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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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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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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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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SS -후에

DUMMY

황무지에는 삭막한 바람이 불었다.

해는 높았고 습기는 적어 건조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너머로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전설의 사냥꾼은 더위를 느끼지도, 숨 막히는 갑갑함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저 한숨을 토했다.

어떻게 키운 제자인데.

엽기적인 결혼을 한 것까지야 그렇다고 쳐. 그런데 어떻게 그런…. 더욱이 그런 파렴치한 행위가 좋다니.

전설의 사냥꾼은 가슴을 두드렸다.

그래, 거짓말이겠지.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외침이었겠지. 미호는 그런 아이였으니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그 어떤 오욕도 감내하는 착한 아이였으니까.

“그래, 거짓말이겠지. 거짓말일 거야.”

하지만 머리 한구석에서는 ‘진짜라면? 정말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전설의 사냥꾼은 왼손으로 품을 뒤져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불을 지피려했고- 그래서 깨달았다. 어린 소녀 하나가 자신의 오른손에 매달려서 벌벌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약간 색이 바란 금발 머리 소녀는 작았다. 이제 열 살이나 되었을까.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상한 구석이 많았지만 본래는 꽤나 값비싼 물건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예쁘장한 얼굴에도 제법 귀티가 흘렀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전설의 사냥꾼이 인적 드문 황야에서 롤랑드와 시온 알테미스에 대한 살의를 억누를 즈음, 저 먼 곳에서 마차 하나가 지나갔고 그걸 웬 마적단 하나가 급습했다. 전설의 사냥꾼이 급히 달려갔을 때는 이미 마차에 타고 있던 부부, 그러니까 이 아이의 부모들은 살해당한 뒤였다. 마부는 도망쳤는지, 아니면 본래부터 마적단의 한패였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튼 일곱 명 정도 되는 마적단원들을 순식간에 살해하고 꼬마를 구출했다. 그리고 지금 전설의 사냥꾼과 꼬마 아이를 오십여 명에 이르는 마적단원들이 포위하고 있었다.

‘도망친 한패가 있었나. 아니면 멀리서 지켜보던 놈이라든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마적단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뭐라뭐라 떠드는 것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전설의 사냥꾼은 오른손에 약간 힘을 줘서 꼬마의 품에서 손을 빼냈다. 몸을 기대고 있던 손이 빠져서 비틀거리는 꼬마의 등을 가볍게 눌러 자신의 허벅지에 매달리게 하였다. 다시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렴.”

전설의 사냥꾼의 목소리는 더 없이 인자했지만 꼬마는 부들부들 떨기를 멈추지 않았다. 1시간 전에 부모가 살해당했고, 지금은 오십 여명의 마적단에게 포위당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전설의 사냥꾼은 여전히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있는 마적단 두목과 그 주변의 부하 놈들을 슥 돌아보았다. 무장 상태가 마적단답게 제각각이었다. 그래도 꽤나 세가 있는 놈들인지 기관총 같은 중화기도 몇 개인가 보였다.

아이를 지키면서 마적단 놈들을 다 쓸어버린다. 혼자서는 힘들다. 전설의 사냥꾼이 제아무리 뛰어난 사수라 하여도 1초에 50여개의 총알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쏠 수는 없었으니까.

“좋아, 죽이기 전에 이름자 하나는 들어두도록 하지. 네놈 이름이 뭐냐?”

연설을 끝마친 마적단 두목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흉터가 가득한 얼굴에 마른 인상이 누가봐도 험악했지만 전설의 사냥꾼은 빙긋 웃었다.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깐 눈을 감으렴.”

꼬마는 공포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전설의 사냥꾼을 올려다보았다. 마적단 놈들은 뭐가 그리 웃긴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마적단 두목이 손을 들어올렸다. 전설의 사냥꾼도 손을 들어올렸다. 언제나와 같이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를-”

발걸음 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웃으며 두목의 신호만을 기다리던 마적단 놈들이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사냥꾼들이 서 있었다. 저마다 성별, 나이, 복장이 모두 다른 일백에 달하는 사냥꾼들이 마적단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마적단 놈들의 눈이 커졌다. 전설의 사냥꾼은 마총 레전드를 들어올렸다.

