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839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30 06:00
조회
2,738
추천
72
글자
11쪽

화석 공주 2)

DUMMY

“톈진에 가보고 싶지 않으냐?”

며칠 후 센위와 차를 마시던 태후가 뚜벅 말했다.

“... ?”

황궁만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게 어디든 좋은 그녀로서는 반가운 얘기였다. 그러나 2년간의 황궁생활로 제법 눈치코치가 생긴 센위는 두리뭉술 답변했다.

“소녀는 마마님 명에 따를 뿐이옵니다.”

태후는 피식 웃었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녀석의 어른스러운 모습이 대견했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버린 톰 소여보다는 야생마 시절의 센위가 더 좋았었다.

“구빈원 하느라 수고했다. 외교관들하고도 잘 지내더구나. 그런데 외교사절의 본거지는 원래 톈진이고 베이징은 곁다리야. 그래서 통상아문인 북양대신부도 그곳에 있지. 그곳 양인들과 백성들 사이를 좀 다독여 주었으면 한다.”

“한 거라고는 외교관 가족들과 같이 논 것밖에 없는데... ”

태후는 활짝 웃었다.

“그게 바로 재주다. 양인들과 너처럼 쉽게 어울린 건 황족 중 아무도 없거든. 네가 톈진에 가는 공식적인 명분이기도 하고...”

대담은 길게 이어졌다. 한참 뒤에 태후 처소를 나오는 센위의 얼굴에는 기쁨과 긴장이 엇갈리고 있었다.


톈진으로 가는 화석공주의 행차는 거창했다. 기마부대 1영과 보군 1영으로 구성된 1천 병력이 화려한 황실마차를 호위했고 30명의 내관과 궁녀들이 수행했다. 사두마차는 센위와 꼬맹이들 4명이 타고 뒤따르는 2두 마차들은 궁녀와 태감들 몫이었다. 태후는 당부했다.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라.”

황제의 연금을 불러온 무술정변의 여파로 민심은 여전히 흉흉했다. 이때 황실의 공주가 위의威儀를 갖추어 통상활동의 본거지인 톈진을 예방하고 신군의 본거지인 무비학당을 방문한다는 것은 황실의 건재함을 알리는 행사였다.


톈진에서 십리쯤 거리에서 북양대신 이홍장과 톈진 성장 일행을 만났다. 외교사절단 대표인 덕국 공사도 있었다. 호위 병력이 주둔할 정무군定武军 병영은 이미 비워 놓았다 했다. 무비학당에서 톈진의 어른, 짜이펑 학장의 환영을 받았다.

학장 뒤의 나와 우아를 본 꼬맹이들이 도도도 달려와 얼싸 안는다. 센위도 반가운 표정이었지만 어른들이 잔뜩 있는 자리라 바로 오지 못하고 멀리서 눈인사만 한다.


북양대신 주최 리셉션, 짜이펑 학장 초대 만찬, 그리고 조계 외교사절단 파티가 이어지면서 센위는 나와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베이징의 구빈원을 소개하자 이홍장과 톈진 관리들은 이곳에도 그런 시설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잘하면 의화권 무리들에 대한 견제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모두가 찬성했다.


외교 사절단 파티에서 부인들을 만난 센위와 꼬맹이들은 특유의 친화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열병식에서 본 애들이구나.”

“그러니까 공주마마께서 톈진에서 얘들을 만나 함께 지냈다구요?”

“구불리 만두랑 마화가 그렇게 맛있다던 데 저희도 좀 데려가 주세요.”

“치파오 입어보셨어요?”

“입어는 봤는데 몸의 선이 그대로 드러나 좀 창피했어요.”

“조계 밖에서 사람대접 받으려면 그걸 입어야 하거든요.”

수다는 쉴 새 없이 이어졌고 수행 통역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따라다니며 영어로 보조하자 겨우 정신을 차린 통역 궁녀가 고마운 목례를 보내온다.


환영 행사가 얼추 마무리되자 센위는 회의를 소집했다. 북양대신 이홍장과 톈진의 고위층, 짜이펑 학장과 원세개 학감, 교관단까지 참석하는 회의였다.

“의화권 무리의 동향분석과 대책을 논의하는 비상 시국회의를 열겠습니다. 태후마마께서 본건에 대한 전권을 본 공주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자금성 태화전에서 열리는 조례 못지않게 엄숙한 분위기.

