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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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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27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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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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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글자
8쪽

톈진 天津 6)

DUMMY

비워둔 지 오래된 막사는 썰렁했다. 사방이 거미줄에 구석구석 냉기가 서려있다. 돌쇠와 함께 대청소를 하고 석탄난로도 설치했다. 봉군 부대는 원래 여순에서 봉천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둥베이에서의 야영에 대비해 난로 도 챙겨왔었다. 하지만 엉뚱한 톈진에서 머무적대는 바람에 창고에 쳐박아 두었는데 뒤늦게 주인을 만난 셈이었다.

꽃샘바람 부는 톈진의 4월은 아이들에게 여전히 추운 계절. 그러나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사치였을 더운 물을 마음껏 쓰게 해 주고 싶어서였다. 덕지덕지 낀 때를 벗겨내고 말쑥해진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군용 침구 등 생필품도 가짓수대로 몽땅 챙겨다 놓았다. 부관실을 팔고 제식 훈련으로 쌓은 꽌시关系(인간관계)까지 동원해 반쯤 우격다짐으로 보급계를 털었다. 난로를 피우고 생필품도 갖춰놓으니 썰렁하던 막사에 비로소 훈기가 돈다. 하루쯤 덥히면 구석 구석 스민 냉기도 가시겠지. 아이들이 좋아할 모습을 떠올리니 흐뭇했다.


막사 정비를 마친 다음 날, 좌보귀 장군이 회의를 소집했다. 북양대신이 일본군 포로들의 열병식 참여를 허락했다고.... 일본군이 온다...!

긴가민가하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자존심을 있는 대로 긁어놓았으니 저들은 보통 아닌 각오로 오고 있을 것이다. 저들의 규율이 대단하단 말은 익히 들었지만 막상 훈련 광경은 본적조차 없다. 열병식에서 어떤 식으로 경합 할지 막연했다. 도착하면 훈련부터 할 것이니 일단 지켜보고 대책을 세울 밖에...


톈진도 벌써 보름째.

자고새면 제식훈련으로만 보낸 보름이었다. 이제 기초는 착실히 다진 상태. 그럭저럭 면 챙피는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기회를 별러온 북양대신이 과연 그 정도로 만족할까? 조교단으로 시범조를 만들어 대결시켜...? 의장대 수준으로 몰아세워...? 집총동작도 포함해 백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게끔...

여하튼 제법 구경거리는 될 것이다. 공연문화가 빈약한 이 시대이니만큼. 가만, 아예 공연 요소를 가미해 제대로 쇼를 벌려 봐?

개선군과 포로의 열병식 경합! 주제부터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TV시대, 공연문화의 시대에서 온 내가 이 좋은 소재로 그럴듯한 볼거리 하나 못 만든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리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올림픽 개막식, 리버 댄스... 전생에 서 보았던 온갖 공연들이 동시다발로 떠오른다. 서로 자기네 민속놀이를 소개하면 어떨까?

경극과 가부키... 아냐, 이건 너무 전문적이고

용놀이와 마쓰리(七夕祭, 일본 민속축제)...? 그거 괜찮겠다!

재봉사에 환쟁이까지 온갖 재주꾼들이 다 모여있는 게 군대이니 자재만 대주면 의상이나 소도구쯤은 만들 수 있으리라. 아이들 만나러 갈 시간이 다될 때까지 열병식 대본에 푹 빠져있는 바람에 하마터면 늦을 뻔 했다.


얼마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으면... 멀리서부터 한 눈에 나를 알아본 꼬맹이들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성큼성큼 다가가 왕아를 덥석 안아 번쩍 올려주었다.

“오래 기다렸니?”

“아냐, 우리가 너무 일찍 왔던 거야.” 우아의 어른스러운 대꾸였다.

“따꺼는?”

“몰라, 온다는 얘기 없었거든.”

우리에게는 긴 말이 필요 없었다. 우루루 구불리 만두집으로 몰려가 배를 채우면서 말을 꺼냈다.

“난 부대에서 지내. 뉘들도 아는 북양 무비학당. 거긴 다른 곳보다 낫고 빈 방도 많지.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이지, 거기서 같이 지내면 어떨까...? 뉘들만 좋다면 말야.”

뜻밖의 말에 당황한 녀석들은 마주 보며 입만 벙긋거린다.

“밥은 구내식당에서 ‘공짜’ 더운 물로 씻고 빨래도 할 수 있어.”

꼬드겼다.

“그럼 우리도 총 쏘고, 군인 되는 거야?“

느닷없는 왕아의 말.

“아냐, 그런 거 안 해도 돼. 우리 부대는 전부터 고아들을 많이 도와주었댔어.”

“난 총 쏘는 거 배우고 싶은데...”

시무룩해진다.