카시리온- 전설.

일백 번의 인생, 일백 번의 계약, 일백 명의 전설!

“-전설이라 부르지.”

전설의 사냥꾼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마적단을 일거에 소탕했다.

다시 황무지. 바닥에 널린 것은 마적단의 시신들, 우뚝 선 것은 전설의 사냥꾼과 어린 여자 아이 하나.

꼬마는 전설의 사냥꾼의 말대로 눈을 감지 않았었다. 이제는 공포대신 경이와 놀라움, 그리고 어떤 한 가지 감정을 담아 전설의 사냥꾼을 올려다보았다.

전설의 사냥꾼은 쓰게 웃었다. 자세를 낮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다시 한 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에, 에델이요.”

“그래, 에델. 착하고 예쁘게 생겼구나.”

아이는 약간은 멍한 얼굴로 전설의 사냥꾼을 바라보다가 전설의 사냥꾼을 와락 끌어안았다.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태양이 작렬하는 황무지, 전설의 사냥꾼은 새 제자를 받아들였다.



&



합스부르크 가문은 감린 국이 무너진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일천년을 넘게 내려온 유서 깊은 가문은 양지와 음지 모두에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적이 많았다.

“알프레드!”

“도련님, 어서 이쪽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당대 가주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친애하는 집사 알프레드와 함께 저택 비밀통로로 몸을 던졌다.

베클링어 이 미친 개자식이 드디어 일을 저질렀다. 휘하 갱단을 이끌고 합스부르크 저택을 급습하다니!

“빌어처먹을! 이건 무슨 암살도 아니고!”

욕지거리를 토한 오토는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토했다. 총에 맞은 어깨가 쑤셨다.

놈들은 합스부르크 저택을 치기 위해 장갑차는 물론이거니와 전투헬기와 장갑기병까지 동원하였다. 미친 새끼들, 이게 무슨 전쟁이냐? 엉?

“침착하세요. 이 통로는 저와 도련님 밖에 모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토의 수발을 들어온 알프레드는 언제나와 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토는 자신보다 열 살쯤 위인, 개인적으로는 친형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알프레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빠져나가면 우리도 반대로 쓸어버리자고!”

베클링어, 이 개자식! 감히 합스부르크 가문을 건드려?

비밀통로는 천 년 전 처음 합스부르크 저택이 지어졌을 때부터 증개축을 계속한지라 참으로 길고 또 길었다. 장장 2km에 달하는 이 통로 내부에는 안전 가옥만 수채에 달했고, 여차하면 안에서 몇 년이고 농성할 수 있는 물품들이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토가 지금 해야할 것은 농성이 아닌 탈출이었다.

암벽들 사이로 난, 얼핏 보면 자연동굴로밖에 생각 못할 출구를 통해 알프레드와 오토가 몸을 내밀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집어삼켰다.

“허억, 허억.”

총에 맞아서 그런지 온 몸에 열이 들끓었다. 오토는 거친 숨을 토하며 고개를 들었다.

“안녕.”

들릴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토는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를 쫓았다. 동굴 앞 십여 미터 지점, 장갑기병 이십여명과 전투 헬기 한정, 장갑차 두 대를 이끌고 선 베클리어의 얼굴이 보였다.

“어, 어떻게?”

이 비밀통로를 아는 자는 오토 자신과 알프레드 뿐이다. 그래, 두 사람. 두 사람뿐.

오토는 뒤통수에 느껴지는 금속 특유의 차가움에 몸을 경직시켰다.

“…알프레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총구의 날카로움이 뒤통수를 더 파고들 뿐이었다.

베클링어가 크게 웃었다.

오토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그런 베클링어를 보았다.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알프레드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알프레드는 왜 배신한 것일까.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그리고 배신했다면 왜 이렇게 일을 번거롭게 한 것일까. 알프레드라면 언제든지 오토 자신을 암살할 수 있었을 터인데.

