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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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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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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0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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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SS #11 별의 아이들

DUMMY

SS #11 별의 아이들



태평양 어딘가의 외딴 섬. 별이 빛나는 해변가에 오붓하게 모닥불을 피워두고 두 쌍의 남녀가 도란도란 모여 앉았다. 분홍색 비키니 수영복 위에 얇은 하얀 숄을 걸친 미호가 두 손을 짝짝 부딪히며 말했다.

“어, 음… 그럼. 제 1회 별의 아이들 친선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하, 하, 하.”

따라 박수를 치며 세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형부, 나도 이상한 거 아니까 그렇게 웃지 말아요.”

“옙.”

세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모두가 별의 아이들이었다.

천 년 전 절망의 안개를 막기 위해 태어난 별의 아이 클라우 솔라스와 세상 월광이 세상 일광을 위해 낳은 시현과 세진, 그리고 파라켈수스를 막기 위해 태어난 별의 아이 미호.

현아와 아라는 각자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삼대에 걸친 별의 아이들이 모인 셈이었다.

이 자리를 주최한 것은 당대의 별의 아이인 미호였다. 사실 뒷배경을 좀 더 파고들면 일곱 자루 검들의 부탁도 있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미호 스스로도 이런 자리를 한 번쯤은 가지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으니까.

클라우 솔라스는 언제나처럼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모닥불을 들여다보았다. 지나가듯 말했다.

“그래서 친목을 도모하자는 건가?”

별의 아이들끼리?

“네, 다시없을 인연들이잖아요.”

미호가 얼른 생글생글 웃으며 붙임성 있게 말했다. 클라우 솔라스는 그런 미호를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모래사장 쪽으로, 정확히는 모닥불 근처에 잔뜩 자리하고 있는 술과 안주 더미들로 시선을 돌렸다.

“술이군.”

네 명 중에 세 명이 한국인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술은 거의 다가 맥주 아니면 소주였다. 미호가 헉하고 숨을 삼켰다.

“아… 혹시 술은 좀 별로인가요?”

사실 그보다는 친목도모하면 술자리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고에 문제가 있었지만, 클라우 솔라스는 그런 것을 지적할 마음이 없었다. 아주 작게나마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즐기진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 다만 옛 생각이 나는군.”

“옛 생각이요?”

“그래, 저쪽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날…. 나는 모두와 함께 술을 마셨다. 어거스트가 울면서 오늘이 아니면 언제 마셔보겠냐며 100년이나 묵은 포도주를 꺼냈었지.”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클라우의 분열세상은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절망의 안개가 마침내 지구에 근접한 날. 달이 잡아먹히기까지 하루도 채 남지 않았던 그 날.

“나도 알고 있었고, 모두도 알고 있었다.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내일로 이어질 희망을 버리지도 않았지.”

클라우 솔라스는 맥주 캔을 하나 들어올렸다. 그날과는 다른 조잡한 술이었다. 그날 함께 했던 이들은 모두가 죽어 사라졌다. 하지만 클라우 솔라스는 그 날을 떠올렸다. 그 날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눈빛을 잊지 않았다.

“절망의 안개 앞에서 절망하지 않았다. 희망을 꿈꾸었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나 스스로가 별의 아이라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들의 희망을 위해 싸울 수 있어서, 그들의 내일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어서.

“클라우….”

미호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클라우를 보았다. 미호 뿐만 아니라 시현과 세진의 눈에도 복잡한 감정이 어렸다.

클라우는 웃었다. 맥주 캔을 높이 들어올렸다.

“마시자.”

별의 아이들은 저마다의 술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1시간 뒤.

“취했구나.”

변함없이 또렷한 목소리로 클라우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의 대상인 미호는 고개를 흐느적흐느적 가로저었다.

“안 취해써요…. 빠리 더 줘여….”

볼은 발갛고, 눈은 풀렸고, 몸은 흐느적거린다. 누가 봐도 취했건만 클라우는 그런 미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주병 하나를 새로 꺼내들었다.

“그래, 한 잔씩 주고 받자구나.”

“에헤헤헤헤….”

미호가 바보처럼 웃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사이좋게 클라우와 술잔을 부딪혔다. 정말로 많이 친해진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하지만 그런 둘을 지켜보던 시현은 옆자리의 세진에게 낮게 속삭였다.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뭐, 이미 말릴 상황은 아닌 것 같다만. 그냥 뻗길 기다리자.”

