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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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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613,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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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20,281

작성
12.07.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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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글자
21쪽

SS #3 추랑 - 도망 신랑을 쫓다

DUMMY

SS #3 추랑 - 도망 신랑을 쫓다.



길고 길었던 밤이 지나 아침이 밝았다. 산산이 조각난 햇살은 온 세상을 뒤덮었고, 비공정 창가에도 그 따스함을 나누어주었다.

“레이디 윤.”

속삭임에 미호가 어렵사리 눈을 떴다. 간밤동안 이어진 혹사에 지칠대로 지친 터라 눈에 힘이 없었다.

“아… 우….”

멍하니 목소리를 토하는 미호의 뺨을 롤랑드가 가볍게 두드렸다. 두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넣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해가 벌써 높이 뜬지 오래요, 늦잠꾸러기가 다 되었구려.”

미호는 대답하는 대신 롤랑드를 슬쩍 흘겨보았다. 이렇게 만든 사람이 누군데.

그런데 잠에서 깨고 보니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자기도 모르게 코를 실룩거린 미호는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방긋 웃고 있는 시온 알테미스가 보였다.

“우리 아기 고양이, 맛있는 밥 먹자.”

앞치마까지 두른 것이 영락없는 현모양처에 일등 신붓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본모습(?)을 아는 미호는 그야말로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롤랑드가 미호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자, 일어납시다.”

미호는 몸을 빙글 돌려 바닥에 두 발을 딛었다. 하지만 일어서지는 못했다.

“레이디 윤?”

롤랑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미호는 다리에 한 차례 힘을 주는가 싶더니 살짝 일어서다가 다시 침대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모, 못 일어나겠어요.”

이유야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얼굴이 발갛게 변한 미호가 울상을 짓자 롤랑드가 얼른 미호를 안아들었다. 갑자기 번쩍 안아드니 미호가 꺅 하고 작은 비명을 질렀고 롤랑드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럼 모셔갈 수밖에.”

롤랑드는 미호를 식탁까지 안고가 의자에 앉혀주었다. 보는 사람도 딱히 없건만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 미호는 얼굴에 자꾸만 열이 올라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미호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미호 옆에 잽싸게 자리를 잡고 앉은 시온이 살갑게 말했다.

“아기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차려보았단다. 어젯밤에는 고생 많았지?”

미호는 질렸다는 얼굴로 시온을 돌아보았다. 고생이야 많았지. 정말로 엄청나게 많았지.

시온이 얼른 젓가락으로 반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 ‘아’ 해보렴.”

그야말로 미호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한 액션이었지만 미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하도 당하기만 하다보니 한번쯤은 세게 나가고 싶어졌달까?

“나도 손 있거든요? 제가 먹을…”

일부러 차가운 척 하며 젓가락을 집어들던 미호는 결국에는 말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시온이 대놓고 실망한 표정으로 우는 시늉을 했기 때문이었다.

연기였다. 저건 분명 연기였다. 하지만 미호는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으. 알았어요. 아.”

미호가 못 이기겠다는 듯 어깨를 늘어트리며 입을 ‘아’하고 벌렸다. 시온은 바로 까르르 웃으며 미호의 입에 반찬을 하나 집어넣었다. 미호가 오물오물 씹고 있자니 롤랑드도 젓가락으로 반찬 하나를 집었다.

“그럼 나도.”

이 인간들이 이제 지금 진짜 뭐하는 짓거리야! 하지만 미호는 결국 이번에도 ‘아’하고 입을 벌렸다. 또 오물오물 씹어삼켰다.

“아유, 우리 아기 고양이 너무 귀엽다.”

시온 알테미스가 미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이건 뭐 숫제 애완동물 다루는 느낌이랄까?

“흥.”

미호가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며 콧소리를 냈다. 나름 밀당을 해보겠다고 취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시온과 롤랑드에게는 오히려 더 귀여워 보였다.

“아, 안되겠어. 도저히 못 참겠다.”

하악하악거리며 뭔가 심상찮은 숨소리를 토하던 시온이 두 손으로 미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시, 시온?!”

