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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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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5
글자수 :
217,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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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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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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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글자
8쪽

무비 학당 2)

DUMMY

만약 일본군이 보급만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면 갑오 중일전쟁은 지는 전쟁이었다. 요행수로 승리는 얻었지만 이홍장의 군대는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무능하고 완고한 지휘관에 낙후된 장비의 북양군은 개혁으로 어찌해 볼 단계를 지난 구제불능 수준이었다.

조정은 새로운 군대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이들은 정신 개조부터 시작해야 했다. 원래 역사에서 원세개는 북양 무비학당 교장으로 학당과 톈진의 신식군대를 장악해 북양군벌의 기반을 닦는다. 그는 수완이 뛰어나고 리더십도 있지만 한인이었다. 능력있는 인재이기는 하지만 그가 이끌면 결국 한인의 군대가 될 뿐.


이 점을 헤아린 서태후는 황족 중에서 신군의 지도자가 될 인재를 물색했다. 군기처 산하기관인 무비학당의 수장으로 친왕이나 패륵은 너무 격이 높다. 황족의 끄트머리인 공公 정도면 충분하리라. 광서제의 이복동생 짜이펑 (재풍) 공은 됨됨이가 소박한 청년.

“좋은 책과 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면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다. 아무 일 없이 뱃속 편하면 그게 바로 신선” 이라며 권력욕도 없다는 소문이다. 음흉한 한인 원세개와는 상극인 반면에 서태후의 조카.

팔기 황족들은 중국식 교양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유독 짜이펑은 고전에 해박했고 한인들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을 갖추고 있었다. 학자풍이고 지식인 특유의 소극적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믿음을 주는 버팀목이 되기는 미흡했다. 판단력은 있지만 행동력이 결여된 전형적인 지식인. 서태후가 가까이 한 것도 권력에 위협이 되지 않아서였다.

기인이 교장이 되고 실무는 한인에게 맡기면 명분도 서고 이홍장을 비롯한 한인 관리들만 상대하던 톈진 조계의 외교관들도 한 등급 높은 황족 고관을 반길 것이었다.


무비학당 과정에는 1년짜리 기간병 과정과 4년의 장교과정이 있다. 학년마다 3백 명씩 전교생 1,500명. 40개 가까운 수업이 진행된다. 그래서 연병장에서는 제식 훈련이 늘 있었다.

나는 학년별로 조교를 5개 조로 나누었다. 수업을 종일 하는 건 아니기에 여유가 생긴 조교들은 특과라며 좋아했다. 나는 그들을 통해 학생들 이력을 검토했다. 단기서 등 굵직한 인물만 알뿐 그들 속에서 어떤 군소 군벌이 나올지는 몰랐기에 이력파악은 복잡다단하게 펼쳐질 훗날의 세력다툼에서 주요정보가 될 것이었다.

그러한 속내를 모르는 조교들은 꼼꼼히 기록을 정리하는 나에게 존경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서류 정보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지역 정세나 민심 파악에 최적의 표본이었다. 면담을 통해 각지 소식을 모아들인 나는 청나라가 이미 무정부 상태에 빠진 사실을 발견했다.


지역의 주인은 관리나 토호들인데 그들에게 대의나 국가는 안중에 없다. 억울한 일 배경에는 이권이 있고 이치에 맞지 않는 일에는 권력이 개입해 있었다. 권력은 사회정의보다는 사리사욕의 추구수단에 불과했다. 권력에 다가서는 수단은 과거나 무력이지만 너무 까마득한 길이었기에 현실적 방도는 세력자에 빌붙는 것이었다.


무비학당 지원동기 역시 졸업하면 보장되는 신분, 그리고 매달 지급되는 생활비였다. 생활비는 월 4냥. 1냥은 1,400∼1,500문文, 국수 한 그릇이 10문이다.

학당입학에 몰린 배경으로 이 보조는 중요했다. 혜택은 생활비만이 아니었다. 생필품 지급에 졸업 후 진로보장. 잘만 하면 유학 특전도 있었다. 하지만 특혜에는 엄격한 규율, 왕조에 대한 충성, 고된 훈련이 요구되었다.


짜이펑 학장과 원세개 학감은 제식훈련에 관심이 컸다. 서태후의 관심사항이기도 했지만 싱그러운 젊은이들이 벌이는 활기 넘치는 퍼레이드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저 훈련이 정예병 양성의 초석이라고...?”

