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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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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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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281

작성
12.07.2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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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Chapter 22.

DUMMY

파라켈수스가 절망의 안개를 처음으로 관측한 것은 화성에서였다. 테라포밍이 한창 진행 중이던 그 땅에서 그는 희망이 아닌 절망을 보았다.

파라켈수스는 그날 생각했다.

그날 이미 마음을 정했다.



&



파라켈수스는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조직은 그 수뇌부인 십인중을 잃었다. 배신한 파라켈수스와 공중거성에 머물고 있던 시온 알테미스를 제외한 십인중 전원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조직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각국 사이를 연결해야 할 조직이 무너지자 세계는 협상에 더 많은 시간을 소진할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질 무렵 시온 알테미스는 깨어났다. 그녀는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울고 있지 만은 않았다.

데이비드 킴과 백무원은 눈치 없이 조직의 일을 들이밀지 않았다. 어차피 십인중이 죽으면서 조직의 거의 모든 커넥션이 무너졌다. 애당초 파벌을 형성하기 보다는 조직의 히트맨으로 활동했던 시온 알테미스이니 만큼 이제 와서 시온 알테미스 혼자 힘으로 그 모든 커넥션을 살려낼 수는 없었다.

칸젠 야마토가 호출한 천호 이랑의 후예들 일백이 제네시스에 올랐다. 동방불패가 동방의 요괴들 가운데 강한 자 일백을 뽑아 제네시스에 승선시켰다. 로드 카시리온이 공중거성 제네시스를 대표하여 세계와 소통을 나누었다.

태평양의 SG는 그 수를 불리기를 멈추었다. 최종적으로 확인된 그 수는 어림잡아 3억 5천만이었다.

황혼이 사그라들고 밤이 깊었다.

침대 한 가운데 누운 미호는 미간을 좁혔다.

“저기요, 이거 지금 뭔가 굉장히 이상한 거 알아요?”

미호는 시온 알테미스를 보살피기 위해 오랜만에 함께 잠자리에 들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자리에 롤랑드가 만약의 사태 운운하며 끼어들었다. 아무리 이제는 롤랑드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미호라도 이건 좀 거부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롤랑드가 평소처럼 능글맞게 굴었으면 당장에 소리를 지르며 쫓아냈을 터였다. 하지만 롤랑드가 진지했다. 지난번 납치 사건 이후 다시는 그런 일을 겪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했다며 강하게 나왔다. 이런 식의 어프로치(?)에는 약한 미호는 시온 알테미스가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했지만, 이게 웬일인지 시온 알테미스가 의외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그 우격다짐이 성사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침대 위에는 세 사람이 누워 있었다. 맨 왼쪽에 롤랑드, 가운데에 미호, 오른쪽에 시온 알테미스.

시온 알테미스가 웃으며 미호의 뺨을 꼬집었다.

“화내는 얼굴도 귀엽구나.”

비록 그 미소에는 힘이 없었지만 목소리만은 밝았다. 미호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시온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시온, 지금 오랜만에 완전 소름 돋은 거 알아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닭살이 오돌토돌 돋았다. 하지만 미호도 결국엔 웃고 말았다. 어찌되었건 시온 알테미스가 웃었다는 사실이 기뻤기 때문이었다.

“고맙다, 아기 고양이.”

시온이 미호를 살짝 끌어안았다. 미호는 그런 시온을 보듬어 주었다. 이전부터 시온이 무언가 마음의 상처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깊고 곪은 상처일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호는 시온이 한없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바로 그때 롤랑드의 손이 불쑥 미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 갑작스런 손길에 미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롤랑드?”

“아니, 뭔가 지분을 빼앗기는 기분이라.”

하면서 미호의 가느다란 허리를 더 꽉 끌어안았다.

이 인간이 지금 뭐하는 짓이람? 아무리 좋아해도 그렇지 때와 장소란 걸 가려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미호는 잔소리를 늘어놓기 위해 입을 벌렸다. 하지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시온이 갑자기 미호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슴은 내꺼. 의외로 크구나.”

시온이 그리 말하며 미호의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아니, 이 인간들이 단체로 미쳤나! 상체가 완전히 결박(?) 당한 미호가 몸부림을 쳤다.

“으아아악! 정말 두 사람 다!”

하지만 미호는 결국 시온을 밀어내지도, 롤랑드의 손을 치우지도 못했다. 그러기에는 두 사람의 냄새가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의 체온이 너무 따뜻했다. 두 사람이 너무 소중했다.

미호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원. 그저 포기한 얼굴로 어설프게 웃었다.

시온이 그런 미호를 더 꽉 끌어안았다. 나직이 속삭였다.

“정말… 착하구나.”

“시온…?”

시온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미호는 가슴팍이 젖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시온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시온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유니온 시리즈가 모두 죽었다.

