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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작가님의 서재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로미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6 19:01
최근연재일 :
2022.07.10 10:26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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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
글자수 :
25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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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09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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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최후의 수단(3)

DUMMY

흩날리던 빗속을 걷던 레온의 머릿속은 기억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가끔씩 꿈으로 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 행복이 넘쳐흐르던 시절에 자신과 어머니···. 비록 꿈속이었으나 현실처럼 느껴졌고 실제로 만져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끝은 돌아갈 수 없다는 처절한 깨달음이었고 핏빛으로 물든 배경 속에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자는 페르낭이었다.


왜 하필 페르낭인지···. 레온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페르낭 사이에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그 해답을 찾으려한다.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없다.


바로 내일, 페르낭의 사형 집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레온은 망토의 후드를 걷고 고개를 들어 눈 앞의 건물을 바라봤다. 드높은 담장이 주변을 위압적으로 둘러싼 건물, 리스본의 치안본부 청사였다.


한때 최상층에 위치해 치안대를 호령하던 페르낭이 이제는 건물 가장 깊숙한 지하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것이다.


치안대는 완전히 해산되었다. 각각의 치안대원은 그 간의 행적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받은 뒤였고, 아직 새로운 치안대가 발족하기 전이라 리스본의 치안본부와 질서유지는 에스테반의 해병대가 여전히 맡고 있었다.


레온은 건물의 경비를 맡은 대원에게 신원을 알렸다. 이제 레온 메이슨이라고 하면 리스본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런 그가 사형을 눈앞에 둔 페르낭 고메스의 면회를 요청한 것이다.


“페르낭에 대한 면회는 절대 금지하라는 제독의 명이 있었습니다.”


젊은 해병대원은 곤란한 듯 말했다. 그러자 뒤에서 대화를 듣던 다른 대원이 끼어들었고 레온을 안내했다.


“레온 메이슨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죠. 오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는 해병대의 책임자 중의 한 명인 듯 했다. 그의 안내를 받으니 대부분의 대원들이 경례를 하며 자리를 비켜주었고, 이내 레온은 지하감옥의 계단을 내려서고 있었다.


한걸음씩 내려갈수록 습기와 곰팡내가 코를 찔렀고 축축한 어둠은 레온을 집어 삼킬 듯 했다. 계단의 끝에 도착한 두 사람. 해병대원은 철컥하며 중간 철창의 자물쇠를 열고 있었다.


한차례 낮은 한숨을 내쉰 레온이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고 싶네요.”


“네? 아,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이 길을 쭉 따라가시면 제일 안쪽 칸입니다. 저는 위쪽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해병대원은 가벼운 목례 후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자 레온이 몸을 돌렸고, 동굴과 같은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 여름의 끝을 붙들고 있는 계절이었지만 지하 감옥의 통로는 서늘했다. 그럴 리 없건만 어디에선가 바람이 불어오는 듯 했고, 레온은 어느새 페르낭이 수감된 통로의 가장 깊숙한 철창 앞에 도착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그. 풀어헤쳐진 장발의 머리가 어깨까지 아무렇게나 드리워있었고···.


“왔는가?”


금속 철창 너머로 고개도 들지 않은 페르낭이 말했다.


“마치 제가 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네요?”


“흥.”


장발이 드리워진 페르낭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그의 눈에 담긴 빛은 여전히 생생했다.


“이제서야 깨달은건가?”


깨달았냐고? 무엇을? 의미를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랬기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대답 없는 레온을 응시하던 페르낭이 다시 말했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군. 헌데 여기는 왜 온것이냐?”

모든 것을 잃은 채 지하감옥에 갇힌 처지였으나 페르낭의 기백은 여전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레온이 입을 열었고.


“확인할 게 있습니다.”

“무엇을?”


“저의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신 겁니까?”


레온의 질문에 페르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묻는거지?”


레온은 대답하기에 앞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주 어릴 적이라는 것 외에는···. 아니 기억의 왜곡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그 장면이 기억났다.