마찬가지로 낮게 중얼거린 세진은 가만히 미호의 상태를 살폈다. 소주 2병에 맥주 3캔. 확실히 많이 마셨다. 주당이 아닌 이상에야 뻗기까지 앞으로 소주 반병일까.

“거기 두 사람! 무슨 얘기를 그렇게 소곤소곤 나눠요? 나랑 클라우만 쏙 빼놓고!”

미호가 돌연 세진과 시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일갈했다. 당황한 시현은 두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아무 것도….”

“아니긴 모가 아니야! 롤랑드랑 시온이랑 똑같아! 만날 귀엽다면서 괴롭히기만 하고! 이 변태! 멍청이! 해삼아!”

난데 없이 순박한 욕을 얻어먹은 시현은 억지로 웃었고, 세진은 그런 시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클라우 솔라스가 미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미호, 취했구나. 그러니 한 잔 더 받으렴.”

“눼에….”

미호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술 한 잔을 더 받아 마셨다. 클라우는 세진에게 눈짓했고, 세진 또한 이해했다. 그래요, 빨리 보내버립시다.

클라우와 세진간의 눈빛 교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싹싹 핥아 먹은 미호는 클라우의 품에 허물어지듯 안겼다. 클라우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클라우, 클라우는 불만 업써여?”

클라우는 그런 미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이를 보듬는 어머니처럼 자애로운 얼굴로 말했다.

“나도 있단다. 검들은 다들 내 눈치를 너무 살펴. 그게 더 불편한데도 말이야.”

“나쁜 애들이네….”

미호는 손발을 버둥거려서 클라우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두 손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시현쪽으로 다가갔다.

“에헤헤 시현아….”

“…미호씨?”

시현이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뒤로 물리며 그리 답하자 미호가 눈썹을 꺾었다. 시현이 물러간 만큼 더 바짝 다가서서는 얼굴을 가까이하고 입술을 벌렸다.

“동갑이면서 씨는 무슨…. 이힛, 시현이는 클레어한테 불만 업써? 응? 말해봥.”

하면서 슬쩍 시현의 허벅지에 위에 손을 올렸다. 시현은 기겁을 하며 답했다.

“그, 그런 거 없어요!”

“존댓말 하지 말라니까!”

“…그런 거 없어.”

다시 답하며 시현은 어떻게든 미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정작 그렇다고 손을 대자니 뭔가 더 죄를 짓는 기분(?)인지라 뭘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미호는 그런 시현의 난감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머리로 시현의 가슴을 살짝 들이박았다.

“거짓말쟁이! 우리끼린데 그냥 말해봐… 응? 응?”

시현은 그야말로 난처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클라우를 보았지만 클라우는 그저 술만 마실 뿐 딱히 도움을 주지 않았다. 시현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미호의 뒷통수를 한차례 내려 본 뒤 세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진 형.”

“아아, 입에 자물쇠 걸으마.”

세진이 익살맞게 웃으며 손으로 입에 지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시현은 눈을 감았다. 폐부 끝에서부터 끌어올린 듯한 긴 한숨을 토하며 마했다.

“음… 사실 나도 말이야.”

“응응.”

“카레가 이제 좀 지겨…워. 솔직히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어, 이젠. 식도락이라고 해야 하나… 먹는 즐거움 자체가 삶에서 박탈당한 기분이야.”

시현의 목소리엔 깊은 시름이 담겨 있었다. 세진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시현을 보았다.

“너, 생각보다 심각했구나.”

세진은 답하는 대신 그저 쓰게 웃었다. 하기야 삼시세끼 카레만 먹은 지 벌써 2년이 넘었으니까.

미호가 시현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그래쿠나… 그래도 털어노니까 조치?”

“응, 그래. 고마워 미호.”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호의 말마따나 입밖에내고 나니 좀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술자리를 갖는 걸까? 정말로 미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히히히히 고마워할 거 업지롱.”

“…미호?”

미호가 간드러지게 웃으며 시현의 품에서 도망쳤다. 비틀비틀 뒷걸음질 치며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내 휴대폰에서 재생되는 시현의 목소리.

[카레가 이제 좀 지겨…워. 솔직히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어, 이젠. 식도락이라고 해야 하나… 먹는 즐거움 자체가 삶에서 박탈당한 기분이야.]

시현은 눈을 크게 떴다. 세진은 입을 쩍 벌렸다. 미호는 까르르 웃었다.