“걱정 마, 왕아야. 그딴 건 내가 가르쳐 주면 돼.”

만두가게 가림막 포장사이로 불쑥 센위의 얼굴이 나타났다.

“와아, 따꺼다.”

일제히 환성을 지른다.

“밖에서 들었는데 그거 정말이야?”

“그럼, 벌써 대청소까지 다해 놓았어.”

“거기 나도 끼어줄 수 있어?”

잠시 나를 바라보던 센위가 뚜벅 말했다.

나는 놀랐다. 하지만 그건 환영할 일이었다. 누군가는 아이들을 돌봐야했고 센위야말로 가장 적임자였으니까.

“그러엄. 막사 하나를 통째 비워 뒀으니까 자린 얼마든지 있어.”

응구첩대로 대답이 나가자 오히려 의아한 눈치다.

“거기서 넌 뭘 하는데?”

듣다 보니 괘씸했다. 아무리 존댓말 없는 중국어라지만 꼬맹이한테 반말 듣기는 좀 그랬다.

“좌보귀 장군 부관실에 있어. 통역으로.”

“와아, 끗발 있네. 근데 조선인이 어떻게...?”

영판 세파에 찌든 애 늙은이 말투다.

“평양성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고 뽑아줬어.”

“흐음, 그랬었군.”

꼬마답지 않은 표정으로 잠시 주억이더니 꼬맹이들을 향했다.

“그거 알아? 뉘들 오늘 봉 잡은 거? 뜨신 잠자리에 공짜 밥, 이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 마작으로 치면 국사무쌍. 나도 이참에 뉘들 덕 좀 보자.“

뜻밖의 내 말에 우왕좌왕 당황하던 꼬맹이들 표정이 대번에 환해진다. 따꺼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겠다는 순종적인 태도...! 센위의 막강 카리스마에 나는 감탄했다.


아이들을 몰고 무비학당으로 몰려가니 정문 초병의 표정이 이상해진다. 하지만 막지는 않았다. 신분이 확실한 나와 일행이고 아이들이라 그랬겠지. 난로가 활활 타는 따뜻한 막사에 들어선 아이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여기는 우리만 있는 거야?‘

“그래. 필요한 건 대충 챙겨두었는데 빠진 거 있으면 말해. 난 옷 찾아올게. 그 동안 씻고들 있어.”

그제서야 지저분한 손발을 본 꼬맹이들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옷은 5인분만 준비했었는데 센위 때문에 한 벌 더 해야 한다. 얼른 챙겨 수선실에 맡기고 오는 나를 누군가가 불렀다.

“부관님, 장군님이 찾으십니다.”


좌 장군은 내가 보고한 열병식 대본을 읽고 있었다.

“연극 비슷하구먼. 우린 대본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이런 얘긴가?”

“예, 그렇습니다. 내빈께 드릴 안내 자료를 준비하려면 손이 좀 모자랍니다만...”

“그건 부관실에 지시해놓겠네. 톈진에 온 게 다 이거 때문인데 힘을 모아야지. 그나저나 일정은 촉박하지 않나?”

“모든 걸 직접 한다면 그렇습니다만 장비나 소품은 전문 대여업체가 있습니다. 웬만한 건 그쪽으로 외주처리하면 시간이 줄 겁니다.”

“좋아. 이번 행사는 자네가 책임자네. 난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할테니 잘 부탁하네.”

열병식 순서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대본을 본 장군은 한 시름 놓은 표정이었다.


옷이 준비되자 꼬맹이들을 부관실로 데려가 신고시켰다. 이틀 동안 더운 물을 마음껏 쓰며 때 빼고 광낸 녀석들은 말쑥해졌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군복차림의 꼬맹이들을 맞은 부관들은 저마다 쓰다듬어 보려고 난리였다.

좌 장군은 막사를 내준 선임하사를 칭찬하고 필요한 건 뭐든지 내주라 지시했다. 다들 말은 아끼지만 고향의 가족을 떠올리는 눈치였다.


장교 식당에 꼬맹이들이 등장하자 시선이 집중된다. 장교들과 밥을 먹으며 뾰족한 목소리로 조잘대는 건 동북 출신의 10살짜리 우于.

“조계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족한 여자들을 많이 봐. 오리처럼 뒤뚱대며 걸으니까 멀리서도 한 눈에 티가 나거던. 그런 여자들이 길가다 신여성과 마주치면 대뜸 눈싸움이 시작 돼.

어떨 때는 욕도 하는데 전족들은 왕발, 기왓장 발, 선인장발, 삽자루 발이라 떠들고 신여성들은 쉰내 나는 종자, 고린내 나는 족발, 구불이 만두라고 해. 그러면 할일 없는 사람들이 우하니 모여들고...”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상을 보여주는 풍속도였다.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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