아직은 어렸던 레온. 외출을 끝내고 더러워진 신발은 아랑곳없이 신이 나서 어머니의 방문을 열어젖히려던 때···. 어린 레온은 멈칫했다.


어머니가 사용하는 개인 서재에서 낯선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버지는 아니었다. 문 앞에서 얼어붙은 레온은 방에서 흘러나오는 심상치않은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리안!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남자는 무척이나 화가 난 듯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고 한참동안이나 그의 비난은 계속됐다. 작게 열린 문틈으로 방안을 살펴본 레온.


비록 아무런 말은 없었지만 꽂꽂한 자세로 앉아있는 어머니. 그녀는 흐트러짐 없이, 당당한 자세로 남자에게 맞섰다. 한참이나 분노를 터트리던 남자는 이내 성큼성큼 걸었고 레온이 서 있는 방문을 잡아채며 휙하니 열었다.


의도치않은 갑작스런 마주침···.


커다란 키의 남자와 마주서게 된 레온은 미세하게 몸을 떨었고, 자그마한 레온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동자는 그보다 더 떨렸다.


그 때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들어오렴, 레온.”


고개를 거둔 남자가 그대로 집 밖으로 빠져나갔고 레온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방 안에 들어서자 눈가가 촉촉이 젖은 어머니가 두 손을 뻗고 있었다.


그녀의 품에 안긴 레온, 아들의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고···.

레온은 부쩍 불러있는 어머니의 배가 느껴졌다.


그리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나직한 목소리.


“절대 포기하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뒤 그때 방을 나선 남자가 페르낭일 것이라고 짐작했던 레온.


과거의 기억을 헤매던 레온이 철창 너머에 초라한 몰골로 앉아있는 페르낭을 보며 대답했다.


“왜인지···. 답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생각하니깐요.”


벽에서 등을 뗀 페르낭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고 좁은 공간에서 몇 걸음 움직여 철장을 붙잡았다.


그리고 앞에선 레온을 보며 입을 열었다.


“비밀을 감당할 수 있겠나?”


레온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페르낭은 기나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와 네 어머니인 리안 고메스는 태초의 인류이자 선택받은 가문의 후손이지···.”


태초의 인류? 선택받은 가문?


과거에 책에선가 혹은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어봤던 단어였으나 허무맹랑한 전설에 불과하다고 웃어넘겼던 일.


헌데 그 이야기가 페르낭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그 선택받은 가문의 후손이며, 레온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


연이은 페르낭의 말은 믿기 어려울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태초에 하늘과 땅이 열리고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도 전에 최초의 대륙에 정착한 인류. 그들은 절대자의 의지에 따라 전 세계로 흘러갔고 인간들의 역사를 일으켰다 한다.


비범한 두뇌와 초인적인 능력으로 하늘과 땅을 지배했으며 이제 막 걸음마를 시도하는 인간들에게 하나의 지평을 열어줬다는 그들.


그렇게 곳곳에서 문명이 발상했고 또 역사는 흘러갔으며 평화는 지속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부와 명예를 독식하던 태초의 인류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은 커졌다. 인간들은 의심했고 또 증명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믿고 떠받드는 그들이 과연 자격을 갖춘 것인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을 가진 것인지를···.


곳곳에서 반란의 기운이 감돌았으나 태초의 인류는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을 보여줄 수 없었다. 순혈주의를 지향하던 그들도 시간이 지나 후대에 갈수록 인간들과 피가 섞여갔고 후손들은 더 이상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태초의 인류는 지위와 권세를 잃어갔고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 없던 능력의 그들은 역사 속에서 잊혀져갔다.


가끔씩 특별한 능력을 유지한 이들이 다시 나타나 인간들의 위에 서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집단의 힘에 눌려 마녀사냥 당하기 일쑤였다.


한참이나 이어진 페르낭의 말에 레온이 주위를 환기시키듯 되물었다.


“좋아요, 태초의 인류이든 선택받은 자들이든 믿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쳐요. 근데 그게 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과 무슨 상관이죠?”