화석공주의 정장 차림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그녀에게서는 군주다운 위엄이 넘쳤다. 나는 그녀를 슬쩍 훔쳐보았다. 껄렁대며 다니던 어릴 적 모습은 간데 없다. 함부로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의젓한 모습. 황실 문양을 새긴 상방보검을 받쳐든 내관이 뒤에 시립하고 있다. 서태후가 내린 흠차대신의 권한을 상징하는 신물이었다.


5.5단 책임자인 나는 수집한 첩보에 원래 역사를 버무려 당면 상황을 설명했다.

“의화권 무리들의 동향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 마디로 민란이 우려되는 수준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

짜이펑이 물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공주에게 직접 보고하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명분은 부청멸양扶淸滅洋이지만 실인즉슨 하층민들의 누적된 불만이 곪아터진 것입니다. 저들은 세상에 대해 품은 해묵은 원한을 난동으로 분출하고 있습니다.”

센위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고 평생 금수저로 지낸 이홍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


브리핑을 이어갔다. 그 증오 대상에 양인들은 물론 조정과 관리, 토호들도 포함된다. 이른바 기득권층은 모두가 대상이다. 일단 군중을 이루면 그들은 위험해진다. 뭉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익명성 뒤에 숨은 군중은 공격적으로 변하지만 한 명 한 명은 나약한 존재다. 힘 있는 상대와의 대결은 겁낸다.

그저 만만한 교회나 수녀원, 기독교도들만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건 실수다. 신앙 공격은 신성모독, 이에 대한 양인들의 보복은 가혹하기 마련이다. 조정과 베이징, 톈진, 심양 등 주요 도시들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사나운 외국군들에게 짓밟힐지도 모른다.

나는 강조했다.

“군중은 단순합니다. 정치적 요구 따위는 없습니다. 바라는 건 그저 한풀이 뿐, 누군가가 선동하면 개떼처럼 몰려가 물어뜯고 인면수심의 악행도 서슴치 않습니다. 하등의 죄책감도 없이... 그리고는 나만 그런 게 아냐, 다 함께 그랬잖아 라고 변명합니다.”

긴장해 경청하는 청중들에게 설명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하층민들이 대부분인 군중을 달랠 안전판을 정비하면 불행한 사태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저들을 교화하고 설득해야 합니다.

인 일시지분 忍 一時之忿

면 백일지우 免 百日之憂

한풀이 굿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저 시원함 정도... 하지만 그들이 저지른 뒷감당은 오롯이 조정의 몫이고 나라의 피해로 돌아올 것입니다.

당근과 채찍으로 그걸 막아야 합니다. 당근은 구빈원, 채찍은 신군을 동원한 무력시위 입니다.“


구빈원은 끼니를 베풀고 병자를 치료하는 자선기관이다. 그러나 자선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대목은 양인洋人과 황족, 토호들이 구빈원의 자원봉사자로 나서서 백성들과 소통하는 점이다. 공주마마께서 베이징에서 몸소 하셨던 일이다. 전투에 임하는 각오로 몸을 사리지 말고 나서야 한다.


또한 이 활동은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

구빈원은 의화권 무리들이 부추기는 난동을 제압하는 수단. 군중을 결집시키는 것은 기득권 층에 대한 적개심이다. 하지만 저들은 조직도 없는 나약한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 적대시 하는 양인과 황실, 그리고 기득권층 인사들이 자선활동에 나서 소통하는 한편 무력시위를 병행하면 사태를 잠재울 수 있다.


시국 토론과 대책보고를 마무리하고 보니 이홍장의 표정이 심각하다.

“너무 확대해석하는 건 아닌가? 과유불급이 우려되는군.”

나는 원래 역사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예시해가며 설명했다.

“저들의 본거지는 산동성입니다. 발단은 교민충돌이지만 경제적 이유도 있습니다. 수입 면직물에 밀려 국산 면작물이 도태되면서 .... 또한 조정에서 관직을 내린 기독교 사제들의 방자한 횡포도 사태 확산의 한 요인이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 돌연 머리가 빠개지는 듯한 통증이 온다. 신경석이 제보하러 갔던 청군 병영에서 불상사를 당할 때와 같은 증상.

