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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님의 서재입니다.

근초고왕

웹소설 > 작가연재 > 전쟁·밀리터리, 로맨스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6.03.15 06:30
최근연재일 :
2018.01.27 18:2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074
추천수 :
52
글자수 :
88,229

작성
16.03.15 08:00
조회
1,048
추천
7
글자
12쪽

아랑과 진우의 천생연분의 인연

DUMMY

어두운 밤, 짙은 안개가 자욱한 바다에 떠있는 작은 나룻배에서 청년 하나가 그물로 물고기를 잡고 있었다.


스무 살 쯤 되어보이는 청년은 능숙한 동작으로 그물을 걷어 올렸다.


그물에는 수십마리의 물고기가 파닥파닥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밤늦게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아랑, 내 지금 곧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청년의 이름은 진우로 아랑은 진우의 아내였다.


진우의 아내 아랑은 절세의 미녀로 고을 뿐만 아니라 백제 전역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진우는 생선을 잡아 시장에 파는 평범한 어부였는데, 아랑이 진우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천생연분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열여섯 살의 꽃다운 나이의 아랑은 시녀 월화와 함께 오랜만에 시장을 구경나왔는데, 이때 아랑을 본 진우는 숨이 멎는 듯 하였다.


칠흑처럼 검고 명주실처럼 윤기나는 머리,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보석처럼 반짝이는 커다란 두눈, 조각한 듯 오똑한 코, 고혹적인 붉은 입술.


흰 비단옷을 입은 아랑은 천상에서 하강한 선녀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진우의 생선은 잡은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도 파닥파닥 거렸다.


아랑은 진우의 생선을 보자 생긋 미소지으며 월화에게 말했다.


"아버님께서 싱싱한 생선을 좋아하시니 한마리 사자꾸나."


"네, 주인 아씨."


주인 아씨의 명을 받은 월화가 진우에게 물었다.


"생선 한마리에 얼마요?"


"한푼이요."


아랑에게 마음을 빼앗긴 진우는 헐값에 생선을 팔 생각이었다.


이를 눈치챈 아랑이 진우에게 따졌다.


"이렇게 싱싱한 생선이 한푼일리가 없소. 나는 그대와 일점의 면식조차 없거늘, 어찌하여 호의를 베푸려 하시오? 연유없는 호의는 받을 수 없으니, 제값을 말해주시오."


진우는 넋나간 표정으로 아랑을 쳐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냥입니다."


순간 아랑은 넋나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우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랑은 진우의 시선을 의식하여 고개를 돌리며 월화에게 말했다.


"생선값을 지불하거라."


월화는 진우에게 한냥을 지불했다. 아랑은 볼 일이 끝나자 지체없이 떠났다.


진우는 아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낭자,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소. 나같은 필부가 어찌 감히 그대같은 절세의 미녀를 연모할 자격이라도 있겠소만, 가끔이라도 그대를 보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오.'


진우가 넋나간 얼굴로 아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자 진우의 옆에서 같이 생선을 팔고 있던 동료 사내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진우, 자네, 아랑 낭자의 미모에 반한 모양이로군. 아랑 낭자는 백제 전역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절세의 미녀인데, 우리같은 필부가 감히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진우는 이때서야 천상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아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아랑 낭자, 부디, 가끔이라도 그대를 볼 수 있도록 이곳에 와주시면 이 필부 진우는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오.'


진우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진우의 예사롭지 않은 시선을 깨달은 아랑은 이후로 두 번 다시 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랑의 미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진우는 사무칠 정도로 아랑을 그리워하다가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진우는 날이 갈수록 상사병이 심해져 곧 죽을 사람처럼 안색이 창백하고 초췌해졌다.


월화가 시장에 갔다가 진우의 동료 사내에게 진우의 이야기를 듣고 아랑에게 전하니 아랑은 크게 탄식하였다.


"귀한 생명이 나로 인하여 죽는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이냐? 진우라는 사내에게 나의 서찰을 전해주거라."


진우가 걱정된 아랑은 곧바로 붓을 들어 서찰을 써내려갔다.


'우연히 그대를 만난 것이 이와같은 화를 자초할지 꿈에도 몰랐소. 부모님께서 주신 생명은 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것이거늘, 어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스스로를 위중하게 만든 것이오? 부디 마음을 다스려 하루빨리 쾌차하기 바라오.'


진우는 아랑의 서찰을 보자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진우는 눈물을 글썽이며 월화에게 말했다.


"아랑 낭자께서 이 필부를 생각해 주시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라 전해주시오."


월화에게 진우의 말을 전해 들은 아랑은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정녕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단 말인가?"


진우의 상사병 증세는 점점 심해져 병석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진우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여읜데다 형제나 누이들도 일찍 세상을 떠나 가족이 없는데, 몸이 병들어 생선을 잡지 못하니 끼니도 제대로 때우지 못한 채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진우를 진료한 의원은 사람들에게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내, 진우의 몰골을 보니 머지않아 죽을 듯 싶소. 진우의 친척들에게 관이나 준비하라 하시오."


의원의 말을 전해들은 아랑은 진우가 몹시 걱정되어 월화에게 말했다.


"생명은 귀한 것이니, 구해야 되지 않겠느냐? 내, 진우를 만나러 갈 테니, 채비하거라."


"아씨,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아씨께서 낯선 사내의 집에 갈 수 있겠사옵니까? 사정이 참으로 딱하나, 아씨께서 나실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진우가 죽는다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밤에 갈 것이니, 채비하거라."


아랑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늦은 밤에 월화와 함께 난모를 쓰고 진우의 집으로 갔다.


진우의 집은 대문이 열려있었다.


집안으로 들어간 아랑은 월화에게 말했다.