페르낭은 잡고 있던 철창을 놓고 몸을 돌려 기대며 말했다.


“네 어머니인 리안 고메스는 내 여동생이야. 좀 전에 말한대로 우린 태초 인류의 후손이며 절대자의 의지를 받드는 자들이지. 그렇기에 각자 특별한 능력을 지녔으며 리안의 피가 섞인 너와 네 동생도 마찬가지지.”


페르낭의 말에 그간의 의문이 조금씩 해답을 찾아갔다. 페르낭이 자신의 삼촌이었으며, 자신과 엠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은 역시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이다. 헌데 어머니는 그 능력에도 왜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했는지···.


“나와 리안은 이 곳 리스본에 상륙할 때까지 최초의 대륙을 벗어난 적이 없었어. 다시 말해 우린 다른 인간의 피가 섞이지 않은 최초의 인류 그대로란 말이야. 그러니 우리의 능력은 고작 마녀로 치부되던 자들과 차원이 달라. 수명 또한 인간의 일생과는 다른 수준이고···.”


“헌데 어째서?”


레온이 궁금한 점을 재촉했으나 페르낭은 아랑곳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린 부패할대로 부패한 인간의 왕국을 지우고 인간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위해 최초의 대륙을 떠났어. 한번 떠나면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우리의 사명대로 길을 떠난 것이지. 헌데 배를 타고 폭풍의 언덕이라 불리는 협곡을 지날 때 거센 풍랑에 배가 뒤집혀 버렸지. 나와 리안은 부숴진 배의 파편을 붙잡고 며칠 동안이나 대양을 표류했어. 그러다 결국 네 아버지가 이끌던 함대를 만났고 이 곳 리스본으로 들어온거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레온도 지금은 진지한 자세로 페르낭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 일로 페르낭과 어머니는 리스본에 정착했으며, 페르낭은 아버지의 수하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또한 아버지의 적극적인 정성과 구애로 어머니는 결혼을 승낙했고 레온을 낳게 되었다는 말도 이어졌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큰 약점이 있어. 순혈주의를 극도로 지향한 결과일까 우린 더 이상 2세를 생산할 수 없었지. 행여 우리 종족의 여자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해. 내가 네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을 그토록 반대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지. 천운으로 무사히 너를 낳기는 했으나 리안의 기력은 몹시 상했고 더 이상 능력을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지. 헌데 네 어머니는 또 임신을 했고 그 아이마저 낳는다 하더군.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난 거기에 무척이나 화를 냈어. 하지만 끝내 내 말을 무시한 리안이 네 동생인 엠마를 낳았고 결국 일은 그렇게 되었지.”


최초의 대륙? 태초의 인류? 비범한 능력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던 어머니의 죽음까지···.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으나 페르낭의 눈을 바라본 레온은 그의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지 못했던 과거는 그렇게 흘러왔고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밖에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긴 레온을 향해 페르낭이 말했다.


“한 순간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마 믿기 어려울거야. 머릿속에는 정리되지 않은 의문들이 가득할테고···.”


어느새 레온 쪽으로 몸을 돌린 페르낭이 말을 이었다.


“내 손을 잡아보게. 그럼 알 수 있을테니···.”


레온의 눈앞에 창살 너머로 뻗어온 페르낭의 손이 보였다. 잠시 망설이던 레온은 이내 손을 뻗어 그 손을 맞잡았고···.


그와 동시에 눈부시게 밝은 빛이 레온의 시야를 휘감고 돌았고 그의 의식과 기억은 태초의 어딘가를 헤매는듯 한 곳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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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모험의 소용돌이(2) 22.06.11 194 4 11쪽
29 모험의 소용돌이(1) 22.06.10 20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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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2) +1 22.06.08 238 6 11쪽
26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1) 22.06.07 223 6 12쪽
25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3) 22.06.06 246 7 12쪽
24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2) 22.06.05 250 8 11쪽
23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1) 22.06.04 253 7 11쪽
22 마린의 왕자, 섀넌 무어(3) 22.06.02 254 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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