미호가 깜짝 놀라 기겁을 했지만 시온 알테미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미호에게 입 맞추었다. 몸부림치는 미호를 두 손으로 꽉 끌어안아 꼼작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이대로는 아침부터 또 당하고(?) 만다! 미호는 재빨리 주문술식을 발현하였다.

정령합체, 미호클레스!

황금빛 섬광이 가신 자리에는 여우 귀와 여우 꼬리를 내놓은 미호가 서 있었다. 시온을 베이스로 한 합체와는 달리 미호를 베이스로 한 합체는 그 어떤 고통도 뒤따르지 않았다.

아무튼 애니 웨이, 시온 알테미스는 미호의 입을 통해 소리쳤다.

“아기 고양이! 이건 반칙이잖아!”

거기서 그렇게 합체를 해 버리다니! 하지만 미호는 이번에야말로 코웃음을 쳤다.

“바, 반칙이 어디 있어요! 흥!”

합체야말로 미호가 가진 비장의 카드였다. 굶주린 맹수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랄까? 어쩐지 모르게 우쭐해진 미호는 후훗 웃었다. 그리고 그런 미호의 어깨 위에 롤랑드가 손을 얹었다.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후후후… 둘만 남았구려.”

어째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미호는 급히 고개를 돌리며 애먼 곳을 가리켰다.

“롤랑드 저기!”

눈 가리고 아웅인 속임수였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시야를 돌리면 충분했다. 예상대로 롤랑드가 슬쩍 눈동자를 굴리자 미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움직였다. 오히려 롤랑드에게 달려들어 입 맞추었다.

삼위일체, 미호클레스!

순백의 빛이 가신 자리에는 미호 혼자 남았다. 미호는 헉헉 거리며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미호의 입을 통해 롤랑드가 소리쳤다.

“레이디 윤!”

머릿속에서 시온 알테미스도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미호는 두 팔을 허공에 마구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 인간들이 진짜! 적당히들 하라고요!”

그리고 10분 뒤. 팔짱을 끼고 침대에 앉은 미호는 자신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엄숙하게 말했다.

“둘 다 자중해요, 알았어요?”

그 눈빛이 워낙에 매서웠기에 시온과 롤랑드는 천천히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이랄까, 시온 알테미스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중얼거렸다.

“뭐, 밤은 오늘도 찾아 올 테니까.”

“끄덕끄덕.”

굳이 목소리로 동의를 표한 것은 당연히 롤랑드.

미호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인간들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그보다 아기 고양이! 오늘 가기로 한 곳은 보석으로 유명한 곳이란다. 아기 고양이에 어울릴만한 물건들이 아주 많을 거다!”

시온이 잽싸게 일어서며 그리 말했다. 화낼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겨 버린 미호는 어버버 거리며 눈을 깜박이다가 시온을 보았다. 가장 핵심인 단어를 기억해냈다.

“보석이요?”

반짝반짝 빛나는 예쁘고 멋진 그거?

“그래, 오늘은 신나게 쇼핑이다. 짐꾼도 옆에 있으니 말이다!”

시온 알테미스가 과장스럽게 말하며 미호를 끌어안았다. 미호는 결국 이번에도 웃고 말았다.



시온 알테미스도 일단은 여자였고, 그렇기 때문인지 쇼핑을 시작하자 그야말로 미호와 찰떡궁합을 보여주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꺄악꺄악 거리며 웃고 떠드는 것이 무슨 십년 사귄 단짝 친구 같았다.

그런 둘로부터 미묘한 소외감을 느낀 롤랑드는 일부러 몇 번인가 헛기침 소리를 내보았지만 미호는 돌아보지 않았다. 시온이 아주 가끔 돌아보며 승자의 미소를 그려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쇼핑을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세상 일광 기준으로는 나름 고층인 5층 건물들로 가득 찬 거리를 지날 무렵이었다.

“시온!”

한두 걸음 정도 뒤떨어져서 걷고 있던 롤랑드가 돌연 소리치며 시온의 뒷목을 붙잡아 당겼다. 방금까지 시온이 서 있던 자리를 화살 하나가 관통했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 미호가 눈을 크게 떴다.

“저, 저격?!”

누, 누가? 도대체 왜?!

롤랑드는 눈을 날카로이 하고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주시하였다. 시온 알테미스는 룬 마법을 준비하는 것과 동시에 손을 뻗어 땅에 박힌 화살을 뽑아들었다.