“약점 잡았지롱~ 약점 잡았지롱~♡”

“미, 미… 빨리 지워!”

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미호는 휴대폰을 얼른 자기쪽으로 끌어당기며 도리질을 했다.

“싫어! 안 지울 거다!”

“미호!”

시현이 진지하게 소리치며 미호에게 손을 뻗었다. 그 얼굴이 참으로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미호 또한 가만히 앉아서 휴대폰을 내주지 않았다. 몇 번인가 몸부림을 치더니 이내 휴대폰을 분홍색 비키니 안, 그러니까 가슴골 안에 찔러 넣었다. 보란듯이 가슴을 내밀며 말했다.

“가져가 봐! 가져가 봐!”

“크윽…”

시현이 미호의 가슴 바로 앞에서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냥 미친척하고 가져가 버릴까?!

“우리 시혀니 얼굴 빨개져따!”

미호는 까르르 웃으며 클라우 쪽으로 도망쳤다. 시현은 부들부들 떨리던 손으로 이마를 짚었고, 세진은 끝까지 매너를 지킨 시현에게 속으로 찬사를 보냈다.

클라우가 미호에게 다시 술잔을 건냈다.

“미호, 한 잔 더 받으렴.”

“응응.”

미호는 또 소주 한 잔을 꼴깍 받아먹었다. 다시 클라우의 품안에 무너지며 중얼거렸다.

“롤랑드는… 잘 해. 진짜진짜 잘 해.”

세진은 순간 “뭘 그렇게 잘하는데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간신히 자신의 호기심을 억눌렀다. 미호는 계속 말했다.

“그리고 시온은 키스를 잘 해. 너무너무 잘 해.”

세진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대바늘로 자신의 허벅지를 찔렀다. 상상하면 안 돼! 상상하면 안 된다고! 인륜을 저버리지 마라, 세진!

미호는 클라우의 품에서 다시 얼굴을 뗐다. 제자리에 주저앉아 세상을 부정중인 시현에게 기어갔다.

“시혀니 화나써?”

“…몰라.”

미호처럼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시현 역시 꽤나 술을 마셨다. 툴툴거리며 아예 병나발을 불어버렸다. 취하든, 취하지 않든 소심한 것이 딱 시현다웠다.

미호는 그런 시현의 품에 파고들었다.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화내지 마. 내가 뽀뽀해 줄게.”

“미, 미호?”

시현이 마시던 소주를 거의 반 이상 입 밖으로 토해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욱이 뜨겁게 달아오른 미호의 살갗이 필요 이상으로 너무 가까이 있었다.

시현은 허우적 거렸고, 미호는 마치 연체동물마냥 시현에게 매달렸다. 그대로 키스했다. 혀를 밀어 넣었다.

“으읍!”

시현의 저항이 그것으로 끝났다. 시간이 멈춰버렸다.

“하앙♡”

도대체 얼마나 이어졌는지도 알 수 없을 입맞춤은 미호의 달짝지근한 탄성으로 끝났다. 미호는 입술을 날름 핥으며 몽롱한 얼굴로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연이어지는 찰칵, 찰칵 소리.

시현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세진이 형!”

“아, 미안.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러버렸네.”

시현의 외도(?) 현장을 본 순간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현은 더 이상 항의도 못하고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미호가 이번에는 세진을 보았다.

“형부♡”

귀엽게 속삭이며 엉금엉금 기어서 세진에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세진이 당황했다.

“처, 처제?”

“히힝. 근육질 형부. 형부도 뽀뽀 해줄까요?”

미호가 세진의 우람한 팔뚝을 꼭 끌어안았다. 세진은 그 순간 정신적인 비명을 질렀다. 파, 팔에 가슴이 닿잖아! 거기다 생각보다 더 커!

“크, 크윽….”

세진은 신음을 삼키며 미호를 보았다. 미호 또한 세진을 보았다. 누가 구미호 아니랄까봐 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세진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크오오오….”

“뭘 고민 하는 거야!”

무너졌던 시현이 마지막 힘을 끌어내 소리쳤다. 하지만 세진은 시현 쪽을 보지 못했다. 점점 더 다가오는 미호의 숨결에 얼어붙었다.

“아니, 하지만 크윽… 나의 이성이여! 본능을 억눌러라!”

“형부…♡”

미호가 세진의 목을 끌어안았다. 미호의 살결에서 향긋한 냄새가 났다.

