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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룡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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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완결

취룡
작품등록일 :
2012.08.20 01:36
최근연재일 :
2012.08.20 01:36
연재수 :
1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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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25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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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SS #5 악마를 보았다.

DUMMY

SS #5 악마를 보았다.



신혼여행을 빙자한 미호 일가족(?)의 세상 일광 체류도 거의 막바지에 달했을 때였다. 건너 건너 부탁받은 일 때문에 미호는 홀로 도시에서 벗어난 외딴 숲을 방문하였다.

“이거 정말 미안해요.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어서….”

척 봐도 착하고 순진하게 생긴 갈색 머리칼의 아름다운 여자 엘프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호는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오늘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잘 됐죠. 오히려 저 같은 사람이 맡아도 되는지 걱정인걸요.”

롤랑드는 마왕 롤랑드 손에 이끌려 공처가 모임이라는 이상한 모임에 끌려갔고, 시온 알테미스는 월광에서 급히 들어온 일거리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이쪽 세상에서는 딱히 하는 일도 없는 미호였는지라 집에서 DVD나 볼까 하던 차에 시현 건너 클레어 건너 기타등등을 건너 애를 봐달라는 부탁이 들어온 것이었다.

“정말 고마워요. 오늘 하루만 잘 부탁드릴게요.”

“물론이죠. 제가 애기들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미호가 환하게 웃었다. 빈말이 아니라 미호는 정말로 애기들을 좋아했다. 애기들은 미호를 괴롭히지 않으니까-는 아니고, 그냥 애기들이 천사처럼 웃는 것만 봐도 기분이 좋아진달까?

“거실 탁자 위에 주의하실 점이랑, 이것저것 참고하실 만한 것들을 적은 메모를 남겨뒀어요. 그럼 정말 잘 부탁드릴게요.”

“네, 모임 잘 다녀오세요.”

갈색 머리 엘프- 레이디 류미아드는 그런 미호에게 다시 한 번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집을 나섰다. 듣자하니 가족 모임에 꼭 참석해야 하는데 그쪽에서는 이 집 애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아니지만 남편 역할을 수행중인(?) 사람 역시 급한 용무가 있어서 오늘은 집을 비울 수밖에 없다나.

“사진으로 봤을 땐 진짜진짜 귀여웠는데.”

부탁받을 때 본 애기 사진을 떠올린 미호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미호는 생각했다.

‘아, 진짜 엘프들 집이네.’

벽은 물론이거니와 가구들까지 모두 인공적인 느낌이 없었다. 마치 나무가 스스로 그런 모양으로 자란 느낌이랄까?

헤에-하고 작게 감탄한 미호는 류미아드가 말한 쪽지를 찾았다. 아기가 먹을 분유 타는 법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자잘한 사항들이 깨알 같은 글씨고 적혀 있었다. 미호는 쪽지를 주머니에 챙겨넣은 뒤 아기가 잠들어 있다는 안방으로 향했다.

“밀~리~아~”

작게 부르며 방안에 들어선 미호는 눈동자를 굴렸다. 과연 안방 한가운데 놓인 아기 침대에 천사같이 어여쁜 아이 하나가 잠들어 있었다. 이제 한 세 살이나 되었을까?

“꺄악♡”

미호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 예뻐도 너무 예쁘다. 하얗고 동그란 얼굴은 귀여움의 이데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황금빛 머리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실 것 같았다. 더욱이 저 앙증맞으면서도 환상적인 몸의 비율! 입고 있는 하얀 레이스 달린 잠옷도 너무너무 예쁘고 깜찍했다.

미호는 아기 침대에 바짝 달라붙어 밀리아를 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밀리아의 작고 귀여운 손을 어루만졌다.

“으아앙, 너무 귀여워!”

살결이 부드러워도 너무 부드러웠다. 미호는 그야말로 녹아내릴 것 같은 얼굴로 입을 헤 벌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밀리아가 번쩍하고 눈을 떴다.

‘깨, 깨운 건가?!’

깜짝 놀란 미호가 당황한 얼굴로 밀리아를 보았다. 보통 애기들은 자다가 깨면 막 울던데. 세 살 조금 안된다니까 안 울려나?

미호는 초조함 속에 밀리아의 반응을 기다렸다. 밀리아는 다행히 울지 않았다. 오히려 천사같이 웃었다.

“류미아드는 나갔나 보네?”

미호는 눈을 깜박였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지금 얘가 말한 거 맞나? 이제 겨우 두 살짜리가?

아니 물론 보통 4~6개월쯤에 처음 옹알이를 하고… 보통 1살 전후로 엄마 아빠 등을 말한다고는 들었는데… 발음이 너무 또렷하다. 더욱이 저 억양은 어떻게 보아도 아기의 억양이 아니다.

