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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작가님의 서재입니다.

대항해시대의 소드마스터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로미작가
작품등록일 :
2022.05.16 19:01
최근연재일 :
2022.07.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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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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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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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2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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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지중해의 거상, 레온 메이슨(2)

DUMMY

늦은 밤.

등잔불만이 아른하게 떨리는

자신의 방 안 테이블에 홀로 앉은 레온.


그는 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바롯싸가 은밀히,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보내온 상자. 그 속에는 라고스에서 생산된 육두구가 가득 담겨 있었다.


- 이 봐. 레온 메이슨. 너무 원망하지 말라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원래 내가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거든. 아무튼 사과의 의미로 보내는 것이니 잘 받아두게. 자네라면 위기를 잘 헤쳐내겠지.


왜인지 편지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발바롯싸, 그의 웃음소리까지도.


레온은 상자에 담긴 육두구 몇 알을 쥐고 코에 가져다 댔다.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향, 그리고 코 끝을 스치는 자극적인 매운 향이 느껴졌다.


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육두구를 코에서 떼기 직전 느껴진 역한 냄새. 그 냄새는 비위가 강한 레온에게도 한차례 헛구역질을 일으켰다.


과일 옆에 있던 과도를 이용해 육두구를 갈아낸 레온. 가루가 된 육두구를 손가락에 찍어 혀에 갖다대자 무언가 다른 기운이 감돌았다.


눈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라고스의 육두구.

하지만 그 맛과 향에서는 같지 않았다.


확신에 차서 일어서는 레온.

어느새 창밖의 여명은 떠오르고 있었다.



**



“이봐, 이봐, 조심하라고. 네 목숨보다 더 귀한 거라고.”


이른 아침의 베네치아 항구는 여느 때보다 많은 선원과 상인들이 몰려 북적대고 있었다.


교역의 날 행사가 끝나기 5일 전인 바로 이날.

베네치아의 교역상들이 그토록 목이 빠져라 기다렸던 육두구가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라구사에서 온 포르투칼 함선 두 척. 그 함선에 나눠 실린 육두구 상자.


다 합해서 모두 300상자. 레온이 가진 수량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고 그 육두구를 실고 온 함선은 포르투칼의 페르낭 고메스 소속, 함장은 한때 리스본의 치안대장이었던 스캇 데 페레로였다.


다른 때라면 적어도 2만닢은 줘야 한 상자를 살 수 있던 육두구를 3천닢에 살 수 있다니···.


상인들로선 눈이 번쩍 뜨이는 횡재인 것이다. 이미 계약도 마치고 대부분의 물량이 납품될 곳이 정해진 육두구.


한 상자당 금화 5천닢의 선수금.

수많은 귀족들에게 들어갈 육두구의 선수금은 이미 다 받은 상태였다. 헌데 선수금으로 충당하고도 2천닢이 남을 만큼 육두구 가격이 내린 것이다.


이제 라고스의 육두구를 계약한 곳으로 정확히 납품하고 받는 잔금은 고스란히 자신들의 이득인 셈이었다.


표정관리를 하려해도 배시시 흘러나오는 미소가 모든 상인들의 얼굴에 떠 있었다.



**


교역의 날 행사가 파하기 사흘 전.

레온은 여전히 천하태평이었다.


그의 방에 들어선 카렌이 말했다.


“레온, 페르낭 함대가 실고 온 육두구 300상자가 모두 다 팔렸어. 이제 필요한 물량이 전부 충당됐나봐. 아무도 우리 육두구엔 관심이 없어.”


“우리가 처음에 내건 가격이 얼마였지? 금화 2만닢?”


“응, 맞아. 갑자기 그건 왜?”


“육두구 300상자가 단 이틀만에 모두 소진되었다? 그렇게 필요했는데 지금껏 아무도 사지 않았다는 건 상인들간에 일종의 담합이 있었다는 거야. 라고스에서 육두구가 생산된 시기도, 이곳 베네치아의 모든 상인들이 그 소식을 알아챈 것도···.”


“모종의 계략이라는 거야? 우리를 겨냥해서? 누가? 왜?”


“누구인지, 왜인지는 몰라. 우리를 겨냥한 것인지도 확실치 않아. 하지만 일종의 연대가 있긴 했어.”


“그래서? 연대가 있었다한들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야? 우리한테 남은 육두구 300상자는 어떻게 처분해? 다른 곳에 가도 마찬가지일 건데···.”


