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조정우 님의 서재입니다.

근초고왕

웹소설 > 작가연재 > 전쟁·밀리터리, 로맨스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6.03.15 06:30
최근연재일 :
2018.01.27 18:2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078
추천수 :
52
글자수 :
88,229

작성
17.10.18 21:00
조회
119
추천
1
글자
10쪽

부여구의 탈출을 돕기 위해 가문을 걸다

DUMMY

해연은 고개를 흔들었다.


부여구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해연은 거문고 연주를 멈춘 후 부여구에게 속삭였다.


"신첩은 해씨 가문의 여식이니, 심려치 마시고, 부디, 대업을 이루소서."


부여구는 괴로운 듯 미간을 찌푸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기약이 없어 해연과 함께 떠날 생각이었는데, 헤어져 살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정녕 가지 아니할 것이오?"


해연은 다시 고개를 저은 후 언성을 높여 말했다.


"신첩도 저하를 따라 고구려로 가겠나이다."


해연은 부여구에게 눈짓했다.


누군가 엿듣는 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동문서답한 것이다.


해연은 부여구가 탈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거절한 것이다.


부여구는 해연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여구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침묵하고 있을 때 해연이 입을 열었다.


"태자 저하께서 떠나기 전에 신첩은 아버님을 뵙고 돌아오겠사옵니다."


해연은 아버지 해구에게 부여구의 탈출을 도와달라 청하려는 것이다.


부여구는 해연의 뜻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시오."


부여구를 바라보는 해연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슬퍼보였다.


해연이 일어나 인사를 올리려고 하자 부여구는 해연의 손을 덥썩 잡았다.


해연은 한시가 급하다는 생각에 손을 빼려고 했지만 부여구는 놓아주지 않았다.


"태자 저하......"


부여구는 해연을 덥썩 껴안았다. 해연은 한숨지으며 머리를 부여구의 가슴에 파묻었다. 긴 침묵이 흘렸다. 해연이 침묵을 깨고 속삭였다.


"태자 저하, 내일 저하를 배웅하러 나갈 터이니, 이만 신첩을 놓아 주시옵소서. 한시가 급하옵니다."


부여구는 마침내 해연을 놓아주었다.


해연은 부여구에게 하직인사를 올린 후 떠났다.


해연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붓을 들어 비단에 서찰을 썼다.


'태자 저하, 부디, 무사히 탈출하셔서 대업을 이루시기 바라옵니다. 신첩은 날마나 태자께서 대업을 이루기를 하늘에 기도하겠사옵니다. 신첩이 태자를 모신지 십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였사오니, 송구하기 짝이 없사옵니다. 아들을 생산하는 것이 사직을 안정시키는 일이니, 백제를 떠나는데로 새 배필을 맞으소서. 신첩은 그간 분에 넘치는 저하의 총애를 받았사오니, 여한이 없을 것이옵니다. 태자께서 배필을 맞이하여 아들을 생산하는 것이 신첩의 간절한 소망이오니, 부디, 신첩의 뜻을 저버리지 마시옵소서.'


해연은 시녀에게 서찰을 주며 속삭였다.


"이 서찰을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태자께 전해드리거라. 태자께서 내일 떠나시니 절대 잊으면 아니된다. 알겠느냐?"


시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해연이 가마를 타고 아버지 해구가 있는 친정집으로 가자, 해구는 딸을 반갑게 맞았다.


"태자비마마, 그렇지 않아도 태자비마마를 찾아뵐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잘 와주셨습니다."


해구는 해연이 부여구를 따라 고구려로 갈까봐 걱정되었던 것이다.


해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소녀, 아버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 왔사옵니다."


"이 아비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할 것이니, 말씀해 보십시오."


"아버님께서도 아시다시피, 내일 태자께서 고구려로 볼모로 가신다면, 돌아오시기 힘드실 것이옵니다. 부디, 태자께서 백제를 탈출하실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해구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아비는 힘이 미약하여 그럴 힘도 없거니와, 설령 그런 힘이 있다 하여도 그리하면 우리 가문은 멸문지화를 면하기 힘드니 불가하옵니다. 가문을 지키지 못하면, 어찌 구천에 계신 조상들을 뵐 수 있겠습니까? 이 아비는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으니, 부디, 이 못난 아비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구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은 해연은 마음을 가다듬은 후 눈물을 글썽이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님, 우리 가문은 선대 어라하의 하해같은 은혜를 입었사온데, 어찌 태자께서 적국에 볼모로 떠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실 수 있사옵니까? 이는 신하의 도리를 저버리는 일이니, 부디, 도와 주시기 간청드리옵니다."


"이 아비는 살 만큼 살았으니, 태자 저하를 위해 목숨을 버려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허나, 이 아비에게는 가문을 지킬 책임이 있으니, 어찌 가문이 멸문지화당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이 못난 아비를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님......"


해구가 자신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자 해연은 망연자실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갑고 매서운 겨울 바람이 백제의 도성인 위례성을 휘몰아쳤다.


부여구는 이른 아침에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어 얼음처럼 차가운 새벽바람을 맞으며 떠날 차비를 하였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러 친정집에 갔던 해연은 떠날 시간이 다가와도 오지 않았다.


부여구는 해연의 친정집에 사람을 보냈지만, 해연의 아버지 해구로부터 해연이 갑자기 몸이 아파 꼼짝도 못하니 떠나기 전에 방문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에 부여구는 백여 명의 호위병들과 함께 해연의 친정집으로 향했다.


