4)

DUMMY

잠시 아이들을 바라보던 나는 말을 이어갔다.

“둥베이 서북쪽의 대흥안령 산맥은 몽골대초원과 둥베이 평원의 경계입니다. 산맥 동쪽, 즉 둥베이 쪽은 가파르지만 몽골 초원을 향한 서쪽 사면에는 완만한 후룬베이얼 초원이 펼쳐집니다. 천혜의 목장, 초원의 진주라 불리우며 유목민의 사랑을 받지요. 후룬과 베이얼은 '수달'의 몽골어입니다. 수달들이 서식할만큼 후룬 호와 베이얼 호에 어류가 풍성했다는 의미이겠습니다.

이 천혜의 초원은 유목민들의 낙원이자 피난처였습니다. 세궁역진해 궁지에 몰린 부족들은 이곳에 은둔해 살아남고 힘을 길렀습니다. 칭기스칸 역시 한때는 이 초원에 숨어 말을 기르고 군사를 모았다고 합니다.

궁지에 몰린 부족들에게 이 초원은 피난처였고 심신 회복지였지만 나라를 이룰만큼 넓지 않습니다. 흉노에 멸망한 동호의 유민들이 이곳에 흘러들어 선비족과 오환이라는 부족으로 성장했고 몇 세대 후, 중원으로 내려와 오호십육국 시대의 주인공이 됩니다. 남쪽으로 내려온 이들이 농경민족과 처음 만나게 되는 지역은 오르도스.

황하가 감투 모양을 이루며 꺾어져 흐르는 곳이지요. 지명부터가「오르도(칸의 게르)가 있는 곳」이니 원래 중국 땅은 아니었습니다. 이 지역은 흉노 이래의 모든 북방부족들과 인연이 깊습니다. 세勢 불리하면 후룬베이얼 초원으로 후퇴하고 힘을 길러 남하하는 형태를 오랜 세월에 걸쳐 거듭했습니다. 그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나타났기에 한족들은 이들을 전혀 다른 부족들로 오해했었지요.“


“뿌리를 생각하고 기본으로 돌아가라...”

중얼거린 태후가 뚜벅 말했다.

“준비될 때까지 시간이 없다면 어딘가... 이를테면 둥베이로 물러나 훗날을 기약하란 의미인가?”

'진심일까? 그냥 던져보는 말인가?'

나는 조심스레 한 걸음 물러섰다.

“소인, 감히 그러한 국가대사를 언급할 주제가 되지 못함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서태후는 호탕하게 웃었다.

“할 말 다 해놓고는 이제 와서 발을 빼시겠다? 그건 아니지.”


잠시 침울하던 기색을 거둔 태후가 짐짓 명랑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 꼬맹이들과 즐길 일만 생각했었는데 뜻밖에 시원한 얘기를 들었구나. 평소 듣지 못하던 참신한 의견에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하다.”

센위를 향했다.

“아이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아이들은 아직 이름이 없습니다. 지어줄 어른이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성을 이어 붙여 ‘우공동모왕‘ 이라 부릅니다. 따로 부를 때는 성 뒤에 아兒를 붙여서 부르고요.”

“우공동모왕? 그거 외우기 한번 쉽구나.”

웃기는 하지만 안쓰러운 표정이다.

“다들 머슴애냐?”

“아닙니다. 맏이인 우아만 머슴애고 나머지는 모두 여자아이들 입니다.“

“그러냐, 군복 차림이라 도무지 구분이 안 되는구나, 그럼 너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제 이름은 센위입니다. 숙친왕 선기의 딸입니다.”

“뭐어...?“

깜짝 놀란다.

”네가 왜 봉군 부대에서 얘들과...“

그러나 센위의 사연을 듣고 난 태후의 반응은 의외였다.

“그 꼰대 영감이 딸한테 단단히 혼이 났구먼.”

고소한 표정을 감추지도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음성을 깔더니 음흉하게 웃으며 슬슬 음모 모드로 진입한다.

“이왕 나온 거 제 발로 들어가기도 좀 그렇지 않으냐? 아예 여기 눌러 앉으면 어떻겠느냐. 이 녀석들이랑 같이 말이다.”


알현을 마치고 서궁을 벗어난 나는 까마득한 태화문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마음이 시리고 가슴도 허전하다. 드넓은 전돌 광장을 하염없이 혼자 걸었다. 올 때는 모두 함께였는데... 사무치는 상실감.

'녀석들이 훔쳐간 마음자리가 이리도 컸었구나! 이제 새 둥지에서 태후의 마음을 훔치겠지. 그래, 마음껏 뛰놀아 보렴. 너희 세상을 만들어 보렴.'

