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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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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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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2.08.12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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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SS #14 절망의 날

DUMMY

SS #14 절망의 날



인류는 멸망을 피할 수 없다.



&



인류의 희망이었던 별의 아이 클라우 솔라스는 죽었다. 절망의 안개를 2시간 37분 51초 동안 붙잡아 둔 대가로 그 목숨을 잃었다.

그 시간동안 인류는 무지개 방벽을 펼쳤다. 절망의 안개를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



절망의 안개는 무지개 방벽 너머에 절망을 퍼트렸다. 인류는 생식능력을 잃었다. 새로운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바다 생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생태계는 파괴되었다.



&



태양이 그 빛을 잃었다. 대다수의 식물들이 멸종하였다.



&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수십억에 달하는 인간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그에 필적하는 인간들이 얼마 남지 않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 죽었다.

사람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0억을 헤아리던 인류는 1억 3천만 밖에 남지 않았다.



&



살아남은 인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멈추었다. 이대로는 모두 멸망한다는 합리적인 판단 때문만이 아니었다.

싸워서 쟁취할 자원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어거스트는 별의 생명들이 전화轉化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억척스런 생명들은 죽어버린 별에 걸맞는 모습을 취하기 시작했다. 생명의 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이 또한 절망의 안개의 영향인 것일까.

어거스트는 더 이상 연구하지 않았다. 클라우 솔라스에게 받은 목숨이라며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무릎 꿇지 않던 그는 결국 절망해버렸다. 궁여지책이라며 인류가 내놓은 방책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안녕, 클라우.

미안해, 클라우.

어거스트 게헤르만 박사는 자신의 방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



인류는 절망의 안개를 완전히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또한 이 죽어버린 별을 떠나 다른 별로 이주할 방법 또한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원했다.

무지개 방벽을 만들어 인류에게 시간을 만들어준 파라켈수스는 별의 아이 클라우 솔라스가 남긴 기록들을 바탕으로 한 가지 가설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 가설은 절망 앞에 미쳐버린 인류에게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



세상간 침략 계획.



&



다른 세상으로 침공해 그 별을 빼앗는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침공할 만한 세상을 찾아내기 위한 시간이, 세상간 이동을 실현할 기술을 만들어낼 시간이.

1억 3천만이나 되는 인류가 세상간 이동을 하는 것은 무리다. 애당초 저 시간동안 1억 3천만이나 되는 인류가 버티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류는 살고 싶었다.

멸망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



일곱 자루의 검들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다. 그 영혼을 영혼석에 담아 보관한다.

일곱 자루의 검들은 노화를 모른다. 그들은 장구한 시간 동안 무지개 방벽을 유지하며 다른 세상을 수탐할 것이다. 이동 방안을 찾아낼 것이다. 마침내 침략의 날이 밝으면 선봉장이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는 새로운 세상의 아담과 이브가 될 것이다.

“미련한 짓이지.”

영혼을 영혼석에 봉인한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날을 기다린다.

다른 세상을 침공해 타인의 육신을 빼앗는다.

절망 앞에 미쳐버렸구나, 인류여. 절망 앞에 이성을 잃었구나, 인류여.

파라켈수스는 피식 웃었다. 어거스트가 그에게 남긴 최후의 포도주를 삼키며 붉게 물든 바다를 보았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파라켈수스는 고개를 돌렸다. 1억 3천만에 달하는 인류는 영혼석에 영혼을 옮겨 담는다는 미친 짓을 하기 위해 모두 다 쉘터에 모여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 파라켈수스 외에 다른 인간이 있다는 사실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였다. 말을 건 것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었다. 망사스타킹에 검은 수영복, 거기에 넥타이라는 아주 전통적인 바니걸 차림의 여자였다. 다만 부풀어 오른 회색 머리칼 위로 솟은 하얀 토끼 귀와 엉덩이에 자리한 귀는 가짜가 아닌 진짜였다. 파라켈수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토끼인가. 이런 식으로 전화한 인간도 있었나?”