호위병들은 모두 부여계가 보낸 병사들로 부여구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자들이었다.


해구는 대문까지 나와 부여구를 정중하게 맞았다.


부여구는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해구에게 물었다.


"태자비께서는 괜찮으신 것입니까?"


"태자 저하께 미리 알려드리지 못하여 심려를 끼쳐 송구하옵니다. 태자비께서는 회복 중이시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해구는 부여구를 해연의 방 앞으로 인도했다.


해연이 출가하기 전까지 쓰던 방이었다. 시종이 해연의 방을 향해 말했다.


"태자비마마, 태자 저하께서 납시셨나이다."


시녀가 방문을 열어 부여구와 해구를 해연의 방안으로 인도했지만, 해연의 방에는 이부자리만 깔려있을 뿐 아무도 없었다.


부여구는 의아한 얼굴로 시녀에게 물었다.


"태자비께서는 어디 계신 것이냐?"


시녀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측간에 가신 듯 하옵니다."


부여구는 문득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태자비가 어디에 있는지 묻듯 해구를 바라보았다.


해구는 부여구에게 앉을 것을 권하였다.


"태자 저하, 자리에 앉으소서."


부여구가 자리에 앉자 해구가 시녀에게 말했다.


"물러 가거라."


시녀가 물러가자 해구는 부여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하, 태자비마마께서는 먼저 떠나셨사옵니다. 소신이 저하의 탈출을 도울 것이니, 소신을 철석처럼 믿어주시기 바라옵니다."


부여구는 해구가 탈출을 돕겠다고 하니 몹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해구 가문에 닥칠 후환이 걱정되어 물었다.


"허면, 장인께서는 어찌 하실 것입니까?"


해구는 죽음을 각오한 듯 의연하게 말했다.


"소신의 나이, 이미 일흔, 소신은 살만큼 살았사오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옵니다."


부여구는 크게 감격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장인께서도 함께 떠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라의 녹을 먹는 소신이 어찌 나라를 버리고 떠날 수 있겠사옵니까? 소신은 어라하의 수족과 같은 해씨 가문 사람이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부여구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허면, 장인의 식솔들이라도 저와 함께 떠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해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구려에 볼모로 가시는 태자 저하의 탈출을 돕는 일은 사사로운 죄에 불과하오나, 식솔들이 나라를 등지고 떠나는 것은 반역죄로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옵니다. 소신의 식솔들은 처벌을 받아도 죽음은 면할 것이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부여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부디, 모두 무사하기 바랍니다. 장인과 장인의 식솔들이 해침을 당한다면, 제가 무슨 면목으로 태자비를 대할 수 있겠습니까?"


해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든 것이 태자비마마의 뜻에 따라 결정한 일이오니, 소신의 목이 떨어진다 하여도 자책하지 마시기 바라옵니다."


해구는 처음에는 부여구의 탈출을 도와달라는 해연의 간곡한 청을 거절했으나, 해연이 눈물을 흘리며 거듭 간청하자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돌린 것이다.


해구는 새벽에 해연을 먼저 위례성 밖으로 탈출시킨 후에 부여구에게 탈출 계획을 알리기 위해 집으로 불러 들인 것이다.


부여구는 가문을 걸고 자신을 탈출시키려는 해연의 노고에 감격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태자비, 그대가 가문을 걸고 나를 탈출시켜주려는 이 모든 노고에 감격할 따름이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근초고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허허실실의 계책 18.01.27 118 2 9쪽
20 부여군의 참모가 된 부여구 18.01.16 78 1 9쪽
19 부여계의 국혼 제의를 거절한 여현 18.01.12 126 1 9쪽
18 여현왕의 결심 18.01.10 101 1 9쪽
17 위례궁의 별궁에 연금된 해연 18.01.07 92 1 9쪽
16 여혜공주 17.11.01 127 1 9쪽
15 탈출에 성공하다 17.10.25 116 1 9쪽
» 부여구의 탈출을 돕기 위해 가문을 걸다 17.10.18 120 1 10쪽
13 바둑으로 탈출의 뜻을 밝히다 17.10.15 138 1 9쪽
12 음모 17.10.09 121 0 9쪽
11 부여구를 제거할 음모를 꾸민 부여계 17.10.07 152 1 9쪽
10 계략으로 치양성을 탈환하다 17.10.05 219 1 9쪽
9 유인 작전으로 치양성 성주 고원을 사로잡은 부여구 17.10.03 158 1 10쪽
8 조건부로 혼인을 허락한 진왕후 17.10.01 207 1 9쪽
7 대마국으로 간 근구수 태자와 아이꼬 공주 17.09.30 202 1 9쪽
6 아이꼬 공주의 진심에 마음이 움직인 근구수 태자 16.03.25 267 4 10쪽
5 아이꼬 공주에게 아랑을 찾아달라 부탁한 근구수 태자 +2 16.03.19 320 5 10쪽
4 근구수 태자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이꼬 공주 16.03.18 341 6 10쪽
3 아랑을 찾기 위해 야마토국으로 떠난 근구수 태자 +1 16.03.17 532 9 13쪽
2 왜구에 끌려간 아랑 16.03.16 494 6 9쪽
1 아랑과 진우의 천생연분의 인연 +2 16.03.15 1,050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