그때 나의 제보로 인해 전쟁 결과는 원래 역사와 달라졌다.

‘이 무슨...!’

혹시 역사에 대한 간섭을 하늘이 경고하는 건 아닐까?

원래의 역사에서 의화단의 난에 편승하려던 조정은 결국 8국 연합군에 쫓겨 서안으로 파천하고 베이징과 장강 이북의 주요 도시들은 외국군에 짓밟힌다.

그러나 베이징과 톈진에 구빈원을 열고 양인들과 황족, 고관들이 직접 자원봉사에 나서면서 상황은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톈진의 구빈원은 베이징의 그것보다 규모가 컸다. 북양대신의 전폭적 지원 하에 조계의 외교사절단 가족이 총동원되어 참여했고 호족과 기독교도들도 자원봉사에 나서 인력이 충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화석공주의 인기였다.

민초들은 톈진거리를 뗘돌며 거지아이들과 함께 지낸 그녀를 좋아했고 수수한 복장으로 죽을 퍼주는 그녀를 보러 몰려들었다.

구불리 만두와 스빠제 마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사오는 바람에 남아돌아 우공동모왕과 두월생이 거지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꼬맹이들은 시내를 싸돌아다니며 쓸만한 소문들을 물어왔다. 두월생은 제법 궁녀티가 나는 공동모왕을 즐겨 데리고 다녔고 예쁘장한 소녀들에게 집적대려는 녀석들을 늘씬하게 패주기도 했다.


역관이 태부족이라 걱정했는데 기우였다는 건 이내 드러났다. 양인과 백성들은 손짓 몸짓과 토막말로 잘 통했고 역관들은 양인 의원들의 진료보조 정도였다. 정기적으로 시가지를 행진하는 무비학당 생도들의 각 잡힌 대열은 톈진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속내는 위력 시위였지만 백성들은 생도들의 절도 있는 동작에 감탄하며 지켜보곤 했다. 간을 빼려고 고아들을 죽인다던가 사제나 수녀들이 식인종이라는 따위 유언비어는 구빈원 활동이 자리 잡으면서 사라져갔다. 얼근히 취해 거리에서 떠들던 무뢰배들도 백안시 당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던 센위에게 여유가 생긴 것은 톈진에 온지 두 달쯤 지나서였다. 내무부와의 갈등을 들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산물이야. 섣불리 건드렸다간 동티 나.”

사석의 우리는 반말을 쓴다. 처음에 높임말 썼다 한바탕 혼이 난 나는 어마뜨거라 예전 말투로 돌아갔다.

“하지만 무려 8만 달러라구.”

여전히 분한 기색이다.

“게다가 태후마마 하사금이고. 그걸 꿀꺽할 정도면 뭔 짓인들 못 하겠어?"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남경. 상해. 봉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7 둥베이 1) +4 19.05.08 2,700 80 7쪽
36 일어나는 풍운 4) +11 19.05.07 2,741 88 12쪽
35 일어나는 풍운 3) +6 19.05.06 2,815 93 12쪽
34 일어나는 풍운 2) +4 19.05.04 3,002 90 10쪽
33 일어나는 풍운 1) +4 19.05.03 3,028 79 12쪽
32 화석 공주 4) +10 19.05.02 2,902 75 10쪽
31 화석 공주 3) +6 19.05.01 2,778 77 10쪽
» 화석 공주 2) +2 19.04.30 2,739 72 11쪽
29 화석 공주 1) +4 19.04.29 2,822 69 9쪽
28 무비 학당 4) +2 19.04.28 2,536 64 9쪽
27 무비 학당 3) +1 19.04.27 2,478 61 7쪽
26 무비 학당 2) +1 19.04.26 2,529 67 8쪽
25 무비 학당 1) +2 19.04.25 2,613 68 9쪽
24 자금성 4) 19.04.24 2,508 66 8쪽
23 자금성 3) +2 19.04.23 2,519 75 9쪽
22 자금성 2) +3 19.04.22 2,510 66 8쪽
21 자금성 1) +1 19.04.21 2,607 70 9쪽
20 톈진 天津 7) +1 19.04.20 2,597 70 7쪽
19 톈진 天津 6) +1 19.04.19 2,590 70 8쪽
18 톈진 天津 5) +3 19.04.18 2,619 66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