“미, 밀리아?”

미호가 반신반의하며 되묻자 밀리아는 눈동자를 굴렸다. 미호를 슥 쳐다보더니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네가 미호구나? 오늘 집보러 온다고 했던.”

“…어, 응.”

미호가 얼결에 답하자 밀리아가 눈을 부라렸다.

“존댓말 하지 못해? 내가 이래보여도 세상 일광의 여왕이거든?”

표독스런 목소리도 목소리인데 그 속에 담긴 위엄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저도 모르게 바짝 쫀 미호가 소심하게 말했다.

“세상의 여왕…요?”

“그래, 세상의 여왕. 지금은 비록 이런 모습이지만 말이야.”

씩 웃은 밀리아는 아기 침대에 몸을 기대앉았다. 실로 여유로우면서도 고귀한 자태였다.

“야.”

“…저요?”

“그래, 너.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니? 빨리 가서 분유나 하나 타와 봐. 배고픈데다가 목도 컬컬하니까.”

손까지 휘휘 내젓는 폼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어쩐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한 미호는 우물쭈물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찌되었건 밀리아를 굶길 수는 없으니 분유를 가지러 부엌으로 향했다. 그런데 막 방문을 나설 즈음이었다.

“그런데 야!”

미호가 돌아서자 밀리아가 씩 웃으며 휘파람을 불었다.

“너 제법 귀엽게 생겼다?”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미호는 재빨리 돌아섰다. 마치 도망치듯 종종 걸음으로 부엌으로 향했다.

“이, 이상해!”

이상하다. 이상하다고!

시현에게도, 클레어에게도, 류미아드 씨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저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뭐야 이건 대체!

‘그, 그래도 분유 먹으니까 애기는 맞으려나?’

사실 분유 먹을 나이는 조금 지났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좀 오래 먹는 아이들도 있었으니까.

쪽지에 적힌 대로 분유를 만든 미호는 유아용 젖병을 들고 다시 안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정확히 1분 뒤 젖병에 얼굴을 얻어맞았다.

“야! 이게 뭐야! 온도도 제대로 못 맞춰?! 다시 만들어 와!”

미호의 얼굴에 젖병을 내던진 밀리아가 성깔을 부렸다. 이쯤되자 어지간한 미호도 얼굴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미호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밀리아가 선수를 쳤다.

“뭐야, 그 표정은? 불만 있어? 엉? 나 확 기저귀에다가 설사 지려버린다? 설사 지린 기저귀 치우고 싶어? 엉?!”

참으로 리얼한 협박에 미호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기가 차다 못해 목이 막혀서 가슴을 두드리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밀리아가 던진 젖병을 들고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이상해!”

세상에 저런 아기가 어디 있어!

미호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게 읽어보았다. 쪽지 안 어디에도 밀리아의 지금과 같은 모습에 대해 적혀있지 않았다.

‘뭐야, 뭐냐고! 이 세상 애새끼들은 원래 다 저래?!’

미호는 분노를 담아 분유를 다시 만들었다. 밀리아에게 가져다주었다.

“음, 이번에는 먹을만 하네. 뭐야, 하면 할 수 있는 여자잖아? 다음부턴 처음부터 잘해.”

이번에는 꽤 마음에 들었는지 밀리아가 ‘천사같이 웃으며’ 그리 말했다.

“왜? 칭찬이 마음에 안 드니?”

“아니…요.”

끝에 가서야 살짝 존댓말을 붙이며 미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무슨 놈의 애기가 눈이 저렇게 무섭담.

미호가 눈을 흘기자 밀리아는 피식 웃었다. 마치 ‘아이구, 귀엽네’하는 것 같았다.

밀리아가 앙증맞은 손으로 배를 살짝 두드렸다.

“아무튼 배도 채웠겠다. 이제 몸 좀 풀어야지. 너, 나랑 같이 놀자.”

“…뭐하고요?”

미호가 소심하게 되묻자 밀리아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말 타기 놀이!”



“음음! 좋아! 승마감이 정말 최고인데?”미호의 등 위에 올라탄 밀리아는 만족스럽게 웃었지만, 미호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거의 울기 일보직전인 얼굴로 밀리아를 돌아보았다.

“이게 뭐에요!”

“뭐긴, 말 타기 놀이용 복장이지.”

밀리아는 지금 어린이용 승마복을 입고 있었다. 원체 옷걸이가 좋다보니 뭘 입어도 천사같이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미호도 밀리아의 복장에는 불만이 없었다. 불만이라면 미호 자신이 입고 있는 복장!