“쪽지가 매달려 있어.”

시온 알테미스는 룬 방벽을 펼쳐 자신과 미호, 롤랑드를 보호했다. 화살 깃에 달린 종이 쪽지를 펼쳤다.

“경고…했다?”

써 있는 것은 고작해야 네 글자. 이해할 수 없는 문구에 시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순간 다시 화살 두 대가 날아왔다. 시온 알테미스의 룬 방벽을 우습게 찢어발긴 그것은 시온과 롤라읃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 바닥에 박혔다.

두 몰두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시온과 롤랑드는 급히 쪽지를 펼쳤다. 거의 동시에 합창했다.

“울리면-”

“-죽인다고?!”

경고했다. 울리면 죽인다고.

시온 알테미스는 눈을 크게 떴다. 어느 한 사람을 떠올렸다. 롤랑드는 그런 시온을 끌어안았다.

타앙-!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탄환 한 발이 롤랑드의 뒤통수에 꽂혔다. 워낙에 튼튼한 롤랑드인지라 머리가 수박처럼 쪼개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고통스런 비명을 토했다.

“롤랑드!”

“일단 피해야 한다!”

시온 알테미스는 다시 룬 방벽을 펼쳤다. 총성에 놀란 사람들 사이를 뚫고 내달렸다. 팔에 찬 통신기에 대고 소리쳤다.

“앨리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전설의 사냥꾼이다. 전설의 사냥꾼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었다!

앨리스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 그게…!”

“어서!”

시온과 롤랑드는 미호를 보호하며 은폐엄폐가 가능한 건물 사이로 몸을 숨겼다. 주위를 경계하고 있자니 앨리스가 우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결혼식 끝나고 술잔치가 벌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메데이아님이….”

“메데이아가 뭘 어쨌는데?!”

“처, 첫날밤 치루는 장면을 아주 잠깐 틀어서….”

미호, 시온, 롤랑드 세 사람은 눈을 크게 떴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더니 셋이 함께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첫날밤 치루는 장면이라니!

미호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빈혈이라도 일으키듯 비틀거렸다. 시온 알테미스는 통신기에 다시 소리쳤다.

“자료 있지? 보여줘 봐.”

“그, 그게….”

“어서!”

다그치자 앨리스가 비명을 지르며 영상 하나를 송출하였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얼어 붙었다.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미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수치심에 몸부림쳤다. 롤랑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노인네가 발광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군.”

“노인네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죠!”

미호가 그 와중에도 다시 소리를 질렀다. 시온 알테미스는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말했다.

“아무튼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

정말로 저 영상을 봤다면, 그래서 전설의 사냥꾼의 꼭지가 돌았다면 도망쳐야 했다. 전설의 사냥꾼의 이성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진짜로 생명이 위험했다.

롤랑드도 동의했다. 시온과 뜻을 같이하려 했다. 미호가 그런 두 사람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긴 어딜 가요! 설마 스승님이 진짜로 둘을 해….”

“크악!”

그 순간 다시 뒤통수에 탄환을 얻어맞은 롤랑드가 신음을 토했다. 이번에는 꽤 세게 맞았는지 무려 피가 났다!

“로, 롤랑드?!”

미호가 깜짝 놀라 롤랑드의 상처를 보았다.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미호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롤랑드가 피를 흘릴 정도의 탄환이라니! 스승님은 지금 ‘진지했다’!

롤랑드는 뒤통수를 짓누르며 자세를 낮췄다. 빠르게 말했다.

“포위망이 점점 좁아지고 있소. 더욱이 혼자가 아니오!”

전설의 사냥꾼이 대단한 남자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유령이나 귀신은 아니었다. 첫 사격 위치와 현 위치를 고려해보았을 때 한 패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시온 알테미스가 미호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좋아, 놈팽이. 여기선 네가 희생할 때다. 네가 미끼가 되어 시선을 돌리면 그 사이에 내가 아기 고양이와 함께 도망쳐서 평생토록 잘 먹고 잘 사마!”

“미끼를 바꿔도 상관없을 것 같소만?!”

“그러니 네가 가야지!”