“이제 다 됐어. 기다리던 상황이···. 그 때 모두 알 수 있겠지. 자신들의 담합이 무엇으로 돌아오게 될지···.”


그 때 그의 방으로 랄프가 부리나케 들어왔다.


“레온, 지금 교역소 여기저기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어. 뭔가 상황이 요상해. 한번 나가서 확인해봐야겠는데?”


랄프의 말에 레온과 카렌,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의문을 품은 카렌의 시선과

확신에 찬 레온의 시선이···.



**



우당탕탕.


“아니, 이런 걸 육두구라고 갖다준거야? 지금 나랑 장난쳐! 우리 도련님께서 이걸 잡수시고 지금 앓아누우셨다고! 구토를 어찌나 하시던지···”


“아니, 그게 무슨 말이신지?”


“됐고, 이 쓰레기는 다 가져가고. 제대 로된 육두구를 갖고오던지, 아님 배상금 준비해두라고!”


레온과 랄프, 카렌이 당도한 교역소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요없어. 납품한 것들 당장 되가져가!”


“뭐야, 육두구 같지도 않은 걸 가지고. 뭐 사람 죽일 일 있어?”


라고스에서 생산된 육두구가 납품된 지 이틀째.

이를 먹은 사람 대부분이 현기증을 호소하고 구토 증세를 보인 것이다.


“레온, 저거 봐. 아까부터 계속 저 난리야.”


랄프의 말에 카렌이 동조하고 나섰다.


“라고스의 육두구에 확실히 문제가 있나본데? 그 말인 즉슨, 우리한테는 희망적인 일이잖아.”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소동을 바라보던 레온이 나작하게 말했다.


“그래. 난 라고스의 육두구를 따로 확인한 적이 있어. 모양이나 향은 기존의 육두구와 거의 흡사했지만 뒷맛이 좋지 않았어.”


“응? 그리고?”


“기본적으로 육두구를 많이 섭취하게 되면 현기증과 구토가 유발되기도 해. 심하면 환각증세가 일기도 하고. 헌데 이번에 라고스에서 생산된 육두구는 그 증상이 심했어. 조금 맛만 보았을 뿐인데 그 느낌이 확연히 느껴졌지.”


흘러가는 상황을 깨달은 카렌이 소리쳤다.


“아니, 레온. 그런 걸 알았으면 우리한테 미리 말했어야 할 거 아니야!”


“뭐야, 레온. 그럼 이제 어떻게 흘러 가는거야? 시중에 풀린 육두구 300상자 모두가 다 그렇다는 얘기면···.”


“우리가 가진 육두구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겠지?”


둘의 질문에 상황을 정리하듯 레온이 말했다.


“그래. 상황이 180도로 변한거야.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우리가 아니라, 저들 베네치아 상인들이야.”


교역소의 소동을 확인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레온일행은 점심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줄기찬 방문을 받아야했다. 다급한 얼굴의 베네치아 상인들은 레온이 가진 육두구의 가격을 끊임없이 물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레온은 확답없이 그들을 물리기만 했다.


“레온, 방금 저 자까지 스무명이 다녀갔어. 급하긴 급한 모양이야. 어쩔 셈이야? 얼마에 팔 생각이야?”


잠시 생각에 잠긴 레온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 여섯시. 베네치아 중앙광장 게시판에 가격을 공시한다. 가격은···.”



**



마주한 베네치아 교역소가 일렬로 모여있는 곳.

그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중앙 광장의 게시판 아래.


레온 함선이 가격을 공시한다는 소식에 육두구가 필요한 베네치아 상인들이 일제히 몰려있었다.


“아니, 라고스의 육두구가 그럴 줄 누가 상상이냐 했겠냐고? 난 10상자나 샀는데···.”


“10상자가 가지고 죽을 상은? 난 20상자를 샀다고! 전부 폐기처분하고 다시 사야할 입장이야.”


“아, 누군 아닌가? 근데 그 레온이라는 자는 대체 얼마에 판다고 하던가? 시세대로?”


“모르지! 원래 시세가 금화 2만닢인데···. 이렇게 된 이상 아마 더 높여서 부르겠지?”


“아, 그러게 내가 그냥 시세대로 사자고 하질 않았나? 처음 2만닢으로 공시됐을 때. 그 때 샀으면 지금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아니, 라고스 육두구 소식을 전하며 담합하자고 한게 누군데! 이제와서 그런 소리를!”