분열 행진을 지켜보던 짜이펑이 중얼거리자 한 걸음 뒤에 있던 내가 말했다.

“서양 군대는 사격 이전에 저런 동작부터 익힙니다. 군 통솔의 기본입니다.“

“하긴, 수십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려면 긴장의 연속이겠지.”

원세개도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습니다. 학감님. 저렇게 단련된 장병들은 유사시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갖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짜이펑이 말했다.

“제식훈련은 긴장을 유지하는 수단인가?”

“예, 평소에 무기를 손질해두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짜이펑은 연병장을 누비는 대열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짜이펑은 부임 이래 원세개, 단기서, 신경석 등 연배의 교관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조는 무너져가는 집, 기둥을 갈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어떤 대목大木도 손대기 난감한 집이다.’

토론은 활발했지만 언제나 결론 없는 짜투리 생각들로 끝나곤 했었다.나라를 일으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부국강병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면. 하지만 민심은 조정을 떠난지 오래다. 저들은 단순하다. 먹을 것을 따라간다. 양무운동으로 무기 종장 등 중공업을 일으킨들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등돌리기 마련. 우선할 분야는 먹고 입는데 쓸모 있는 방직업 등 경공업이다.


때로는 보다 근본적 문제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한인과 기인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유목민 출신인 기인에게는 농경민족의 집과 옷이 맞지 않는다. 열린 집 게르와 닫힌 집 사합원의 차이는 곧 사고방식의 차이. 유목민들은 재물보다는 용사의 기백, 신의를 존중한다. 매를 날려 사냥하고 목초지 따라 가축과 이동하며 누리는 자유를 중히 여긴다. 그래서 땅에 묶여 사는 농민을 깔본다. 스스로도 이미 정착민이 되어버린 주제에...! 혹독한 조드의 겨울을 견디던 강인한 정신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톈진 무비학당의 월례회의는 매월 초하룻날. 짜이펑 학장은 듣기만 하고 회의는 원세개 학감이 진행한다. 오늘 주제는 영외 제식훈련. 즉 시가지 행군훈련이었다. 제안자인 포병교관 단기서가 나섰다.

“.... 따라서 이 행사는 불순세력들에 경고하는 효과가 있다.”

원세개가 물었다.

“불순세력이란 어떤 부류를 말하는가?”

“덕국 유학의 인연으로 평소에 조계 외국인들과 교류가 있다. 그들은 시황에 어둡다. 그래서 조계 바깥도 조계처럼 평화로운 줄로 착각한다. 중국 백성이 저들에 품은 적개심을 모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상황인데도 화약고 위에서 산다는 걸 모른다.”

“귀관이 느끼는 위기의 근거는 무엇인가?”

“시중에 괴담이 돌고 있다. 양인이 고아들을 교회묘지에 암장하고 있다는 거다. 여기에 시정잡배들이 끼어들어 유언비어를 부추기고... 사소한 계기만 생겨도 뻥 터져버릴 만큼 아슬아슬한 분위기다. 만약 불상사가 벌어질 경우 녹영군으로는 감당키 어려울 것이다. 강력한 힘을 보여 경거망동을 억제할 위력시위가 필요하다.”


단기서가 말하는 위기는 바로 의화단 사태의 징후였다. 나는 그의 혜안에 감탄했다. 그러나 원세개 등 다른 교관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그건 치안당국의 소관 아닌가? 이쪽이 나설 일은 아닌 것 같다.”

묵묵히 듣던 나는 손을 들었다. 외국인이지만 서태후를 알현한 나는 비중 있는 위치였다.

“제안에 찬성한다. 일이 터질 때까지 수수방관하다 사후수습이나 하는 정도가 치안당국의 한계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능력을 갖춘 곳은 우리뿐이다. 물론 훈련에도 도움이 되고 ...“

원세개의 눈길이 짜이펑을 향했다. 쓱 훑어본 짜이펑이 입을 열었다.

“최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니 지휘관이 세상사 전반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하다. 조계와 백성 간에 충돌이 생기면 호시탐탐하는 외국군이 나설 핑계가 될 수도 있다. 소요사태의 싹이 보인다면 이는 적은 일이 아니다. 따라서 본 제안은 바람직하다고 본다. 영외 훈련을 준비하라. 아울러 우려되는 소요사태 동향을 조사해 괴담의 진원지를 파악하라.“

매사에 소극적이던 학장답지 않은 단호한 지시에 원세개가 흠칫하는 표정이 된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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