“그게 무슨 논리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건만(?) 두 사람은 또 티격태격했다. 미호가 그런 두 사람을 동시에 불렀다.

“롤랑드! 시온!”

롤랑드와 시온이 모두 미호를 보았다. 미호는 재빨리 롤랑드에게 키스했다. 순백의 빛과 함께 미호클레스로 합체하였고, 연달아 시온에게 키스해 삼위일체를 완성하였다.

미호는 숨을 몰아쉬웠다. 주변을 경계하며 요력을 방출하였다.

“일단 튀어요!”

삼위일체 미호클레스가 날아올랐다.



일단 비공정으로 돌아온 미호는 급히 합체를 해제했다. 알몸이 된 시온은 급히 옷을 챙겨 입으며 소리쳤다.

“앨리스! 메데이아와 연결해 줘!”

“연결되었습니다!”

앨리스가 즉답하자마자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이 떠올랐다. 어설프게 웃고 있는 메데이아의 모습에 미호가 악을 썼다.

“메데이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이 경우가 있지! 어떻게 신혼 첫날밤 영상을!

“미, 미안해. 그냥 술자리 분위기도 띄우고… 좀 골려줄 생각이었는데… 그, 그렇게 변태적인(?) 영상이 뜰 줄은 나도 몰랐다고!”

메데이아가 얼굴을 붉히며 빽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이번엔 미호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었다. 비틀거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앨리스가 급히 그런 미호를 위로했다.

“괜찮아요, 요원님! 이미 시집 가셨잖아요?!”

미호는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스피커를 보았다. 그게 지금 위로냐? 그게 지금 위로냐고!

이 자리의 유일한 남자인 롤랑드가 침착하게 말했다.

“아무튼 이미 벌어진 일이오. 그리고 우린 전설 영감을 막아야만 하오. 메데이아, 아는 것을 모두 말해 주시오.”

일단은 정보가 필요했다. 메데이아는 손부채질로 붉어진 얼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전설이 제자를 불렀어. 거기다 메르헨까지 전설을 돕는 것 같아.”

전설의 사냥꾼과 메르헨. 이 두 사람만으로도 벅차다 못해 죽을 지경이건만 제자까지 불렀다고?

“제자라면?”

시온이 물은 순간이었다. 남색 광선이 비공정 뒷부분을 말 그대로 집어삼켰다.

갑자기 드러난 허공. 미친듯이 부는 바람. 추락하는 비공정!

“꺄아악!”

미호가 비명을 질렀다. 시온 알테미스가 그런 미호를 끌어안았다. 지직 거리며 흐릿해지던 메데이아의 영상이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칠색의 마녀 도로시!”



“추락하고 있어요.”

하늘을 가르는 남색으로 비공정을 반파시킨 도로시는 마총 레바테인을 거두며 말했다. 통신기 너머에서 응답이 돌아왔다.

“좋아, 뒷일은 내게 맡겨라.”

무척이나 즐거운 듯 목소리에 흥이 어려 있었다. 도로시는 추락하는 비공정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메르헨, 살살해요.”

“봐서.”

통신이 끊어졌다.



비공정이 지면에 추락하기 직전 시온 알테미스는 용으로 화해 미호와 롤랑드를 낚아챘다. 간발의 차로 날아올라 비공정과 운명을 함께하는 일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추락하는 동안 비공정 안에서 여기저기를 부딪힌 탓에 다들 몸이 성치는 못했다. 지상에 착지하자마자 롤랑드가 미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크윽…. 레이디 윤, 괜찮소?”

“아욱….”

미호는 허리가 아픈 듯 인상을 구겼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온 알테미스가 그런 미호의 허리를 급히 낚아챘다.

“아기 고양이!”

소리치며 룬 방벽을 펼쳤다. 하늘에서 쏟아진 한 줄기 번개가 룬 방벽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렸다. 롤랑드는 급히 듀렌달을 뽑아들었다. 번개와 함께 나타난 여인을 보았다.

“메르헨?!”

세상 기상곡 최강의 무예가. 소름답게 아름다운 그녀는 차갑게 웃었다.

“오늘은 적이야!”

진각을 밟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진하며 롤랑드에게 붕격을 날렸다. 그리고 롤랑드는 깨달았다. 저건 결코 피할 수 없다. 막아낼 수도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크오오오오오!”

