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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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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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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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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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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글자
9쪽

무비 학당 1)

DUMMY

“뭐야, 이거. 늑대 피하려다 호랑이 굴에 떨어진 셈이잖아...!”

졸지에 황궁에 갇힌 센위가 투덜대고 있었다. 신분이 드러난 이상 집으로 잡혀가지 않으려면 달리 방도가 없다. 게다가 이 무시무시한 황궁에 꼬맹이들만 남겨두고 나 몰라라 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어지러운 무늬의 비단옷 할멈, 발끝까지 치렁치렁 긴 옷을 입고 유령처럼 소리없이 오가는 높은 나막신의 궁녀, 음침한 태감들에게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고저혜高底鞋라 부르는 나막신의 높이는 직급에 따라 달랐다. 하급 궁녀는 2치, 후궁 쯤 되면 8치까지 높아진다. 말굽신馬蹄底鞋 (마제저혜) 이라고도 하는 데 귀족들은 꽃수 놓은 수화혜繡花鞋를 신는다. 설마 나도 신으라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며칠 후 상서방 보좌 나인이 고저혜를 안고 나타났다.

“한족들 신발은 꺼거格格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설마 했던 센위는 기가 막혔다.

“궁 밖에서 자란 처지라 익숙치 않아 어렵겠다.”

점잖게 물리쳤지만 나인도 만만치 않았다.

“이곳에 계시는 한 예의범절은 따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랑이가 길어지면서 드디어 센위가 폭발했다.

“사르후에서 4배 넘는 명군을 박살낼 때도 이따위 신발을 신었다더냐?! 한인들이 들먹이는 되먹지 않은 예의범절 따위에 치여 기인들의 기백이 죽어가는 걸 왜 모르느냐? 나는 이 따위나 신고 비틀비틀 걷지 않겠다.”

나막신을 집어던지자 나인은 물러갔다.


그러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감찰 궁녀과 함께 나타난 나인은 다시 나막신을 내밀었다.

“복장은 황궁의 질서입니다. 지켜주셔야 합니다.”

“난 못 신겠네.”

고집을 피우자 감찰 궁녀는 위협했다.

“이러시면 태후마마께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뭐 그러시던가...”

그제야 감찰궁녀는 센위가 황궁을 나갈 핑계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고를 받은 태후는 센위가 사르후(요녕성 무순 동쪽) 전투를 들먹인 사실에 주목했다. 1619년 3월, 누르하치는 1만 5천 병력으로 사르후 전투부터 아포달리강 전투까지 4일 만에 명군 6만을 섬멸한다. 명의 동맹군이던 강홍립의 조선군 부대는 이 전투에서 후금에 투항한다. 후금이 명나라보다 우위에 서는 계기가 된 전투였다.

“예의범절과 기백이라... 한낱 나막신을 두고 거창하게 나오는구나.”

잠시 침묵하던 태후는 뚜벅 말했다.

“갑자기 환경이 바뀐 터라 적응이 쉽지 않을 게다. 당분간 지켜보도록 해라.”


그 일 이후, 태후는 센위를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즉천무후가 왜 상관완아를 그토록 총애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이 들면 만사가 덧없어진다. 쳇바퀴 도는 생활. 지루한 나날들. 궁에는 욕망이 스러진 늙은이들이 산다. 덧없는 세월을 잡아보려고 그들은 화초를 키운다. 꽃이 피고 지는 것으로 세월을 가늠한다.

어느 날 나타난 아이들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아들 동치제나 양자 광서제는 어린 나이에 등극해 정을 나눌 기회가 적었다. 그러나 센위는 달랐다. 나이도 적절하고 반항끼가 넘쳐 아랫 것들에 함부로 휘둘리지도 않을 것이다. 상서방 강관들 말로는 교양수준도 향시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고 했다. 황실에의 충성심과 정만 생긴다면 다음 재목으로 키워볼 욕심이 생긴다.

사내들만 황제를 하란 법이 어디 있는가. 측천무후도 있고 나도 있는데... 이제 여황제가 나타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그녀는 센위를 오래오래 지켜보고 싶었다. 숙친왕에게 양녀로 달라고 해볼까? 저리 영민한 것을 선뜻 내줄 것 같지 않다. 정 마뜩찮으면 둥베이로 쫓아버리면 된다.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몸이다. 친왕 하나쯤이야...!


병영에서 함께 지내며 센위는 조선인 역관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난세를 예언했다.고리타분한 유자들과는 달리 사례를 들어가며 하는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는 아편전쟁 이래 차곡차곡 쌓여온 청나라의 울분을 지적했다. 표면상으로는 평온하지만 화약고나 다름없다 했다. 바늘 끝만 대면 펑 터질 풍선처럼 위태로운 세월, 계기만 생기면 즉각 소요사태로 번질 것이라 했다. 무뢰배들의 편승으로 사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하지만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어 한풀이 굿이라도 해준다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풀이 굿...?”