전화한 존재들은 대체로 흉악하게 생겼다. 저 유사 드래곤들처럼 경이로움을 부르는 존재는 있을지언정, 눈앞의 존재처럼 미형의 존재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토끼여자가 웃었다.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냐. 그보다 답해봐 왜 그렇게 생각해?”

파라켈수스는 다시 여자를 보았다. 미인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저 여자는 ‘미련한 짓이다’라는 말 한마디만 듣고서 저렇게 묻고 있었다. 마치 파라켈수스가 무엇을 보고 미련하다 말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파라켈수스는 생각하기를 관뒀다. 귀찮았다. 포도주를 한모금 삼킨 뒤 말했다.

“절망 앞엔 다 소용없는 짓이야.”

파라켈수스는 화성에서 처음 절망의 안개를 보았다. 그리고 그 날 바로 알 수 있었다.

저것이야말로 절망이구나.

절망이다. 절대적인 절망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것에 저항할 방법은 없다.

인간은 멸망할 것이다. 그럴 운명이다.

“그리고 애당초….”

파라켈수스는 말끝을 흐렸다. ‘그녀가 이런 것을 알았다면, 인류가 이런 미친 짓거리를 행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래도 과연 절망의 안개 앞에 자신의 목숨을 던졌을까-’하는 긴 말을 삼켰다. 그녀는 물론 원치 않겠지. 인류의 이러한 행동에 비탄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절망의 안개 앞에 섰을 거야. 그녀는 그러했을 거야.

토끼여자는 파라켈수스를 채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파란 눈동자는 파라켈수스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 꿰뚫어보고 있는 듯하였다. 파라켈수스는 기분이 나빴다.

“넌 뭐지?”

“난 길잡이야.”

“길잡이?”

“그래, 가끔은 길을 잃은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이지.”

미친년이군. 파라켈수스는 결론을 내렸다. 여자를 외면하고 포도주를 삼켰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파라켈수스.”

“왜.”

“그래서 넌 어떻게 할 거야?”

다른 인류처럼 영혼석에 영혼을 담을 거야? 언제 올지 모를, 그리고 과연 올지도 의문인 그 날을 기다릴 거야?

“그냥 곱게 뒈질 거다.”

무지개 방벽은 완벽하지 않다. 당장에 전화를 시작한 생명들이 그 증거였다. 붉게 물든 바다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가능성을 포기하는 거야?”

“그딴 건 가능성이 아냐. 지푸라기 잡기만도 못 해.”

파라켈수스는 이제는 빈병이 된 포도주 병을 붉은 바다에 던졌다. 토끼 여자가 말했다.

“저기, 그럼 말이야. 만약에, 아주 만약에 네게 시간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넌 뭘 할 거야?”

“…무슨 소리지?”

“넌 지금 절망했잖아. 뭘 해도 저 절망의 안개 앞에서는 소용없다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만약 네가 저 절망의 안개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면, 그러니까 이를테면 다른 세상으로 도망칠 수 있다면- 그때는 무얼 할 거야?”

파라켈수스는 절망했다. 그가 인류를 미련하다 욕하는 것은 인류가 하고자 하는 행위의 도덕성 때문이 아니었다. 파라켈수스는 절망했다.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별의 아이 클라우 솔라스가 죽던 날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런데 만약 그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도망칠 수 있다면-

“방법을 찾을 거다.”

“방법? 절망의 안개를 막을?”

“그딴 방법은 없어.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절망하지 않을 방법이다.”

“절망하지 않을 방법?”

“그래, 그 어떤 시련 앞에서도 절망하지 않을- 그런 방법.”

절망의 안개 앞에 서던 날, 별의 아이 클라우 솔라스는 절망하지 않았다.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임에도 그녀의 눈은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어째서 그녀는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토끼 여자가 웃었다.

“재밌네, 재미있어. 그럼 내가 길을 열어줄게.”