롤랑드는 괴성을 토하며 메르헨에게 오히려 몸을 날렸다. 메르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롤랑드를 말 그대로 하늘 높이 날려버렸다.

하지만 롤랑드는 그냥 날아가지 않았다. 끝내 놓치지 않은 정신줄에 힘입어 허공에서 외쳤다.

“듀렌달!”

명검 듀렌달이 순백의 빛을 뿜었다. 롤랑드를 매단 상태로 허공에서 선회했다. 메르헨을 향해 돌진했다.

그야말로 자폭이나 다름 없는 행동. 하지만 이걸로 시간을 번다!

“시온! 레이디 윤을!”

롤랑드가 비장하게 외쳤다. 시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반전했다. 내달리며 소리쳤다.

“네 희생을 잊으 마!”

“야!”

롤랑드와 메르헨이 충돌했다. 롤랑드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마어마한 흙먼지가 일어 시야를 가렸다.

“롤랑드!”

미호가 애처로운 부름이 멀어져만 갔다.



전설의 사냥꾼의 공격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직접적인 공격이 아닌 그야말로 사냥이었다.

사냥감을 계속 몰아 지치게 만든다. 자잘한 상처를 계속 늘려 결국엔 전투력을 상실케 한다!

“크윽….”

온 몸이 자잘한 상처로 뒤덮인 시온 알테미스가 끝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더 이상은 걸을 수 없었다.

“시온!”

시온과 달리 거의 멀쩡한 미호가 울며 불렀다. 시온 알테미스는 미호의 뺨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난 이제 틀린 것 같다… 아기 고양이….”

말끝을 흐리며 눈까지 감았다. 진짜 이대로 쓸러질 것만 같았다. 미호는 그런 시온의 몸을 붙들었다.

“제발 일어나요! 스승님이 설마 진짜로 둘을 해칠….”

“-거다.”

뒷말을 이은 것은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미호는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전설의 사냥꾼이었다. 피떡이 된 롤랑드를 바닥에 질질 끌며 등장했다.

미호는 눈을 크게 떴다. 미호가 알고 있던 스승님이 아니었다. 자상하고 인자한 멋진 스승님이 아니었다.

“롤랑드!”

총에 맞아도 꿈쩍도 안하는 인간을 도대체 어떻게 팼길래 저렇게 피떡이 된 것일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전설의 사냥꾼은 롤랑드의 뒷목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롤랑드가 시체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전설의 사냥꾼은 미호의 품에서 다 죽어가는 시온을 보았다. 음산한 목소리를 토했다.

“결혼식 날 분명 경고했을 거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짓을 미호에게!”

그 영상을 본 순간 전설의 사냥꾼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느꼈다.

어떻게 키운 제자인데!

얼마나 순하고 착한 아이인데!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하지 않는다!

“좋았어요!”

갑자기 미호가 벼락처럼 외쳤다. 전설의 사냥꾼이 미호를 보았다. 미호는 새빨개진 얼굴로 계속 소리쳤다.

“조, 좋았다고요! 너무 좋아서 울었던 거예요! 화, 환희에 찼달까?! 아무튼 그런 거예요! 너무 좋았으니까 괜찮다고요!”

미호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변명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지르고 보았다.

그런데 효과가 있었던 걸까? 전설의 사냥꾼의 눈이 커졌다.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그, 그런 게 좋다고?!”

“조, 좋아요! 롤랑드랑 시온이니까!”

롤랑드랑 시온이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두 사람이니까!

전설의 사냥꾼은 말 그대로 아연실색했다. 비틀비틀 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딸자식 키워봐야 다 소용없다더니. 도로시가 그런 전설의 사냥꾼을 부축했다. 등을 토닥였다.

“스승님, 이제 다시 멋진 스승님으로 돌아오실 때에요. 돌아가요.”

전설의 사냥꾼은 대답하지 못했다. 충격이 너무 큰 지 그저 멍청한 표정만을 지었다. 도로시가 쓰게 웃었다. 미호 쪽을 돌아보았다.

“미호!”

“네, 네?!”

미호가 당황하며 답했다. 도로시는 입꼬리를 슬쩍 말아올리며 말했다.