다가올 폭풍의 피난처로는 제격이겠지만 비틀린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황궁 생활이 과연 좋은 것일까?


어린 새 식구들을 맞은 태후전은 분주했다. 숙소를 배정하고 가재도구를 챙기느라 바쁘게 오가는 상궁과 궁녀들. 흐뭇한 표정으로 그 부산함을 지켜보는 서태후는 조선의 젊은이가 남기고 간 말을 되씹고 있었다.

“... 후손들이 벽돌집에 살고 비단옷을 입기 시작하면 몽골은 망할 것이라는 칸의 유훈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쿠빌라이는 황성 곳곳에 겔을 세웠고 거기서 지낼 때도 많았다. 대도를 건설한 후에도 쿠빌라이와 측근들은 야영지의 천막궁전에서 지내기를 즐겼다. 행사 때나 혹한기 외에는 아예 성내에 들지도 않았다. 대도는 그들이 살기 위한 도시가 아니라 야만족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한 도시였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결국 기인旗人들이 정체성을 잃은 탓이라는 매서운 질타... 과연 그렇다! 그동안 신세 한탄이나 하고 도르곤 시대의 팔기군만 그리워하며 지냈다. 조정중신들은 기인일색이지만 군권은 이홍장, 증국번 등 한인들이 쥐고 있다. 기인들의 힘을 되찾으려면...?

역시 무비학당이 첩경인가? 설사 무너진다 해도... 둥베이만 보존한다면 명맥만은 이을 수 있으리라. 철 모자 왕의 딸내미와 귀염둥이들이 오가면 할미들과 내시들만 있던 이곳, 서궁에도 봄기운이 일겠지. 이들을 찾는 영민한 조선 청년은 바깥소식도 덤으로 가져오리라. 무미건조한 일상사와 음모로 점철된 황궁을 잠시 잊은 표정이 밝았다.


나는 갈등하고 있었다. 원래 역사의 작림은 관군의 명분을 업고 둥베이에서 세勢 불리기에 매진한다. 하지만 북양 군벌의 모태가 될 무비학당에서 인맥을 다진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그림이리라. 톈진과 둥베이,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동방의 부동항을 노리는 러시아는 의화단의 난을 빌미로 20만 대군을 둥베이로 보낸다. 그리고 제 1태평양 함대가 발해만과 여순을 장악해 부동항을 얻는다. 러시아의 극동진출이 활발해지자 당황한 영국은 일본을 부추겨 러일 전챙을 일으킨다.

따라서 둥베이는 조만간 전장이 될 운명. 반면에 황실의 비호를 받는 무비학당에서 기반을 다지는 것은 장차 둥베이를 장악하기 위한 쉽고도 빠른 길일 수 있으리라.


아편전쟁 이래, 중국인들의 가슴에는 양인들에 대한 울분이 차곡차곡 쌓여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위의 세월,

바늘 끝만 대도 펑 터져버릴 팽팽한 풍선 같은 위태로운 세월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그날그날 평온하게 흘러가는 세월이기도 했다.

우연한 기회에 그 분노가 분출되면서 순식간에 폭도로 변한 군중은 만만한 교회와 수녀원을 공격한다. 마지막까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성역을 짓밟은 신성모독의 대가는 실로 참혹했다. 베이징, 톈진, 심양 등 요충을 점령한 외국군은 2년여에 걸쳐 무차별 약탈과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한다.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인해 촉발된 소요사태였지만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던 사태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저변에 팽만한 분노와 스트레스를 풀어낼 안전판을 두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던 참사였다. 사태의 본질은 오로지 양인들에 대한 분노의 분출일 뿐 다른 어떤 정치적 요구도 없었기 때문에...

소요사태는 약탈, 불법에 맛들인 무뢰배들의 편승으로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다.이윽고 의화단의 난이라는 민란 규모가 되자 어리석은 조정은 이 오합지졸 세력을 열강 축출에 이용하려 든다. 하지만 오히려 베이징이 점령당하면서 태후와 황제는 서안으로 도주한다.


다가올 이 사태를 어찌 보아야 하는가? 비록 큰 사건이지만 청의 멸망은 국운이 다해서일 뿐, 이 사건 탓만은 아니다. 고인 물이 된지 오래인 이 나라에는 진취적 기상이 진즉 사라졌다.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신외지물身外之物따위에나 눈이 벌게져 집착할 뿐. 둥베이의 마적들조차 지키는 최소한의 도리, 인륜人倫에 대한 존중마저 저버린 조정 대신들에게서 더이상 기인旗人다운 기백을 찾기는 어려웠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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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톈진 天津 5) +3 19.04.18 2,619 6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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