토끼 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옆에 문이 생겼다. 그냥 문짝. 토끼 여자가 문을 열었다. 문 너머의 풍경은 주변과 달랐다.

“다른 세상이야. 절망의 안개는 없어.”

파라켈수스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파라켈수스에게 생긋 웃었다.

“가 봐, 네가 찾을 방법이 무엇인지 난 궁금하니까.”

파라켈수스는 고개를 들어 잿빛 하늘을 보았다. 고개를 내려 붉은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오래 걸릴 거야.”

“얼마든지.”

파라켈수스가 문안으로 몸을 던졌다. 토끼 여자는 문을 닫았다. 고개를 들어 잿빛 하늘을 보았다. 무지개 방벽 너머에 있을 ‘밤’의 파편인 절망의 안개를 보았다.

“절망하지 않을 방법.”

왕의 가신, 길잡이 토끼 패스파인더는 웃었다. 너무나 슬프게, 너무나 자조적으로.

“그런 건 없어. 저것을 상대로는.”

왕께서는 그러하시지 않았지만, 공주 그 빌어먹을 창녀 또한 그러했지만-

적어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잡이 토끼는 손가락을 튕겼다. 문과 함께 사라졌다.

해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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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48 검조(劍祖)
    작성일
    12.08.12 02:16
    No. 1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8.12 03:14
    No. 2

    여전히

    공주가누구인지 궁금한 ss입니다


    취룡님! 내년 시험 꼭 잘 보시구!

    그 이후 반년간 쉬실때 이 연대기 멋지게 질러주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재미있게 보고 가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3 스텔라리
    작성일
    12.08.12 03:15
    No. 3

    ㅇㅅㅇ,,,,뭐랄까 왕이나 가신들이 최종보스 일당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밤이라는 뭔가에 비하면.....;;;아니 어쩌면 쟤들도 피해자(...._)
    절망의 안개,밤의 파편이 좀 쩔기는 쩌나봅니다. ; 왕이나 공주가 희생해서 밤을 봉인,또는 쪼갠건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오룡이
    작성일
    12.08.12 11:32
    No. 4

    왕과 공주가 절망의 안개앞에서 어떤 선택을 한건지 궁굼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2.08.12 21:21
    No. 5

    공주가 로카인가보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sfartar
    작성일
    12.08.13 03:44
    No. 6

    왕과 공주라...
    뭔가가 이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나우(羅雨)
    작성일
    12.08.13 09:33
    No. 7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티미.
    작성일
    12.08.13 16:01
    No. 8

    지난번에 로카가 공주 아니라고 봤던것 같은데...
    잘못본건가..ㅠㅠㅠ
    역시 연대기는 설정집을 하나 만들어서 보고 싶은.ㅠㅠㅠ

    자... 진정한 끝판왕은 황제겠죠??
    이미... 그는 없지만...
    연대기의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보는 그날까지..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아스트리스
    작성일
    13.07.19 21:10
    No. 9

    공주가 로카인줄 알았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천지
    작성일
    13.11.01 08:50
    No. 10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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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SS 어떻게 +20 12.08.20 7,000 65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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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SS -후에 +8 12.08.19 4,215 58 11쪽
» SS #14 절망의 날 +10 12.08.12 4,473 57 9쪽
96 SS #13 취중야담 +4 12.08.12 4,165 32 1쪽
95 SS #12 별의 이름으로 +24 12.08.09 4,087 56 7쪽
94 SS #11 별의 아이들 +13 12.08.02 4,531 62 17쪽
93 SS #10 안녕하세요 +47 12.08.01 4,453 6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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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SS #4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18 12.07.25 5,420 70 15쪽
85 SS #3 추랑 - 도망 신랑을 쫓다 +21 12.07.24 5,123 72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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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용어 해설 #9 +14 12.07.22 5,587 42 11쪽
81 연대기 각 시리즈 보는 법 +11 12.07.22 9,869 37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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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후주곡 +14 12.07.22 5,615 7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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