“크윽!”

세진은 결국 눈을 꽉 감았다. 속으로는 ‘이러면 안 돼! 세류! 라므!’라고 소리치며 입술은 본능에 따라 쭈욱 내밀었다.

미호가 세진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입술이 거의 닿을 것만 위치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우웨에에에에엑!”



클라우 솔라스가 미호를 데리고 화장실로 떠난 자리. 거의 다 탄 모닥불 옆에 쓸쓸이 누운 세진의 곁을 시현이 지켰다.

“형…, 괜찮아?”

세진은 눈을 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참 많았다.

“어쩐지 이렇게 될 것 같았어. 이렇게 마무리 될 것 같았다고! 흑흑흑!”

바닷물에 얼굴을 닦았지만 아직도 뭔가 냄새가 나는 느낌이었다. 시현은 그런 세진을 동정하면서도 한편으론 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쉽게 인륜을 저버리려 하다니.

“아무튼 사진이나 빨리 지워.”

시현이 세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세진은 욕지거리를 토했다.

“쳇, 언제나 왜 네 녀석만….”

사바스 때랑 아르켄 때도 그러더니만!

“형!”

세진은 시현에게 휴대폰을 던져줬고, 시현은 재빨리 자신의 은밀한 사진들을 지웠다. 잠시 후 클라우 솔라스와 미호가 돌아왔고, 네 사람은 다시 술잔을 높이 들었다.

“더 마셔! 더 마셔!”



그리고 다음날 해가 높이 높이 뜬 시간. 겨우겨우 잠에서 깨어난 시현은 머리를 짓눌렀다. 대체 얼마나 마셨는지 아직도 머리가 띵했다.

비틀비틀 일어나 겨우 물 한잔을 삼킨 시현은 습관대로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전원을 넣자마자 부재중 전화 수십 통이 눈에 들어왔다.

“응? 어디서 이렇게 부재중 전화가….”

말하는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시현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미호였다.

“시현 씨!”

“에, 미호 씨?”

“미안해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거의 반은 우는 거나 다름없는 미호의 목소리였다. 어제 일을 대강 떠올린 시현은 쓰게 웃었다.

“아… 뭐, 괜찮아요. 취하면 그럴 수도 있죠.”

사실 주사가 좀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귀여운(?) 주사였으니까. 미호는 울먹이며 계속 말했다.

“으으… 정말정말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녹음 파일을 발송해버려서….”

시현은 순간 얼어붙었다.

발송해?

녹음 파일을?

“시현아?”

목소리는 휴대폰이 아닌 등 뒤에서 들려왔다. 시현은 천천히 돌아섰다. 클레어가 서 있었다.

“…클레어?”

클레어는 대답하는 대신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시간이 정지했다.



덧1)

“히잉, 어떡하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온 비명 소리에 반사적으로 휴대폰 전원을 꺼버린 미호는 정말로 울먹거렸다. 시현과 클레어의 성격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건 정말 부부사이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술이 원수라더니!

미호는 자기 머리에 꿀밤을 놓으며 괴로워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아기 고양이,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시온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미호를 불렀다. 손에는 웬 촛대와 가죽 채찍을 들고 있었다.

“시, 시온?”

미호가 뒷걸음질 치며 괴이한 눈으로 시온을 보았다. 그리고 연이어 롤랑드가 나타나 그런 미호의 등 뒤를 점했다. 미호의 양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요.”

롤랑드의 목소리 또한 굳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 것일까. 이 인간들은 대체 또 왜 이러는 걸까?!

미호가 불안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미호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을 개시했다.

“받아.”

시온이 짧게 말했다. 미호는 미증유의 공포를 느끼며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휴대폰 액정에는 ‘형부’라는 두 글자가 보였다.

“여, 여보세요?”

“처제! 미안해!”

세진이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토했다. 그리고 그 순간 미호는 시온이 들어 올린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그 안에 담겨있는 사진들을 보았다.

“아주 많이 혼나야 할 거야, 아기 고양이.”

“외도는 옳지 못한 것이오.”

미호는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시온과 롤랑드가 그런 미호를 양쪽에서 덮쳤다.

“처제?! 처제!”

세진의 외침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fin


작가의말

블로그와 문피아 양쪽을 합쳐 집계한 결과 4번과 13번을 우선적으로 쓰기로 했습니다. 일단 13번 별의 아이들입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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