이는 시온에게 있어 큰 슬픔이었지만, 동시에 파라켈수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더 이상 고통받는 동생들을 보며 슬퍼할 일은 없었다. 더 이상 동생들의 목숨을 협박수단으로 삼아 자신의 몸을 탐하는 파라켈수스를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방문하는 것 자체가 시온 알테미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실험실에 더 이상 찾아갈 이유가 없었다.

해방이었다. 수백 년이나 시온 알테미스를 옭아매었던 쇠사슬이 끊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기뻐할 수 없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조금이나마 기뻐하는 자신을 혐오했다.

롤랑드가 미호의 허리를 안았던 손을 풀었다. 길게 뻗어 시온의 어깨를 어렵사리 안았다. 미호의 어깨 너머로 부드럽게 말했다.

“시온 알테미스, 지난번에 내가 한 말 기억하오?”

시온 알테미스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미호는 롤랑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마도 미호가 납치되었을 때 둘이 나눈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롤랑드는 계속해서 말했다.

“언제 어디서든 나와 레이디 윤은 그대의 편이 될 것이오. 그리고 그대가 짊어진 아픔을 함께 해결할 것이오.”

롤랑드는 시온의 기억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미호가 뿜어낸 살기만으로도 그것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 기억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롤랑드가 안젤리카에게 버림받아 광인이 되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위해 달까지 다녀올 정도로- 정말로 멋진 친구들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혼자가 아니다. 자신의 일과 시온의 일이 과연 견줄 수 있는 것인지는 롤랑드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어떤 슬픔이라도,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홀로 맞서는 것보다는 함께 맞서는 것이 나았다.

시온은 고개를 들었다. 미호를 보았고, 그 어깨 너머로 롤랑드를 보았다. 눈물자국이 선명한 얼굴로 웃었다.

“그래, 셋이 함께 하자꾸나. 삼위일체 미호클레스라고 했나?”

셋이 하나가 되는 것. 이쪽이 가진 비장의 카드.

미호는 얼굴을 붉혔다.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기술 이름이 너무 민망해요….”

미호클레스라니! 사실상 미호 펀치! 미호 킥!과 동급의 네이밍 센스이지 않은가! 이게 무슨 수치 플레이도 아니고!

시온 알테미스는 쿡쿡쿡 웃었다. 미호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그렇소.”

롤랑드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미호는 인상을 구겼다.

“…둘 다 이상해요.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하지만 결국엔 미호도 웃고 말았다. 시온이 미호의 이마에 입 맞추었다. 다시 한 번 그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잘 자렴, 아기 고양이.”

“잘 자요, 시온.”

두 사람은 훈훈하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에게 체온을 나누어주었다. 롤랑드가 뒤늦게 끼어들었다.

“…저기, 나는?”

“적당히 자거라.”

“난 그냥 자야지.”

앞에 심드렁한 목소리는 시온, 뒤에 모처럼 놀려서 신난다는 목소리는 미호.

롤랑드는 한숨과 함께 눈을 감았다. 함께 할 두 사람에게 속삭였다.

“안녕히 주무시오.”

세 사람은 편안히 잠들었다.



&



무지개 방벽이 무너졌다. 절망의 안개가 지구를 덮쳤다. 이미 죽은 지 오래였던 행성은 완전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최후로 전송된 전화한 생명이 가져온 영상자료를 통해 일곱 자루의 검들은 그 모든 것을 보았다. 이미 예견된 것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며, 결국 피할 수 있었음에도 일곱 자루의 검들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레바테인은 울었고 아스칼론도 눈시울을 붉혔다.

아버지들의 고향.

비록 죽어버린 땅이지만 천 년이란 긴 시간을 보낸 검들의 고향.

이제는 없다. 사라졌다.

“괜찮아, 우리는 이제 여기서 살 거니까. 아버지들도 돌아올 거니까.”

아론다이트가 짐짓 기운차게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활기보다는 애처로움이 더 묻어 있었다.

침략이다. 약탈이다. 살기 위해서라지만 타인을 죽여야 한다.

일곱 자루의 검들은 구세주의 복제품들이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태어난 선량한 존재들이었다.

발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상을 껐다. 레바테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버지가 오셨다. 준비도 끝났다. 내일, 우리는 천 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별했던 ‘아버지들’을 다시 만날 것이다.”

레바테인이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검들 모두 결의를 다졌다.

“오늘은 오랜만에 다 함께 자도록 하자. 그리고 내일, 우리 모두 웃으며 아버지들을 만나자.”

발뭉은 동생들과 함께 제어실을 나섰다.

구름이 짙어 달도 없는 밤, 별을 구하기 위해 태어났던 별의 아이 클라우 솔라스는 노틸러스 호의 갑판 위에 서서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으로 시선을 보냈다.

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았다.



&



“…설마 3P라거나 3P라거나 3P라거나… 나날이 대범해지시는 군요, 사랑하는 요원님. 이미 소문 다 났다 이건가요? 자포자기인가요?”

“야!”








꼐속


작가의말

너무나 당연하게도,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사람들은 그를,

기계 장치라 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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