양 팔에는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새까만 가죽 장갑을 꼈는데 어째 둘다 손가락 구멍이 없었다. 그렇다고 벙어리 장갑도 아니고, 주먹을 쥐어야만 한달까? 한 벌 세트라며 내어준 부츠는 굽이 어찌나 높은지 이거 신고 걷다가는 발목과 그날로 안녕할 지경이었다. 전신을 꽉 조이는 검은 슈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어딜 봐서 말타기 놀이용 복장이란 말인가!

더욱이 입! 말에는 자고로 재갈을 물려야 한다며 미호의 얼굴에 뭔가를 씌었는데. 입에 얇고 가느다란 검은 막대를 물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얇은 가죽 끈이 이어져 있어는데 아무래도 고삐인 모양이었다.

밀리아는 고삐를 사정없이 당기며 말했다.

“그나저나 세상에 말하는 말이 어디 있어? ‘이히힝!’하고 울지 못해?”

“그런게 어디… 악!”

밀리아가 시끄럽다는 듯 세게 고삐를 당겼다. 목이 뒤로 꺾일 뻔 한 미호는 이히힝은 커녕 으르렁 거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서기라도 했다가는 등 위에 타고 있는 밀리아가 다칠 수도 있었으니까.

“빨리! 빨리!”

“이… 이히힝….”

미호가 울상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그러자 밀리아가 어디서 구했는지 말채찍으로 미호의 엉덩이를 때렸다.

“너 요호라며? 꼬리랑 귀도 꺼내봐! 어서!”

“히잉….”

미호는 울며 겨자 먹기로 귀와 꼬리를 꺼냈다. 탐스러운 아홉 개의 꼬리를 본 밀리아가 감탄을 토했다.

“와, 굉장한데? 하나 갖고 싶을 정도야!”

칭찬은 분명한데 어째 기쁘지가 않다. 밀리아가 다시 미호의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

“아무튼 가자! 이랴! 이랴!"

“이히힝….”

미호가 구슬피 울었다.



“아, 재미있었다.”

밀리아가 만족스런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미호는 입을 삐쭉 내밀고 밀리아가 사정없이 후려쳐대던 엉덩이 쪽을 보았다. 발갛게 자국이 남은 게 무척이나 쓰리고 아팠다.

“왜? 아파?”

“그럼 안 아프겠어요?”

미호가 눈을 흘기자 밀리아가 피식 웃었다.

“알았어, 그럼 내가 치료해 줄게.”

“에… 정말요?”

“그럼! 내가 이래보여도 세상의 여왕이잖니. 치유 마법 정도야 우습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밀리아가 다시 환하게 웃었다. 양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다음은 의사 놀이!”



“풀어 줘요! 풀어 달라고요!”

수술대 위에 팔과 다리가 결박된 미호가 몸부림을 쳤다. 아니 도대체 가정집에 이런 게 왜 있는 거야!

“우후후후… 말 안 듣는 환자네?”

밀리아가 음흉하게 웃으며 미호에게 다가섰다. 보기만 해도 무서운 도구들을 착착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그럼, 진찰을 시작하겠습니다.”

“으아앙!”

미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흑흑흑 더럽혀 졌어. 흐아아앙.”

의사놀이에 이어 하루 종일 온갖 놀이를 밀리아와 함께한 미호가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밀리아가 그런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 좀 울어라. 응? 뚝!”

엉엉 우는 어른과 그 옆에서 그만 울라고 다독이는 아기. 어째 통상의 그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지만 미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서럽게 울었다.

“내가 동네북이지 동네북이야! 이제는 애기까지 날 괴롭혀! 으아앙!”

밀리아는 눈썹을 꺾었다. 서럽게 우는 그 모습을 보니 뭔가 더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뭐든지 정도가 있는 법이라고 했으니까. 지금은 어르고 달래줄 타이밍이었다.

“알았어, 그럼 내가 오늘 고생했다는 뜻으로 네 점을 봐줄게.”

“흑흑 점이요?”

미호가 훌쩍이며 물었다. 밀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점. 내가 세상의 여왕이잖니. 네 수호성이랑 뭐 기타등등 이것저것 다 봐줄게. 그러니 그만 울고 나랑 점 보자. 응?”

밀리아가 환하게 웃으며 미호를 슬슬 구슬렸다. 미호는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낸 뒤 못이긴 척 그런 밀리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밀리아는 종이 위에 복잡한 도형을 그린 뒤 주문을 읊조렸다. 세상의 시스템의 기록을 직접 읽어 내렸다. 밀리아의 몸에서 성스러운 빛이 은은하게 주변을 밝혔고, 도형이 새겨진 종이에서도 밝은 빛이 일었다. 그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 미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여왕이네 뭐네 하는 소리가 아주 빈 말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음, 다 읽었다.”

빛이 사그라들자 밀리아가 후하고 길게 숨을 고르며 말했다.

미호가 기대감에 찬 얼굴로 물었다.

