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이야기 #1
숨겨진 이야기 #1
절망의 안개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지구는 사라졌다. 금성은 절망의 안개 아래 소멸하였다.
절망의 안개에 뒤덮이는 태양을 생 제르몽은 이제는 텅 비어버린- 과거 지구라 불렸던 별이 있던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길잡이 토끼가 그런 생 제르몽의 뒤에 문을 열고 나타났다. 새카만 우주 공간에 문짝만 덜렁 있는 모습이 참으로 기이했다.
“와, 이제 완전히 끝났네. 이쪽 세상 애들이 저걸 절망의 안개라 불렀는데… 진짜 어울리는 이름 아니야?”
절망의 안개.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힘.
천년 백작 사기꾼 모자장수 생 제르몽은 팔짱을 꼈다.
“다름 아닌 ‘밤’의 파편이니까. 저걸 천 년이나 인공적으로 막아낸 이 세상의 인류에게 찬사를 보랠 수밖에.”
무지개 방벽은 실로 대단했다. 생 제르몽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길잡이 토끼 패스파인더가 생 제르몽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저게 마지막이겠지?”
“모르지. 파편이 조금 더 남아있을 지도.”
패스파인더가 얼굴을 찡그렸다.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면 안되는데….”
“넘어가지 않을 거야. 저건 넘어가지 않아. 너도 알잖아?”
“그래, 그렇겠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24개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 증거니까.”
태양은 반 이상 안개에 잡아먹혔다. 길잡이 토끼가 다시 사기꾼 모자장수의 허리를 찔렀다.
“그 새로 나타난 여우는 상관없겠지?”
세상 월광이 급조해낸 별의 아이. 제대로 된 힘을 부여할 여유도 없어서 합체라는 편법을 동원한 존재.
생 제르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회용이니까. 그… 마지막의 미친 합체를 다음에도 또 할 수 있다면 꽤 위협이 되겠지만 그건 어떻게 봐도 딱 한 번뿐인 힘이야. 걱정할 거리가 못 돼.”
“그럼 다행이고.”
길잡이 토끼는 다시 문을 열었다. 이계로 이어지는 문 앞에서 생 제르몽을 불렀다.
“헤이 요 맨, 그만 가자. 어차피 다 끝났는데 뭘 더 보려고.”
“아니, 난 조금 더 있다가 돌아갈게. 먼저 가 봐.”
길잡이 토끼는 별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지만 구태여 더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문을 닫고 문과 함께 사라졌다.
새카만 우주에는 별조차 없었다. 생 제르몽은 꼿꼿이 서 절망의 안개를 보았다. 잡아먹히는 태양을 보았다.
비록 분열세상일 뿐이었지만-
하나의 세상의 종말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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