하나같이 울상이 된 상인들이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적당한 남탓과 아쉬움 섞인 후회로 가득찬 그들.


그때였다.

그들 사이로 위엄에 찬 그림자가 나타났다.


레온 메이슨.

그가 좌우로 랄프, 카렌, 세라노, 토미를 대동하며 나타난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그들의 등장에 모두들 말을 멈췄고 마른 침을 삼켰다.


상인들 사이를 스치듯 지나간 일행이 게시판 앞에 멈춰서고, 레온은 손에 쥔 문서를 랄프에게로 건넸다.


건네받은 문서를 펼친 랄프가 좌중을 잠시 돌아보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레온 함선이 가진 육두구의 가격을 공시하겠습니다.”


광장에 모인 모든 이들이 숨죽이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육두구의 가격은 한 상자에···. 한 상자에 3만닢!”


“뭐라고? 3만닢?”


“3만닢!! 말도 안돼···.”


“시세에서 만닙이나 더 비싼 가격이잖아?”


탄식에 가까운 볼멘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그들의 얼굴은 울상을 넘어 죽을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라고스로부터 불어온 일확천금의 기회가 바람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런 반응과 상관없이 랄프는 펼쳐든 문서를 게시판에 올려붙이고 있었다.



**



“레온, 아직까지 아무도 반응이 없어. 어떻게 된거야?”


가격을 공시한 지 거의 하루가 다 지난 시간.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카렌과 레온 앞으로 나타난 랄프였다.


“레온, 지금까지 아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건···. 처음부터 3만닢은 너무 무리한 가격 아니었을까?


“이번에도 상인들 사이에 담합이 있었을 거야. 그 가격에 사지 않으려는 상인들이 서로를 단속하고 있는거지.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조용할 수는 없어.”


“그럼 어떡해? 우리도 물품을 꼭 처분해야 하잖아. 그냥 2만5천닢으로 가격을 내리는 건 어떨까?”


“그래. 카렌의 말이 맞아. 그 가격이라 해도 우린 대박이야. 300상자 모두를 처분하면 자그마치 금화 750만닢이라고!”


“아니, 가격을 내리는 일 따위는 없을거야. 이제 마지막 단계야. 여기까지 와서 물러날 순 없어.”


여전히 걱정스러운 카렌이 말했다.


“그럼 어떡해? 당장 내일이면 교역의 날 행사가 다 끝나. 모여들었던 상단과 함대가 다시 흩어질거라고. 당분간 교역소 문도 닫힐거고···.”


잠시 생각에 잠긴 레온.

무언가 비장의 수를 생각하듯 입을 닫고 있던

그가 천천히 일어났다.


“마지막 수를 써야지.”


**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펼쳐진 교역의 날 행사.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고 세계 경제와 자본의 흐름이 머물렀다 스쳐갔던 한 달이 모두 지나고 있었다.


행사가 끝나기 하루 전, 교역소 중앙 광장은 한산하기 마련이다. 이미 대부분의 상인과 교역소에서는 상품 거래가 끝났을 시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를 뜰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허나 지금은 달랐다.


아직 교역을 채 끝내지 못한 한 품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온 메이슨 함대가 가진 육두구 300상자.

그 것이 지금 베네치아 중앙광장에 한데 모여 거대한 탑처럼 쌓여있었다.


상인들은 영문을 알지 못했다.


가격을 내리라는 자신들의 무언의 압박에 마지못해 굴복해야할 레온 일행이···. 그들이 지금 왜 이 상자들을 모두 꺼내서 한 곳에 쌓아놓은 것인지···.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육두구 상자가 쌓여가는 모습을 보고는 맘 편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모여든 것이다.


과연 어떤 결론이 펼쳐지든···.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모두가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내리쬐는 석양을 뒤로 하며,

레온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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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모험의 소용돌이(3) 22.06.12 184 4 11쪽
30 모험의 소용돌이(2) 22.06.11 194 4 11쪽
29 모험의 소용돌이(1) 22.06.10 207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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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2) +1 22.06.08 238 6 11쪽
26 알제 해적, 발바롯싸 하이레딘(1) 22.06.07 223 6 12쪽
25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3) 22.06.06 246 7 12쪽
24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2) 22.06.05 250 8 11쪽
23 레온 메이슨, 세우타를 휩쓸다(1) 22.06.04 253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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