수많은 의문 가운데 한 가지만은 베클링어가 답해주었다.

“이야, 정말 멋진 얼굴이군. 왜 한 방에 안 죽였는지 궁금하지? 나도 번거로운 건 싫은데 말이야, 알프레드가 시간을 두고 좀 지켜봐야 한다고 하더라고. 너희 가문에 내려오는 전설? 뭐 그런 게 있다나?”

전설. 그래, 분명히 그런 것이 있기는 하다. 가문이 위험에 처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강한 무신이 강림한다는 전설. 하지만 그런 어린애들이나 믿을 전설이 무슨 소용이라고!

베클링어가 어깨를 으쓱였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

아직까지 아무 일도 없잖아?

“그런 것 같습니다.”

알프레드는 이번에도 차분히 답했다. 오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알프레드, 어째서!”

“배신한 이유를 알아서 뭐하게. 배신자는 그냥 죽이면 되는 거야.”

대답한 것은 알프레드가 아니었다. 베클링어도 아니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모두가 시선을 돌렸다. 암벽 위에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용모양 비녀로 한데 묶은 검은 머리칼은 바람에 길게 흔들렸고,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새하얀 아오자이가 달빛 아래 밝았다.

“뭐야 저건?”

그 말이 베클링어의 유언이 되었다. 베클링어의 몸이 폭발했다. 정확히는 돌조각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베클리어의 상반신을 강타해 몸을 터트린 것이었지만 그걸 명확히 본 자는 아무도 없었다.

여자가 차갑게 웃으며 도약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다.

오토는 멍청히 주저앉았다. 장갑차가 주먹 한 방에 박살이 나고, 장갑기병 스무 명이 무슨 종잇장마냥 허공에 날아다니는 광경 앞에서 현실감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가볍게 던진 돌맹이 하나가 전투헬기를 폭발시키는 마당에 현실감을 유지하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그래서 여자가 다가섰을 때 오토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다. 여자는 그런 오토의 모습에 웃었다.

“안녕, 이름이 뭐니?”

오토는 여자를 보았다. 진짜 전설속의 그녀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미녀인 것만은 분명했다. 동시에 엄청난 괴물이지만. 오토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오, 오토 폰 합스부르크.”

약간 떨긴 했지만 어깨를 펴고 당당히 말했다. 여자는 팔짱을 끼더니 그런 오토를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중얼거렸다.

“음, 천년이니 한 세대당 30년 잡으면 대충 30대 손인가? 그럼 뭐… 거의 남이네.”

“지금 무…?”

오토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여자의 입술이 오토의 입술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오토는 거부할 수 없었다. 저항할 수도 없었다. 아니, 아무리 괴물 같은 힘을 가진 초인이라해도, 이런 미녀를 마다하면 남자가 아니지.

오토는 여자를 마주 끌어안았다. 당하고만 있지 않고 자신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는 그런 오토의 반응에 크게 웃었다. 무척이나 즐거워하였다.

과연 그 아이를 닮았구나. 나의 오토.

달이 무척이나 밝은 밤, 키네네의 거울- 메르헨은 새 애인을 만들었다.




fin







그냥 별 생각없이 끄적여본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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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용어 해설 #9 +14 12.07.22 5,591 4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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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숨겨진 이야기 #1 +14 12.07.22 5,869 60 3쪽
79 후기 +26 12.07.22 5,550 63 3쪽
78 후주곡 +14 12.07.22 5,615 71 8쪽
77 최종악장 '별의 아이' +15 12.07.22 6,112 79 9쪽
76 SG Chapter 23. #2 +25 12.07.22 6,048 88 14쪽
75 Chapter 23. +22 12.07.21 5,204 85 6쪽
74 용어 해설 #8 +15 12.07.21 6,422 57 7쪽
73 Chapter 22. #3 +34 12.07.21 5,382 95 16쪽
72 Chapter 22. #2 +46 12.07.21 5,141 102 8쪽
71 Chapter 22. +31 12.07.20 5,306 9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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