“제 수호성이 뭐에요? 그리고 또 점괘는요?”

“음… 그러니까… 넌 일단 호구의 별 아래에 태어났어.”

밀리아의 설명에 미호는 눈을 깜박였다.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무슨 별이요?”

“호구의 별.”

“호구?”

“호구.”

“그 만만하다는 호구?”

“그 만만한 호구.”

미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장난치지 말아요! 그런 별이 세상에 어디있어요!”

“아냐, 있어. 이 별을 타고 나는 사람이 무척이나 드물어서 그렇지. 류미아드도 호구의 별 아래 태어났는걸? 그리고 너 호구 맞잖아. 안 그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으윽….”

분하지만 엄청난 설득력을 가진 말이었다. 미호는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밀리아가 계속 말했다.

“거기다 진짜… 진짜 특별해. 넌 천년에 한번 난다는 선택받은 호구의 아이야. 이런 상을 타고난 사람은 그… 세상 기상곡의 장화 신은 고양이 이후로 처음 봐. 어떤 의미로는 네가 더 대단해! 넌 선택받은 사람이야!”

“…아, 네.”

미호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선택을 받아도 뭐 그딴 걸 선택을 받아?

밀리아가 미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그렇게 실망하지 마. 이제는 네 수호성 이야기를 해줄게.”

“수호성이라면…?”

“널 보살펴주고, 지켜봐주고, 뭐 아무튼 그런 거 있잖아.”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기대했다. 밀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네 수호성은 취한 용이야.”

“…취한 용이요?”

“응. 그런데 네가 호구의 별의 힘을 너무 강하게 타고나서 취한 용도 널 만날만날 괴롭힐 궁리만 하고 앉았어.”

미호는 침묵했다. 뚱한 얼굴로 밀리아를 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호구의 별 아래 태어났고, 그 중에서도 선택받은 호구고, 제 수호성은 취한 용인데 매일 저 괴롭힐 궁리만 한다고요?”

“응.”

밀라아가 명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호가 도형이 그려진 종이를 잡아 찢었다. 바닥에 드러눕더니 팔 다리를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나 안 해! 안한다고! 으아아아앙!”

미호는 엉엉 울었다. 시온과 롤랑드가 보고 싶었다.



시간은 흘러 밤이되었다. 류미아드는 살갑게 웃으며 미호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아니요, 별 거 아니네요. 별 거 아니죠….”

미호가 다죽어가는 얼굴로 그리 답했다. 류미아드가 그런 미호의 안색을 살피며 다시 물었다.

“오늘 별 일… 없었죠?”

미호는 대답하기 앞서 눈동자를 굴려 밀리아를 보았다. 아기 침대에 누운 밀리아는 까르르 웃으며 가증스럽게 두 살짜리 어린 애기를 연기했다. 류미아드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저 지랄이다. 어찌나 리얼한지 미호 자신이 꿈을 꾼 기분이 다 들 정도였다.

“미호 씨?”

“…없었어요.”

긁어봐야 부스럼이지.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미호는 대충 인사를 마치고 류미아드의 집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류미아드가 다시 그런 미호를 붙잡았다.

“가시기 전에 밀리아랑 인사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그러죠.”

미호는 터벅터벅 걸어 밀리아에게 다가갔다. 아기 침대에 누워 천사같이 웃고 있는 모양새가 아주 퍽이나 보기 좋았다.

미호가 아기 침대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 입술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

“잘 지내요.”

“너도 잘 지내.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다음에 또 보자.”

두 살 밖에 안 처먹은 애새끼가 어디서 복화술까지 배웠는지 까르르 웃으며 그리 말했다. 미호는 길게 한숨을 토했다. 류미아드에게 적당히 인사하고 집을 나섰다.

밤하늘엔 별이 가득했다. 저 어딘가에 호구의 별이 있다는 건가.

어깨를 축 늘어트린 미호는 훌쩍훌쩍이며 걸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아기 고양이!”

“레이디 윤!”

오늘 하루 종일 너무너무 듣고 싶었던 두 사람의 목소리에 미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시온과 롤랑드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시온! 롤랑드!”

미호가 반색을 하며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단번에 두 사람의 품에 안겼다.

“으아앙!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서러웠던지 원. 미호는 시온 알테미스의 가슴에 얼굴을 비볐다. 훌쩍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그런데,

“으윽…. 도, 도저히 못 참겠다.”

“레이디 윤, 역시 당신은 그 얼굴이 제일 사랑스럽소.”

시온 알테미스와 롤랑드가 동시에 미호의 뺨을 꼬집었다. 미호는 울상을 지었다. 마음속으로나마 욕지거리를 토했다.

‘취한 용 이 개새끼야!’

밝은 달 아래, 밤이 깊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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