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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 님의 서재입니다.

남경. 상해. 봉천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전쟁·밀리터리

완결

하산
작품등록일 :
2019.04.01 10:28
최근연재일 :
2019.06.24 20:32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153,854
추천수 :
3,775
글자수 :
217,324

작성
19.04.17 06:00
조회
2,631
추천
66
글자
8쪽

톈진 天津 4)

DUMMY

숙달된 조교들이 제 몫을 감당하면서 제식훈련도 자리를 잡아갔다. 한숨 돌린 나는 돌쇠를 데리고 톈진 관광에 나섰다. 그러나 막상 데리고 다닌 건 내가 아닌 돌쇠였다. 녀석은 이미 시가지 구석구석을 꿰고 있었다. 내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동안 느긋하게 시내구경을 다닌 모양이다.

이국의 시가지 풍경은 그 어디에도 눈길 끌만한 곳이 없을 만큼 남루하고 삭막했다. 실망한 나는 조계租界로 발길을 돌렸다. 영국 조계로 들어서니 분위기가 확 바뀐다. 건물과 거리 풍경부터가 고급스러웠다. 빅토리아 도道 , 디킨스 로路라고 영문과 한문을 병기한 표지판이 보이고 부채꼴 문양으로 화강석을 박아 포장한 도로 양쪽에는 움트는 가로수들이 줄지어 있다. 붉은 벽돌로 올린 장중한 성당이 눈을 압도한다.

전생에 보았던 유럽을 떠올린 나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돌아보니 평양에서 여기까지 참 바쁘게도 살아왔다. 제식훈련 때문에 벌이던 아귀다툼에서 풀려나니 겨우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글쎄,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조계 경계선을 따라 운하가 달린다. 양주에서 시작해 남북을 관통하는 대운하이리라. 운하 길을 따라가니 강과 합류하는 하이허海河가 나타났다. 바다와 만난 하구河口라서 하이허? 그럴듯한 작명 센스였다.

드넓은 하이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문득 호연지기浩然之氣가 솟는다. 돌멩이를 길게 던지니 퐁퐁 물수제비를 뜨며 날아간다. 석전의 고장 평양에서 잔뼈가 굵은 몸. 이 정도는 약과다. 마음만 먹으면...


짝짝짝.

느닷없는 박수소리. 돌아보니 웬 꼬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박수를 치고 있다.

“지금까지 본 중 제일 멀리 나갔을 거야.”

“아냐, 그래도 따꺼보다는 못해.”

따꺼...? 왕초라도 있단 말인가? 꾀죄죄한 얼굴에 남루한 차림새가 영락없는 거지들. 그런데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총기가 엿보인다. 남루한 평양성 각설이들이 생각난다.

“따꺼랑 같이 있니?”

아이들은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뇨, 가끔씩 여기 오는데 어디 사는지는 우리도 몰라요.”

“근데 팔매를 썩 잘 던져요. 못 맞추는 게 없대요.”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탠다. 조잘대는 기세로 보아 따꺼가 선망의 대상인 듯하다.

“너희들, 지금 따꺼 기다리니?”

“예, 이제 나타날 때가 얼추 되었는데... 아, 저기 온다.”

날렵한 몸매의 꼬맹이가 껄렁껄렁 걸어오고 있었다.


일본군 사령관 노즈 중장의 편지를 받은 이홍장은 모처럼 파안대소 하고 있었다.

『개선식을 준비 중이라 들었다.

그 행사에 참여해 아군의 기백을 보이고자 한다.

무사의 정으로 지원을 요청한다.』


이홍장 또한 군인, 그 심정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들은 전투에 패한 군대가 아니었다. 열악한 보급사정으로 세궁역진勢窮力盡 해 항복했을 지언정 자존심은 시퍼렇게 살아있다. 이번 패전이 자신들이 허약해서가 아니었다는 걸 밝히고 싶으리라.

“이건 꽤 재미있겠는데!”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이홍장이 중얼거린다. 정말 재미있다는 장난꾸러기 표정. 개선식 장소를 천진으로 정한 건 조계에 도사리고 있는 열강들을 의식해서다.

청나라는 50여 년 전의 아편전쟁 이래 단 한 번도 열강을 이겨보지 못했다. 싸우면 지고 지면 불평등 조약으로 굴욕을 당해야했다. 그리고 이홍장은 누구도 맡기 싫은 자리를 할 수 없이 맡아 덤터기를 써야 했다.