이를테면 열병식 같은 걸 핑계로 난장축제라도 한 바탕 벌이면 울화가 다소는 풀리지 않겠느냐고. 모르겠다. 설사 조계가 사라지고 열강이 물러난다 한들 불만분자는 있기 마련. 숨 쉴 구멍 없는 세상. 꿈을 품기 어려운 세상.

그러나 조선 역관은 달랐다. 근거모를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는 둥베이도 들먹였다. 어려움에 처한 까닭은 근본을 망각한 탓. 기인들은 중원의 재물과 권력의 맛, 그리고 문화에 잠식당해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북방의 대흥안령산맥은 둥베이의 뿌리. 장백산과 대흥안령 산맥에 올라 조상을 돌아보고 앞날을 바라보면 길이 나타날 것이다.


꼬맹이들은 저수궁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어린 나인들은 꼬맹이들에 반해 저마다 자기 처소로 꼬여들이려 경쟁했다. 그래서 웬만한 규율위반은 눈감아주곤 했다. 그 바람에 기가 살아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녀석들을 보다 못한 감찰 궁녀가 궁중 예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종아리를 맞아가며 닦달당한 꼬맹이들은 따꺼에게 일러바치러 달려오곤 했지만 그 따꺼도 나막신 문제로 홍역을 치르는 중이었다. 하늘을 지붕삼아 분방하게 살던 아이들은 졸지에 꽁꽁 묶인 신세가 되어버렸다. 먹을 것 많고 잠자리 편한 황궁이 처음에는 좋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늙고 어려운 사람들뿐, 따꺼나 역관 형처럼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열병식을 성공리에 마친 봉군부대는 둥베이 귀환에 앞서 포상휴가를 받았다. 포상금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장병들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영문을 나섰고 나도 작림과 함께 왕푸징 거리를 찾았다. 작림은 금의환향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돌아가면 뭐 할 건데?”

“새까만 쫄병이 장교로 출세했으니 자랑도 하고 녹봉도 꼬박꼬박 받는 처지니 장가들 궁리도 해보고... 할 일이야 쌔고 쌨지.”

신이 나서 떠벌린다.

“그럼 전에 알던 사람들하고는 어색해지는 건가?”

비적 대신에 ‘전에 알던 사람’ 이라고 두루뭉수리 넘어갔다. 이제 관군장교 신분이니 좀 불편하지 않느냐는 말에 작림은 고개를 저었다.

“장교든 뭐든 그들은 필요해. 아니, 거의 절대적이지. 이합집산이 무상한 그들의 동향을 모르면 허수아비 신세야.“

“ .... ?”

“둥베이 치안의 바탕은 민병이거든. 마을의 일할, 이를테면 50호마다 5명씩 보갑단保甲團이 있어. 토비가 많으면 이웃 마을과 함께 나서지. 보갑단 30개면 150명 정도, 보위단保衛團이 되지. 보위단 10개면 연합, 연합이 10개 모이면 연장회連莊會라는 대 조직이 돼. 회군, 성군 도 그렇게 된 군대야. 변란이 지나면 상당수는 비적으로 돌아가. 관군이나 비적이나 결국 뿌리는 같은 셈이지.”

이들은 관군의 옛 동료들과 오가며 지낸다. 웬만하면 서로 간섭을 꺼리지만 지시가 내려오면 도리없이 토벌하는 시늉을 내는데 적당한 희생물 공양으로 타협한다. 이때 당하는 건 평소 인심 잃은 집단, 그래서 평소 처신을 잘해야 한다.

토벌에 성공한 관군은 전공은 물론 전리품도 생긴다. 민심을 얻을 뿐 아니라 적당의 일부를 흡수해 세를 늘리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사병私兵집단이 된 관군은 토호로 성장한다. 하지만 둥베이 사정을 들려준 작림조차도 이 토호집단이 군벌로 성장하는 미래까지는 아직 모른다.


좌보귀 장군이 호출했다.

“군기처에서 공문이 내려왔네. 조교단과 함께 톈진 무비학당에 발령을 내라는데...? 보직은 제식 훈련 교관.”

신식군대 양성의 요람인 무비학당...? 나는 갸웃 했다. 학당을 기인으로 채울 셈인가? 어쩌면 새로운 8기군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나는 작림과 함께 보내달라 청했다. 일자무식이지만 친화력은 탁월한 작림이다. 이런 기회 아니면 훗날 북양군벌의 핵심이 되는 인재들, 포병 교관 단기서, 풍국장, 왕사진 등과 언제 안면을 익히겠는가?

전보발령을 받은 작림은 어리둥절해 나를 찾아왔다.

“이거.. 혹시 자네 작품인가?”

씩 웃으며 끄덕이자 묻는다.

“일자무식인 나보고 어쩌라고...?”

“걱정 마. 제식훈련 조교로 가면 되니까. 모두 신군 간부가 될 인재들이니 알아두면 좋을 거야.”

어디로 굴러도 자신만만하던 작림이었지만 학생 노릇은 처음이라며 심난한 표정이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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