“얘기 많이 들었어. 스승님이 널 정말 많이 예뻐하셔서 그런 거니까… 오늘 일 가지고 스승님 미워하기 없기다?”

“무, 물론이죠!”

미호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전설의 사냥꾼을 미워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로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고… 음… 좀 나도 놀랍네. 밝히는 것도 좋지만 적당히 즐기렴.”

마지막에 살짝 윙크까지 해보인 도로시는 전설의 사냥꾼과 함께 돌아섰다. 미호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그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울음을 터트렸다. 수치심에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날 밤. 메데이아가 급히 보내준 비공정 2호기의 스위트 룸.

“아기 고양이♡”

SM 본디지 복장을 차려입은 시온 알테미스가 하얀 채찍을 들어 올리며 음란하게 웃었다. 그 옆에는 웬 검은 가면으로 눈 부분을 가린 롤랑드가 씩 웃으며 근육자랑을 했다.

미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다 뭔 지랄…이죠?”

침대 위에는 그 용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지는 가지각색의 도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온 알테미스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좋았다고 해서 더 강하게 준비해 보았….”

시온 알테미스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롤랑드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가면을 벗어 던지고 재빨리 침대 위에 무릎을 꿇었다. 자진납세의 자세를 취했다.

“아, 아기 고양이?”

시온 알테미스는 말을 더듬었다. 분명 낮에 좋았다고 했었는데?

미호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아홉 개의 꼬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올랐다. 미호의 검고 긴 머리칼 또한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으며 거꾸로 솟았다.

“분노폭발! 정령기도탄!”

순백의 빛이 스위트 룸을 집어삼켰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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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SS 밤이 온다 +10 12.08.19 4,383 63 5쪽
98 SS -후에 +8 12.08.19 4,216 58 11쪽
97 SS #14 절망의 날 +10 12.08.12 4,474 57 9쪽
96 SS #13 취중야담 +4 12.08.12 4,165 32 1쪽
95 SS #12 별의 이름으로 +24 12.08.09 4,090 56 7쪽
94 SS #11 별의 아이들 +13 12.08.02 4,533 62 17쪽
93 SS #10 안녕하세요 +47 12.08.01 4,455 65 14쪽
92 SS #9 사자와 호랑이의 록 & 롤 -2 +12 12.07.30 4,382 59 14쪽
91 SS #9 사자와 호랑이의 록 & 롤 -1 +18 12.07.30 4,345 56 10쪽
90 SS #8 사자와 호랑이의 집지키기 +11 12.07.28 4,688 52 14쪽
89 SS #7 오크 형부와 여우 처제 +7 12.07.26 5,738 35 1쪽
88 SS #6 그리고 그들은 +6 12.07.26 4,237 59 10쪽
87 SS #5 악마를 보았다. +26 12.07.25 4,659 64 17쪽
86 SS #4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18 12.07.25 5,422 70 15쪽
» SS #3 추랑 - 도망 신랑을 쫓다 +21 12.07.24 5,124 72 21쪽
84 SS #2 그 시각 쫑파티 +16 12.07.23 5,304 69 6쪽
83 SS #1 사자와 호랑이와 여우의 첫날 밤 +9 12.07.23 5,746 42 1쪽
82 용어 해설 #9 +14 12.07.22 5,591 42 11쪽
81 연대기 각 시리즈 보는 법 +11 12.07.22 9,872 37 1쪽
80 숨겨진 이야기 #1 +14 12.07.22 5,870 60 3쪽
79 후기 +26 12.07.22 5,551 63 3쪽
78 후주곡 +14 12.07.22 5,615 71 8쪽
77 최종악장 '별의 아이' +15 12.07.22 6,112 79 9쪽
76 SG Chapter 23. #2 +25 12.07.22 6,048 88 14쪽
75 Chapter 23. +22 12.07.21 5,204 85 6쪽
74 용어 해설 #8 +15 12.07.21 6,422 57 7쪽
73 Chapter 22. #3 +34 12.07.21 5,384 95 16쪽
72 Chapter 22. #2 +46 12.07.21 5,141 102 8쪽
71 Chapter 22. +31 12.07.20 5,306 9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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