중일 갑오전쟁의 승리는 가뭄 끝의 단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승리였다. 이 승리를 능욕의 세월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삼아야했다. 이를 자축하려는 개선식 행사에 들러리를 자청하며 나선다 ... 그야말로 불감청이나 고소원의 제안 아닌가!? 파안대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바로 원세개를 불러 지시했다.

“섭지초 총사령에게 통신문을 보내라.”

『 1. 7일 후, 일본군 포로를 북양함대 편에 천진으로 보내라. 포로는 천진에서 일본 연합함대에 인계한다.

2. 일본군 포로에게 생필품을 지급하라. 피복과 군화는 필히 신품으로 지급할 것.』

노획한 일본군 보급품에 신품 군복과 군화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내린 지시였다. 저들은 새 군복과 군화를 신고 열병식에 참가한 후 귀국길에 오를 것이었다.

송환 시기는 배상금 지불 예정일인 한 달 후. 그동안 톈진에서 훈련도 하고 쉬게 한 후 귀국선에 태울 요량이었다.

“이게 바로 승전국이고 대국의 아량 아니겠는가!”

흐뭇한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잘 있었냐? 꼬맹이들.“

누가 들으면 저는 썩 큰 줄 알겠다. 내 눈에는 다 고만고만한 꼬맹이들인데... 열 두엇 쯤 돼 보이니 다른 아이들보다 약간은 크다고나 할까. 흥미롭게 바라보는 나를 흘낏 하더니 찍 내뱉는다.

“뭐냐, 이 군바리들은..?”

분명 내게 들으라는 말이었다. 나는 화복華服 차림이지만 돌쇠는 병영에서 입던 군복 그대로다. 졸병 달고 나온 장교로 보일 수도 있으리라.

“난 군인이 아니라네. 이 친구도 그렇고, 사연이 있어 입은 것뿐이지.”

그러나 대꾸는커녕 껄렁한 자세 그대로 아래위를 훑어본다. 도발적인 태도였다.


“따꺼, 저 형, 팔매 선수야. 하이허를 반도 넘는 물수제비를 만들었어.”

흥, 코웃음 친 소년은 돌멩이를 집더니 대번에 하이허를 향해 날린다. 퐁퐁퐁 튀며 물위를 날던 돌멩이가 강심을 훌쩍 넘으며 사라지자 의기양양하게 나를 노려본다. 재미있었다. 만일 내가 하이허를 넘기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허리에 매고 다니던 투석끈을 푼 나는 가죽 띠에 돌멩이를 담았다. 머리 위로 끈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끈을 쓰는 건 멀리 그리고 세게 날리기 위해서다. 따라서 상하로 돌리다 날리기 마련. 그러나 물수제비를 만들려면 수평으로 날려야 한다. 좌우로 휘두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다리나 몸에 부딪치지 않게 머리위로 돌려야한다. 돌멩이를 놓는 순간 자세를 낮추며 날리는 데는 상당한 숙련도가 필요하다. 돌리던 끈에서 붕붕 소리가 나자 몸을 숙이며 중지와 검지에 걸린 두 가닥 중 하나를 살짝 놓았다. 세찬 물수제비를 만들며 하이허를 가로 지른 돌멩이는 이내 강 건너로 사라져버렸다.


“꺄악, 멋지다.”

꼬맹이들이 방방 뜨며 난리다. 녀석은 머리를 끄덕였다. 껄렁대던 태도와는 달리 결과에 순순히 승복하는 모습이 뜻밖이다.

“꽤 하네. 난 센위顯玗야.”

꼬맹이 주제에 대뜸 반말...! 하지만 여기는 조선이 아니다. 관습이 생소한 외국이니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난 신가, 경석이라고 하네, 조선에서 왔지. 이쪽은 돌쇠라고 동생이야.”

무슨 말을 나누는지도 모르는 돌쇠는 멍하니 바라만 본다.

“톈진은 처음이야. 온지는 며칠 됐지만 시내로 나온 건 오늘이 처음이지.”

“그럼... 구경 나온 거야?“

“맞아. 근데 조계 말고는 아직 가본 데가 없어. 아는 데도 없고.”

녀석이 씨익 웃는다.

“난 얘들이랑 밥 먹으러 갈 텐데 같이 갈래?”

“잘 됐네.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도 몰라 막연했는데. 여기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니 밥은 내가 사지.“




청일전쟁, 둥베이, 이홍장, 원세개, 명치유신, 서태후, 손중산, 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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