"내가 왔다 고하거라."


진우의 집은 방 한칸만 있는 초라한 초가집이었다.


월화는 방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인기척을 넣었다.


"계시오?"


아무 반응도 없었다. 월화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인기척을 넣었다.


"게 아무도 안계시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자 월화가 아랑에게 말했다.


"인기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고 있거나, 밖에 나간 듯 하옵니다."


진우가 걱정된 아랑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문을 열어 보거라."


월화는 난처해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소녀가 어찌 외간 사내의 방문을......"


아랑은 월화를 다그쳤다.


"어서 시키는데로 하거라."


월화는 주인 아씨의 분부에 마지 못해 한손으로 방문을 살짝 밀었다.


아랑은 외간 사내의 방을 들여다보는 것이 쑥스러워 방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나서 물었다.


"어찌된 것인지 살펴보거라."


월화가 방을 들여다보니 진우는 자리에 누워 마치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월화는 내키지 않았지만 주인 아씨의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진우의 몰골은 곧 죽을 사람처럼 몹시 초췌했다.


진우의 초췌한 몰골을 본 월화는 시체를 본 듯 깜짝 놀라 외마디의 비명을 질렀다.


"어머나!"


월화의 비명 소리에 아랑은 진우가 죽은 줄 알고 몹시 놀라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방에 들어갔다.


진우의 초췌한 몰골을 본 아랑은 눈물을 흘리며 탄식하였다.


"아, 어찌 이 지경이 되도록 마음 하나를 다스리지 못하는 것일까?"


꿈에도 그리던 아랑의 목소리를 듣자 진우는 번쩍 눈을 떴다.


진우는 꿈을 꾸는 듯 하였다.


"아랑 낭자? 낭자가 어찌......"


아랑은 눈물을 글썽이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가 걱정되어 왔소. 그대가 죽으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터이니, 부디, 일어나시기 바라오."


진우는 아랑의 따뜻한 말에 크게 감격하여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랑은 자신으로 인하여 상사병이 나서 죽음의 문턱에 있는 진우에게 깊은 연민을 느꼈다.


아랑은 여인의 몸으로 외간 사내의 집에 머무를 수 없어 이내 집으로 돌아왔다.


아랑의 눈앞에 진우의 초췌한 몰골이 아른거렸다.


'불쌍한 사람,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가족도 없이 외롭게 홀로 사는데,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랑은 날마다 하느님께 진우가 쾌차하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몰래 고용하여 진우를 돌봐주게 하였다.


진우는 아랑의 따뜻한 마음씨에 기운이 나서 상사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진우는 건강한 체질이라 얼마되지 않아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시장에 나와 생선을 팔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아랑은 월화와 함께 진우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으로 갔다.


건강한 혈색을 되찾은 진우는 아랑을 보자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랑 낭자, 어서 오시오. 내, 아랑 낭자에게 신세진 것이 많으니 값을 받지 않겠소."


아랑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값을 받지 않으면,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오."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랑 낭자의 뜻대로 하겠소."


이때부터 아랑은 진우가 생선을 파는 시장에 자주 발걸음하였다.


아랑은 진우를 만나면 기분이 유쾌해졌다.


아랑은 어느새 진우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하여 아랑과 진우는 서로를 연모하는 사이가 되어 백년가약을 약속하였다.


아랑의 아버지는 고을의 유력자로 딸이 혼기가 차자 우보(우의정에 해당되는 벼슬)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아랑은 아버지에게 진우와의 관계를 설명했지만, 아랑의 아버지는 몹시 노하여 아랑을 방에 가두었다.


절망에 빠진 진우는 제단을 쌓고 주야로 애통하게 울면서 하느님께 기도하였다.


끼니를 거르며 주야로 하늘에 기도하니 안색이 몹시 초췌해졌다.


때마침 흰 비단옷을 입은 중년의 선비가 일행과 지나가다 우연히 진우의 애절한 기도소리를 듣고 진우에게 사정을 물었다.


진우에게 자세한 사정을 듣자 선비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자네와 아랑 낭자와의 혼인을 주선해 주겠네."


진우는 선비의 말에 몹시 기뻤지만, 아랑의 혼처가 우보의 아들이라 들어 한편으로는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인이 듣기로, 아랑 낭자의 부친께서 우보의 아드님을 혼처로 정했다 들었사온데, 우보께서는 왕 다음으로 높으신 분이라 나리께서 다치실까 걱정되옵니다."


선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사내 대장부가 어찌 그리 걱정이 많은가? 자네는 집으로 돌아가 좋은 소식이나 기다리고 있게나."


선비는 일행들을 거느리고 아랑의 집으로 갔다.


"뉘시오?"


하인들이 선비의 신분을 묻자 선비의 일행 중 한명이 품안에서 옥패(옥으로 만든 신분증)를 꺼내 보여주었다.


하인들은 옥패를 보자 하나같이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해지며 무릎을 꿇었다.


"어라하(백제왕의 호칭)를 몰라뵌 소인들의 죄,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선비는 다름 아닌 근초고왕이었다.


작가의말

조정우 프로필 


출간 장편소설 : 김춘추, 장옥정, 기황후, 이순신 불멸의 신화, 소설 징비록


연재 중인 웹소설 : 왕총아, 천하제일 여검객 유지, 이순신 연대기(스페인 정벌기), 삼국지, 선덕여왕, 여자의 선택, 윌리엄과 캐서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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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랑을 찾기 위해 야마토국으로 떠난 근구수 태자 +1 16.03.17 532 9 13쪽
2 왜구에 끌려간 아랑 16.03.16 494 6 9쪽
» 아랑과 진우의 천생연분의 인연 +2 16.03.15 1,049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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